여호수아가 죽은 뒤 사무엘의 왕정시대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판관시대를 맞게된다. 판관이란 왕은 아니지만 민족을 지도하는 통치자로서 사법과 행정을 관할했다. 판관이란 "구원자"라는 뜻으로 재판관의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니다. 판관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위급한 국가위기 때 군대 총사령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판관시대는 그야말로 군웅할거의 과도기였다. 강력하게 민족을 통치할 왕이 아직 없었으니 사람들마다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고 야훼신앙을 버리고 가나안의 우상신인 바알을 섬기며 우상숭배에 빠지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때마다 하느님은 판관을 보내시어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않게 역사하셨다.
이스라엘의 판관 중 드보라는 유일한 여성이다. 여성이 절대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당하던 당시에 여자 판관은 가히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라삐돗의 아내인 여자 예언자 드보라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면서 재판을 주관했다. 그런데 당시의 정세는 가나안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어려운 시대였다. 어느날 드보라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렀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셨소, 납달리 지파와 즈불룬 지파에서 1만명을 뽑아 다볼산으로 가시오. 그리고 야빈 군대의 지휘관 시스라를 키손강으로 유인해 우리손에 섬멸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소. 내가 말한 대로 즉시 시행하시오."
그러자 바락이 떨면서 대답했다.
"정말입니까? 그 강한 군대를 정말 이길 수 있나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혼자는 죽어도 못 가겠습니다."
그러자 드보라는 "정 그렇다면 내가 함께 가겠소.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의 공과는 당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오"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자! 출동!"
바락의 명령에 따라 두개 지파에서 뽑힌 1만명이나 되는 군사가 출동했다. 여자판관 "드보라"도 함께 따라갔다.
"바락"이 다볼산으로 군대를 출동시킨 사실을 접한 "시스라"는 900백대나 되는 철병거를 합친 전병력을 키손강으로 진군시켰다.
엄청난 병력으로 싸우러 오는 것을 보고도 "드보라"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락"에게 명령했다.
"행동을 개시하시오. 당신은 오늘 시스라를 이길 것이오. 공격하시오."
"정말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저렇게 강력한 군대인데…."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 앞에 서서 전진하실 것이오. 당신은 꼭 승리할 것이오…."
바락은 드보라의 명령대로 군대와 함께 돌격했다.
"돌격! 앞으로!"
그러자 "시스라"의 군대는 병거에서 내려 도망쳤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끝까지 추격해!"
사령관 시스라도 비겁하게 도망쳤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결국 전투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판관기 4장)
드보라의 용기는 남자들을 압도했다. 그녀는 지혜와 신앙을 겸비한 여성 정치가였다. 그녀의 용기있는 결단력이 민족을 구하고 40년이나 태평성대를 이루게 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국모(國母)로 추앙받은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미 판관시대에 최고의 지도자로 여성이 활약했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본다면 사실 남녀의 신분차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그리고 동반자로서 창조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위주의 역사관이 여성의 불이익을 조장했다고 본다. 창조 신앙안에서는 남녀뿐 아니라 어떠한 인간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 인간 차별에 대한 의식자체가 엄청난 죄악임을 깨달아야 한다.
여성 권익이 많이 신장되었다 해도 실제적인 사회 현장에서는 여전히 성차별이 심하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성의 완전한 실현 역시 중요시한다. 남성과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인정되고 수용되는 사회와 가정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능력이나 역할의 차이는 있지만 남녀라는 성의 차이는 누구라도 평등한 것이다. 꼭 남녀의 차이뿐 아니라 가진자와 못 가진자, 배운자와 못 배운자의 차이는 인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차이가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더구나 신앙인에게는 인종, 문화, 사회적으로 성적 차별이 존재해선 안된다. 무엇보다 생각과 의식이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우리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차별의 선입견이 존재하지 않는지 되돌아보자.
21세기는 느낌(Feel)이 중요한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더욱 여성들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능력이 국가와 사회, 교회 안에서 한껏 발휘되기를 고대해 본다. 많은 드보라가 나타날수록 우리의 역사는 그만큼 더 발전할 것이다. 공익광고의 문안이 새삼 떠오른다.
"남녀 차별, 미성숙한 인격에게나 어울리는 말입니다."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