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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1: 1-10(553)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방법 2024. 9. 15
오늘날 세계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를 선택하라고 말하면, 이의 없이 미국과 중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중국은 세계에서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강대국입니다.
하지만 불과 한 세기전만 하여도 중국이 이렇게 미국과 어깨를 겨루고 세계 1인자 자리를 넘볼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세계 1위를 넘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근대 세계사를 살펴 보다 보면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때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막강했던 중국이 세계를 제패하지 못하고 몰락한 것입니다. 많은 경제학자, 인류 문화사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중국의 몰락은 미스테리’라고 말합니다. 역사를 살펴봅시다. 중세 때 중국의 기술은 모든 면에서, 세계적으로 최고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나침반, 화약,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나침반을 사용하여 먼 바다를 항해하니 당시 항해술도 세계에서 최고를 자랑했습니다.
명나라의 <정화>라는 사람은 황제, 영락제의 명령에 의하여, 1405년 수 백척의 보물선단을 움직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7차례에 걸쳐서, 대항해를 했는데, 동남아시아, 인도, 스리랑카는 물론이고, 멀리 중동과 아프리카 동부까지 항해하면서 무역을 하였습니다. 정화가 항해한 상선 중 가장 큰 배는 길이가 120m에 달했고, 그 당시 항해에 종사한 인원도 3만명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생각해보아도 대단한 일입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 지금의 미국 땅을 발견한 1492년을 기념비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합니다. 그런데 정화는 콜롬버스보다 90년 앞서 세계를 무역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서양 배들은 재래식 활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중국의 배들은 첨단 화약무기를 사용하는 총과 대포 등을 장착하여 사용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중국의 무기는 최신형이었고, 서양의 무기는 구닥다리 구식입니다. 이처럼 당시 중국은 모든 면에서 세계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졌던 나라입니다.
이렇게 막강한 화력과 뛰어난 항해술, 선박 건조술을 갖춘 중국이 왜 18세기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게 잡아먹히면서 패망하여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었을까요? 중국이 희망봉을 돌아 유럽을 정복하고,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을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요? 이것이 역사학자들의 의문점이었습니다.
미국 UCLA 의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교수는 그의 유명한 책,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The Fates of Human Societies)에서 이렇게 정답을 내립니다.
중국의 몰락 원인은 잘못된 정치라고 단언합니다. “1405-1433년 일곱 차례의 선단이, 중국을 떠나 세계를 항해했는데, 당시 중국 조정의 정치 파벌 때문에 망했다. 당시 두 파벌이 있었는데, 환관과 반대파 사이에 권력투쟁 때문에 정화의 선단 파견이 힘을 얻지 못하고 중단되었다.”이 뿐 아닙니다. 14세기 명나라시대에 정교한 수력방적기 개발해 놓고도 이를 포기해서, 산업혁명의 문턱에서 물러나면, 세계 기술을 선도하던 기계식 시계도 포기합니다.
이 책에 보면, 1960-1970년대 중국 대륙을 휩쓴 “문화혁명”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합니다. 문화 혁명 시대에 모택동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가 5년간 문을 닫고, 경제를 비롯한 모든 문화가 후퇴한 것을 지적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의 어리석은 결정들이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고, 국민들을 큰 고통 속에 빠뜨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과거 중국의 몰락만을 살펴 볼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대한민국도 서서히 침몰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경제 대국이라 말해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이 아무리 많은 물질이나, 지식이나,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어리석게 살아나가면 결국 불행해지고, 비참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지혜로운 인생살이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그 인생을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인생을 반석위에 세우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참으로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리석음을 다 제거하고, 참으로 지혜롭고, 복된 삶을 사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함께 생각하겠습니다.
1. 과도한 욕심을 버려야합니다.
왕상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왕 가운데 가장 악한 왕, 아합이 나봇이라는 한 평범한 시민이 소유한 포도원을 아주 악랄한 방법을 사용하여 빼앗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한 아합 왕과 딱 궁합이 맞는 여자가 바로 그 아내 이세벨입니다. 시돈 왕이 딸이었던 이세벨은 이스라엘로 시집오면서, 자신이 섬기던 바알 신을 그대로 이스라엘에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남편인 아합 왕이 부인의 말에 따라 먼저 우상 숭배를 하고 곧 나라 전체에 우상 숭배의 도가니로 몰아가 버립니다.
이때에 아합 왕이 살고 있는 궁궐 인근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포도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합왕은 이 포도원을 보고 욕심을 품습니다. 그래서 아합왕은 나봇을 불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절,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평범하게 잘 살아가면서 포도 농사를 짓던 포도원을 하루아침에 자신의 채소밭으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다른 아름다운 포도원을 준다든지, 또는 돈으로 매매하겠다’는 말은 다 거짓부렁에 불과합니다. 오로지 자신이 이 땅을 가지고 싶어서 지금 사탕발림 말을 합니다.
그러나 나봇은 일언지하에 왕의 이 요청을 거절합니다.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라봇이 포도원을 팔지 않겠다는 이 말을 듣고 아합이 보이는 행동을 보세요. 이것은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철부지 5살 꼬맹이가 하는 모양과 똑같은 행동을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장난감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밥 안 먹겠다고 투정 부리면서 등 돌리는 모양새가 아닙니까?
이런 아합 왕의 밴댕이 소갈머리는 꼭 저를 닮아서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혼자서 킥킥거리며 많이 웃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아합 왕의 성격과 인품을 알 수 있습니다. 아합은 많은 물질과 동산과 부동산, 그 나라에서 가장 좋은 것, 모두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포도원 하나 가지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에 근심이 생깁니다. 마음에 근심이 생기니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그러니 밥맛이 나지 않고 세상 살 재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식음을 전폐합니다.
일국을 다스리는 왕의 모습치고는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 들지 않습니까? 좋은 것 다 소유하고 있는 왕이 왜 이렇게 살고 있나요? 한 마디로 말해서 과도한 욕심 때문입니다. 가져도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욕심 때문에 이런 초라하고 궁색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욕심은 성도를 초라하게 만들고, 욕심은 성도의 인생을 불행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눅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합왕은 <소유 집착형 인간>입니다. 소유 중심의 삶의 마지막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유한 만큼의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철학이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소유와 인격은 별개이며, 소유와 행복도 별개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고리대금과 사채를 하여 돈을 많이 벌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기가 막혀서 ‘다 너희들을 잘살게 하려고 내가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함이다.’그러자 아들은 ‘우리는 정직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를 원합니다.’아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생각과, 돈만 많이 물려주면 자녀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이 엄청난 오해가 이 세상을 어렵게 만들고 우리의 인생을 불행하게 합니다.
여러분, 과도한 욕심, 탐욕은 죄의 뿌리요, 불행의 화근입니다. 탐욕은 곧 우상숭배요, 결국 탐욕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탐욕이 가롯 유다로 하여금 예수를 배반하고, 은30에 팔게 했고, 과도한 욕심이 아나니아와 삽비라로 하여금 성령님을 속이게 했습니다.
아합 왕의 불행의 첫째 원인은 과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욕심을 절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몇해전 미국 LA 국제공항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총격사건의 범인은 23살의 폴 치안시아 (Paul Anthony Ciancia)인데, 이 사건으로 40대의 교통안전국 남자 직원 한 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는 일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반자동 소총을 범행에 사용했는데, 범행 동기는 교통안전국에 원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한이 있고 내가 싫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죽인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에서도 ‘묻지마 증오범죄’가 심심치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불행한 사건들의 원인은, 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과한 욕심 때문에 엄청난 사건들이 발생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절제하지 못하면 불행해 집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절제하지 못하고, 다 해버리면, 자기도 불행해지고, 남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도한 욕심을 제거하고 절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악인들의 죄에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합 왕이 조그마한 포도원을 가지지 못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못자고, 우울해져 있는 이런 모습을 지켜 본 부인 이세벨은 왕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7절 보세요.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그리고 8절입니다.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왕의 이름을 도용하여 거짓 편지를 만들고, 이 편지를 이용해서 이세벨이 계획하는 음모가 무엇일까요? 9절에서 11절까지 연이어 봅시다.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나봇을 죽였습니다).
착한 나봇을 궁지로 몰아서 잔악하게 생명을 앗아가는 이 방법. 이세벨이 계획한 이 악한 일을 실행 한 사람들을 누구라고 말하나요? 나봇이 사는 성읍의 장로와 귀족들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나봇을 몰랐기에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는 나쁜 놈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실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로들과 귀족들은 나봇이 살고 있는 성읍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우리 동네 반장이고, 기역사회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 지역 유지라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봇이 절대 하나님에게 불경하거나 왕을 저주하는 일을 하지 않는 착한 사람이다. 나봇은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 다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세벨이 던진 당근(돈,권략)에 넘어가서 착한 나봇이 돌에 맞아 죽도록 살인계획을 짜고 실행하도록 방조한 나쁜 사람들입니다.
시편 1:1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어떤 사람이 복 받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하나요? 세 종류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1)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 2)죄인들이 모의하는 범죄의 길에 서지 않고 3)오만한 자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결국 아합과 이세벨은 어떤 심판을 받게 될까요? 나봇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엘리야가 나타나 심판을 선언합니다.
19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법이 선언됩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심판을 보면 21절입니다.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단순하게 아합과 이세벨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집에 속한 모든 남자는 다 죽임을 받아 집안 자체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벌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세벨의 간악한 범죄에 동참한 무리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의 물질의 힘을 믿고, 세상의 정치적인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한때는 승리하고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힘을 의지하기보다는, 항상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믿음에 있습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2022년에 두란노 출판사에서 ‘내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2010년 12월 22일 밤 경북 안동 귀금속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의 집에 4인조 복면강도가 침입합니다. 이들은 현금 1000여만 원과 귀금속을 강탈합니다. 그리고는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부인과 딸을 성폭행하려고 합니다. 회장은 결혼하지 않은 대학생 딸만은 제발 손대지 말아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 때 강도 중 두목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선반에 놓여있는 감사패를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금은방주인이 시온재단 이사장 정창근 장로님(1935-2022.1.29.)으로부터 받은 감사패였습니다. 정창근 장로님은 안동에서 이비인후과 병원을 50여년 운영한 의사이며 안동교회 장로님입니다. 그리고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성좌원의 원장으로 33년간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하신 분으로 지역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기독교 장로님이었습니다.
강도 두목은 정창근 장로님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자세히 물어보고, 이 사람 역시 성좌원에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른 강도 동료들을 설득해서 돈도 훔치지 않고 대학생 딸 아이도 건드리지 않고 그냥 나가 버립니다.
이런 믿기 어려운 사실이 안동 일보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 덕을 끼치는 사회 어른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욕과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존중을 받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본문에 나오는 돈에 눈이 멀어 죄 없는 나봇을 모함하여 살해한 아합과 이세벨이 절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어리석음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과도한 욕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죄악된 것에는 몸을 담고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에 들어설 수 있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움에 동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