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불교를 만나다] <1> 프롤로그 / 이일야
가요, 불교를 만나다
대중가요 속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성찰해보자
왜 가요인가?
필자가 몸담고 있는 전북불교대학은 학기 중에는
불교와 관련된 강의에 집중하고 방학이 되면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한다.
불교대학이 불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철학과 역사, 문화 등을 공부하는
인문학의 전당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어서다.
그동안 동양 고전인 <대학(大學)>과 <중용(中庸)>,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비롯하여
<중국의 사상가들>, <철학이 필요한 시간>, <동화와 철학의 만남>,
<일본문화 톺아보기> 등 다양한 강좌를 진행하였다.
인문학 강좌에 참여했다가 불교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어서
학사 운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여름방학에는
‘가요를 철학하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8주에 걸쳐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였다.
대중가요 속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성찰해보자는 취지로 설강된 강좌였다.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으로 노랫말을 찬찬히 음미해보니,
그 안에 중요한 삶의 가치와 의미들이 적지 않게 담겨있었다.
이를 혼자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학인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에
가요와 철학의 만남을 시도한 것이다.
당시 가요와 인생, 사랑과 자유, 욕망과 질투, 소유와 존재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오늘의 시선에서 대중가요를 새롭게 해석해보았다.
강의에 참여한 학인들은
가요 속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강좌를 진행하면서 문득 대중가요 속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일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대중가요를 들여다보니,
불교에서 중시하는 다양한 가르침을 만날 수 있었다.
예컨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인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에는
인연(因緣)과 자비(慈悲)의 가르침이 담겨있었고,
송창식의 <푸르른 날>에서는 무상(無常)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었다.
그 귀한 가르침을 보물찾기하듯 하나하나 찾아내어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가요인가. 대중가요는 다양한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가수 송대관은 <네 박자>에서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라고 노래하였다.
가수의 지적처럼 네 박자 안에는 울고 웃는 우리네 수많은 사연과 인생사가 담겨있다.
대중가요에는 단골 메뉴인 사랑과 이별뿐만 아니라
자유, 욕망, 질투, 꿈, 집착, 그리움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녹아있다.
그 감정들이 모이면 한 사람의 삶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요는 인간의 삶이 다양하게 펼쳐진 한 권의 시집이었던 것이다.
그 책(book)이 곧 우리들 삶의 터전(book)이다. 우리가 가요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처럼 대중가요는 불교와 인문학의 보물 창고다.
여기에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펼쳐져 있다.
인문학의 핵심 물음이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있다면,
가요는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참고자료가 되는 셈이다.
물론 모두가 공감하는 정답은 없겠지만,
가요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기만의 해답은 찾을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세계관이나 인생관, 혹은 자기 철학이라 부른다.
이러한 자기 철학을 정립하고 사는 사람의 삶은 주체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자기만의 사유를 바탕으로 삶을 가꿔나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이 없다면 창조적인 삶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자유의지가 아니라 자본이나 물질의 욕망에 이끌려 살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자기상실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어찌 보면 내가 주연인데, 정작 주인공은 나오지 않고
돈이나 자동차, 아파트 등 엑스트라만 등장하는
이상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인생이란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지 않도록 말이다.
가요와 불교의 낯선 만남
대학 시절 어느 노교수님의 오래된 원고를 정리한 적이 있다.
당시 그분의 노트에는 한글보다는 흘려 쓴 한자가 많아서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한자가 있었는데,
바로 ‘생각(生覺)’이란 단어였다.
우리들이 흔히 쓰는 ‘생각’이란 말이 한자였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대개 ‘사유(思惟)’라는 한자를 많이 사용하지만,
생각을 한자로 접하게 되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면서 이 단어는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불교(佛敎)는 글자 그대로 붓다(佛)의 가르침(敎)이지만,
동시에 깨달음(覺)의 가르침(敎)이기도 하다.
중생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었고, 깨친 붓다의 가르침이 곧 불교이기 때문이다.
‘생각(生覺)’이란 한자에는 삶(生)이 깨어난다(覺)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중생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된 것 또한
잠자고 있던 삶이 깨어난 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을 흔히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사유하는 능력에서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본질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자신이 지은 업(業)에 이끌려 살기 때문이다.
업의 관성이 새로운 사유를 압도한다는 뜻이다.
불교식 표현으로 중생이 업에 이끌려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하는 존재라면,
붓다는 세계와 자신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는 깨어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 1976)는
생각이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과 조우할 때 일어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익숙함이 아니라 낯선 상황과의 만남에서 생각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평소 외모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여성이
어느 날부터 화장이나 옷 입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저 여성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술과 담배에는 전혀 입을 대지 않던 남성이
갑자기 매일같이 음주와 흡연을 반복한다면
그에게 어떤 힘든 상황이 생긴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한다.
이처럼 평소의 익숙한 상황이 아니라 낯선 상황과 마주할 때 우리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실존적으로 깊어지면 종교적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석가모니 붓다 역시 낯선 상황과 만남으로써 삶(生)이 깨어나는(覺) 체험을 하게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왕자 싯다르타의 삶은 좋은 음식과 집,
좋은 환경이라는 익숙한 상황 속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 표현되는 성문 밖 체험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성문 안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늙고 병들고 죽은 시체와의 낯선 만남을 통해 그의 삶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근본 물음이 이어졌고
그 해답을 찾아 출가를 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소부경전>의 ‘우다나’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참으로 진지하게 사유하여 일체의 존재가 밝혀졌을 때, 그의 의혹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것은 연기의 진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싯다르타를 깨달음으로 이끈 것도,
불교의 핵심인 연기(緣起)의 진리를 알게 된 것도
사유(思惟)를 통해서 일체의 존재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붓다의 성도(成道)의 비밀이 생각에 있었던 것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낯선 상황과의 만남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삶의 근본 물음으로 삼아 깊이 사유하고 수행한 끝에 잠자고 있던 삶이 깨어나
중생에서 붓다로 질적 전환을 일으킨 것이다.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생각이란 말을 수업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가요, 불교를 만나다’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가요와 불교의 낯선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만남을 통해 대중가요 속에서 불교적 의미를 찾아내고
인문학의 근본 물음인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필자는 불교의 외연을 넓혀 철학이나 종교학 등 인문학과의 관계 속에서
불교를 해석하는데 관심을 갖고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래야 불교가 생생한 삶의 현장 속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화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불교적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중가요와 불교의 만남 역시 이런 차원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지금부터 새롭고도 흥미로운 만남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대중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가요 속에서 어떤 보배 같은 붓다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현재의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잠자고 있던 필자의 삶(生)도 깨어나지(覺)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필자의 본명은 이창구이며, 일야(一也)는 법명이자 필명이다.
전북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전북대학교와 전주교육대학교, 송광사승가대학 등에서
철학과 종교학, 동양사상 등을 강의했으며 보조사상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냈다.
현재 전북불교대학 학장과 (사)부처님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등 10여 권과
‘조선 중기 보조선의 영향’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2023년1월10일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