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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4:6-10(1316) 멸시받음에서 기쁨의 대상으로 2026.7.26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날 티코 탄 아줌마가 운전을 하다가 빨간 불이 들어오자 차를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옆에서 그랜저를 탄 아줌마가 잘난체하려고 티코 탄 아줌마한테 물었습니다. ‘언니, 티코 얼마주고 샀어?’. 이리 물어 보는 것은 자신은 그랜저를 타지만 티코 타는 여자를 부시해서 던지는 말입니다. 말 같지 않은 질문이라 생각해서 티코 탄 아줌마는 대꾸하지 않고 출발해 버립니다.
그렇게 주행하다가 빨간불이 들어와 티코를 몰고 있는 아줌마가 멈추게 됩니다. 그러자 그랜저 타고 온 아줌마가 옆에 멈춰 서서 다시 물었습니다. ‘언니 그 티코 얼마주고 샀냐고?’ 그러자 티코 탄 아줌마 왈 ‘야이 가시나야. 벤츠 사니까 덤으로 끼워 주더라.’
무엇을 말하는 내용일까요? 조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내용입니다. <멸시>라는 말은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겨 깔보는 것을 말합니다. 조금 배운 사람은 못 배운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겨 깔봅니다. ‘너 어느 학교 출신이야? 매출액 얼마야?, 직원 몇 명이야?, 아들 어느 학교 들어갔어?’이런 것으로 멸시합니다.
불신자들만 이런 잘못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도 똑같이 잘못 행동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 ‘자신이 조금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형교회에 다닌다’는 우쭐함에 빠져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는 작은 교회 다니는 교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너가 다니는 교회는 출석 교인이 몇 명 되나? 1년 예산 얼마나 되나?’그러면서 대형교회 교인과 작은 교회 교인을 등급으로 구분합니다.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그렇습니다. ‘너의 집 몇 평이야? 너희 집 무슨 차 타고 다녀? 너희 아버지 무엇해?’하면서 자신만 못하면 업신여기고 하찮게 여겨 깔봅니다. 그것은 개인 간에도 그렇지만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스룹바벨이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10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음에도 그 쯧을 쉽게 알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번역된 한글성경 부분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직역하면 ‘공사가 시시하게 시작되는 것을 보고 깔보던 사람들이 누구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무슨 내용이냐 하면, 그 배경이 이러합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합니다.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힘을 합하여 열심을 다해 파괴되어 버린 성전을 보수하고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의 훼방꾼들이, 방해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룹바벨의 성전이 솔로몬 성전과 비교할 때 형편없이 미미하게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이 ‘그것도 성전이라고 짓느냐?’라며 깔보고 업신여깁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단순하게 깔보는 단계를 넘어 멸시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이렇게 멸시하는 자들이 스룹바벨에게 보여주는 완악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의 성전공사가 작은 일의 모습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라며 호통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사이에도 하찮게 여기며 멸시하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이런 것도 음식이라고 내어 놓았느냐?’라고 아내를 멸시하는 남편들이 있습니다. 남편이 힘들게 벌어 오는 월급을 두고 ‘이 작은 돈 가지 무엇에 쓸 수 있느냐’며 하찮게 여겨 깔보는 아내들도 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모습을 본받아서 안 됩니다. 우리 교회 다니는 모든 성도님들은‘가진 게 없다고, 가방 끈 짧다고, 직업 변변 않다’고 주눅 들며 신앙 생활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멸시를 바꾸어서 기쁨으로 이끌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멸시받으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모 된 입장에서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멸시 받으며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멸시받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성과를 다 이루어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1.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일까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멸시한다는 것이 나쁜 행동이라는 것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다 공평하고 보호받아야 되는 개인적 인권과 인격이 존재하는데, 사람들이 멸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멸시의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나보다 능력이 없다’고 판단 될 때, 멸시합니다. 차별합니다. 그리고 하찮게 여겨도 되는 존재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나 보다 너는 능력이 없다. 나 보다 너는 더 뛰어난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유대백성들의 지도자가 되느냐?’이런 판단이 지도자 스룹바벨을 향한 멸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 누구인가요? 그는 바벨론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때, 1차 귀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정치적 지도자입니다. 게다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의 신임을 받는 충직한 신하로서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받았던 능력 있는 자였습니다. 귀환후에는 헌신하고자 노력하였던 이들을 모아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변국들의 반대와 유대인들 중에 악한 자들의 반대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발생하였고, 결국 중도에 멈추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스룹바벨이 주도하였던 성전 재건 공사가 멈추자 어떤 일이 발생하였을까요? 일반 백성들은 크게 낙심합니다. 스룹바벨을 끌어 내리기에 혈안되었던 악한 자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무능한 지도자’라는 말로 공격합니다.
그 결과 스룹바벨 한 사람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멸시와 조롱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룹바벨 또한 인간인지라 힘든 일이 연이어 발생하면 기진맥진하여 탈진할 수 있습니다. 한계를 가진 인간인지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이어지는 스트레스를 견딜 자는 없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때, 악한 왕 아합이 선지자를 죽이기 위해 집요하게 살해 공격을 합니다.
아합 왕보다 부인이었던 이세벨은 더 엘리야를 미워하며 집요하게 엘리야를 죽이려고 행동을 합니다. 왕상 19:2절,‘내일 이맘때까지 내가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견디다 견디다 못한 엘리야선지자는 탈진하여 광야 사막으로 도망칩니다. 그리고는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스스로 죽기를 원하며 하나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왕상 19:4절, ‘스스로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천하의 엘리야도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워서 완봉승을 거둔 엘리야이지만,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고 깊은 좌절에 빠지면 이런 엉뚱한 선택과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깊은 좌절에 빠져 있는 엘리야선지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위로하고 회복시킬까요?
먼저 천사를 보내 떡과 물을 먹이시고, 충분히 쉬게 하신 후,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내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이렇게 낙심에 빠져 있었던 엘리야에게 힘을 주셔서 다시 불러 세워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멸시와 조롱을 받고 있던 스룹바벨에게도 하나님은 같은 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스가랴서를 읽어 보면,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8개의 환상을 보여줍니다. 스가랴 4장에 기록되어 있는 ‘순금등잔대와 두 감람람나무’환상은 5번째 환상입니다. 금으로 만든 등잔이 있고, 꼭대기에 등잔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는 7 등잔이 있습니다. 등잔마다 기름구멍이 뚫려 있는 데, 올리브 나무 두 그루가 등장 오른쪽과 왼쪽에 서 있는 내용입니다.
4절에서 스가랴 선지자는 천사에게‘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라고 물어 봅니다. 이 때 천사가‘성전을 짓다가 멸시받은 스룹바벨에 대한 환상’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낙심한 스룹바벨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는 내용이라 말합니다.
6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여러분들이 들어 보셨을 말씀으로 아주 중요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여기서 등장하는‘힘’이라는 말과 ‘능력’이라는 말은 서로 유사한 뜻을 지닌 동의어입니다. 그러나 굳이 구분하자면, <힘>은 군사적인 세력이나 경제적인 힘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고, <능력>은 개인의 육체적 능력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됩니다.
구어체로 이렇게 번역됩니다. ‘네가 하는 일은 인간적인 권력이나 군사적인 폭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내 영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스룹바벨은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 성전 공사가 마무리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물로 인해 성전건축이 16년 동안 중단됩니다. 성전건축이 중단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대자들이 비난과 멸시를 쏟아 붇고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위로의 말씀을 던집니다. ‘너가 가진 힘으로만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마라. 너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만 주의 일을 하지마라. 그러면 실패하고 상처 받아. 내가 주는 성령의 능력으로 일을 하려무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일이든, 교회일이든,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결과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어 그것을 개발하여 주어지 과업을 이루도록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달란트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십니다. 때로는 병 고침의 은사를 주십니다. 능력의 은사를 주십니다. 지혜의 은사를 주십니다. 방언의 은사를 주십니다. 필요에 따라 갖가지 은사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도록 해 주십니다.
기드온 겁쟁이였습니다. 여호와의 신(성령)이 기드온에게 임하니까, 300명의 적은 군사로 미디안 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농부인 엘리사도 여호와의 신이 임하니까 요단강 물을 가르고,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고, 죽은 아이를 살리는 기적을 보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가 버렸던 비겁한 베드로에게도 성령의 충만하니까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설교하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기적이 일어난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남태평양 뉴헤브리디스(현재 바누아투)의 선교사였던 존 패튼(John G. Paton, 1824~1907) 부부가 머물던 선교관이 원주민들에게 완전히 포위됩니다. 그들은 불을 지르고 패튼 가족을 죽일 계획이었습니다. 패튼 부부는 밤새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어떠한 공격도 하지 않았고, 날이 밝자 모두 떠나 버립니다.
몇 년 후 부족장이 회심한 뒤 패튼선교사가 물었습니다. ‘그날 밤 왜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부족장은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선교사님 집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빛나는 군사들이 보여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날이 밝자 철수 했다.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패튼은 그날 밤에 자신을 도울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 패턴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보호하셨구나’라고 고백합니다.
낙심하고 기진맥진하여 주저앉아 있는 스룹바벨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일을하라’고 말씀하며 위로합니다. 우리 또한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는 일이 막혀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멸시로 인해 극한의 궁지에 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 내 힘과 내 능력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손을 부여잡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믿고 의지함으로 멸시의 자리에서 기쁨의 자리로 옮겨가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2. 모든 장애물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되어집니다.
7절,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스룹바벨의 앞을 가로막았던 모든 장애물을 두고 하나님은 ‘큰 산’이라고 말합니다. 바라만 보아도 사람을 압도하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큰 산입니다. 도무지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한 산세를 보여주는 큰 산입니다.
이런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 턱하니 버티면서 스룹바벨의 의지를 꺽어 버리고, 낙심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넘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 큰 산을 두고, 하나님은‘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로막혔던 모든 장애물들이 다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스룹바벨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고 칭송합니다. 스룹바벨을 우습게 여겼던 반대자들이 이제 멸시하지 못합니다. 깔보지 못합니다. 업신여기지 못합니다.‘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외칩니다.
10절,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스룹바벨을 보고 멸시하던 자들은 정신차리라고 말씀합니다. 스룹바벨의 손에는 하나님이 주신 측량의 다림줄이 있기 때문에 멸시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의로운 다림줄을 가지고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는 성도를 보살펴 주십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 멸시를 받는 성도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다림줄이 무엇이에요? 단순한 건축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과 공의로운 심판을 상징하는 도구입니다. 스룹바벨에게 다림줄을 주어서 멸시하고 조롱하던 자들을 공의롭게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자들을 반드시 심판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도들은 고난과 역경의 순간일수록 멸시하는 자들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고, 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미국에서 평신도임에도 기독교 복음전도자로 이름을 드러내었던 루이스 잠페리니(Louis Zamperini. 1917-2014)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미국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였고, 제 2차 세계대전에 미공군조종사로 참전하였다가 비행기 추락함으로 망망대해 태평양에서 죽지 않고 47일 동안 표류합니다. 극적으로 구조되는데 일본군에게 발견되어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에 받은 극심한 고문으로 인해 전쟁 후에 악몽과 끔찍한 분노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집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자신을 지옥처럼 만들었던 끔찍한 증오와 분노를 십자가에 다 묻어 버리고, 자신을 악랄하게 고문했던 일본 군인을 직접 찾아가 용서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받았던 조롱과 멸시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되돌려 준 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나보다 연약하고, 나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멸시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내가 참기 힘든 멸시를 받고 있는 상태라면, 하나님의 손을 굳게 잡고 위기를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내 힘과 내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성령을 믿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있는 큰 산을 평지로 만들어서 내가 시온의 대로로 달려 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달려 나가는 8월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