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권력의 진화와 유지]
명제 22ㅡ권력은 나눌수록 커지고, 공유될수록 마르지 않는다
동물의 세계에서
벌집 하나에는 여왕벌이 있지만, 벌집을 실제로 운영하는 것은 수만 마리 일벌들의 분산된 의사결정이다. 새로운 집터를 정할 때 정찰벌들은 각자 후보지를 찾아와 춤으로 보고하고, 더 많은 벌이 동의하는 춤을 따라 추는 방식으로 합의에 이른다. 여왕은 이 과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결정권이 흩어져 있을수록 벌집 전체의 판단은 오히려 더 정확해진다.
늑대의 '알파' 신화는 뒤집힌 이야기다. 반세기 전 이 개념을 대중화시킨 생태학자 데이비드 미크의 관찰은 혈연 없는 늑대들을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얻은 것이었다. 훗날 그가 13년간 지켜본 야생 무리는 위계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 결정권은 서열 다툼이 아니라 부모의 역할 분담을 따라 흘렀고, 사냥에 나서지 못한 개체까지 먹이를 게워내 새끼와 무리에게 나눠주었다. 그가 처음 본 '위계'는 사실 좁은 우리, 즉 인위적인 감금이 만들어낸 인공물이었다. 자연 상태의 늑대는 위계 없이도 협력한다.
▷ L. David Mech, 1937~. 미국 지질조사국 소속 늑대 생태학자. 1970년 저서 《The Wolf》로 '알파' 개념을 대중화했으나, 1999년 논문에서 야생 무리는 위계가 아닌 가족 구조임을 밝히며 스스로 이전 개념을 정정함.
흡혈박쥐는 여기에 자원의 층위를 더한다. 이 박쥐는 사흘만 굶어도 죽는다. 그런데 사냥에 실패한 개체가 있으면, 그날 배불리 먹은 동료가 피를 토해 나눠준다. 준 개체는 나중에 자신이 굶주릴 때 똑같이 돌려받는다. 나눠준 피는 사라지지 않는다. 공동체 전체의 생존 확률로 저장된다. 우물처럼, 퍼내도 마르지 않는다.
▷ 흡혈박쥐의 상호부조. 제럴드 윌킨슨의 1984년 연구로 처음 보고되었으며, 혈연관계가 없는 개체 간에도 상호성에 기반해 나눔이 이루어짐이 확인되었다.
벌집도, 늑대 무리도, 흡혈박쥐 무리도 같은 것을 말한다. 강제로 가두면 위계가 생기고 자원은 고인다. 자연스럽게 두면 결정은 분산되고 자원은 순환한다.
1. 뜻풀이
권력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하나는 의사결정권의 분산이다 — 누가 결정하는가의 문제. 다른 하나는 자원의 공유다 — 무엇을 나누는가의 문제. 전자를 나누면 총량이 늘어난다. 위임이 분산될수록 오류를 걸러낼 눈이 많아지고, 정당성의 기반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후자를 나누면 총량이 줄지 않는다. 공유부는 소비된다고 사라지는 재화가 아니라, 나눠 쓰는 방식 자체가 그것을 고갈되지 않게 만드는 재화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논리이지만 같은 결론에 이른다. 독점은 정치에서든 경제에서든 결국 스스로를 부패시킨다. 위임을 한곳에 가두면 오류가 쌓이고, 자원을 한곳에 가두면 우물이 막힌다. 그리고 늑대가 보여주듯, 그 독점은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강제된 감금의 산물일 때가 많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은 이 원리를 정치와 경제 양쪽에서 동시에 실천했다. 그는 제나라를 향(鄕)·주(州)·리(里)로 세분해 통치 결정권을 여러 층위로 분산시켰고, 동시에 소금과 철이라는 당대의 핵심 자원을 국가가 독점하되 그 수익을 백성에게 되돌리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관중에게 다스림이란 결정권도 자원도 한곳에 고이게 두지 않는 기술이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로마 공화정이 강대해진 이유를 귀족과 평민 사이의 권력 분점, 곧 호민관 제도에서 찾았다. 그는 군주국보다 공화국이 오래가고 강한 이유가 바로 이 분산에 있다고 보았다. 결정권을 나눈 로마는 결정권을 독점한 이웃 도시국가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3. 역사적 사례
1절 — 정치적 위임의 분산
아테네는 대부분의 공직을 추첨으로 뽑았다. 능력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자격만으로 누구나 통치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것이 참주의 등장을 구조적으로 억제했다. 스위스는 오늘날까지도 국민투표와 칸톤 자치를 통해 결정권을 중앙에 모으지 않는다. 뉴욕시는 최근 시의원 선거에 순위선택투표(STV)를 도입해, 사표를 줄이고 다양한 대표성이 살아남을 길을 열었다.
반면 한국의 국민동의청원 제도는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도 처리율이 사실상 0%에 가깝다. 위임의 통로는 만들어 놓았지만, 그 통로 끝에 실제로 반응하는 권력이 없다면 분산은 형식에 그친다.
이 공백을 메우려는 실험이 지금 진행 중이다. 150명을 추첨으로 뽑아 6개월간 숙의하게 하는 시민의회 파일럿 사업이다. 예산은 약 1억 3,500만 원, 재원은 특정 후원이 아니라 1,000~1,500명이 각자 10만 원씩 내는 방식으로 마련한다 — 이름하여 '불판교체단'. 소수의 큰돈이 아니라 다수의 작은 참여로 판을 새로 짜겠다는 것이다. 대표성의 원리도 처음부터 분산을 겨냥해, 첫 번째 전략 카드로 순위선택투표(STV)를 확정해두었다. 위임을 특정 정당이나 소수 유력자에게 가두지 않고, 추첨과 숙의와 다수의 작은 참여로 흩어놓는 것 — 이것이 아테네의 추첨제와 스위스의 국민투표가 오늘의 한국에서 다시 시도되는 방식이다.
2절 — 경제적 자원의 공유
《주역》 정괘(井卦)는 우물을 이렇게 풀이한다. 마을은 옮겨도 우물은 옮기지 않으며, 퍼내도 줄지 않고 새로 채워진다. 로마의 수도(아쿠아덕트)는 이 원리를 공학으로 구현했다 — 물을 사유화하지 않고 도시 전체에 흐르게 함으로써 로마는 대제국을 지탱할 수 있었다. 팀 버너스리는 월드와이드웹의 기술을 특허 없이 공개했다. 그가 웹을 독점했다면 오늘의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은 고대 근동의 부채 탕감(주빌리) 전통을 근거로, 금융이 공유부의 순환을 막으면 문명 자체가 정체된다고 말한다.
한국의 농지개혁은 이 원리의 실증 사례다. 소수 지주에게 갇혀 있던 토지를 경자유전 원칙 아래 재분배하자, 이후 수십 년간의 경제성장을 지탱할 토대가 만들어졌다. 두레는 마을 단위에서 이 원리를 노동에 적용한 것이다 — 개별 농가가 감당 못 할 농번기 일손을 마을 전체가 돌아가며 나눠 짊어졌다.
언론과 공론장 역시 본래 국민 전체의 것이어야 할 공유부다. 토지가 사유화되면 지대가 소수에게 흘러가듯, 공론장이 사유화되면 '의제 설정권'이라는 무형의 지대가 언론 카르텔에 독점된다. 조봉암의 농지개혁이 지주에게 갇힌 토지를 되찾아왔듯, 오늘 되찾아야 할 공유부는 전파와 공론장이다. 미디어바우처법은 시민이 언론에 위임한 '알 권리의 대행'을 재정적으로 계량화해 되찾아오려는 시도다.
전기 역시 같은 문법을 요구한다. 전기는 시장에 전부 맡길 수도, 국가가 전부 틀어쥘 수도 없는 재화다 — 누구에게나 필수적이고, 송배전망은 자연독점이며, 그 생산과 소비가 사회 전체에 외부효과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전면 민영화도 전면 국유화도 아닌 언번들링(unbundling)이다. 발전과 판매는 경쟁에 열어두되, 모두가 의존하는 송배전망만은 공공의 통제 아래 둔다. 캘리포니아의 전력위기와 텍사스의 정전 사태는 이 구분을 지우고 전면 자유화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 경고다.
다만 오늘날 이 원리는 새로운 위협 앞에 있다. AI 시대의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인류가 함께 만든 언어와 지식을 학습해 만들어지지만, 그 성과는 소수 기업에 인클로저(울타리 치기)된다. 우물을 만드는 데는 모두가 참여했는데, 물을 긷는 두레박은 소수만 쥐고 있는 형국이다. 이 문제는 6부, 명제27에서 다시 본다.
4. 종합정리
정치적 위임과 경제적 자원은 서로 다른 재화처럼 보이지만, 권력의 문법에서는 같은 원리를 따른다. 위임을 나누면 총량이 커진다. 아테네의 추첨제도, 스위스의 국민투표도, 지금 준비 중인 추첨숙의형 시민의회도 이 원리 위에 서 있다. 자원을 공유하면 총량이 마르지 않는다. 로마의 수도도, 버너스리의 웹도, 한국의 농지개혁·두레와 언론이라는 공유부도 이 원리를 증명한다.
늑대가 알려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계와 독점은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좁은 우리가 강제한 인공물일 때가 많다. 우리를 넓혀 자연스럽게 두면, 결정은 분산되고 자원은 순환한다. 이 둘을 가르는 것은 하나다 — 무엇을 나누든, 독점은 결국 그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것.
오늘의 한국이 이 원리를 그대로 시험하고 있다. 정부는 스스로를 '위임받은 대리인'이라 부르면서도, 그 위임을 철회할 통로는 하나씩 지워왔다 — 검찰개혁은 숙의할 시간 없이 국회로 떠넘겨 정체시키고, 경찰개혁은 조직 개편이라는 형식으로 실질적 견제력 배분의 답을 대신하고, 에너지 정책은 찬반 여론조사를 숙의로 위장해 절차를 통과시켰다. 세 가지 방식은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이다 — 철회 가능한 위임을 철회 불가능한 통치로 바꾸는 기술.
에너지 정책이 특히 이 명제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이미 차고 넘치는 집중형 에너지에 다시 자원을 쏟으면서, 분산형 에너지로의 전환은 세계적 흐름에 한참 못 미치는 목표에 묶어둔다. 밀실에서 정하고 위험은 지방에 떠넘기며 미래를 저당 잡히는 이 방식은, 위임을 나눌수록 커지고 자원을 공유할수록 마르지 않는다는 원리에 정확히 반한다. 2026년 상반기 영덕과 기장이 신규 원전 부지로 결정된 과정이 정확히 이 공백을 보여준다.
이 해지 조항은 추상적 원칙에 머물러선 안 된다. 국민투표를 요청할 권리,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추첨 시민의회로 자동 이관되는 절차, 그리고 그 숙의가 갖춰야 할 최소 기준 — 이 세 가지가 법으로 못박히지 않는 한, 위임의 해지는 매번 정권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위임에는 반드시 해지 조항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멈추게 하고 되묻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위임이 아니라 양도다. 명제2에서 본 비지배(non-domination)의 원리 — 실제로 간섭받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간섭할 수 있는 힘 자체가 없어야 한다는 것 — 가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명제 22. 권력은 나눌수록 커지고, 공유될수록 마르지 않는다. 벌집의 분산된 합의와 늑대 무리의 가족적 분업, 흡혈박쥐의 상호부조가 이미 이 원리를 보여주었다. 아테네의 추첨제와 스위스의 국민투표,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시도되는 추첨숙의형 시민의회는 위임을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을, 로마의 수도와 버너스리의 웹과 한국의 농지개혁·두레와 언론이라는 공유부는 자원을 공유할수록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기 역시 전면 민영화도 전면 국유화도 아닌 언번들링으로 이 원리를 실현해야 한다.
독점은 정치에서든 경제에서든 스스로를 부패시키며, 종종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강제된 감금의 산물이다. 위임을 정체·형식·절차의 위장으로 잠식하고, 이미 넘치는 집중형 에너지에 다시 갇히려는 오늘의 선택은 이 오래된 원리를 거스르는 실험이다. 위임에는 국민투표 요청권과 시민의회 자동이관과 숙의 최소기준이라는 해지 조항이 있어야 하고, 국민은 멈추게 하고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간섭받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 간섭할 힘 자체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