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 악의 논리
2. 악의 논리상의 문제
3. 악의 증거상의 문제
4. 옹호와 변신론
5. 일련의 답변들
6. 포괄적인 주요 변신론들
7. 유신론에 대한 평가와 변신론
1. 서론 : 악의 논리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에서 나타난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이라든지, 미개발국에서 계속되는 기아, 대도시의 범죄, 정치의 부패, 말기의 암 환자가 겪는 절망적인 고통 등과 같은 악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악은 여러 형태로 우리 모두를 건드리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신론자들이 신에 대한 믿음과 악의 존재를 조화 시킬 수 없는 한 그 믿음을 가질 지적인 권리가 없다고 본다.
많은 사상가들은 악의 문제가 유신론의 믿음에 대해서 가장 강력한 합리적 반론이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독일의 신학자 킹은 이 문제를 '무신론의 암초'라고 불렀다.
악(evil)을 죄라는 신학적 범주 아래에서 생각 했고, 어떤 이 들은 악을 '유한성'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Madden 과 Hare 는 악의 개념을 정의하는 문제는 유보하고서 상식적인 넓은 개념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악이라는 명사의 외연( 악이라는 명사가 적용되는 사례들의 집합 )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반면에 그 명사의 내포( 즉 그 명사의 뜻 )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악의 말이 적용되는 상황들을 꼽아보면 극도의 고통, 결백한 사람들이 겪는 고난, 신체 장애, 이상 심리, 성격 결함, 불의, 자연 재해 등을 들 수가 있다.
도덕적인 악은 자유로운 인간들의 잘못된 행위와 나쁜 성격이며 살인, 거짓말, 절도와 같은 행위들과 정직하지 못함, 탐욕스러움, 겁 많음 등을 든다.
자연적인 악은 비인격적인 힘이나 인간의 행위들로부터 당하는 고통과 죽음, 눈이 머는 것, 귀가 막힌것, 정신 착란 등의 결함등이 자연적인 악에 속한다.
의도적인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물리적인 고통이 발생할 때에는 물리적인 고통과 부도덕성이 함께 들어 있는 복합적인 상태의 악이 발생하게 된다.
2. 악의 논리상의 문제
유신론자들은 전지 전능하고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선한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이 두 언명들은 서로 어긋나고 둘이 함께 참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이것을 악의 논리상의 문제라고 하였다.
부가적인 언명들로 제안된 것들 중에는 전지한 존재자는 악을 어떻게 제거할수 있는지를 안다. ' 전능한 존재자는 악을 제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완전히 선한 존재자는 악을 제거하기를 원하거나 악을 제거할 의무를 지닌다.'
' 악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이지는 않다.' 등등 이러한 언명들은 주요 용어들의 의미에 대해 더욱 충실한 내용을 제공한다.
플란팅거는 신은 악을 행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피조물들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제삼의 언명이다.
이 언명은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언명과 함께 악이 존재함을 함축하게되어 신의 존재와 악의 존재가 양립 가능함을 보여 준다.
도덕적으로 의미 있는 자유는 어떠한 형태의 결정론과도 양립할 수 없다.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자유의지 옹호론이 그것의 묵시적인 양립 불가능론과 함께 악의 논리상의 문제에대한 강하고 효과적인 답변이라고 믿고 있다.
3. 악의 증거상의 문제
플란팅거와 얀델의 유신론적 철학자들은 세상에 실제로 있는 악한 현상들과 유신론의 언명들이 들어맞지 않으므로 악의 문제를 증거상의 문제로 제시하며, 이들의 도전은 유신론이 비일관적 이어서가 아니라 유신론이 미심쩍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플란팅거는 현존하는 어떤 확률이론도 악의 문제에 대한 강력한 논증을 구성하는데에 사용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확률론 적으로 악의 문제에 대한 논증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지니는 여러 가지 취약점을 들춰내는 반면에, 본질적으로 귀납적이거나 증거에 의거한 논증으로서 좀더 설득력있는 악으로부터의 논증이 있을 수 있느냐는 물음은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퍼넬름은 유신론자들이 무의미한 악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다고 말한다.
비 유신론자들은 추론하기를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우주 안에서 무의미한 악이 존재한다고 믿을 만한 이유들도 있으므로 유신론적인 입장이 사물들의 존재 방식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하며 신이 존재 할 것 같지는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유신론자들이 불필요한 악에 대한 인간의 경험이 완전히 체계적으로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심하게 범한 모순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들은 악에 대한 모든 판단이 옳은 판단이라고 제안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악의 불필요성이 관계가 있음을 인정하려는 것이다.
프란팅거는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피조물들이 사는 유신론적인 우주 안에서도 악이 가능하다
고 주장한다.
옹호란 하나에게 주어진 형태의 악의 문제가 유신론의 비 일관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보여 주려는 시도이다.
반면 변신론은 왜 신이 악을 허용하는지에 대해서 유신론적으로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변신론이 선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플란팅거의
첫 번째 입장은 신의 마음과 유한한 인간의 마음사이에 개재하는 불일치에 근거해 있다.
두 번째 입장은 플란팅거의 ' 자연 신학에 대한 개혁 주의적 반론' 과 ' 이성과 신에 대한 믿음'에 함축되어 있다.
본질적으로 자연 신학과 변신론에 대한 플란팅거의 반론은 유신론적인 믿음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잘못된 생각-즉 우리의 믿음을 입증하는 논변이나 증거를 우리가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그 이론들이 근거해 있다는 것이다.
유신론자들이 자신을 위해서 악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이해 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일이며, 그가 알게되는 이해가 바로 변신론의 척도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변신론의 작업을 무조건 불가능하거나 부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변신론은 윤리상 가능하며, 어떤 중요한 상황하에서는 확실히 적합하다. 그러므로 변신론의 역사적인 전통은 종교 철학에서 마땅히 합당한 자리를 차지한다.
5. 일련의 답변들
악이 선에 대한 필연적인 대비(對比)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고통과 재난을 전부 겪지 않더라도 악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의 논변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난점이 있다.
종교인들이 이해하는 또 다른 접근법은 악이 올바르지 못한 행위에 대한 징계라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 성경의 욥기에서 '위로하러 온 친구들'은 욥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있다고 주장한다.
이 세상은 그의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고 훨씬 더 복잡함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욥은 단순한 물질적인 보상보다도 더 순수한 동기에서 신을 섬겨야만 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포괄적인 변신론으로서 제시된 징계이론은 순진 무구한 유아들의 죽음이라든지 전체 마을 주민들의 비극적인 파멸 등과 같은 경우에는 순전히 부당한 이론이라고 하고 있다.
변신론의 문제점으로
첫째, 가장 큰 정수라는 개념이 논리적으로 비 정합적인 것과 꼭 같이 최상의 가능 세계라는 개념도 논리적으로 비 정합적임이 당연하다.
둘째, 라이프니츠의 접근법은 우리의 세계가 향상될 수 없음을 함축하는데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도덕 판단들과 상충 된다.
셋째. 세계가 이 처럼 많은 고통을 가져야만 한다면 왜 신은 이 세계가 이처럼 많은 고통을 가져야만 한다면 왜 신은 이 세계를 창조하였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 된다.
악의 문제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유신론적인 답변은 궁극적인 조화(調和)에 의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모호한 점이 있는바, 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의 만사는 다 만족스럽게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만사가 결국에는 만족스럽게 될 것이다라고 보는 입장이다.
6. 포괄적인 주요 변신론들
악의 전반적인 문제가 지니는 여러 측면에 대한 해결책들은 인간의 기원과 운명에 대한 좀더 큰 시각으로 통합되는데, 이러한 시각을 포괄적인 변신론이라고 부른다.
이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변신론, 이레니우스의 변신론, 과정 변신론이 있다.
기독교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너 개의 사유(思惟)의 가닥들을 하나로 묶는 방대한 규모의 변신론을 제시하였다.
형이상학적으로 말하면 악은 신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긍정적인 실재가 아니라 선의 결여이자 결핍이라고 하였다.
이레니우스의 변신론은 악은 오염되지 않은 순결하고 선한 상태로부터의 쇠태로 설명되어서는 안 되고 인류의 점진적인 성장과 투쟁의 과정 속에 들어 있는 불가피한 단계로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힉은 이것을 영혼 형성( soul-making ) 변신론이라고 하는데, 인간들이 도덕적 및 영적으로 성숙해 가도록 도와 주는 신의 웅장한 체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영혼의 형성 과정이 그러한 대가를 치르고 서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를 궁극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답변한다.
화이트헤드와 하트손의 과정 철학에서 나오는 과정 변신론은 일반적으로 실재를, 존재 보다는 생성으로 보는 관점에 근거해 있다.
과정론자들은 신의 능력을 강제적이기보다는 설득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과정 변신론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신의 선에 대한 개념에 초점이 맞춰 지는데 과정 변신론의 개념이 도덕적으로 정향되어 있기보다는 미적으로 정향되어 있다고 말한다.
7. 유신론에 대한 평가와 변신론
유신론적인 해결책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줄거리를 감지할수 있는데 그것은 악은 한층더 위대한 선을 위해서 필요하다.
결국에 변신론자들은 존재하는 어떠한 악도 무의미 하거나 불필요한 것은 아니며 신의 존재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유신론자들은 두 종류의 ' 한층 더 위대한 선의 변신론 '을 구별하는 길을 더욱 충실히 찾을 수 있는 바, 그 중 한가지 유형은 악의 현실성이 한층 더 위대한 선에 필수적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다른 유형은 악의 가능성이 위대한 선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악에 관한 논의는 유신론적인 믿음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과 관련된 몇가지 고찰들 중의 하나라고 보고 있다.
더우기 최종적인 판단은 유신론적인 입장이 다른 세계관들-종교적인 것이건 세속적인 것이건간에- 과 비교해서 얼마나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 연구자 생각의 글 *
악의 문제 : 신의 존재에 대한 반론이란 제목아래 쓰여진 이 글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개념정리가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는 문체라고 생각이 된다.
악 ( evil ) 과 죄 ( sin )에 대한 개념, 정의를 하고, 성경상의 악과 죄의 구별의 논리적인 전개로 이어 졌다면 하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악의 실제성을 1) 악과 고통은 실재한다. 2) 악과 고통의 문제를 무시하는 신학은 피상적이다. 3) 윤리적 악고 : 자연적 재앙, 죽음, 고통을 더욱 예리하게 하며, 신학적 설명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악고 문제의 핵심적 요인으로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악은 실재하는 것으로 본다.
자연적 악고에 대해 가능한 신학적 설명은, 증명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종말에대한 설명이기 보다는 구속을 향한 소망이다. 물론 합리적인 설명은 불가능한 신비이며 화해를 향한 소망을 담고 있다고 본다.
악고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면 : 악고 속에서 대속적 의미를 찾자.
*악( 惡)의 정의를 명사형으로 착하지 않은 것, 올바르지 아니한 것, 나쁨,이라고 했으며 윤리적으로는 양심을 좆지 않고 도덕율을 어기는 일이라고 볼수 있다.
철학적으로 가치 관념에 있어서 적극에 대한 소극의 의미이며, 유용(有用)에대한 유해(有害), 쾌감에대한 불쾌, 건강에대한 병, 정의에대한 부정, 평화에 대한 전쟁, 미(美)에 대한 추(醜), 지(知)에 대한 무지(無知), 등, 흔히 물적(物的)악, 도덕 악, 형이 상학적 악으로 이희승은 말하고 있다.
악고로 인하여 깨달음의 선이며, 왜 이일이 내게 일어났는가?
보다 이제 당신에 대한 나의 관계는 어떻게 하여야 하지요 ? 라는 질문을 하나님께 하자.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실존적 지평 위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조명을 하여야 한다.
악 ( EVIL )은 나쁜, 사악(邪惡), 악(惡): 악은 행동하는 것이고,
죄 ( SIN )란 종교, 도덕상의 죄(罪), 죄악(罪惡): 죄는 받는 것이다라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