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의 매
강태공을 점잖게 부르면, 태공망 여상이다. 2700년 전쯤 사람이다. 우리들은 강태공을 낚시꾼쯤으로 여기고 있다. 아니, 낚시꾼 대명사로 쓰고 있다.
그 강태공이 위수가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큰 때’를 기다렸다고도 한다. 더구나 곧은 낚시로 그랬다니 그렇게 지레 짐작을 할 만도 했다.
알고 보면, 다 거짓말이다. 어째서 그렇단 말인가? 그는 낚시를 하고 싶어 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때는 무슨 때를 기다렸단 말인가? 뒷날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다. 그가 낚시질을 했던 것은 사실이나 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낚시질에는 남자로서의 슬픔이 가득했다. ‘고사고’나 ‘전국책’에 그렇게 나와 있다.
강태공은 원래 산둥성 조가란 곳에서 푸줏간을 했다. 사람됨이 썩 너그러웠다. 그런 그가 주변머리가 없었던지, 아니면 여자를 좋아했던지 그 까닭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쨌던 마누라한테 몽둥이 찜질깨나 당했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따라서 곱게 ‘축부(逐
夫)’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마누라한테 몽둥이를 맞고 집에서 쫓겨난 남자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또 재미있는 말은 마누라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못난 남자를 ‘왕팔단’이라 부른다. 오늘날 제 발로 집을 나가는 노숙자들과는 다르다. 그런 강태공이었으니 할 일도 마땅히 없었고, 무심한 강물을 내려다 보면서 낚시질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별 볼일이 없었던 강태공이 주나라의 문왕을 낚시터에서 우연히 만나 벼락 출세를 했다. 그래서 문왕과의 만남을 두고,그가 그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뒷날 사람들이 엉뚱하게 해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태공은 마누라 몽둥이에 쫓겨났기 때문
에 역사상 뛰어난 정치가가 될 기회를잡을 수 있었다.
서양 쪽에서도 마누라 매질 때문에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던 사례가 있다.
그리스의 털보영감 소크라테스다. 악처로 소문난 아내 크산티페한테 날마다 프라이팬으로 두들겨 맞지 않았으면, 소크라테스도 ‘철학의 아버지’라 할 그런 위대한 철학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마누라 등쌀에 시달리다 못해 언제나 집을 나와 떠돌아 다녔다. ‘축가’(逐家)를 당했던 강태공보다 훨씬 행복한 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빈털터리에다 추남이었으니 마땅히 갈 곳도, 또 오라는 곳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 시장 바닥같은 곳으로 찾아 들었다. 거기서 젊은 사람들과 더불어 철학이나 도덕을 이야기했다.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재수없는 장사꾼은 밀가루 장사를 하는 날은 바람이 불고, 소금 장사를 하는 날은 비가 온다는 그 짝이었다. 그가 청년들의 풍기를 문란케 했고 신을 모독했다는 것. 사형이 언도되자 ‘악법도 법’이라며, 독약 사발을 서슴없이 쭉 들이
켰다. 프리드리히 로렌초의 ‘소크라테스 평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크라테스가 시장 바닥을 휩쓸면서 토론했던 그 내용을 제자 플라톤이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요컨대, 소크라테스가 불세출의 대철학자가 된 데는 마누라의 프라이팬때문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우리네 남정들 가운데 아내한테 매를 조금 맞는다고 그것을 견디지 못해 이혼하는 경우가 11.6%다. 출세하기는 말짱 틀려 먹은 사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