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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宇天 許萬壽, 1916~1976?) 선생을 닮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어떤 그를 ‘지리산 달인’이라 부른다. 우천 선생처럼 지리산을 구석구석 다녔던 성락건(64·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최근 ‘지리산 신비 안내서’를 <연인과 숨어 살고픈 지리산>(고산자의후예들 간)이라는 제목을 붙여 펴냈다. 지리산의 신비스러운 곳부터 신령한 샘, 토굴순례, 오래된 나무, 숨겨진 등산 코스 등을 소개해 놓았다. 또 지리산에 홀로 숨어 죽기 좋은 8곳과 연인과 숨어 살기 좋은 8곳을 추천해 놓았다.
신비스러운 곳을 소개하면서 영신대를 앞 자리에 놓았다. 영신대는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데, 영신봉에서 아래로 10분 정도 걸린다. 그는 지리산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이곳에서 허만수 선생이 영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61살 환갑되는 날 지리산으로 영원히 사라진 허만수 선생의 유해를 찾기 위해 몇 년 전 나홀로 영신대에서 열흘을 지냈다. 장군바위 아래 1인용 텐트를 치고 영신대 주변을 샅샅이 탐사했었다. … 신비한 기운이 지리산에서 나온다면 영신대라고 생각한다.”
또 그는 세석고원의 촛대봉 조금 아래에 있는 청학연못도 신비한 곳으로 꼽았다. 그는 “청학연못을 찾아 가기는 어렵다. 필자 역시 갈 때마다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고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하기가 다반사였다”고 소개.
“일설에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우리 땅의 정기가 지리산에서 제일 많이 솟구치는데 지리산에서도 청학연못이 제일이라고도 한다. 일본인들이 산의 기운이 못 솟게 쇠말뚝을 산 정상 곳곳에 박았으나 청학연못은 쇠말뚝을 가지고도 솟는 기운을 막지 못해 연목 바닥에 아예 황금 동판을 깔았다고도 한다.”
이밖에 성락건씨는 금강대와 호룡대, 세존대, 향적대, 청학동을 신비스러운 곳으로 꼽았다.
그는 지리산에서 숨어 죽기 좋은 8곳을 정리해 놓았다. 이런 곳은 “사람들이 잘 찾을 수 없는 곳, 사람이 좀체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을 말한다는 것. 청학연못과 개령사지, 안내원 고원, 덕평고원 하단, 악양 청학이골의 시루봉 아래, 송대리의 장독바위 주변, 장단골, 청학동 위 삼신봉이 그런 곳.
“우선 죽음이 삶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일이다. 죽음도 즐거움이고 기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도 언젠가 죽는구나 항시 생각하고 산에 시체가 보이면 묻어주는 예의는 가져야 한다. … 늙어 두 다리가 멀쩡할 때, 죽고 싶은 곳으로 가 죽는 것이 알맞은 때인지 모른다.”
연인과 숨어 살기 좋은 8곳은?
지리산에 연인과 숨어 살기 좋은 곳이 있단다. 그는 무려 8곳이나 추천했다. 그는 “깊은 산속, 큰 마을보다 서너 채의 집들이 약간씩 떨어져 있는 곳이면 좋고, 그곳 사람들이 산이 좋아 외지에서 온 분들이면 더욱 좋다”고 소개한다.
산청 금서면의 오봉, 하동 청암면의 원묵계, 화개면의 어안동, 함양 마천의 성안, 남원 산내면의 윗개선골, 오얏골, 구례 산동면의 상위, 토지면의 윗한수내가 그런 곳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어디 연인이 아내뿐일까?”라고 물었다.
오봉은 방곡리 계곡의 오지이며, 원묵계는 20가구 중 3집만 토박이인 셈이고, 어안동은 도로에서 산 속으로 반 시간 걸어 올라가는데 빈집이 많단다.
지리산 테마 여행도 소개해 놓았다. 섬진강․덕천강․엄천강 등 지리산 둘레를 돌아보거나 음양샘․옥천․고운동샘․덕평고원샘 등 신비로운 샘물 마셔보기 산행, 무명선사나 일공선사를 찾는 도인 찾기 산행도 퍽 재미있다고 한다.
성락건씨는 지리산 산행 방법도 제시해 놓았다. 그는 “1984년 4월 직선 등반을 12일에 걸쳐 한 적이 있다”면서 “이때 안내 리본을 20m 간격으로 달았는데, 리본 숫자로 거리를 대략 환산해 보니 1600개가 소요되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소개.
그는 직선 산행하기 좋은 3대봉(천왕봉, 반야봉, 영신봉)을 추천했다. “3대봉을 직선으로 등반하면서 백무동 계곡의 자작나무 숲과 빗점골 상단의 100미터나 되는 폭포, 뱀사골의 불견광음천, 심원골 상단의 오염 안된 원시 계곡 등을 발견하는 행운을 가졌다.”
토굴산행도 소개해 놓았다. 그는 “지리산에서 토굴이 제일 많은 골짜기는 대성동 계곡의 원대성으로 보인다”면서 “지금은 대성동에 11개의 토굴이 있지만, 몇 년 전 영신대에 있는 토굴까지 합하면 13개나 된다”고 설명.
그는 “내가 본 중에서 제일의 토굴은 신선대 아래 위치한 일공선사 토굴”이라며 “그는 금강경을 공부하는 선사로 바위에 굴을 파고 그 속에서 30년 정도 사신 분인데, 나이는 70대 후반인데도 얼굴은 화색이 돌고 눈은 동안이며 아직 정정하시다”고 소개했다.
맛나고 신령한 샘은?
지리산에는 맛나고 신령한 샘도 많단다. 널뻔지샘과 미륵샘(하동 청암), 상무주샘(함양 마천), 당몰샘(구례 토지면), 약수암샘(남원 산내면)을 대표적으로 꼽았다. 그는 “지리산에 깊숙이 숨어 세세생생 저 홀로 솟아나는 샘이 많다”며 “샘은 생명체와 너무 흡사하다”고 말했다.
널뻔지샘은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 고운동 바로 옆에 있다. 그는 “처음 샘을 보았을 때는 샘물이 찰랑찰랑 흘러 넘쳐 일명 찰랑샘이라 불렀는데, 바로 앞의 고운재가 10년 전쯤 뚫리고 도로에 아스팔트를 포장하고부터 샘물 수량이 형편없이 줄어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성락건씨는 책 마지막에 허만수 선생을 소개하면서 “우천 선생은 이 시대 우리가 본받아야할 아름다운 죽음의 한 유형을 만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태어남은 자기의 의지대로 할 수 없었지만, 오직 하나뿐인 자신의 온전한 죽음만은 자기의 의지대로 죽어간 사람이다. 지리산을 사랑한 우천 선생은 30년을 세석고원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다 자기의 환갑날(1976년 6월)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는 “30년이 넘도록 지리산의 여기저기를 무질러 다녔지만, 그 분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면서 “사람들은 산신령이 되었다 하고 고운(최치원)처럼 신선이 되었다고도 하며 혹자는 청학동을 영원히 찾아갔다고도 한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은 산신령이 되었다고 믿어 제사도 지내지 않으며 호적은 물론 주민등록도 말소하지 않고 있다. 해마다 진주산악회에서 우천 선생의 추모제를 지리산에서 지낸다. … 다시 말한다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 안기고 싶은 지리산으로 홀로 걸어가, 나무 속이나 땅 밑, 굴에서 조용히 사라져 보는 것이다. 죽어서 나무를 자라게 하고 영혼은 푸른 하늘로 가는 것이다. 내가 영원한 지리산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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