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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월호 생명의빛 성경연구 : 싱거운 것과 소금
(홍정현 | 대한예수교침례회 수원교회 담임목사)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욥 6:5~6)
욥은 자신이 봉착한 고통의 해답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그 해답을 주시기를 호소하는 마음과 엘리바스의 대답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으므로 울부짖을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이 말을 하였다. 들나귀에게 풀이 필요하고, 소에게 꼴이 필요하며 싱거운 것이나 달걀 흰자위를 먹을 때는 소금이 필요하듯이 인생은 인생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어야 영혼이 만족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마음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소가 꼴이 있어서 울지 않는 것처럼 울지 않게 된다.
●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19)
사람은 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그 영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사람은 영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찾는 종교심, 양심, 영원을 사모하는 활동이 있는 것이다.
‘전쟁 참호 속에 무신론자 없다’는 말이 있다. 무신론자 토마스 헉슬리는 우울할 때면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플루타르크는 “정책, 법, 도시 예술이 없는 종족은 있어도 종교 없는 종족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 하였다. 어거스틴은 말하였다. “오 하나님, 당신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지으셨사오니 저희가 당신의 품에 있기까지는 저희의 심중에 평안이 없나이다.”
●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행 17:27)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 가까이 계시므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
양심의 가책과 죄를 해결하고자 하는 소원
●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롬 2:15~16)
각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다. 양심의 기능은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송사하고 옳게 행한 것은 변명해주는 것이다. 원숭이는 양심이 없다. 원숭이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했다는 말이 없다.
죄책감은 인간에게 심각한 문제이다.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없애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종교를 만들어 내었다. 이슬람교도는 성지 순례를 함으로써 죄를 줄여 보려고 하며, 힌두교도는 갠지스 강에 들어가는 것으로 죄를 씻으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주셨으며, 예수님의 대속을 받아들이는 자는 양심의 자유를 얻으며, 죄와 죽음과 심판의 고통에서 해방되도록 하셨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원과 영생을 사모하며, 완전하고 절대적인 영원한 세계를 사모한다.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11)
성경을 내려주신 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영생하는 길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를 가르치며,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를 가르친다.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리를 깨달을 때 영생을 얻는 것이다.
●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 3:1~2, 11)
사람에게는 죽지 않는 영혼이 있으므로 금세는 내세를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 태 속에서의 열 달은 태어나서 70~80년을 살기 위한 준비인 것처럼, 이 세상에서의 70~80년은 영원한 세계를 위한 준비 기간인 것이다.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 마음
인간은 아담 이래로 진과 선과 미를 잃어버렸다. 범죄로 인하여 인간은 거짓되고 악하고 추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영이 있으므로 잃어버린 진과 선과 미를 구하게 되며, 싱거운 것을 먹기 위해 소금을 찾듯이, 배고픈 소가 꼴을 찾듯이 찾아 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과 선과 미로 충만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진과 선과 미로 충만한 세계를 준비해 두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진과 선과 미의 사람이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부활의 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참된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열망을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성경을 주심
사람은 이성적이고 지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사람들은 배우며 알기를 갈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배워야 할 책도 내려주신 것이다.
존 라일(Jhon C.Ryle, 1816~1900)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경이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라면 1800년 동안 쌓아온 기독교는 완전히 착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전체 인류의 반은 속아왔고 교회는 어리석음의 전당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분의 영감으로 된 것이라면 그것을 믿고, 그것을 믿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무서운 위험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불행의 마당에 살고 있습니다.”
1. 성경은 특별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성경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를 과감하게 다루고 있다. 영혼에 관한 문제, 내세에 관한 문제, 그리고 인간의 한계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너무나도 깊이 있고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세상에 많은 책이 있지만 성경만큼 명확하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하는 책이 없기에 우리가 성경을 특별히 상고해야 한다.
2. 성경만이 세상의 처음과 끝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고,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이기 때문에 성경만이 처음과 끝을 정확히 설명해 주고 있다.
3. 오직 성경만이 인간에 대해서 진실하고 믿을 만한 설명을 해 준다. 성경은 인간이 타락하여 악을 향하며 천국에 들어가려면 죄 사함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음으로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을 미화하지 않고,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낙원을 잃은 후에 인간이 타락하고, 홍수 후에 타락하고, 하나님의 계명이 주어진 이후에도 타락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왔을 때도 배척해 버리고, 하나님의 경고와 기적과 심판과 자비를 목전에서 보면서도 타락하는 인간이 악으로 치닫는 것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이 성경책이다.
4. 성경만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관점을 제시해 준다. 성경을 배우게 되면, 하나님은 죄를 증오하시고, 죄인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5. 성경만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완벽하게 예비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6. 오직 성경만이 우리 주위의 사물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한다. 놀라울 정도로 불공평한 상태, 빈궁과 절망, 압제와 핍박, 정치가와 입법자들의 실패, 계속적으로 존재하는 치유할 수 없는 악의 존재 등 성경은 인간이 죄악 가운데 있으며 이 세상 임금인 마귀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7. 성경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특별한 통일성과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8. 성경책과 다른 책을 비교하는 것은 태양과 양초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또한 높은 산과 두더지가 파 놓은 흙더미를 비교하는 것과 같고 다이아몬드와 유리 조각을 비교하는 것과도 같다.
9. 성경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확성이 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영향을 미쳤고, 인류의 영적인 요구에 대한 특별한 해답이 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시대의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성경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성경에 온통 시간을 투자하고 성경 말씀을 절대적으로 붙잡아야 된다.
인간의 감성을 채우기 위하여 음악을 주심
인간은 음악과 예술을 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에서 우러나는 찬송을 인생에게 주셨다. 감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것이다.
기뻐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을 주셨다. 찬송할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은 찬송거리를 주셨으며, 찬송의 대상과 음악의 수단들도 주셨다.
미래를 알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래를 알 수 있는 예언을 내려주심
사람은 장래 일을 모르며(전 8:7, 잠 27:1, 약 4:13~14) 다만 추측할 뿐이다. 마귀도 어느 정도는 예언할 수 있고(신 13:1~3, 신 18:9~14), 상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꼭 틀린 것이 나온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틀림이 없다(영원부터 영원까지 거하심 - 시 90:2,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 41:21~24, 요 13:19, 14:29).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께서 미래를 미리 알려주시고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이유
① 인생으로 핑계치 못하게 하려고 (사 48:1~5)
②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케 하려고 (신 18:21~22)
③ 믿게 하려고 (요 13:19, 14:29)
④ 대비케 하려고
고난에 대한 해답을 갈구하는 사람을 위해 해답을 제시해 주심
1. 죽을 때까지 악인이 형통하고 수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금세와 내세, 육체와 영혼 전체를 고려하시면서 다루어 가신다. 사람들은 금세와 육체 중심으로 생각을 해 나가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육체가 전부라고 고집하는 사람, 금세가 전부라고 고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잔칫집의 돼지처럼 잠시 잘되게 하실 수도 있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우리 시대의 문화를 ‘피그 컬처Pig Culture’라고 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오직 육체 하나만 생각하며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이들 악인들은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죽음을 건너가면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간다.
2. 구원을 받길 원하시므로 고통을 주시는 일이 있다.
●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 3:33).
●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 38:17)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깊은 속을 다 아시므로 조금이라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시면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인생을 고달프게 만드실 수도 있다. 나중에 생을 돌이켜보면 그 모든 고통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였음을 깨닫게 된다.
3. 구원받은 사람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명기 8장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1) 광야의 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코스이므로 반드시 통과해야 할 길이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는 길에 광야가 놓여 있었다. 광야는 필히 통과해야 할 과정이었다. 성도가 되었다면 필수적으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반복적으로 행하시며, 동일한 원리로 행하신다. 사람의 성정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시는 방법도 바뀌지 않았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어보면 성경의 인물 중에 누가 광야의 길을 통과하지 않았는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도 다 광야의 길을 통과하여 훈련을 받았다. 모세와 다윗, 한나와 욥도 마찬가지였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 오랫동안 있었다.
2) 왜 광야가 있어야 하는가?
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무너져야 할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사람 속에는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으며 교만한 것도 많이 있다. 우리의 지성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도 많이 있다. 자기의 지성과 이성이 믿음보다 앞서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의 사고 속에 잘못된 것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된다.
●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8)
●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5)
우리 속에 육신의 생각이 많이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이므로 이것이 무너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교만을 낮추신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을 대적한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보다 높다.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한 의지, 하나님보다 높아진 의지를 꺾는 작업을 하신다.
자기 과신도 꺾여야 한다. 월남전에서 용맹을 떨친 한 병사가 제대 후에 미국 여행을 갔는데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서 뇌진탕으로 그 자리에서 죽었다. 자기의 기백과 용기는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② 우리 속에 있는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광야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애굽의 잔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찌끼가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광야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찌끼가 제거되고 정금이 되는 것이다.
③ 광야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네 마음이 어떠한지.”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잘 모른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 자기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이 광야를 통해서 내 속에 참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는지가 드러난다. 그리고 이 광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가 드러난다. 광야를 통해서 자기의 참된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④ 인간은 육체뿐이 아님을 확실히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너로 주리게 하시며.”
사실 세상에서 배고픔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얼마간 주리면 먹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 중에 육신에 필요한 것을 얼마간 보류하시며 중지시키셨다. 그것을 통해서 사람은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며 영혼이 있음을 더욱 알게 하셨다. 인간이 육체뿐이라면 잘 먹고 잘살게 해 주시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육체보다 더 중요한 영혼이 있으므로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⑤ 광야를 통해서 만나를 먹게 하신다.
광야 생활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간다.
3) 광야 생활을 통해서 얻는 유익
① 신앙 훈련을 받아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온전한 사람이 되어간다.
광야 생활을 통과하기 전의 사람과 후의 사람은 다르다. 군대의 훈련을 통과한 군인과 그렇지 않은 군인은 다르다. 어떤 특정한 과정을 통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②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중에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를 받음으로, 또 만나가 내려옴으로 하나님을 생생한 실재로 느끼게 되었다. 매일 만나를 거둠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볼 수 있었다.
고난당하는 성도보다 은혜의 보좌 앞에 신속히 나아가게 하는 것은 없다.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을 깨닫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됨으로써 하나님이 쌓아두고, 베푸신 은혜를 알아간다. 광야 생활 중에 하늘 문이 열린다. 하나님의 신령한 비밀이 깨달아진다.
③ 자기의 상태를 알게 되므로 좀 더 겸손한 사람, 감사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약속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된다.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 23:10)
④ 광야에서 눈물 골짜기에서 샘이 나온다. 이른 비도 은택을 입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시 84:5~7)
⑤ 골짜기 문을 통과함으로 나중에 마馬문을 통과한다.
양과 물고기에서 말같이 용감한 그리스도인으로 나오게 된다. 영적 전투를 치르는 사람들로 나오게 된다.
4) 광야 생활 중의 마음 자세
① 광야를 주신 하나님에 대하여 진정으로 감사하라.
●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6)
시편 136편은 감사하라는 말로 가득 차 있다. 감사는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것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되 특히 광야를 통과케 하실 때 감사하라.
한 청년이 선교사가 되기를 갈망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교통사고로 발 하나를 절단하였다. 그는 그 시련을 잘 통과하여 신앙을 회복하였으며, 식인종들에게 전도하러 들어갔다 붙잡혔을 때에도 자기의 고무다리 살을 잘라 먹으라고 주었다. 식인종들은 놀라 그 사람을 신으로 생각하고 그의 전도를 들었던 것이다.
② 광야 생활 중의 어려움을 크게 기뻐하라.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③ 뒤로 물러가지 말고 더욱 담대하라.
●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 10:34~39)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왕상 2:1~3)
우상에서 구별되는 쪽으로 대장부가 돼라. 죄에서 구별되는 데 용감하라.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쪽으로 남자답게 돼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용감하여야 한다. 아브라함은 대장부였다. 아합은 졸장부였다. 그 위험과 시험과 우상을 등지지 못하였다. 믿음으로 걷는 일에 대장부가 돼라. 환난과 역경 앞에서 담대한 것이 대장부의 모습이다. 대장부는 좌절하지 않는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다. 젊을 때 건강관리를 잘해야 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 (잠 20:29)
물론 병약한 상태에서 귀한 일을 한 사람들도 많다. 바울 사도는 눈이 좋지 않았다. 리차드 박스터는 일생 동안 병마와 싸워야 하였다. 스펄전은 통풍이 있었다. 증기 기관을 발명하여 산업혁명의 불길을 당긴 제임스 왓트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운동으로 몸을 단련해야 한다.
대장부답다는 것은 마음이 넓다는 뜻이다. 마음과 생각이 넓어지려면 지혜를 얻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독서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마귀의 반박을 이기려면 지혜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 신체를 개발하는 동시에 마음을 살찌워야 한다. 생각과 영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영적인 인격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솔직하고 정직하고 자기의 잘못을 시인할 수 있는 사람을 남자답다고 한다. 그리고 잘못에 대하여 책망을 받을 때 변명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문제를 삼지 않을 때 남자답다고 한다. 남과 이웃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을 대장부라고 한다. 의롭고 거룩한 사람,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을 대장부라고 한다. 우리는 이웃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④ 과거를 회고하고 미래의 축복을 되새기라.
어떤 파멸에서 구원되었는지를 기억하고 미래의 축복, 가나안의 축복을 사모하라.
⑤ 광야는 과정임을 잊지 말라. 통과하는 과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⑥ 기다리지 못해서 엎드러졌으므로 기다리라.
민수기 11장의 메추라기 사건으로 죽은 사람은 시편 78편 31절에 나온 대로 살진 자와 청년이었다.
청년들은 혈기로 인하여 범죄하기 쉽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순종하는 것을 배우라. 자신의 미숙함과 마음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하라.
살진 자는 평상시에 절제 생활 없이 산 사람을 의미한다. 탐욕으로 인하여 살진 것이다. 광야 내내 더 많은 욕심으로 살던 사람들인데 메추라기 사건을 통해서 죽이셨다. 세상의 것으로 살찌는 것을 조심하자. 자기 절제가 없는 자는 조심해야 한다.
⑦ 광야의 길은 외로운 길일 수도 있다.
사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외롭기도 하였고 오해받기도 하였으며 신앙 때문에 죽을 뻔하기도 하였다. 신령한 사람들보다는 육신적인 사람들이 더 많으므로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오해를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
다니엘도 바벨론에서 뜻을 정하였으며 홀로 걷는 길을 택하였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러할지라도’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신앙의 길을 걷기를 택하였다. 예레미야도 주님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였다.
●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모친이여 모친이 나를 온 세계에게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뀌어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뀌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렘 15:10)
●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렘 15:17)
그 길은 “백성의 이야깃거리”(욥 17:6)가 될 수도 있고, 구경거리(고전 4:9), 조롱거리(욥 30:9)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열방의 말거리가 될 수도 있다(시 44:14, 시 69:11).
⑧ 광야 생활을 통해서 인생 작품이 만들어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젊은 자는 아무렇게나 살아서 인생을 마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가능성이 있으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나는 연약해 보이지만 하나님과 연결되면 큰 자가 되며, 위대한 자가 된다.
5) 광야 생활 중에 구체적으로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가?
① 광대하고 험악한 광야이므로 걷기에 불편한 길이었다.
광야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울퉁불퉁하고 험악한 길이었다. 야곱도 험악한 인생을 보내었다고 하였다.
②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였다.
그리스도인들도 마귀에게 공격받는 일이 있는 것이다.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벧전 5:8~9)
③ 물이 없는 건조한 땅, 양식이 없는 땅이었다.
④ 아말렉 군대가 있는 땅이었다.
⑤ 중다한 잡족이 섞여 있는 상태에서 통과하였다.
⑥ 유명한 왕들이 나타나서 전투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상치 못한 시험이 얼마든지 올 수 있는 광야이다.
6) 광야를 통과한 사람의 미래
●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 8:16)
●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 66:9~12)
광야를 통과한 사람에게는 가나안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난을 통과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원한 상과 천국이 기다린다.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린다.
7) 광야의 길을 통과한 사람은 자기의 간증을 가지고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선포할 수 있다.
① 주의 위로를 받아본 사람은 그 위로로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
②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할 수 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시 66:16)
욥에게 어떤 해답이 기다리고 있었는가?
하나님은 다가오는 모든 사람에게 모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욥기를 기록하기 위하여, 참된 신앙인이 어떤 모습인지를 세상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시련을 허락하셨다. 그 시련은 곧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엮으신 고난이었다.
[출처] 싱거운 것과 소금 (생명의말씀선교회 - 생명의빛)|작성자 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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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