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201호]
산란기 / 이태관
강의 하구에는
어둠으로 몸 불리는 물고기가 산다
달빛 아래 잔비늘 반짝이며
제 몸에 꽃나무 심어 위장할 줄도 아는,
낯선 새 날아와 부리 비비면
간지럼에 몸 뒤척여
웃음소리도 강물에 풀어놓으며
바다를 거슬러 오르는 우어처럼
한 번쯤 몸에 새겨진 물길을 바꾸어 보았다면
물살에 온몸 찢겨 본 일 있다면
바람의 끝닿는 곳을 알리
몸 부풀린 놈, 물이 범람하면
제 알을 풀어놓으며 바다로 간다
가끔은 우리 마음에도 물결이 일어
긴 한숨 끝에 아이를 잉태키도 하지
떠밀리는 고단한 삶 위로 붉은 해 솟기도 하지
하지만 지금은 건기의 시간
철새 빈 몸으로 떠나고
가슴에서 자라난 몇 개의 욕지거리와
비밀과 사랑과 시를 강물의 끝자락에 풀어놓는 밤
메마른 바닥을 핥는 물소리
가슴을 친다
『사이에서 서성이다』 (문학의전당, 2010)
*
다음주 일주일동안 휴가를 떠납니다.
월요일 아침에 시편지를 띄울 수 없어 조금 땡겨서 편지를 띄웁니다.
오늘 소개할 시는 이태관 시인의 감수성이 무척 깊게 배어있는 시, 「산란기」인데요, 휴가 때 강가에서 혹은 계곡에서 읽어보면 그 맛이 더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산란이란 한 생이 또 한 생들을 풀어놓는 것인데요
달빛 교교한 월인천강의 밤 강물 위로 은빛 반짝거리면 어김없이 물고기들이 무수한 생들을 풀어놓고 있는 것인데요
시인은 산란이 꼭 물고기만의 일이 아니라고 하네요.
'가끔은 우리 마음에도 물결이 일어/ 긴 한숨 끝에 아이를 잉태키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을 풀어놓기에는 메마른 "건기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생(알)" 대신 '가슴에서 자라난 몇 개의 욕지거리와/ 비밀과 사랑과 시를 강물의 끝자락에 풀어놓는 밤'이라고 합니다. 자꾸만 서러운 물결이 가슴을 치는 순간입니다.
당신의 시간은 지금 어떤가요?
'메마른 바닥을 핥는 물소리'가 혹 가슴을 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박제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