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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사투리의 미학_03
김정화 추천 0 조회 241 12.02.23 19: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투리의 미학 <21> 경상도의 특징어(2)

 
 
(정구지) 속담에 '부추 같은 양반'이란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연약한 사람을 부추의 부드러움에 비유한 표현인데, 이 속담의 부추를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동부 경남이나 부산 지방에서는 '정구지'라 한다.

6·25 전쟁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부산의 어느 집에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에서 피란 온 아주머니들이 반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에 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온 사람은 '부추'를 사야겠다고 했고, 서부 경남에서 온 사람은 '소풀'을 사야겠다고 했다. '정구지'를 살 마음이던 부산의 아주머니는 처음 들어 본 말이었다. 시장에 간 아주머니들은 같은 반찬거리를 사고 있는 자신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각 지방 사람들이 모인 까닭에서 빚어진 희극이었다.

'정구지'는 정월부터 구월까지 자라는 풀이기에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전(煎)을 굽는 재료로 쓰이기에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국어학자이던 김영신은 '정'을 '전술', '전국', '전오줌'의 전으로 보고, '구지'를 '부추 구, 채소 절일 저'로 보아 '전구저'서 온 말로 우선 처리해 두었다.

서부 경남 일대에서는 이를 '소풀' 또는 '소불'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옛말이 '쇼풀'이었던 '소풀'은 소가 먹지 않는 풀, 솔잎처럼 생긴 풀 등 소박한 몇 가지 설이 있으나 '정구지'와 함께 그 어원을 확실히 알기가 어렵다. 아무튼 동부 경남의 '정구지'와 서부 경남의 '소풀', 표준어인 '부추'의 대립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에 대해서 원로 국어학자인 박지홍은 이는 신라 방언, 가락 방언, 백제 방언의 자취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 국어의 어제를 추측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은 당장 코앞에 닥친 내일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지만 먼 미래에 대해서는 항상 밝고 낙천적인 마음을 품고 살아 온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라는 말은 한자어인데 그보다 더 먼 '모레'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 고유의 말로 되어 있다.'

우리말에 한자어 '내일(來日)'에 해당하는 순 우리말이 없음을 안타까워한 이어령(李御寧) 씨의 글이다.

영어에는 날짜를 나타내는 말에 '오늘'과 '어제' 그리고 '내일'이란 세 단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해서는 '그끄제-그제-어제'가 있어 사흘까지 기억하고, 특히 미래에 대해서는 '내일-모레-글피-그글피'가 있어 나흘까지 미리 생각하는 멀고도 깊은 사려가 우리말에는 스며 있다.

그럼에도 이 말들 중 '내일(來日)'이 한자어란 것으로 우리를 '비전이 없는 민족'이란 서글픈 진단을 내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오늘'이 있고 '모레'가 있는데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이 없었을 리가 없다.

고려를 다녀간 송나라 손목(孫穆)은 '계림유사(鷄林類事)'란 책에서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을 '轄載'로 적었다. 오늘의 음이 '할재'인 이 말을 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여 '할제, 올제, 하제, 깔제, 후제' 들로 해독하였다.

그런데 이들 중 '후제'가 '내일'의 우리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일'은 곧 '오늘의 뒷날' 이다. 그러므로 '뒷날의 어느 때'란 '후제' 속에는 '오늘의 뒷날'이란 '내일'의 뜻도 들어 있다.

이런 점으로 보면 '후제'는 적어도 12세기까지는 '내일'의 우리말로 쓰이다가, 한자어 '내일'에게 '오늘의 뒷날'이란 자리를 내어 주고, 자리를 옮겨 '뒷날의 어느 때'로 좀더 물러난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전들에서 '후제(後-)'와 같이 '후'의 한자를 밝힌 것은 '뒷날'이란 뜻에 이끌린 것이라 하겠다. '후제'는 내일의 우리말인 경상도 말이라 하겠다.

경상도 말들에는 표준어란 인위적 규정 때문에 숨죽인 채 엎드려 있는 말들이 있다. 그 대표적이라 할 말이 ' 다'와 '낫우다'라 하겠다. ' 다'는 오늘에 '쫓다'라는 표준어에 밀려 사투리로 처리된 말이고, '낫우다'는 '고치다'란 말에 밀려난 말이다.

표준어 사정 때에 '쫓다'와 ' 다', 그리고 '고치다'와 '낫우다'의 차이를 알고 이들을 각각 독립된 말로 인정해야 했음에도 이러한 말을 돌아보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 다'란 말을 살리자. 표준어에서는 '개를 쫓다', '새를 쫓다'와 같이 모두 '쫓다'를 쓰고 있다. 그러나 경상도에서는 '개'는 '쫓다'라고 하고, '새'는 ' 다'라고 한다. 길짐승은 쫓고, 날짐승은 아 낸다. 새나 닭을 쫓는 말의 표준어로 '숴'와 '훠이'가 있다. 어느 국어 사전에는 '후여'란 말도 실었으나 많은 사전들이 '후여'는 사투리로 처리하고 있다. 아무튼 '훠이'나 '후여'란 말도 '다'와 관계 있는 말로 보인다.

'낫우다'란 말도 살려야 할 말이다. 표준어에서는 부서진 책상도 '고치다'라 하고 병도 '고치다'라 한다. 그러나 이 두 말은 달리 써야 할 말이다. 경상도 말에서는 책상은 '고치다'라 하고, 병은 '낫우다'라 한다. 곧 물건과 사람(동물)에 따라 구별하여 쓰고 있다. '낫우다'는 '병이 낫다'란 말의 '낫다'에 '우'를 넣어 '낫게 하다'란 타동사로 만든 것으로 조어법으로 보아도 옳게 된 말이다. 표준어에서 '쫓다'와 ' 다', '고치다'와 '낫우다'를 같은 뜻의 말로 처리하여 어느 하나를 표준어로 할 것이 아니라, ' 다'와 '낫우다'를 '쫓다'와 '고치다'와는 다른 말로 처리하여 쓰는 것이 국어의 어휘를 풍부히 하는 길이라 하겠다.

#'가시개' '가실'…
사투리로 취급되는 아름다운 경상도말
1936년 표준어 사정 당시 서울말을 중심으로 한 까닭에 경상도의 많은 말들이 사투리로 처리되었다.
왕건의 고려 건국과 이성계의 조선 건국으로 정치의 중심이 경기도로 이동함에 따라 많은 경상도 말들이 사투리란 뒤안길로 밀려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옛말에는 낱말 속에 'ㄱ, ㅂ, ㅅ'을 유지한 말들이 많은데, 그러한 말들을 경상도 말에서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ㄱ'을 유지하고 있는 말
가시개(가위) / 몰개(모래) / 벌게, 벌거지 (벌레) / 맹글다(만들다) / 심거, 숭거(심어) / 씻거(씻어)

(2) 'ㅂ'을 유지하고 있는 말
가부리(가오리) / 다리비(다리미) / 버버리(벙어리) / 새비(새우) / 호박구덩(확) / 호불애비(홀아비) / 자불다(졸다) / 얘비다(야위다)

(3) 'ㅅ'을 유지하고 있는 말
가실(가을) / 거싱이(거위) / 구시(구유) / 마실(마을) /무시(무) / 부 (부엌) / 저실(겨울) / 지심(잡초, 김)

그 외에도 옛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말들이 많다.
'날씨가 춥다'의 '춥다'의 옛말은 '칩다'이고, '침을 흘리다'의 '침'의 옛말은 '춤'이다. 경상도의 연로층에서는 이들을 '칩다', '춤'으로 쓰고들 있다.

'정월 보름'의 '보롬', '버선'의 '보선', '뒤주'의 '두지(곡식을 담아두는 궤)' 등도 옛말에서 찾을 수 있는 경상도 말들이다. 경상도 말은 옛말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자랑스런 방언이다.

사투리의 미학 <22> 경상도의 특징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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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매

어느 텔레비전의 퀴즈풀이에서 '고구마'가 정답인 질문을 했는데 경상도 출신 출연자가 '고매'라 했다. 웃음을 머금은 사회자가 석자로 답하라 했더니, 이번에는 '물고매'라 해서 한바탕 웃었다. 웃음을 자아내게 한 '고매'나 '고구매'는 고구마의 경상도 방언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긴 하나 외래어라 하기가 오히려 이상스럽다 할 말이 이 '고구마'이다. 완연한 우리 옷을 입은 귀화한 말이기 때문이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1590년 경에 중국에 전해지고 류쿠(오키나와에 있었던 옛 일본왕국)에도 전해졌다고 한다. 우리도 고구마의 존재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1663년 김여휘 등이 류쿠에 표착하여 껍질이 붉고 살이 희며 맛이 마(薯)와 같은 식품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고구마가 우리 나라에 본격적으로 수입된 것은 영조 39년인 1763년, 동래부사를 역임했던 조엄이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그 종자를 얻어 부산진에 보낸 것이 그 효시라고 한다. 1764년에 동래부사로 부임한 강필리는 조엄이 보낸 고구마 종자를 받아 이의 재배에 성공했는데, 이로써 고구마가 전국에 퍼졌다고 부산시에서 펴낸 '부산의 내력'(1989)은 밝히고 있다.

고구마란 말은 처음 들어왔을 때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서 많이 재배한 데서 생겼다고 하나 이는 일본에서 온 말이다.

옛날 일본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어느 효자가 고구마씨를 심어 흉년을 면하고 그 부모를 잘 봉양하였다. 그 효자의 기특함을 찬양하기 위해서, 그 때 관(官)에서 그것을 효행의 감자란 뜻으로 효행저(孝行藷)라 했는데, 이 효행저의 일본 대마도 방언인 '고코이모'가 변하여 고구마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래에서 심은 고구마가 전국으로 퍼졌다는 역사로 보면 고구마란 말도 경상도에서 전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더러 경상도 사람들이 익살을 부리며, 생것은 '고구매'고, 삶은 것은 '고매'라고 하는 '고구마'란 말은, 경상도가 대마도에 이은 제2의 고향이라 할 것이다.

◇가새

쩌렁쩌렁한 가시개 소리를 들으며 헌 고무신으로 엿을 사 먹던 일은 이제는 아스라한 옛 풍속도라 하겠다. '가시개'는 낱말 속에 ㄱ을 유지하고 있는 옛말이며, '가새' 역시 다른 지방에서도 들을 수 있는 경상도 방언이다. '가새'는 '끊다, 베다'의 뜻인 옛말 ' 다'의 ''에 물건이란 '애'가 붙은 ' 애'가 변한 말로 '끊는 물건'이란 뜻이다.

'가새'가 사투리이기에 더러는 '가새'가 붙은 말도 사투리로 알기 쉬우나, '가새'가 붙은 표준어가 의외로 많다. '가새표'가 그 대표적이라 할 말이다. 틀린 것을 나타내거나, 문장에서 알면서도 고의로 드러내지 않음을 보이는 ×표의 이름이다.

'가새표'는 1940년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에서 편 '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문장 부호 이름으로 실린 후 60여 년 동안 표준어로 자리잡고 있는 말이나, 가위표에 밀려 사전에서 쫓겨나기도 한 비운(?)의 표준어이다. 몇몇 사전들에서 '가새표' 를 밀어내고 '가위표'를 표준어 자리에 앉혔기 때문이다.

'가위표'를 쓰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인지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편 '표준국어대사전'(1999)에서는 '가위표'와 '가새표'를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해 놓았다.

'가새'가 붙은 표준어로는 옛 형벌인 '가새주리'가 있다. 정강이 사이에 낀 주릿대가 가위 모양을 하고 있기에 '가새'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 이 형벌에서 주릿대를 ×자 모양으로 젖히는 것을 '주리틀다'라고 하는데, 이는 '가새주리틀다'의 준말이다. 또 농촌에서 네 움큼을 가위다리 모양으로 서로 어긋나게 묶은 볏모의 단을 '가새모춤'이라 하고, 뽕나무과의 낙엽 교목을 '가새뽕나무'라 한다. 그 외에 '가새접'이나 '가새지르다'란 말도 있다.

'가새'는 가위의 옛말이다. '가시개'가 추억을 반추케 하는 엿장수의 쇳소리 나는 가위라면, '가새'는 말없이 옷감을 마름질하는 어머니의 가위 같은 말맛을 주는 정감 어린 말이라 하겠다.

◇ 에불낭구

경상도 말의 특징의 하나는 '머라카노'처럼 지나치게(?) 줄이는 것이다. '에불낭구' 역시 준말로 보이는데, 현재는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1992)에서만 '버드나무'의 경남 방언으로 밝히고 있다.

부산이나 동부 경남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으로 보아, 서부 경남의 방언이라 하겠는데, 이 말은 그 지방 사람들도 어원을 궁금해 하는 말이다.

버드나무를 계획적으로 가로수로 심은 것은 아마도 일제 시대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에불낭구'는 '왜버들나무'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곧, '왜'를 '에'로 발음하면서 '왜버들'을 줄인 '에불'에 '낭구'가 붙은 말이라 하겠다. 물론 '낭구'는 나무의 옛말인 '남ㄱ'이 '나무'의 'ㅜ'의 영향으로 '남구'가 되고, 또 '낭구'로 변한 것으로, 이는 '임금'이 '잉금'으로 잘못 발음되는 현상과 같다.

경상 방언에서 '왜'를 발음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묻는 말인 '왜'는 '와'로, 그 외에는 '에'로 발음
한다. 그런 까닭에 '왜놈(倭-)'을 '에놈'이라 하고 '왜간장'을 '에간장'이라 한다. '왜버들'의 '왜'를 '에'로 발음한 것도 같은 보기라 하겠다.

'버들'이 줄어 '블'이 되고, '블'이 다시 '불'로 변한 것으로, 이는 옛 말의 '블(火)'이 오늘날 '불'이 된 것과 같은 현상이다. '에불낭구'는 축약된 속에서도 우리 옛말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특이한 경상도 방언이라 하겠다.

 

사투리의 미학 <23> 경상도의 특징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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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내

'그 가시내 참 새첩더래이.'
경상도 사람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말이다. 가시내는 '가시나, 가스나, 가수나' 등으로 쓰인다.

이 '가시내'에 대한 어원들이 흥미롭다. 첫째는 계집아이가 얌전치 못하여 여기저기 동냥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중한테나 시집보낼 아이란 '가승아(嫁僧兒)' 설이고, 둘째는 옛날에 여자가 길을 갈 때 갓을 쓴 남자의 복장으로 다니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갓쓴애'에서 왔다는 설이며, 셋째는 거짓사내, 곧 '가(假)사내' 설이다.

허황된 풀이지만 '동언고략(東言攷略)'에 실린 내용도 재미있는 또 하나의 설이다. 고려 때에 원나라 사람이 동녀(童女:계집아이)를 데려가 궁녀로 삼아 해마다 큰 폐가 되었는데, 가정(稼亭)이란 별호를 가진 이색(李穡)이 원나라 조정에 들어가 글을 올려 이를 폐지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 은혜를 고맙게 여겨 딸을 낳을 때에는 반드시 '가산아(稼産兒)', 즉 '가정이 낳은 아이'라 했다는 데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 외에 혼인할 시기에 이른 아이란 '과시아(瓜時兒)'란 설도 있으나 다 믿을 수 없는 풀이들이다.

'가시내'란 말의 기원은 옛글에 보이는 '가스나해'(옛 글자는 발음이 비슷한 글자로 적음)인데 이는 뒤에 '가시나희'를 거쳐 '가시내'로 축약된 것으로 보인다.

어느 국어학자는 '가시내'의 '가시'는 여자나 처의 뜻이고 '내'는 태생의 뜻인 '나해'에서 왔다고 했으나, 많은 학자들은 여자나 처의 뜻인 '갓(가시)'에 아이의 옛말인 '아해'가 붙어 된 말로 보고 있는데, 확실한 어학적 풀이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가시내'는 표준어인 계집애, 곧 여자아이란 소박한 뜻을 가진 경상도 말이다. '그 계집애 예쁘더라'의 계집애보다는 '그 가시내 이뿌더라'의 '가시내'에서 우리는 더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 조포

'조포 장수'란 말의 '조포'는 두부를 이르는 경상도 말로 '조푸' 또는 '조피'라고도 한다. 두부는 서기 전 2세기에 중국 한나라의 비운의 지식인이었던 유안(劉安)의 발명품으로, 중국이 원조이긴 하나 요리법이나 맛은 우리나라에 와서 발달했다고 한다.

세종 14년 명나라 황제가 조선에서 보낸 궁녀들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절묘하다며 극찬했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의 두부 문화를 짐작할 수가 있다.

또,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두부로 고치시(高知市)의 당인두부를 드는데, 그 원조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진해 웅천성을 침공했을 때, 열 살 남짓한 두 자녀를 포함한 30여 명의 일족과 포로로 잡혀간 박호인(朴好仁)인 것으로 미루어 우리의 우월한 두부 문화를 가늠할 수가 있다.

두부(豆腐)는 글자대로라면 '콩 썩은 것' 정도로 해석되나, 두부의 '부'는 '썩은'보다는 '삭은'의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두부는 콩을 갈아 응고시킨 것이므로 콩이 '삭은 것'은 아니지만 '삭다'란 말이 '썩다'와 뿌리를 같이하는 말이기에 '부'를 쓴 이유를 밝혀 보느라 '삭은'으로 해석해 본 것이다. 어쩌면 옛날에는 콩을 삭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부가 우리나라에 언제 전래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문헌상으로는 이색의 목은집에 '나물국 오랫동안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네/ 이 없는 이 먹기 좋고/ 늙는 몸 양생에 더없이 알맞다'란 시가 있음을 볼 때, 아마도 고려말에 원나라를 통해 제조법이 전래된 것 같다.

한글학회의 '우리 토박이말 사전'에서는 '조포, 조피'는 경상도 전체에서, '조푸'는 경남 지방, '조프'는 경북 지방에서 쓰는 말이라 했다.

두부는 맷돌에 간 콩을 끓일 때의 부글부글하는 모양에서 포(泡:거품)라고도 하는데, '조포'는 '두부를 만들다'란 조포(造泡)에서 온 말이다. 옛날 관가에 두부를 만들어 바치던 곳을 조포소(造泡所)라 했고, 임금의 능이나 왕세자나 세자빈의 산소인 원소(園所)에 속하여 제사에 쓰는 두부를 만들던 절을 조포사(造泡寺)라 했다.

다른 곳에서도 두부를 만들었을 것인데 경상도에서만 '조포'란 말을 쓰게 된 것은 흥미롭고도 특이한 일이라 하겠다.

◇ 뚜벙

"에미야, 밥 뚜벙 잘 덮어 두라이. 일하로 간 너거 아부지 오시몬 따신 밥 드시구로 말이다." 남편에 대한 따뜻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는 경상도 말이다.

오늘에 우리는 그릇의 아가리를 덮는 기구를 '뚜껑'이라 한다. 이와 비슷한 말인 '두겁'은 가늘고 긴 물건 끝에 씌우는 물건인데 '붓두껍'에서는 '두겁'이 아닌 '두껍'으로 쓰고 있어 '붓두겁'인지 '붓두껍'인지 의문을 빚어내기도 한다.

사람의 탈이나 겉모양을 말하는 '인두겁'이란 말은, 욕설로 쓰이는 '인두겁을 쓰다'란 말로 볼 때는 '두겁'과 관계가 있을 것 같으나 의미상으로는 딱 그렇다고 하기가 주저스럽다.

솥뚜껑을 경상도에서는 '소두방, 소드방, 소더뱅이, 소두벙'이라고 한다. 물론 표준어는 '소댕'이다.

소두벙의 '두벙'이나 '뚜벙'은 '덮다'의 옛말을 더듬어 보게 하는 말이다. '둡다'는 '덮다'의 옛말이다. '두벙'은 '둡다'의 '둡'에 '엉'이 붙은 '둡엉'에서 온 말이고, '뚜벙'은 된소리로 변한 말이다.

우리는 '뚜벙'이란 말에서 따사로움과 예스러움을 느낀다. '뚜벙'의 '벙'이 주는 느낌과 옛말 '둡다'의 말맛에서다. 밥 그릇을 꼭꼭 덮어두었던 '뚜벙'은 지금은 사라져가는 말이 되었으나 따뜻한 정을 덮어두는 그륵('그릇'의 경상도 말)이었다는 생각이다

 

사투리의 미학 <24> 경상도 말과 전화요금

일반적으로 경상도 출신의 사람들은 전화요금이 적게 나오고 충청도 출신의 사람들은 전화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경상도 사람들은 말을 적게 하면서도 빠르기 때문에 전화 요금이 적을 것이고 충청도 사람들은 원래 말이 느리기 때문에 전화 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다음의 대화를 살펴보면 이러한 믿음을 더욱 확신시켜 준다. 먼저 경상도 사람과 아들의 전화 내용이다.

<전화1> 30분 후에 집에 올 때 하는 말
아들 : 아부지. 언제 들어오세요?
아버지 : 지금 드가(지금 들어간다)
철컥~(전화 끊는 소리)

<전화2> 1시간 후에 집에 올 때 하는 말
아들 : 아부지. 언제 들어오세요?
아버지 : 금방 드가(금방 들어간다)
아들 : 저. 금방 언제… (끊으실까봐 무지 빠르게) 그러나 철컥!

<전화3> 1시간 넘게 걸릴 때 하는 말
아들 : 아부지. 언제 들어오세요?
아버지 : 좀 이따 드가
아들 : ........ (안 물어본다) 역시 철컥~~!

<전화4> 언제 들어올지 기약이 없을 때
아들 : 아부지. 언제 들어오세요?
아버지 : 니들 먼저 밥무라!
자식: 네.

이 대화에서 경상도 사람의 말을 요약하면 '지금 = 30분, 금방 = 1시간, 좀 있다 = 1시간 넘어서, 니들 먼저 밥무라 = 언제 들어갈지 모름'으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경상도사람의 대화는 상당히 함축적이고 경제적이다. 이러한 경제성과 함축성은 경상도 말의 특징이다.

그런데 언어의 함축성과 경제성은 전화요금과는 상관 관계가 존재할 수 없다. 전화요금은 특정 사람의 언어 사용 습관과 화법에 대한 문제일 뿐 언어적 축약과 빠르기와는 관련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같은 경상도 사람이라도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화 요금이 많이 나올 것이고 말을 아끼는 사람은 전화요금이 적게 나올 수밖에 없다.

말을 빠르게 하는 사람도 많은 내용을 말하면 통화시간이 길어지고, 말이 느린 사람이라도 짧게 말하면 통화시간은 짧아진다. 또한 같은 경상도 사람이라도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을 비교할 때도 젊은 사람들이 더욱 길게 나올 가능성이 있고, 지역별로도 회사가 밀집된 지역과 주택지역, 직업군으로도 말이 많이 필요한 영업직과 그렇지 않은 직업에 따라 전화 요금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지역별의 서투른 비교는 많은 편견을 낳는다. 그래서 말의 많고 적음은 지역적 차이가 아니라 개별적인 차이로 간주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충청도 사람들이 말이 느리기 때문에 전화 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것도 편견이다. 실제로 모 텔레비전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어른들을 비교해서 동일한 통화 내용을 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보니까 충청도 어른들이 타 지역보다 10초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의 편견이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충청도 말이 느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장의 끝에서 길이가 느껴지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전체적으로는 느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부분적인 인식으로 전체가 다 그렇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충청도 사람의 언어의 압축률이 언어의 빠르기를 지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례1>
표준어 : 정말 시원합니다.
경상도 : 억수로 시원합니더.
전라도 : 겁나게 시원해버려라잉.
충청도 : 엄청 션해유.

<사례2>
표준어 : 잠시 실례합니다.
경상도 : 내 좀 보소.
전라도 : 아따 잠깐만 보더라고.
충청도 : 좀 봐유.

이러한 압축률의 단순한 비교를 통해 보면 전라도 사람들이 가장 말을 길게 하고 충청도 사람들이 가장 짧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문장의 압축률은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나며 수식어의 사용 여부에 따라 길이도 달라 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충청도 사람의 '좀 봐유'에서 '내 좀 봐유'라고 말하고 경상도 사람이 '내 좀 보소'를 '봅시더', 혹은 '좀 보소'로 말하면 축약률의 우선 순위는 달라진다. 또한 소리의 빠르기를 결정하는 것은 동일한 시간에 발음할 수 있는 단어의 양이다. 그래서 속칭 '수다맨'이 가장 빠를 뿐이지 지역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 말은 높낮이가 있어서 길이로 발음하는 다른 지역보다 한 음절의 길이가 짧다. 마치 같은 상자를 위로 높이 올려 놓은 것이 옆으로 늘어 놓은 것과의 길이에서 차이가 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겹홀소리(이중모음)의 발음이 제약
이 되어 축약되거나 탈락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높낮이의 언어는 음 높이의 변화로 생기는 인상과 느낌에 따라 강하고 빠르게 들린다. 또 '나 밥 도'와 같이 문장 속에 토씨(조사)가 생략되는 경향과 어미가 축약되는 경향이 많아 문장이 짧다. 그리고 '안 예쁘다'와 같이 부정 표시를 앞세운다는 점은 언어의 청각적 인상을 뚜렷하게 만들어 빠르게 들린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이 경상도 말의 빠르기를 결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언어의 빠르기와 언어 사용의 빠르기는 다르다. 언어 사용의 빠르기는 개인별 화법에 따른 것으로 빠른 언어가 전화 비용을 결정할 수 없다.

 

사투리의 미학 <25> `조사`의 효율적 활용

우리의 안방을 하루 동안 화장실로 만드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방을 고쳐 구석에 새로운 화장실을 다시 만들거나 간이 화장실을 들여 놓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만 사용하겠다고 화장실을 새로 만드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고, 간이 화장실을 들여 놓는 것은 커서 많이 불편하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요강과 병풍을 이용하는 것이다. 안방 한 구석에 병풍을 이용하여 공간을 만들고 그 뒤에 요강을 가져다 놓으면 완벽한 화장실이 된다. 냄새도 뚜껑이 있기 때문에 막을 수 있다. 요강과 병풍을 사용해서 안방을 변화시키지 않고도 화장실로 쓸 수 있게 한 것은 기존의 가치를 효율성과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통 서양식으로 침실을 만들고 식당을 만들고 서재를 만들어 공간을 규정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있지만, 우리식으로 안방을 크게 만들고 거기에다 책상을 펴면 공부방이 되고 이부자리를 펴면 침실이 되고 밥상을 들이면 식당이 되는 방식은 고정된 장소의 이용을 극대화하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또한 우리 조상은 마당에 나무를 심지 않고 그냥 비워 둠으로써 집안의 큰일에 이용하거나 곡식을 말리는 데 이용하면서 그 용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지 정원을 가꿔 그 용도를 고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방법이다. 우리 옷에도 이러한 활용법을 찾을 수 있다. 즉, 우리 옷은 저고리는 짧게 만들고 치마는 길게 만든다. 저고리가 짧으면 아무래도 불편한데, 저고리를 짧게 만드는 것도 천의 효율적 활용을 생각한 것이다. 치마는 길게 하고 재단하지 않도록 만들어서 나중에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있게 하고, 저고리는 재단해서 바느질해 붙여야 되기 때문에 최대한 짧게 만들어야 한다. 또 치마 안이나 저고리에 주머니를 달지 않은 것도 일부러 천을 칼로 손상하지 않게 해서 천 이용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효율성은 언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말에 조사(토씨)나 어미(씨끝)를 이용하여 고정된 낱말에 많은 용도를 부여하는 방법은 이러한 효율성을 반영한 것이다. 여러 단어를 상황에 맞게 새롭게 만드는 수고로움보다 있는 낱말에 특정한 조사나 어미를 사용하여 많은 용도에 맞도록 만드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효율성으로나 합리적이다.

다른 말도 마찬가지이지만 부산말에서 '니만 보거래이' '니캉 내캉 보자' '니자태 간데이'에서 '-만'이나 '-캉' '-자태' 등의 조사도 명사 '니'에 붙어서 '혼자' '더불어' '쪽으로'란 의미를 표현하는 효율적인 언어 사용의 보기이다.

경상도 사람이 "그 아로 날로 도라"(그 아이를 나에게 다오)고 했을 때 '아이를 날 것으로 달라'는 섬뜩한 뜻으로 이해하는 서울 사람들이 많다. 이는 경상도 사람들이 '-에게'라는 조사 대신에 '-로'를 주로 사용한다는 조사의 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이다. 또 '니 그 쿠니 내 그 카지'라고 했을 때 일본사람이라 오해하는 사람도 경상도 말 인용조사 '쿠(다), 카(다)'가 원래 '고 하다'가 축약되어 경제적으로 쓰이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해다.

이처럼 원래 문법적인 요소는 지방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조사나 어미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부산말에서 사용되는 특이한 조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다른 지역에서 도구의 뜻으로 쓰이는 '-로써'를 부산에서는 '-까, -로까 , -ㄹ까'로 쓴다. '-까'는 원래 '-를 가지고'의 의미로 '자알까 간얼 마춘다'(장으로 간을 맞춘다)처럼 쓴다. 일반적으로 여격이라 부르는 조사 '-에게', '-한태'의 뜻으로 '-인태, -안태, -자태'를 쓴다. '자태'는 ' +에'에서 굳어진 말인데 ' '은 '곁'의 옛말이 그대로 쓰이는 경우이다. '니자태(인태, 안태)기댈라 쿤다'(너에게 의지하려고 한다)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비교나 견줌을 뜻하는 '-처럼'의 뜻으로 쓰이는 조사는 '매쿠로'가 있다. '매쿠로'는 '니 매이로 내도 할 수 있을끼다'(너 만큼 나도 할수 있을 것이다)에서처럼 '매로 매이로, 맨치로, 매치로'로 변이되어 쓰인다. 이러한 '매쿠로' 같은 비교를 나타내는 조사는 '처리, 마이, 만쿰, 마치, 카마' 등이 있다. 이중 '-처리'는 동부 경남지역에 많이 쓰이는 특이한 조사인데 '이처리 마이 주다?'(이 만큼 많이 주더냐?)에서처럼 '처럼'이 변이된 형태이다.

그 외에도 특이한 뜻을 보태는 조사로는 '-마중(-마다), - 까정(-까지), -ㄴ뽀너로'가 있는데 '-ㄴ뽀너로'는 'ㄴ본으로(본들)'에서 나온 말로 '-ㄴ뽀널'로도 쓰이는데 '닌뽀너로 가마 잇갯나'(넌들 가만히 있겠나), '물인뽀널 갯나'물인들 흔하것나)에서 보인다.

〈 일본어로 오해 받는 사투리 〉

①니 그 쿠니 내 그 카지! → 네가 그러니깐 내가 그러지!
니 안 그 쿠면 내 그 카나? → 네가 그러지 않는데 내가 그러겠니?

②가가 가가? → 그 애가 이야기하던 바로 그 애냐?

③가가 가가가? → 그 애의 성이 가씨냐?


 
#'구미호'의 꼬리는 9개가 넘는다?

한자어로 '구미호'라 함은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를 말한다. 꼬리가 아홉 개인 여우는 오래 묵어서 사람을 잘 호린다는 전설상의 여우이다.

그런데 구미호는 용처럼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상상으로 만들어 낸 동물이다. 구미호가 상상으로 만든 여우라면 꼬리가 아홉 개보다 많은 백 개나 천 개라면 더 재주가 많은 여우가 될 것 같은데 하필이면 아홉 개를 가질까? 그것은 우리말에서는 아홉은 양(陽)의 수 중에서 가장 큰 숫자로 오래되거나 많은 양, 큰 수를 지칭할 때 쓰이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중심처(아주 깊은 곳), 구절양장(매우 험한 산길), 구곡간장(매우 깊은 마음 속) 등의 낱말에 쓰이는 아홉(九)이란 수는 깊거나 많거나 심함을 드러내는 의미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오래된 물건을 나타내는 낱말인 '구닥다리'(구년묵이)도 '십년묵이'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경상도 말에서는 '미구(매구) 오래비 본 듯하다' '백야시다'에 나타나듯이 구미호보단 '백야시' 혹은 '매구'란 말을 더 많이 쓴다. '백야시'는 '하얀 여우' '매구'는 '천년 묵은 늙은 여우가 변해서 된 다는 이상한 짐승'의 뜻인데, 백야시는 예쁘게 생겨서 사람을 좀더 잘 호리는 여우로 요사스런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매구'는 백야시보다 더 꾀가 많은 짐승으로 여우보다는 한 단계가 높은 짐승으로 능청맞음과 교활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경상도말에서 '애수고개'니 '야시고개'니 하는 여우와 관련된 지명은 '아시' 즉, '작음'에서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변이된 지명이다.

결국 구미호의 '구'는 아홉에서 온 말이 아니라 오래되거나 많은 것을 지칭하는 말로 구미호는 꼬리가 많은 여우이거나 오래 묵은 여우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어는 우리 민족의 다양한 삶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일상생활에서나 언어 생활에서 그 의미와 가치가 동일하게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말의 조사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어휘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사투리의 미학 <26> 이상한 외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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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정류소에서 어느 할머니가 운전수한테 열심히 묻고 있었다.

"이 빵스 어디로 가는 빵슨교?"

그러자 운전수가 한술 더 떠서

"이 빵스 서울 가는 사리마답니더"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장면은 시골에서 버스의 원래 글자를 알지 못한 할머니가 외래어인 버스를 빵스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운전수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운전수가 능청맞게 한술 더 떠서 '빵스'와 유사한 '사리마다'(고쟁이의 일본말)로 응답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보통 시골의 할머니들은 처음 듣는 외래어는 들리는 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어휘에서 벗어난 개인어가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봉고차'를 '곰보차'라 하거나 '크림'을 '구라분', '스트레스'를 '트랄레스'라고 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외래어뿐만 아니라 정확한 원음을 모르는 한자어들도 자신이 들리는 대로 이해하여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경운기'를 '제궁기'로 부르거나 '자전거'를 '자잉고', 담배를 '담바', '비행기'를 '비영구'로 알고 있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낱말을 듣고는 그렇게 말한 사람을 멸시적으로 대하거나 무식한 사람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하게 보이는 낱말은 '청각인상'에 의존해 발음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낱말이다. 일반적으로 청각인상에 의존하는 현상은 특정한 어형을 자신이 기억 속에 있는 어형과 일치시켜 이해하거나 자신의 귀에 들리는 소리의 인상만 가지고 어형을 확정하는 경우를 말한다. 청각인상은 개인별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특정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음운 구조의 틀에 따라 그 어형이 고정되기도 한다.

만약 개인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사투리가 아니고 개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집단에서 약간의 변이형이 있지만 고정된 형태가 나타나면 그것은 그 지역의 사투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청각인상에 의존한 어형은 조금이라도 어원을 아는 젊은 사람들보단 어원을 전혀 모르는 나이가 연로하신 분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깊은 산골이거나 교통이 불편한 지역일수록 많이 나타난다. 청각인상에 의존한 어형 보통의 발음과 달라서 특이한 형태이지만 나름대로 소리의 인상에 따라 음운 규칙을 적용해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청각인상을 쉽고 자연스런 발음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모든 언어 사용자가 가지는 일반적인 특성이기 때문에 저급하거나 무식한 것으로 취급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부산에서도 동부 해안지역이나 양산에 인접한 지역, 김해 근교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어휘가 많이 나타나는데, 티켓[ticket]을 '찌개뜨', 팁[tip]을 '찌뿌', 노크[knock]를 '녹꾸', 앙콜[encore]를 '안꼴'로, 마라톤[marathon]을 '마라똥', 아파트[apartment]를 '아빠또', 바이올린[violin]을 '빠이론'이라 하는 것이 그 보기이다. '찌개트'의 경우 보통 '티케트'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나 첫소리 ㅌ을 ㅉ으로 바꾼 것 뿐이다.

이것은 경상도말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입천장소리되기[구개음화]와 된소리되기[경음화]를 적용한 꼴이다. '찌뿌'도 일반적인 어형인 '티뿌'에서 입천장소리되기에 따라 '찌뿌'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녹꾸'의 경우도 첫음절을 강화화기 위해 받침소리를 첨가한 꼴이며 '안꼴'의 경우도 음절에 경계를 두어 끊어서 발음해서 나타난 결과이다. 또 '마라똥'도 마지막 음절의 끝소리 'ㄴ'을 모음 'ㅗ'에 따라 입 안쪽으로 옮겨 음절의 발음의 크기를 강화한 꼴이다.
특히 바이올린은 부산지역에서는 '바욜린'으로 나타나는 데 '빠이론'으로 나타나는 것은 특이하게 보인다. 그러나 첫소리를 된소리로 발음하고 마지막 음절을 빠르게 축약해서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이상한 외래어 발음은 청각 영상에 따라 소리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일반적인 음운 규칙에 따라 적용한 꼴로 보인다.

결국 이상하게 보이는 어형들도 알고 보면 잘 모르는 낱말을 청각인상에 의해 인지해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규칙에 따라 적용한 어형인 셈이다.

 

사투리의 미학 <27> 드라마의 사투리

 
조선 선조 때 이율곡 선생이 다음과 같은 강릉 사투리로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선조가 잘 알아 듣지 못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하! 자들이 움메나(얼마나) 빡신지(억센지) 영깽이(여우) 같애 가지고 하마(벌써) 서구문물을 받아들여가지고요, 쇠꼽 덩거리(쇠 덩어리)를 막 자들고 발쿠고(두드리고 펴고) 이래가지고 뭔 조총이란걸 맹글었는데, 한 쪽 구녕(구멍) 큰 데다가는 화약 덩거리하고 재재한(작은) 쇠꼽 덩거리를 우겨넣고는 이쪽 반대편에는 쪼그마한 구녕을 뚤버서(뚫어서) 거기다 눈까리를 들이대고 저 앞에 있는 사람을 존주어서(겨누어서) 들이 쏘며는 거기에 한번 걷어들리면(걸리면) 대뜨번에(대번에) 쎄싸리가 빠지쟌소(혀가 빠져 죽지 않소).

그리고 자들이 떼가리(무리)로 대뜨번에 덤비기 때문에 만 명, 2만, 5만 갖다가는 택도 안돼요. 10만 이래야 되요. 분명히 얘기하는데 내 말을 똑떼기(똑바로) 들어야 될 끼래요. 그리고 자들이요, 움메나(얼마나) 영악스러운지요, 맹하이 이래가지고는 되지 않아요. 우리도 더 빡시게 나가고, 대포도 잘 맹글고, 훈련을 잘 시켜서 이래야지 되지 안 그러면 우리가 잡아 먹혀요."

위의 이야기는 우스갯소리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다.

왜냐하면 조선조 양반들에게 엄격하게 언어를 사용하게 했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짐작할 일이며 임금 앞에서 전달의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눈까리, 쎄싸리가 빠지다(죽다), 빡시다' 등 어휘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없는 일이다. 원래 율곡 선생은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지만 원래 고향은 경기도 파주이며 6세 때 지금의 서울 청진동에 올라와 생활하였다. 율곡 선생은 주로 한양에서 생활하였기에 강릉 사투리보다 한양을 중심으로 한 중부 지방의 말을 사용하였을 것이며, 양반 출신이기 때문에 평범한 지역말보다는 격식적이고 공식적인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나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철저하게 고증해야 하며 언어 사용의 측면에서도 왜곡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과 인물이 과장될 가능성이 있어서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하가 임금을 '전하'라고 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신하가 함부로 임금을 부를 수도 없지만 '전하(殿下·누각 밑에)'는 '각하(閣下·문설주 아래), 폐하(陛下·섬돌 아래)'와 같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에 대답말로만 쓸 수 있다.

최근에 역사 드라마나 코미디에서 사투리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토지'나 '불멸의 이순신', '해신' 등의 역사 드라마와 여러 지방의 신하들과 임금이 어전회의를 하는 코미디, 신라의 김유신과 백제의 계백 장군이 서로 자기 지역말로 전쟁을 하는 영화 '황산벌' 등 다양한 장르에 지역말이 자주 등장한다. 지역어의 빈번한 사용은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다양한 언어를 통해 재미있는 개성을 창출하는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그러나 흥행만을 생각해 유기체적인 지역말을 단지 흥미 있는 요소만 과장하여 부각하거나 희화화하면서 잘못된 지역말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지역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하거나 고정 관념을 강화하게 된다.

드라마 '토지'의 경우, 주인공 최서희(김현주 분)를 중심으로 비중 있는 인물이나 지체 높은 양반들은 모두 서울말을 쓰고 있는데 반해 최 참판집 하인들과 같은 주변인물이나 조연은 경상도 말이나 북한 말을 쓰고 있다. 그래서 지역말을 쓰는 사람들은 천하고 서울말을 쓰는 사람은 귀하다는 인식을 고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중매체가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 교양 없고 무식한 이미지만을 줄까봐 여기에 덧씌워 이미지가 순박하고 후덕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 역시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후덕하다는 것을 고정화하여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주인공을 비롯한 양반 모두 경상도 말을 사용하게 해서 하인들과 비슷한 말투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있다. 특정 지역말은 언어 형성기에 습득이 되고 그 지역에서 생활의 터전을 잡고 오랫동안 생활을 할 경우에 고착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높은 벼슬을 하거나 오랫동안 타지에서 살았거나, 많이 배운 양반들은 엄격한 언어 교육에 의해 양반들의 격식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 지역에 사는 양반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그 지역말을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토지'의 최서희 어머니인 별당아씨는 서울에서 하동으로 시집 왔기 때문에 하동말보다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하동에 산다는 이유로 지역말을 고집스럽게 쓰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동에서 자란 서희는 말 배우는 시기에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면 서울말을 쓸 수 있다. 이는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 들보다 언어 감각이 뛰어나서 주변의 언어적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쉽게 서울말을 따라 배울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극은 인물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그 인물이 어떠한 언어를 구사할 지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거나 고정관념만 더욱 강화할 뿐이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이러한 면은 발견된다. 드라마속의 김완 장군(박철민 분)은 경북 영천 자항면 노항동에서 출생한 분으로 역사물에는 경주사람으로 기술되어 있다. 김완 장군은 임진왜란 발발 전인 선조 24년(1591년)에 이순신 장군을 보필하는 사도첨사 역으로 전라도 좌수영에 배치되어 옥포와 당포해전을 비롯해 한산대첩 등 7년간의 전쟁에서 300 척의 적함을 수장시킨 명장으로 전쟁이 끝난 후 선조 임금으로부터 '해동소무'라는 어필을 받을 만큼 충절과 절개가 굳은 장군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김완 장군은 게으른 사람으로 심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극 중에서 특정한 인물의 이미지는 한 번 고정되면 바꾸기가 힘들다. 지역주민들이 주장하는 대로 영천 출신의 장군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은 그 고증이 잘못된 것으로 바로 잡아야한다. 그렇지만 특정 지역의 장군들이 반드시 그 출신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태어난 곳 언어습득 시기에 있던 곳, 관직의 진출 여부, 교육의 여부에 따라 판별되어야할 문제이다.

사투리의 미학 <28>'문화의 보고' 地名

 
전국의 땅이름 중에는 본래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발음하는 소리만 들어보면 재미있는 땅이름이 많다.

예를 들어 망치마을(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고문마을(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가학마을(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부수리(충청남도 보은군 회북면 부수리), 객사마을(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압사마을(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 등의 마을 이름은 '망치 고문 가학 부수리 객사 압사'와 같은 잔인함을 상징하는 낱말이 연상되므로 무서운 마을 이름 같아 보인다.

우동(부산 해운대구 우동), 우동마을(경상남도 진영읍 우동리), 파전마을(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파전리), 국수마을(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국수리), 고사리(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계란마을(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 굴전마을(전라남도 완도군 생일면 굴전리), 사리마을(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사리리), 소주마을(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등의 마을은 '우동 국수 사리 계란 굴전 소주 고사리'와 같은 음식을 연상하게 하는 마을 이름이다.

그리고 목소리(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목소리), 목도리(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와 같은 마을 이름도 있고, 방광마을(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방구마을(광주 광역시 서구 화정동 방구리), 주정마을(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주정리), 유방동(경기도 용인시 유방동), 대가리(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 고도리(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고도리) 등과 같은 부르기에도 민망한 마을 이름도 있다.

이러한 마을 이름은 후대로 가면 본래의 음상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 덧보태지면 원래의 어원과의 관련이 약해지면서 땅이름의 해석이 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또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땅이름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양산 덕계에 있는 '무지개 폭포'는 이름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인근의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계곡인데 원래의 땅이름은 '진치골 폭포'이다. '진치'는 원래 '긴 고개'의 뜻인데, 사람들이 '긴치'를 '진치'로 부르게 되고 그에 따라 '짐치'로 연상되어 아름다운 폭포의 이미지완 전혀 다르게 불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역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무지개 폭포'로 부르게 되어서 그 아름다움에 걸맞은(?) 땅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땅이름은 명명의 차원에서 벗어나 지역인들의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산이며, 지난 역사적인 사실을 반영하는 좋은 문화적 자원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변형으로 인해 본래의 긴 계곡의 이름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솥발산의 '무제치늪'도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원적으로 '무제'는 '물제' 즉, '기우제'의 사투리이며 '치'는 언덕이나 고개를 의미하는 뜻으로 '기우제를 지내던 언덕'에 있는 늪의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양산 지역의 '도둑골'이란 지명은 어두운 곳을 '도둑놈 굴 안'이라고 표현하는 부산 지방의 관용적 표현으로 미뤄 볼 때, '도둑이 사는 곳'의 의미 보다는 '어둡고 깊은 골짜기'에서 유추된 땅이름이다.

양산 지역의 '도장골'이란 지명도 지역인들은 '도장처럼 생긴 골짜기'란 지형적인 명칭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도장'은 옛말의 '안방'의 뜻으로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고 안이 넓고 평평하게 넓은 땅의 특성을 반영한 땅이름이다. 부산에 있는 '배산(盃山)'은 멀리서 보면 잔을 엎어 높은 것과 같은 모양이라서 '잔뫼'를 한자말로 바꾼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 '잔뫼'는 원래 '성(城)'의 옛말인 '잣'에서 변이된 것으로 '잣뫼'가 원래 이름이다. '잣뫼'는 발음상으로 '잔뫼'로 동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옛날에 이 산 위에 산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땅이름 속에는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범내골'의 경우도 '범이 내려 온 골짜기'라고 이해한다면 예전에 이 골이 '벌 내' 넓은 벌판에 흐르던 시내를 의미하던 지형적인 특성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며, '범천(凡川)'이라는 명칭에서도 본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또 '문현'이라는 고개도 '못 너미 고개'로 '못으로 넘어 가는 길목'의 고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지역 사람들은 '못 너미'를 '못 넘을'로 해석해서 넘어 가기 어려운 무서운 고개로 인지하기 때문에 정확히 어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의미를 알아내기 힘들다.

그리고 고개 중에 '까치고개'는 '까치가 많이 사는 고개'의 뜻으로 해석되기 보다는 '아치' 즉, 작은 고개
의 의미이다. '작다'는 뜻으로 흔히 아치, 아찬 등이 나타나는데 더러는 어감상으로 비슷한 '까치'로 나타나기도 한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에 나타난 '까치설'이 바로 '아찬설'인 '작은설'이다. 이 작은 고개는 까치고개 부근에 있는 큰 고개인 '대티'와 구분하기 위한 붙인 땅이름이다. 물론 영도의 아치섬은 '아침섬'이 아니라 '큰 섬'에 비교되는 '작은 섬'인 것이다.

이처럼 땅이름은 그 지역 사람들의 인식의 표상으로 당시에 사용되는 언어가 반영되어 있는 중요한 문화적 자원이다. 잘못된 뜻을 가지고 한자말로 옮겨진 것을 바른 뜻으로 바꾸는 것이 그 속의 문화적 자원을 잘 보존하는 것이다

사투리의 미학 <29> 정치인의 사투리

 
비와 제갈 공명이 처음 만났을 때는 말이 통했을까?

삼국지에서는 유비가 삼고초려해서 세 번째에 제갈 공명을 만났고, 만나자 마자 대화가 가능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유비는 화베이 즉, 화북지방 출신이고 제갈 공명은 산둥 즉 산동 지역 출신이라 요즘의 소통 사정을 참고해 보면, 만나자 마자 서로간의 대화는 곤란할 것 같다.

중국은 뜻글자인 한자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발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방언이 가장 심한 나라에 속한다. 화북과 산동지역의 말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하려면 중간에 통역을 해주는 통역관이 있거나 필답으로만 가능하다. 그것도 아니면 치밀한 유비가 제갈 공명을 얻기 위해 먼저 산동지방의 말을 배워서 제갈 공명을 만났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대화가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방언의 차이가 심한 지역의 정치적인 소통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최근에 전라도 출신의 국회의원과 경상도 출신의 국회의원이 서로의 말을 바꿔 연설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아래의 연설은 전라도 출신의 정치인이 국회 지방자치발전연구회가 마련한 '사투리 어울림 한마당'에서 저출산 문제, 독도 문제, 지방색 문제를 경상도 말로 연설한 내용이다.

"60년대 새마실 운동 만키로 9시만 되불만 전기를 끄나삐고, 10시부터는 통행을 금지시캬, 아를 만들도록 해야 합니더. 이거이 에나지도 줄이고, 일석이조 아입니꺼."

"일본 얼라들이 독도를 저거 땅이라고 하니깐 억쑤로 열이 받아가꼬 마 요새 잠을 설친다 아잉교. 일본 아∼들 다리 몽둥이를 다 뿌라삐고, 뒤통수 쎄게 한대 쌔리뿔고 나서 독도뿐만 아이라 대마도도 마 우리땅이라꼬 큰 소리로 해불고 싶드라고예."

"문희상 의장하고, 박근혜 대표하고 나란히 앉차야 됩니데이. 니캉내캉 이 얘기 저 얘기 하믄 국민들도 좋다 할 낍니다. 생각해 보이소. 억씨게 생긴 문 의장하고, 곱상한 박 대표 나란히 앉차노믄 누가 덕 보겠습니꺼."

위의 표현은 경상도 말 같지만 경상도에서 쓰는 말과 다른 표현이 많이 보인다. 지방색을 없애겠다는 정치인의 의도는 좋지만 국적 불명의 어색한 경상도 말로 연설을 한 것은 중요한 오류이다. 위 연설은 경상도 억양까지는 고려하지 않더라도, 경상도 말과 다른 낱말이 쓰이고 전라도 어투마저 섞여 어색하다. 단순한 경상도 낱말이 조합된 말이라서 웃음만 유발하는 무늬만 경상도 말이다. 특이한 억양과 어휘만을 바꾼다고 전라도 사투리가 바로 경상도 사투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히 위의 '새마실운동, 만키로, 되불만, 금지시캬, 만들도록 해야, 이거이, 마, 쎄게, 해불고 싶드라고예, -하고, 니캉내캉, 얘기, 곱상한' 등은 경상도말을 잘못 바꾼 것이다.

먼저 경상도 말에서는 '새마을'과 같은 고유한 명사는 발음의 문제만 있을 뿐이지 '새마실'과 같이 부분을 해당 낱말로 바꾸지는 않는다. '만키로'는 '매이로'나 '매로'로 바꾸어야 하며, '만들도록 해야'는 '맹글게 해야'로 써야 경상도 말처럼 들린다. 또 '되불만' '이거이' 등은 전라도식 발음이지 경상도 말이 아니다.

'되불만'은 '되뿌면'으로 고치고, '이거이'를 '이기'[이것이]라고 해야 옳다. '금지시캬'는 '막아뿌고'나 '금지 해 가'로 바꾸어야 한다.

첫 연설은 '60년대 새마얼 운동 매로 9시만 되모 전기를 끄나삐고, 10시부터는 댕기는 질을 막아뿌고, 아를 맹글게 해야 합니더. 이기 에나지도 줄이고, 일석이조 아입니꺼'로 바꾸어야 경상도 말이 된다.

두 번째 연설의 '마'는 '그냥'이라는 뜻으로는 경상도 말이지만 군말로 쓰면 일본말투이기 때문에 피해야할 낱말이다. '쎄게'는 '시게'가 맞는 표현이고, '해불고 싶드라고예'는 '-예'만 붙인 어색한 표현이다. '해불고'는 전라도말이기 때문에 없애야 하고 '싶드라고'는 '-접다'로 표현해야 경상도 말이 된다. 이 표현은 '말해 삐리고 싶다'나 '괌 지르고 접다[시프다]'는 말로 바꾸어야 경상도 말이 된다.

둘째 연설은 '일분 아들이 독도를 지그땅이라고 쎄우니 억쑤로 열 받아가 요새 잠을 설치삔다 아잉교. 일분 아들 다리 몽다리를 다 뿐가삐고, 디통시를 씨게 한대 쌔리뿔고 나서 독도뿐 아이라 대마도도 우리땅이라꼬 큰 괌 지르고 시픕니더'로 바꿔야 경상도 말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연설 중에서 '-하고'는 '-캉'으로 써서 '문희상 의장캉, 박근혜 대표캉'이라고 표현해야 하고, 뒤에 쓰인 '니캉내캉'은 자신이 들어가야 쓸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두치서[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얘기'는 '말을 하모'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끝으로 '곱상한'이란 표현은 '참한'이라고 바꾸는 것이 더 경상도 말답다.

마지막 연설은 '문희상 이장캉, 박근혜 대포캉 나라이 안차야 됩니더. 두치서 말을 하모 국민들도 좋다 할 낍니다. 함 생각해 보이소. 억씨게 생긴 문 이장하고, 참한 박 대포를 나란히 앉차노믄 누가 덕 보겠습니꺼'로 바꾸는 것이 더 경상도 말답다.

처럼 위의 정치인의 경상도 말은 본래의 경상도 말과는 다른 무늬만 경상도 말이다. 경상도 말이나 전라도 말은 몇 개의 낱말만 바꾸고 특징적인 씨끝만 바꾼다고 그 지역말이 되지 않는다.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억양을 배워 정확한 경상도말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높낮이를 이용하지 않던 사람이 높낮이를 배워 활용하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준비없이 행한 연설은 그 본질적 의도가 왜곡될 수 있다. 지방색 타파라는 의도와 달리 즉흥적이고 흥미본위의 사투리로 희화되어 인식된다면 지방색을 오히려 더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진정한 소통은 사투리 몇 마디를 통해 임시 방편으로 해결된 문제는 아니다.

덕과 포용력의 유비와 법가 패도정치의 치밀한 제갈 공명은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다른 지역의 출신이라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을 딛고 그들이 서로 만나 천하를 논한 것은 언어의 소통의 결과물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지역말을 넘어서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그들을 한마음으로 소통시킨 것이다. 피상적으로 지역말을 따라하는 인간관계에서는 어떠한 시도도 통하지 않는다.

결국 진정한 소통은 타 지역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유비와 제갈 공명처럼.


 

사투리의 미학 <30> 할리와 미즈노

 

로버트 할리와 미즈노 준페이. 한 사람은 미국인으로서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아직 일본인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의 공통점은 외국인 출신이라는 점, 한국인 아내를 둔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말을 잘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한우, 이다도시 등과 같은 외국인보다 로버트 할리나 미즈노 준페이가 더 인기가 좋은 것은 그들의 외모가 아니라 구수한 사투리를 서울 사람보다 잘 쓴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이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 아무도 방송에서 사투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데도 부산말이나 전라도말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인기를 끈다는 점이 더 공통점이다. 이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방송에서는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으며,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들의 사투리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신기해하고 있다. 경상도 출신 강호동이 오락 프로그램에서 억지로 어색한 표준어로 진행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에 비해 이들은 사투리로 마음껏 이야기해서 인기를 얻는 것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사투리에 대한 편견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근데 여기서 엉뚱한 의문이지만 미국사람인 로버트 할리가 부산말을 잘하고 일본 사람인 미즈노가 전라도말을 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꾸로 미국사람인 할리가 전라도말을 배우고 일본 사람 미즈노가 부산말을 배웠다면 어떨까? 또 둘 다 표준어를 배웠다면 어땠을까?

먼저 미즈노 준페이는 원래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천리대학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전남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동 대학 일어일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한국어를 천리대학 조선어학과를 졸업한 뒤 11년간 전라도에 살면서 전라도 말을 자연스럽게 익혔을 것이다.

로버트 할리의 경우는 17세때 이미 선교사로 한국에 와 본 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 법학박사 학위를 따고 국제변호사가 되어 87년에 다시 부산에 와서 진해 출신의 아내와 결혼하고 영도 하씨 '하일'씨로 귀화한 한국인이다. 그래서 그는 부산말을 다른 외국 사람보다 더 구수하게 구사한다.

그런데 한 지방에 오래 산다고 해서 그 지역의 말을 쉽게 배우는 것은 아니다. 언어 구조가 유사하거나 언어 감각이 비슷한 경우에 가능하다. 먼저 일본말은 영어와 같이 악센트[강세] 언어이다. 악센트 언어는 특별한 위치의 강세에 따라 낱말의 뜻이 구별되는 언어로, 높낮이로 구분되는 경상도 성조 언어와 유사한 점이 있는 언어이다. 더러는 경상도 말을 고저 악센트 언어라고도 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악센트[강세]란 소리의 세기에 따라 인식되는 것으로, 센소리는 높게 들리며 약한 소리는 약하게 들리기 때문에 특별한 기준이 없으면 성조 언어로 혼동하기도 한다.

전문적으로 악센트 언어나 성조 언어는 표면적으로 유사한 음의 높낮이로 인식되지만 내부적으로는 소리의 높낮이가 미리 고정되어 있는 것이 성조 언어라면 소리의 높낮이가 고정되지 않아 발음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악센트 언어라 구분한다. 중국어가 성조 언어라면 영어나 일본어는 악센트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산말은 악센트 언어와 성조 언어의 특징을 함께 가지는 언어, 즉 고저 악센트 언어라면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 말은 악센트 언어에 가깝다.

부산말은 소리의 높낮이가 미리 정해져 있지만 조사나 어미를 뒤에 붙여 나타날 경우에는 높낮이가 변하는 악센트 언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광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 말은 센소리의 경우에는 높게 나타나고, 센소리가 아닌 경우에는 낮게 나타나는 악센트 언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라도 말을 따라 하기 위해서는 센 닿소리인 'ㅋ,ㅌ,ㅍ,ㄲ,ㄸ,ㅍ'이 있는 음절을 높게 발음하면 어렵지 않게 흉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미즈노 같은 일본말 화자는 악센트가 없이 길이로만 분화되는 서울말보다는 악센트 언어적 성격을 가진 전라도 말을 쉽게 인지하고 배울 수 있다. 물론 미국 출신인 할리도 전라도 말을 잘 배울 수 있다.
둘 다 악센트가 없는 서울말을 배웠다면 어색했을 가능성이 많다. 또한 부산말과 같은 고저 악센트일 경우에는 다이내믹 톤을 가진 영어권 화자인 할리가 미즈노보다 더 유리하다. 결국 두 사람의 유창한 사투리 실력은 그들의 모국어의 억양 특성과 유사한 언어를 선택해서 익힌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외국 사람들이 사투리를 배워 유창하게 말하는 것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부산 사람들이 방송에 인터뷰할 때 쓰는 어색한 표준어가 신기한 것이다. 자기들끼리는 사투리로 신나게 떠들다가도 마이크만 갖다 대면 신기하게도 다들 익숙하지 않은 표준어로 말하는 것이 방송은 표준어로 나타나야 한다는 지나친 강요와 자신의 언어가 부끄럽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는 당당하게 부산말로 방송에 나설 때이다. 로버트 할리, 아니 하 일씨처럼. 부경대 외래교수

◇ 로버트 할리가 부산 사람인 두가지 이유

첫째, 자신이 처음에 부산에 오고 싶었던 이유이다.

"처음엔 억수로 오기 싫었어예. 어려서 부모님이 가끔 중국요리를 시켜주곤 했는데 억수로 맛이 없었거든예. 그 때부터 중국뿐 아니라 동양을 싫어하게 됐심더. 나중에 부산의 자갈치시장도 눈앞에 어른거리고 신발벗고 들어가야 했던 부산집도 생각나는 거라예. 친구들도 무지 보고 싶고예"

둘째, 모 텔레비전에 출연한 할리가 맛있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이다. 할리의 구수한 부산말과 함께 완전히 부산 사람이 된 할리의 인식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홍렬 : 할리씨는 보신탕 드셔 보셨어요?

할리 : 당연히 무그바찌예, 억씨로 맛있었쓰예∼.

이다도시 : (경멸하는 눈빛으로) 오…그걸 어떻게 먹어요?

할리 : 맛있기만 하든데예. 머.

홍렬 : 몇 번 먹어 보셨나요?

할리 : 마이 무그봤으예. 우리 장모님이 여름되면 마이 해주지예!

이다도시 : (째려보며) 개를 어떻게 먹을수 있죠? 오∼ 마이갓!

할리 : 즈그들은 달팽이도 무그면서 개묵는 거 가꼬 난리고.

이미 이홍렬은 웃느라 뒤로 넘어간 상태였다.

이다도시 : 개는 우리의 친구예요. 그걸 어떻게 먹어요?

이때 할리의 명언 한마디

할리 : 달팽이도 우리의 친구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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