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부산의 어느 집에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에서 피란 온 아주머니들이 반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에 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온 사람은 '부추'를 사야겠다고 했고, 서부 경남에서 온 사람은 '소풀'을 사야겠다고 했다. '정구지'를 살 마음이던 부산의 아주머니는 처음 들어 본 말이었다. 시장에 간 아주머니들은 같은 반찬거리를 사고 있는 자신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각 지방 사람들이 모인 까닭에서 빚어진 희극이었다.
'정구지'는 정월부터 구월까지 자라는 풀이기에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전(煎)을 굽는 재료로 쓰이기에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국어학자이던 김영신은 '정'을 '전술', '전국', '전오줌'의 전으로 보고, '구지'를 '부추 구, 채소 절일 저'로 보아 '전구저'서 온 말로 우선 처리해 두었다.
서부 경남 일대에서는 이를 '소풀' 또는 '소불'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옛말이 '쇼풀'이었던 '소풀'은 소가 먹지 않는 풀, 솔잎처럼 생긴 풀 등 소박한 몇 가지 설이 있으나 '정구지'와 함께 그 어원을 확실히 알기가 어렵다. 아무튼 동부 경남의 '정구지'와 서부 경남의 '소풀', 표준어인 '부추'의 대립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에 대해서 원로 국어학자인 박지홍은 이는 신라 방언, 가락 방언, 백제 방언의 자취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 국어의 어제를 추측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은 당장 코앞에 닥친 내일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지만 먼 미래에 대해서는 항상 밝고 낙천적인 마음을 품고 살아 온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라는 말은 한자어인데 그보다 더 먼 '모레'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 고유의 말로 되어 있다.'
우리말에 한자어 '내일(來日)'에 해당하는 순 우리말이 없음을 안타까워한 이어령(李御寧) 씨의 글이다.
영어에는 날짜를 나타내는 말에 '오늘'과 '어제' 그리고 '내일'이란 세 단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해서는 '그끄제-그제-어제'가 있어 사흘까지 기억하고, 특히 미래에 대해서는 '내일-모레-글피-그글피'가 있어 나흘까지 미리 생각하는 멀고도 깊은 사려가 우리말에는 스며 있다.
그럼에도 이 말들 중 '내일(來日)'이 한자어란 것으로 우리를 '비전이 없는 민족'이란 서글픈 진단을 내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오늘'이 있고 '모레'가 있는데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이 없었을 리가 없다.
고려를 다녀간 송나라 손목(孫穆)은 '계림유사(鷄林類事)'란 책에서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을 '轄載'로 적었다. 오늘의 음이 '할재'인 이 말을 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여 '할제, 올제, 하제, 깔제, 후제' 들로 해독하였다.
그런데 이들 중 '후제'가 '내일'의 우리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일'은 곧 '오늘의 뒷날' 이다. 그러므로 '뒷날의 어느 때'란 '후제' 속에는 '오늘의 뒷날'이란 '내일'의 뜻도 들어 있다.
이런 점으로 보면 '후제'는 적어도 12세기까지는 '내일'의 우리말로 쓰이다가, 한자어 '내일'에게 '오늘의 뒷날'이란 자리를 내어 주고, 자리를 옮겨 '뒷날의 어느 때'로 좀더 물러난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전들에서 '후제(後-)'와 같이 '후'의 한자를 밝힌 것은 '뒷날'이란 뜻에 이끌린 것이라 하겠다. '후제'는 내일의 우리말인 경상도 말이라 하겠다.
경상도 말들에는 표준어란 인위적 규정 때문에 숨죽인 채 엎드려 있는 말들이 있다. 그 대표적이라 할 말이 ' 다'와 '낫우다'라 하겠다. ' 다'는 오늘에 '쫓다'라는 표준어에 밀려 사투리로 처리된 말이고, '낫우다'는 '고치다'란 말에 밀려난 말이다.
표준어 사정 때에 '쫓다'와 ' 다', 그리고 '고치다'와 '낫우다'의 차이를 알고 이들을 각각 독립된 말로 인정해야 했음에도 이러한 말을 돌아보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 다'란 말을 살리자. 표준어에서는 '개를 쫓다', '새를 쫓다'와 같이 모두 '쫓다'를 쓰고 있다. 그러나 경상도에서는 '개'는 '쫓다'라고 하고, '새'는 ' 다'라고 한다. 길짐승은 쫓고, 날짐승은 아 낸다. 새나 닭을 쫓는 말의 표준어로 '숴'와 '훠이'가 있다. 어느 국어 사전에는 '후여'란 말도 실었으나 많은 사전들이 '후여'는 사투리로 처리하고 있다. 아무튼 '훠이'나 '후여'란 말도 '다'와 관계 있는 말로 보인다.
'낫우다'란 말도 살려야 할 말이다. 표준어에서는 부서진 책상도 '고치다'라 하고 병도 '고치다'라 한다. 그러나 이 두 말은 달리 써야 할 말이다. 경상도 말에서는 책상은 '고치다'라 하고, 병은 '낫우다'라 한다. 곧 물건과 사람(동물)에 따라 구별하여 쓰고 있다. '낫우다'는 '병이 낫다'란 말의 '낫다'에 '우'를 넣어 '낫게 하다'란 타동사로 만든 것으로 조어법으로 보아도 옳게 된 말이다. 표준어에서 '쫓다'와 ' 다', '고치다'와 '낫우다'를 같은 뜻의 말로 처리하여 어느 하나를 표준어로 할 것이 아니라, ' 다'와 '낫우다'를 '쫓다'와 '고치다'와는 다른 말로 처리하여 쓰는 것이 국어의 어휘를 풍부히 하는 길이라 하겠다.
#'가시개' '가실'…
사투리로 취급되는 아름다운 경상도말
1936년 표준어 사정 당시 서울말을 중심으로 한 까닭에 경상도의 많은 말들이 사투리로 처리되었다.
왕건의 고려 건국과 이성계의 조선 건국으로 정치의 중심이 경기도로 이동함에 따라 많은 경상도 말들이 사투리란 뒤안길로 밀려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옛말에는 낱말 속에 'ㄱ, ㅂ, ㅅ'을 유지한 말들이 많은데, 그러한 말들을 경상도 말에서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ㄱ'을 유지하고 있는 말
가시개(가위) / 몰개(모래) / 벌게, 벌거지 (벌레) / 맹글다(만들다) / 심거, 숭거(심어) / 씻거(씻어)
(2) 'ㅂ'을 유지하고 있는 말
가부리(가오리) / 다리비(다리미) / 버버리(벙어리) / 새비(새우) / 호박구덩(확) / 호불애비(홀아비) / 자불다(졸다) / 얘비다(야위다)
(3) 'ㅅ'을 유지하고 있는 말
가실(가을) / 거싱이(거위) / 구시(구유) / 마실(마을) /무시(무) / 부 (부엌) / 저실(겨울) / 지심(잡초, 김)
그 외에도 옛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말들이 많다.
'날씨가 춥다'의 '춥다'의 옛말은 '칩다'이고, '침을 흘리다'의 '침'의 옛말은 '춤'이다. 경상도의 연로층에서는 이들을 '칩다', '춤'으로 쓰고들 있다.
'정월 보름'의 '보롬', '버선'의 '보선', '뒤주'의 '두지(곡식을 담아두는 궤)' 등도 옛말에서 찾을 수 있는 경상도 말들이다. 경상도 말은 옛말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자랑스런 방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