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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30) 2023. 6. 28
암논의 빗나간 욕망
삼하 13:1-14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거룩한 책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범죄 이후로 우리는 거북스럽고 껄끄러운 내용을 계속 접하게 됩니다(13장~20장까지). 가족 간에 일어나는 성폭력과 그로 인한 복수의 살인극, 그리고 반역의 내용입니다. 성경이 다윗의 가족사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길게 그리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이것은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위대한 왕 다윗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업신여긴 결과가 얼마나 엄중한가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를 읽는 후대 사람들에게 경계로 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의 범죄로 인해 그의 집안에 재난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삼하12:10~11b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그러니까 13장부터 20장까지는 그 징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징계가 헛된 말(엄포)이 아니라 현실로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미 조성된 환경>
그런데 다윗의 집에 이러한 재앙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신17: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그런데 다윗은 이미 왕이 되기 전부터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삼하3:2~5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3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4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5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 헤브론에서 각각 다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만 6명입니다.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입니다.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입니다.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입니다(3:3). 당시 그술은 이스라엘 바로 북쪽에 있는 아람 소국이었는데 다윗은 이 이방 나라와의 화친을 위해 정략결혼을 하였습니다.
즉 다윗은 이미 자신의 가정 안에, 문제와 불행의 씨앗을 이미 심어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질서의 원리를 창세기에서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은 남자 한 사람, 여자 한 사람을 분명히 짝지어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아담이 하와랑 에덴동산에서 잘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하와가 없는 틈을 타 아담이 하나님께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 갈빗대가 아직도 이렇게 많이 있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을 테니 갈빗대 하나만 더 사용해주세요.” 무슨 이야기인가요? 아내를 하나 더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들으신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그래? 알았다! 그런데 알지? 한숨 자는 거?” 결국, 아담은 깊이 잠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아담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눈을 비비며 기대에 찬 눈으로 주변을 살폈습니다.
여러분도 기대가 되시지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담의 눈앞에 하와가 딱!! 뚱뚱해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갈비뼈 24개를 다 사용하더라도 부인은 아내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그럼 장로는 뭐라고 되어 있는지 볼까요?
딛1:6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모든 직분에 있어서 공통으로 해당하는 자격이 무엇입니까? 그가 감독이든, 장로든, 집사든, 공통된 자격은“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잘 지켜내는 사람, 내 육신의 정욕을 말씀으로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서약을 잘 지켜내는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암논의 욕정>
다윗의 첫째 아들인 암논은 이복동생 다말의 미모에 흠뻑 빠졌습니다.
1~2절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2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본문에 누구 이름이 가장 먼저 언급되나요? '압살롬'입니다. 그 뒤에 ‘다말’이 소개됩니다. 13장의 전체 이야기가 '암논-다말의 사건'이 아니라, '암논-압살롬 사이의 이야기'라는 큰 그림 속에서 진행되는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암논과 압살롬은 왕위 계승권에서 각각 서열 1위와 2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둘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압살롬이 더 왕으로서의 풍모(외모 출중)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암논 입장에서는 압살롬을 늘 경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동생 ‘다말’을 사랑했던 것입니다(언뜻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생각이 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음). 얼마나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치던지 ‘울화로 말미암아 병’(상사병)에 걸렸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공주들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암논이 다말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암논이 그를 사랑했다”(1)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랑이 아니고 욕정입니다. 그의 사랑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뒷절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말을 욕보이고 난 후, 암논은 도리어 그녀를 미워하였습니다(삼하 13: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미워하는 마음이 전에 사랑하던 마음보다 더하였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말을 자기 방에서 내쫓고 문빗장을 질렀습니다. 이는 암몬의 사랑이 결국 육체적 정욕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암논이 소위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신을 우월하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나르시시즘),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에 집중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다른 사람들의 일이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성을 유혹할 때까지만 관심을 보이고, 그런 다음에는 그 여성을 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욕정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사랑은 언제나 타인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타인의 인격과 몸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욕정은 참된 사랑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박해대의 <사랑과 욕정>이라는 시의 일부를 음미해 보자. 『사랑은 아끼는 마음에서 / 욕정은 정복하고픈 마음에서 / 사랑은 베풂에서/ 욕정은 요구사항으로 시작됩니다. // 사랑은 정원을 가꾸는 일이며 / 욕정은 어느 날 꺾어 꽃은 / 꽃병에 꽃이라 / 향기가 증발하고 맙니다 // …사랑은 칼국수만 먹어도 / 행복하지만 / 욕정은 고급레스토랑만 찾습니다. / 사랑은 떠나보낼 줄도 알지만 / 욕정은 곁에 두고도 늘 감시합니다. // 평생을 같이 살아도 / 욕정으로 사는 부부가 있고 / 하루를 살아도 사랑으로 사는 / 행복한 부부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암논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었습니다.
<잘못된 조언자>
암논이 상사병에 걸려, 끙끙대고 있을 때 친구가 찾아옵니다.
3~5절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5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그는 ‘요나답’이라고 하는 자였데,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입니다. 그의 성품은 심히 간교하였습니다. 그가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고 묻자, 암몬은 사실대로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요나답이 간사한 자답게 간교한 꾀를 냅니다(5). 아픈 척하다가 아버지가 병문안을 오면, 다말을 통해 떡을 만들어 먹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라는 것입니다(당시 공주의 출입은 철저히 아버지, 왕의 통제 속에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나답은 암논을 진짜 위하는 친구였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암논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왕이 될 사람이 그런 유혹에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장차 큰 해를 가져올 것입니다”하면서 암논의 마음을 바로잡아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죄를 짓도록 부추깁니다. 그의 관심은 옳고 바른 일을 도모하는 데 있지 않고, 어떻게든 암논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심히 간교한 자). 아마도 그가 암논 곁을 맴돌았던 이유는 암논이 왕위 계승의 서열 제1위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암논을 가까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요나답은 진정한 친구로서 조언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 암논의 상사병을 이용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좋은 기회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우리를 진정으로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좋은 친구를 만난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암논의 반응>
그러면 요나답의 꾀를 들은 암논은 어떻게 반응합니다.
6~7절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7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요나답의 꾀가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가는 사탄의 전략이라는 것을 꿰뚫어 볼 것입니다. 더군다나 아버지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선을 넘은 것입니다. 당연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느냐, 그건 안 될 말”이라고 거절했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이미 욕정에 눈이 먼 암논은 제대로 판단할 능력까지 상실하였습니다.
암논은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 다윗 왕에게 요나답의 계략대로 말합니다.
누이 다말이 와서 과자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데, 여러분!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암논만 욕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좋은 뜻에서든, 나쁜 뜻에서든’ 누군가의 한 마디에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합니다. 누군가의 한마디 말이 큰 힘을 발휘합니다. 옳은 일에 용기를 북돋을 수도 있고, 나쁜 일에 만용을 부리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좋은 친구(조언자)를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 3장의 에덴동산 이야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이유는 뱀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결국,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었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아담 역시 하와의 말을 듣고 함께 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누군가의 한 마디 말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를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교회 공동체, 신앙 공동체의 중요성 – 믿음의 친구를 만나라).
그리고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조언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아버지 다윗의 판단도 아쉽습니다. 상식을 가진 아버지라면, 그의 요구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의 요구가 병을 낫게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암논의 성격도 이미 파악했을 것입니다. 노련한 아버지라면 그의 의도를 눈치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자 암논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다윗은 다말에게 암논을 찾아가서 과자를 구워줄 것을 명령합니다.
결과적으로 오늘 암논의 범죄는 이렇게 다윗의 도움으로, 다윗의 인가로, 다윗의 결재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 일어나는 가정의 비극이 다윗의 범죄의 재앙으로 인한 것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암논의 범죄>
아버지의 명을 받은 다말은 암논의 간병을 위해 기꺼이 순종합니다.
8~14절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9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11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12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13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14 암논이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암논은 다말이 만든 과자를 일부러 먹지 않습니다. 더 아픈 척을 합니다. 암논은 주위 사람들을 물러가도록 합니다. 그리고 다말에게 과자를 가지고 자신의 침실로 들어와서 그녀의 손으로 먹여달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물러가자 다말은 암논의 침실로 들어갑니다. 악인의 계획은 거침없이 진행됩니다. 다말이 손을 내밀어 먹여 주려고 했을 때 암논은 다말을 붙잡은 채로 자신과 “동침하자”고 합니다. 다말은 암논의 말을 다 따랐지만, 자기와 동침하자는 말에는 완강히 거부합니다. 다말은 암논에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개적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것은 곧 왕위 계승자의 자리도 위태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럼데도 암논은 힘으로 다말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다윗의 집에 첫 번째 재앙의 씨가 뿌려졌습니다. 가족 간에 되돌이킬 수 없는 원수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맺는 말씀 - 중요한 교훈>
사랑하는 성도 성도님!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 먼저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호된 질책 앞에서 회개했지만, 그의 악행은 이미 그의 자녀들에게 노출이 된 후였습니다. 이미 태어나 어느 정도 자라있었던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 다윗의 행위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암논의 성적 부도덕함은 어느 정도 아버지의 행동의 영향을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 오늘 내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그것 때문에 병이 나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단순히 우리의 탐욕(정욕)을 채우는 일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가족 간에 관계를 허무는 일은 아닌지, 이웃과의 관계를 허무는 일은 아닌지,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허무는 일은 아닌지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전10:31~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셋째, 오늘 우리는 먼저 좋은 상담자(친구)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나답과 같은 ‘심히 간교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잊지 마시고, 더욱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같이 하고, 하나님 공급하시는 힘으로 일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 주변에 좋은 상담자(친구)를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귀는 오늘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욕망을 충돌질하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마귀는 대적해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가장 좋은 상담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늘 영적으로 늘 깨어있어, 욕망에 넘어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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