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가슴으로 듣느냐 머리로 듣느냐는 생각보다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다. 사실 그 문제에 대한 나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어쨌든 작곡가가 수십년에 걸쳐 완성한 곡을 수십년간 기량을 닦은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것을 단지 몇분 혹은 몇시간 동안에 충분히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고전음악이란 가슴이나 머리 뿐 아니라 눈, 코, 입, 귀, 손, 발, 심지어는 신체의 모든 기능과 감각을 다 동원해야 겨우 감상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음악감상에서 음악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가에 대한 문제는 보다 실제적이고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종종 음악감상의 태도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며 때로는 그로 인해 당혹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두가지 주장이란 대충 이런 내용일 것이다.
A: "음악이론도 제대로 모르면서 고전음악을 듣는다고 하는 것은 완전 넌센스다."
B: "음악이란 그냥 듣고 감동하면 되지 이런저런 이론적 지식이 무슨 소용인가."
나의 솔직한 생각이란 위의 두 주장에 대해 어중간한 입장이다. 하지만 그렇게 얘기하면 주관없는 글이 될테니 이글을 통하여서만큼은 B번을 확실히 밀어주기로 작정했다.
1. 음악 감상에는 순서가 있는가?
A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엔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음악을 알려면 고전과 낭만을 알아야 한다. 고전과 낭만을 알려면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들어봐야 한다. 그속에는 고전과 낭만을 거쳐 현대음악에 이르게 되는 어떤 내재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일면 타당한 얘기일 지도 모르겠다. 수학도 덧셈 뺄셈을 모르고 미적분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일테니까. 철학도 스콜라 철학과 헤겔을 모르고 마르크스와 현대철학을 안다고 하면 안된다고들 하니까. 과학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를 거쳐 뉴톤에 이르지 않았는가. 모든 것에는 역사가 있고 순서가 있다는 관점일 것이다.
이말은 음악의 역사는 발전되고 있다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음악이란 발전되었다기보다는 변화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음악이 발전되고 있다면 베토벤보다 바그너나 브람스가 더 위대해야 할 것이며 바그너나 브람스보다도 현대음악이 더 높은 음악성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은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과학의 역사란 진리를 향해 발전해 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거기엔 취향이란 있을 수 없다. 갈릴레오 취향이니 뉴톤취향이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음악은 그렇지 않다. 음악은 진리를 향해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란 과학이나 철학처럼 지속적인 발전을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개개의 작품들이 서로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며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완결체라고 말하고 싶다.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이란 그 자체가 바로 전체이며 하나의 완성품이다. 물론 그 작품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작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비교의 대상일 뿐 서로 다른 완성품인 것이다.
音樂史의 흐름을 따라가며 체계적인 음악감상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음악이란 어느 시대 어느 작품부터 시작해도 상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일테니까. 고전을 좋아하건 현대를 좋아하건, 혹은 기악을 좋아하건 성악을 좋아하건 그건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취향일 뿐 일정한 순서가 있다고 보고 싶지 않다.
사람들의 취향이란 굉장히 다양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취향속에 같 혀살다보면 가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동호회 를 찾게 되고 서로의 취향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교환하게 되는 것이 다. 바로 이러한 점이 사람들로 하여금 동호회를 찾게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2. 그러면 어쨌든 고전음악을 이해하는데 음악이론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인가?
내가 중학교 때 우리반에 집에서 중국집을 경영하는 애가 하나 있었다. 그 나이 때에는 다 그러듯, 그는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맛있는 짜장면을 매일 공짜로 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그는 매일같이 짜장면 냄새속에 사는 것이 질린 상태로 짜장면이라면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짜장면 요리법에 대해서라면 그는 반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만약 남태평양의 어느 외딴 섬의 중국음식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원주민에게 짜장면을 맛보게 하면 어떨까? 그는 아마도 짜장면 전문가들조차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향과 맛을 얘기할 지 모른다.
나는 가끔 집에서 직접 짜장면을 만들어보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중국집 짜장면같은 맛을 낼 수가 없었다. 또한 짜장면을 이해하는데 그러한 경험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오랜 경험과 앞선 장비를 사용할 것이다.
음악도 비슷하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음악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고전음악을 듣게 된 동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어느날 우연히 들은 어떤 곡에서 큰 감동을 받아서라고들 말한다. 또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들어봐도 그 때 그 감동은 다시 느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말은 음악적 지식이 늘어날수록 감동은 오히려 줄어들기도 한다는 예일수도 있다.
아무리 음악이론을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일지라도 "b단조미사"나 "합창교향곡"을 작곡한 저 위대한 대가들의 음악성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단계일 것이다. 어쩌면 저들 대가들과 비교해 볼 때 그들조차도 음악이론을 전혀 모르는 거나 다름없는 사람에 불과할 지 모르겠다.
음악에 대한 이론적 지식없이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얘기는 어쩌면 건축도면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집에서 살아선 안된다는 논리와도 같을 것이다. 사실 건축도면이란 것도 오랜 동안의 실무경험이 있는 사람들조차 가끔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그것을 이해하기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집에서 잘 살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때로는 고장난 세면기나 전기설비를 도면을 보지도 않고 직접 고치기도 하지 않는가?
음악이론이나 악곡에 대한 해설은 사실 서적이나 음반 해설지를 보면 아주 잘 나와있다. 그러나 각각의 음악에 대한 개개인의 독특한 감동이나 느낌 같은 것들은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동호회를 찾게되고 서로가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게 되는 것이 다. 바로 이러한 점이 사람들로 하여금 동호회를 찾게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3. 같은 곡에 대해서 연주자별로 여러종의 음반을 사모으는 것은 음악감 상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며 나쁜 습관인가?
물론 아주 나쁜 습관이다. 돈과 시간을 너무 낭비하게 되니까. 그러나 음악감상의 올바르지 못한 자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배가 고프니 다시 짜장면 얘기를 좀 해보자. 중국집마다 짜장면의 맛은 다르다. 그리고 개인적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짜장면 맛도 각각 다를 것이다. 어떤 집에선 수타식으로 면발을 뽑은 옛날 짜장을 내놓을 것이고 어떤 집에선 기계로 뽑은 요즘 짜장을 내놓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면발이 졸깃거리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고 어떤 사람은 짜장의 향에 중점을 둘 것이다.
결국 사람은 자기 입맛과 취향에 맛는 짜장면을 먹고 싶어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이집저집 돌아다니게 되기도 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만약 어느 중국집에 갔는데 전혀 맛이 영 아니라면 다시는 그집에 가기 싫어지고 다른 집을 찾게 될 것이며 사람들에게 맛있는 중국집을 소개받고 싶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악을 듣다보면 자기 취향에 맞는 연주를 듣고 싶어지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연주를 다 들어볼 수는 없을테니까 당연히 이런 동호회같은 곳을 찾아서 서로에게 이런 저런 물음을 던지고 또한 자기가 아는 것들을 추천해주곤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사람들로 하여금 동호회를 찾게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