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사이의 소문은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인간 사이의 소문은 고양이들에게 전해질까?
땅꼬가 독립했던 아파트 중정에서 목줄을 차고 산책하는 삼색이 고양이와 한 인간의 이야기. 그 소문이 땅꼬 엄마의 귀에 닿았다면 먼발치에서 우리의 동행을 지켜보지는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통속적 일일드라마가 불어 넣은 모성에 대한 환상, 그 뿐이겠지.
땅꼬 엄마는 사느라 바쁠 것이다. 생존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잃고, 독립시키느라... 간혹 운 좋게 배를 채운 날, 볕 좋은 양지에서 식빵을 구우면서 졸음에 빠져들 땐 지난 새끼들의 어여쁨을 회상하기도 할까? 연고 없는 삶....역사가 되지 않는 삶. 현재를 살아내는 삶. 자연의 부름에 충실한 삶. 가혹한 조건에서의 처절한 생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지 않는 순정한 사랑의 샘, 그 자체인 고양이라는 존재는 신비다. 자연의 두 얼굴. 고양이 엄마의 단호한 이별... 그 이별로 인해 내게 온 땅꼬. 인연이란 묘하다. 즉각적이지도 인과적이지도 않다. 미지의 경로를 따라 번져간다.
땅꼬와 함께 한 후, 2년째 쯤 되던 겨울, 산책 나간 땅꼬가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땅꼬야~~ 부르며 깊은 밤, 동네를 돌고 돌았다. 땅꼬의 최애 장난감인 레이저 포인터를 비춰가면서 주차된 차 밑을 기웃거리던 순간, 고양이 한 마리가 레이저 불빛을 쫓아 차 본넷 위로 뛰어 올랐다. 눈이 마주친 순간 당황하여 차 밑으로 숨어 버린 삼색이는 분명 땅꼬였다. “땅꼬야, 나야 나. 이리와.~~~” 차 밑에 웅크린 아이는 땅꼬와 똑 같이 생겼지만, 오래 지켜보니 조금 더 작고 겁에 질리고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파보였다. 순간 가슴이 쓰릿해 왔다.
최근 아파트 주차장에 길냥이들 개체수가 빠르게 늘어났다가 또 줄어들고 있었다. 보이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기를 반복하는 중에 스쳤던 한 아이. 어딘가 마음을 끄는 아이였는데 오래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병이 들어 아파트 바닥 빈틈 사이에 웅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땅꼬는 다음날 돌아왔지만 그 아이는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추위에 아픈 몸을 떨고 있을 그 아이. 시간이 없다 허둥대며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어쩌면 땅꼬 엄마는 땅꼬에게 그랫듯, 생존한 새끼들을 독립시킬 포인트로 이곳을 선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슬픈 눈빛의 아이는 독립한 땅꼬의 동생일지도 모른다. 땅꼬와 달리 그 아이는 운이 좋질 못했다. 차 밑 어둠 속에서 나를 응시하던 눈동자. 오래오래 가슴이 쓰렸다. 혹시라도 독립한 새끼들의 안부를 확인차 방문하여 새끼의 냄새를 탐문하기라도 한다면 ... 땅꼬 엄마는 가슴 아플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를 조금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나는 그녀에게 보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 세와 고양이 세 사이 미세한 소문의 경로가 닿는다면... 그녀는 기뻤을 것이다. 부질없는 의인화의 착각에 불과한 꿈일지라도... 세계는 그렇게 미세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라고, 마음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길 없는 길을 다니는 고양이처럼, 길 없는 길을 통해 오가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