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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요를 찾아서 31]
산바람 강바람 1936년
작사·윤석중 / 작곡·박태현
산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데요
산 숲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산등성 길을 따라 산을 오를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 간대요
강물 위에 부는 바람 신나는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강물에 배를 띄워 흘러가라고
물결을 살랑살랑 일렁인대요
[들어가는 글]
때 아니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시원한 바람을 찾아 산이나 강으로 나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고픈 요즘이다.
농촌에서는 밭일을 하며 땀을 흘릴 때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바람에 기운을 얻어 힘을 내면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바로 ‘산바람 강바람’이라는 어릴 때 배워 많이도 불렀던 노래이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어릴 때 배웠던 노래를 지금도 어렵지 않게 흥얼거리는 것을 보면 어떤 연유로 나에게 깊이 각인된 듯하다.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살아보지도 못했을 산촌 나무꾼의 노고에 공감하고, 그를 보듬어 주는 바람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노래이기에 더욱 그러한 듯 하다.
어린이들이 이 동요를 부를 때 하늘도 감동해서 바람 한 점 불어줄 것 같은 유쾌한 상상도 하면서 말이다.
이 곡은 윤석중이 시를 먼저 쓰고 나중에 박태현이 곡을 붙여 1936년에 발표한 곡이다.
이 동요는 4분의 3박자 16마디로 되어 있으며, 원래 가사는 4절로 되어 있는데 1연과 3연의 2절 가사로 부르고 있다.
곡이 서정적이고 유연성 있는 흐름이 돋보인다.
1948년 이후로 초등학교 고학년의 음악교육과정에 채택되면서 어린이들에게 많이 불려졌다.
이 동요의 가사에서 나타나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경험적으로 낯설어도, 농촌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한 자연 속에서 동병상련을 느끼는 공동체로 엮어주는 자각도 가져본다.
어쩌면 이 동요가 발표된 해가 1936년이었으니 이 동요 속 ‘나무꾼’은 가족을 위해 땔감을 구하려 애쓰는 방방곡곡의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했을 것이다.
도시 나온 자녀들이 고향에서 자녀 학비, 생활비 만드느라 애쓰는 아빠를 그리는 마음이 담겼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무꾼’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 정겨운 가사가 만들어졌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농촌과 도시는 연결돼 있었다.
또한 가사 중 바람이 ‘나무꾼의 흐른 땀을 씻어 주고, 사공이 잠이 들어 노를 저어 간다’는 표현은 정말 아름다운 표현으로 시를 낭송하는 느낌을 준다.
작사·윤석중 (尹石重, 1911~2003)
윤석중은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24년 동요 ‘봄’이 <신소년>에, 동요 ‘오뚜기’가 <어린이>지에 입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30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어린이> 주간, 1934년 <소년중앙> 주간, 1936년 <소년> 주간을 역임했다.
1944년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를 마치고 <조선일보> 편집고문, <소년조선일보> 고문, 서울시 문화위원, 한국문인협회 아동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중앙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1953년 ‘새싹회’를 창립해 회장에 취임하는 한편, 1960년 3·1문화상 예술부문 본상과 문화훈장을 포상한 바 있다.
윤석중은 전통적 정형률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 및 반복과 대구를 사용해 율동적 표현을 구사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동시와 동요를 써서 한국아동문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한국 최초의 창작 동요집인 <윤석중 동요집, 1932>에서부터 <아기꿈, 1987>, <윤석중 전집, 1988>에 이르기까지 천 편도 넘는 동요와 동시, 동화를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 ‘산바람 강바람’, ‘기찻길 옆 오막살이’, ‘어린이날 노래’ 등이 있다.
작곡·박태현 (朴泰鉉, 1907~1993)
박태현은 평양 설암리에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선대로부터 예능분야에 뛰어난 가정환경과 교육열이 높은 부모로 인하여 일제강점기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신학문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며 평양에서 숭덕학교와 숭실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당시 조선을 대표하던 중학교팀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평양숭실전문학교에 재학 중에는 예술 전반에 탁월한 재주를 보였는데, 스승 박윤근과 외국인선교사에 의해 음악활동에 심취하기도 하였으며 1932년에 미술전람회에 입선되기도 했다.
숭실학교와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1936년에는 안익태의 영향을 받아 일본동양음악학교(첼로 전공)를 졸업했다.
졸업 후 귀국하여 형의 죽음을 접한 후부터는 민족정신에 관심을 가져 애국가요, 국민가요, 어린이를 위한 동요 작곡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후진 양성을 위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음악교사로, 덕성여대, 숙명여대, 한양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서울중앙방송국의 음악계장 및 편성과장, 문교부예술위원, ‘정의의 소리’ 방송국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평양에서 서울로 거주지를 옮겨 교회찬양대와 혼성합창단(백조합창단)을 조직하여 지휘를 맡았다.
1966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향악단 ‘여성트리닝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전국순회연주를 가졌으며 1988년에는 교향악단의 명칭을 ‘서울아카데미앙상블’로 바꾸고 상임지휘자가 되어 60여 회의 정기공연을 가졌다.
1950년 한국전쟁 기간에는 ‘전시동요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45년 이후로 그가 남긴 작품은 <3·1절 노래>, <태극기>, <산바람 강바람> 등 200여 곡에 이른다.
1989년 KBS동요대상과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음악대상 등을 비롯한 많은 포상을 받았으며 2001년 대한민국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박태현 동요작곡집> 제1집, <어린이 노래책> 제2집, <박태현 동요100곡집> 제1집 및 제2집과 가곡집으로 <녹이>(錄耳, 고시조 시가편)가 있다.
1937년 자신의 첫 번째 동요작곡집을 펴냈으며 그 가운데 수록되어 있는 ‘산바람 강바람’(윤석중 작사), ‘누가 누가 잠자나’(목일신 작사), ‘물새발자국’(김영일 작사) 등 수많은 애창 동요곡을 남겼다.
박태현 가곡집 <녹이(綠耳)>에 19곡의 가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삼일절노래’, ‘한글날노래’, 애국가요’, 국민가요 등을 작곡하였으며 연주활동 및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노년에는 그림그리기와 수원중앙교회에서 찬양대 지휘자로서 열정을 보이기도 하였다.
박태현은 1980년대 초 성남에 정착한 뒤 타계할 때까지 맑고 청렴한 인품으로 많은 문화예술인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생애 말년엔 독립운동가 故 이용상(전 성남문화원장) 선생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애향곡 ‘나 성남에 살리라'’ 마지막 유작으로 남겨 성남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음악적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KBS 동요대상 등을 받았으며 2001년에는 성남예총의 추천으로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선생이 타계한 뒤 10여년 동안 선생을 추억하며 기려오던 성남지역 음악인과 지인들은 2003년 3월 <박태현 기념사업회>를 발족, 성남시와 성남예총의 도움을 받아 추모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2007년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선생이 만든 동요, 가곡, 성가곡, 고시조 등 132곡 악보를 한데 묶어 <박태현 노래집>을 냈고 이어 박태현의 대표곡들이 담긴 <박태현 동요집 CD>를 만들어 일반에 무료로 배포했다.
타계 후 15년 동안 추모비 하나 없다가 2008년 8월 성남 율동공원 내 조각공원에 '작곡가 박태현 노래비'와 함께 선생이 어린이와 함께 배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의 조각 상징물이 세워졌다.
성남예총은 고인의 음악정신과 애향심을 기려 1998년 박태현 음악상을 제정하고 음악제와 창작동요제를 열어 왔다.
성남 율동공원 내 조각공원에 '작곡가 박태현 노래비'
https://youtu.be/zsHeGuV-7SQ
리뷰 1
“산바람 강바람”, 내 인생의 노래들
지난 여름 내가 가장 많이 연주하며 노래한 곡은 <산바람 강바람>이다. 이 노래는 내가 6살 때 옆집 친구에게 배운 첫 동요이다. 그 어린 시절 배웠던 동요가 내 노래 인생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많은 노래를 불러왔다. 이제 동요와 노래 인생 60년을 맞이했으니,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노래들, “내 인생의 노래들”을 하나씩 헤아려보고 싶다. 그 첫 번 째 노래는 바로 <산바람 강바람>이다. 이 곡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나온 동요인데, 먼저 노랫말을 감상해보자.
산바람 강바람
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대요.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도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간대요.
다시금 감상을 해보아도 노랫말과 곡조가 한데 어우러져 참 아름다운 노래이다. 60년 동안 나는 이 노래를 수백 번도 넘게 불렀으리라.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내가 특별히 음미하는 대목이 하나 있다. 한 글자로 된 조사인데, 2절 가사에 나오는 “그 바람도”의 “도”이다. 이 노래의 1절과 2절의 가사를 대조하면서 감상해보면,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은 좋은데 강가에서 부는 바람, 그 바람“도” 좋다는 것이다.
이 “도”로 말미암아 산바람도 좋고 강바람도 좋으니, 바람은 모두 다 좋다는 것을 인상적으로 느끼게 해주지 않는가. 이렇게 노랫말 한 글자가 노래 전체를 절묘하게 살려주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무엇보다도 산바람과 강바람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화자는 서늘한 산바람과 시원한 강바람을 좋아하고 즐기면서, 그 바람에 고마워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불어오는 한 줄기의 바람결에 고마워하는 마음이라니, 이런 노랫말의 화자가 과연 어린 아이일까? 대체로 사람은 나이가 들어야만 비로소 자연이 눈에 들어오고, 자연을 즐기게 되는 법이다.
"산바람 강바람"은 나에게 처음으로 자연을 좋아하고 즐기며, 자연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심어준 노래이다.
산바람은 여름에 나무꾼의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주기도 하고, 강바람은 사공이 잠이 들면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간단다. 한 편의 서정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한 줄기의 바람이 우리의 삶에 베풀어주는 고마움과 행복을 이렇게 소박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다니...
어린 시절부터 불러온 이 노래가 과연 나에게는, 내 삶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이 동요의 주제는 “바람에 대한 찬미와 고마움”이요, 넓게 보면 “자연에 대한 찬미와 고마움”이다. 그러면 바람 한 줄기에도 감사하는 사람, 나아가 자연에게 감사하는 사람, 이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자연스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삶에 감사하는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토록 많은 것을 내게 준 삶에 감사하다”고 하면서, "삶에 대한 감사 Gracias a la Vida"를 노래한 비올레타 파라가 생각난다. "산바람 강바람"은 내 삶에 감사의 마음을 심어준 첫 번째 노래이다.
한 편의 노래가 삶에 대한 감사를 가르쳐주고, 그와 더불어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인도해주었다면, 그 노래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이 노래를 만드신 윤석중, 박태현 두 분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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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첫댓글 박윤: 🫠추억에 빠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