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가해자, 내 안의 폭력성과 마주하기
아들을 만났던 30년전의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돌아본다.
순수한 영혼으로 우리에게 왔던 그 시간을 기억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함께했던 6년간의 시간도 돌아본다.
파편 상태의 아버지와 만났던 순간순간 아들의 마음속에 상처로 아픔으로 분노로 좌절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음을 안다.
지난해 10월 사과 수확전에 누나의 집으로 옮겨간 지 9개월째이다. 편안히 지내길 기도한다. 더 이상 불면의 밤으로 음주 흡연의 밤으로
고통속에서 몸부림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는 기다린다.
지난 시기의 아픔과 고통을 딛고 나선 첫번째 걸음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과 탐구의 길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들은 자기 자신과 치열히 만날 것이다. 더 이상 외부의 영향과 조건에 분노 불안으로 발산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기자신과 만나기를 기
도한다. 나도 나의 파편을 관찰하여 내 안의 나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속에서 현우에게 화살기도를 보낸다.
내안의 파편들로 이루어진 일상에서 계속적인 시도를 한다.
빨래를 시도한다. 설거지 하는 것을 시도한다. 이제 빨래 개는 것을 시도한다. 그리고 작은 변화를 일상속에서 정착시킨다.
무브먼트 워크샵의 수행은 한달에 한번은 정착되었다.
매일 하는 30분 무브먼트 명상을 정착하는 과정이다. 한달에 한번 열리는 무브먼트 워크샵은 간절히 기다려진다. 매일 하는 30분 무브먼
트 명상도 기다려진다. 이제 일상속에 자리잡기가 과제이다.
변화는 작은 습관을 바꾸고 일상에 변화를 정착하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쌓이다 보면 큰 깨달음이 다가온다. 그리고 일상속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 작은 변화는 전체의 모자이크에서 변동을 준다. 내적인 프로그램에 균열을 준다. 큰 변화는 결과이지만 작은 일상의 변화는 씨앗에 물
을 주고 햇볕을 비추고 공기를 불어넣는 것과 같다. 현우의 작은 변화의 시도와 성공을 기도한다. 부산으로 간 것은 큰 시도이다.
이 걸음의 결과가 명상과 내적 탐구라는 첫걸음과 만나기를 기도한다.
내 안의 폭력성은 자녀와의 관계성 그리고 사람들, 세상과의 관계썽 안에서 더 정확히 관찰되고 변화해 갈 것이다.
횃불을 지켜봄의 힘으로 의식의 등불로 마주하기를 기도한다.
폭력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횃불을 잘 조절해서 의식의 등불안에 은은히 빛날 수 있게 부단히 포함해 간다.
자녀의 고통을 통해 나를 본다. 나의 고통을 통해 나의 아버지를 본다. 고통이 나로 하여금 탐구자의 길 위에 올라서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나에게 고통은, 내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된 나의 고통은 수행의 발판이 되고, 나아감의 원동력이 되었다. 언젠가 나의 아들에
게도 나로부터 물려받은 고통이 그로 하여금 자기탐구의 길 위에 올라서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삶의 길, 구르지예프 무브먼트 수행은 삶의 길 위에서 떼어놓는 춤추는 자의 한 걸음 한 걸음이다.
나를 때리기도 하고 울부짖게 만들기도 했던 모든 삶의 질문들,
이제 그만 잠에서 깨어나라며 거세게 머리통 위로 쏟아지는 스승들의 죽비,
온갖 관계들 속에서 샘물처럼 끝없이 솟아오르는, 변화무쌍한 삶의 질문들.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나의 삶, 매순간이 눈 감은 채 그려보는 망상이 아니라 손끝으로 만질 수 있는 실재성을 얻게 되기를.
오직 그때, 나는 존재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