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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의미. 출 15 : 22 - 27
'여동생이 자신의 머리를 잡아당겼다'며 여섯 살짜리 소년이 엄마에게 울면서 찾아왔다. "화내지 말아라, 네 동생은 머리를 잡아당기면 아프다는 걸 모르잖니", 어머니가 말했다. 잠시 후에 더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려서 어머니가 무슨 일인가 가봤다. 이번에는 여동생이 엉엉 울고 있었다. 소년이 말했다. "이제 동생도 알 거에요. 내가 알려줬어요." 오빠가 동생에게 고통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은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려 고통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고 싶다. 라고 차마 말하기 뭐해서 천국에 가고 싶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뜻은 그게 그것이지요. 그런데 이 말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인생을 살다보면 다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고통은 원인이 다르고 그 고통의 의미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한 고통의 사건이 나옵니다. 그 고통의 제목은 마라 즉 쓴 맛입니다. 인생에는 쓴 맛이 찾아옵니다. 인생은 기쁨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쓴 맛을 보는 고통이 함께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인생은 춤추고 노래하는 시기와 쓴 맛을 보는 고통이 함께 있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15장을 시작하면서 홍해를 갈라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세의 노래와 미리암의 노래가 나옵니다. 백성들은 승리의 노래를 즐겁게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흘이 가지 못하고 바로 쓴 맛을 보는 고통의 현장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배경에는 하나님께서 바다를 갈라서 육지로 만들어 홍해를 건너게 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사흘 길을 간 후에 마라에 도착했는데 물에 쓴 맛이 나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 이런 쓴 맛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수 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인생의 쓴 맛을 주시는 이유가 있었구나.. 아! 이 고통 속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어 있었구나... 이것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능히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하여 더 성숙하게 되며 그 고통이 더 축복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디딤돌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본문을 통하여 인생을 쓴 맛을 보고 고통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고통은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출]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Then Moses cried out to the LORD, and the LORD showed him a piece of wood. He threw it into the water, and the water became sweet. There the LORD made a decree and a law for them, and there he tested them.
하나님께서는 인생에 쓴 맛을 주셔서 우리를 가끔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며 성경을 조금 아는 분은 야고보서 1장에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왜 이랬다 저랬다 하십니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이라는 단어가 우리말로는 같은 시험이지만 성경에서는 이 두 시험이 다른 단어입니다. 야고보서에 나오는 시험은 영어로 temptation 즉 유혹.. 파괴적 시험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끔 시험하신다는 시험은 test 즉 학생이 시험보다. 시험치다의 시험입니다.. 본문에서 그들을 시험하실 새 했는데 영어 성경은 there he tested them.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시험하셨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교사와 도둑, 변호사가 한꺼번에 같은 돌발 사고에서 숨졌다. 그들이 천국의 문에 다다랐을 때 베드로가 나타나 말하길, 불행히도 천국이 꽉차서 퀴즈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베드로가 먼저 교사에게 물었다. “빙하에 부딪혀 침몰한 유명한 배 이름이 뭐죠?” “휴 살았다. 타이타닉이죠” 교사가 대답하고 천국의 문을 통과했다.
다음은 도둑 차례. 베드로가 묻기를 “타이타닉 침몰 사고에서 몇 명이 숨졌죠?” 도둑은 “좀 까다롭긴 하지만 다행히 영화에서 봤죠. 정답은 1,500명입니다” 말하고 천국의 문을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베드로가 변호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들 이름을 전부 말해 봐요.”
미국에서 변호사가 도둑보다 더 나쁘다는 풍자적인 유머입니다. 그런데 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하면 시험은 어렵지만 통과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통과하시길 원하십니다. 시험은 통과하면 더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시험을 주셨는가를 한 번 묵상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난리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인생의 쓴 맛을 딱 주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기뻐하고 찬양했듯이 인생의 쓴 맛을 보는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찬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을 때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기적이 없고, 은혜가 없고, 인생의 쓴 맛을 볼 때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 가운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고 믿음이 어릴 때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도 하나님의 기적이 없어도 인생의 쓴맛을 보는 고통이 찾아와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원망하고 부르짖고 난리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아직 얘들이 어리구나! 그래서 나무 조각을 주셔서 물을 달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생의 어떠한 쓴 맛을 경험한다고 해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변치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원망하지 말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천에 방주교회 박보영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2대째 목사님 가정에서 태어나서 교회가 싸우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끼고 불신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의사가 되어 세상적으로 살다가 아내와 이혼하고 불치의 병을 얻었다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납니다. 그가 예수님 만나고 목사가 되어서 20여년을 가난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한 가족으로 섬기는 공동체를 하며 주님의 가셨던 길을 가셨습니다. 한 번은 한 가난한 여학생을 가족으로 함께 공동체에서 생활했는데 그 애가 고등학교 때 군에 갔다 온 오빠와 관계를 하고 성병이 걸렸답니다. 그런데 학교에 양호선생님한테 목사님이 그랬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학교에 불려가서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그 아이를 수발했고, 그 아이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않고 그 아이와 함께 계속 살았답니다. 그 아이가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학교에서 사실을 말하자 학교에서 교사들이 이 목사님을 처음에는 짐승으로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정말 성자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다 지켜보았다.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너는 시험에 합격이다 이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교회에 가서 목사님에게 며칠 있으면 죽을 것이니 준비하라고 일러 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너무 건강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이라 전했더니 오히려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목사님이 감기로 병원에 입원하셔서 정말 소천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정말 신령한 목사님이라고 목사님을 청빙하셔서 지금 방주교회에서 사역하신답니다. 지금은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기도원에서 사역하시고, 청소년 공동체도 계속하신답니다. 성공적인 목회를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쓴 맛을 주셔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결국 이 시험을 통과하면 하나님은 더 큰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새소망 교회 성도님들은 인생의 쓴 맛... 인생의 고통을 당할 때에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찬양하며 이 시험 잘 통과하여 축복받는 성도님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고통은 축복으로 인도한다..
[출]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출] 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인생의 쓴 맛 즉 고통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적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통은 오히려 우리 인생을 축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인생의 쓴 맛을 보고 있을 때 모세는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무토막 한 개를 보여 주셨고,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져서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들 앞에 쓴 물이 있었기에 주님이 주시는 단 물을 경험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단 물이라고 했는데 그 물이 달아서 단 물이 아니라 쓴 물을 맛보다가 그냥 보통 물을 맛보면 그것이 곧 단 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쓴 맛을 보아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계속 단 물만 먹고 왔다면 하나님이 주신 단 물의 소중함을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쓴 맛을 본 자들이 하나님 주신 단 물이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고통을 겪고 난 후에야 고통 없는 일상이 얼마나 큰 행복이며 이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인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쓴 맛이 찾아 왔을 때 모세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쓴 물이 단 물로 변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 보면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쓴 물을 맛본 곳에서 불과 11Km 앞에 물 샘이 열둘이나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면 믿는 자에게 고통 즉 쓴 맛은 영원히 쓴 맛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며 조금만 가면 풍성한 오아시스가 기다린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의 쓴 맛이 오면 조금 후에 있을 오아시스 즉 엘림을 보지 못하고 원망하고 좌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새소망교회 성도들은 결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고통과 쓴 맛이 찾아온다고 해도 곧이어 찾아올 엘림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고통의 끝은 또 다른 축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그래서 고통은 또 다른 축복으로 인도한다는 소망을 붙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에 분 얼굴을 한 번 보세요! 인생의 쓴 맛으로 인상 쓰고 있습니까? 이렇게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엘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고통은 축복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할렐루야!!
3. 고통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출]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나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에서인가 하면 인생의 고통의 현장, 즉 인생의 쓴 맛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당신을 어떤 하나님으로 계시하시는가 하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계시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순종하고 의롭게 행동하며 내 계명과 규례를 지키면 나는 애굽인들에게 주었던 질병을 너희들에게 결코 주지 않을 것이다..나는 치료하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다라고 계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고통의 현장에서 당신이 치료의 하나님 되심을 계시하시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 보았지 나는 쓴 물을 단 물로 바꿀 수 있는 치료의 하나님이다. 하고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고통의 현장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축복의 현장인 것입니다.
인생의 고통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욥을 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욥기에도 마지막에 욥이 고통을 잘 참아서 갑절로 축복 받았다고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욥기의 가장 하이라이트.. 내가 이제까지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는데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인생의 가장 극심한 고통을 통과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인생의 쓴 맛, 인생의 고통은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계시의 순간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고통 가운데서 당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아주 소중한 축복의 시간이인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고치기 위하여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나무막대기를 던집니다. 이것을 본 알프 핑크라는 성경주석가는 이 나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 나무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고,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시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고통을 치유하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인생의 고통의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통당하고 있을 때 우리를 위해 친히 나무에 달려 고통당하신 그 예수님, 그 예수님이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 찾아 와 주시고, 나도 이세상이 있을 때 너와 같은 그런 고통을 나도 당했단다. 내가 너의 고통을 이해한다, 내가 너의 고통과 질고를 위해 고난당했으며 채찍에 맞았단다.. 힘을 내!! 내가 모든 것을 이겼던 것처럼 너도 이길 수 있어!!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치유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이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위대한 축복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춤을 추며 좋아할 때도 있지만 인생의 쓴 맛을 보며 고통 하는 시기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고통 가운데서도 그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앎으로 해서 그 고통을 능히 이기는 자들입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우리가 고통의 시기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가고 있는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그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큰 축복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축복이 있으며, 그 고통의 앞에는 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이세상의 무엇보다도 더 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고통이 다가온다 해도 그 고통을 통하여 주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더 큰 축복을 바라보며 능히 이기며 나아가는 축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