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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우이암 쪽으로 하산할지 오봉 쪽으로 가서 송추계곡으로 하산할지를 두고 일일대장이 고민하는 눈치다. 난 어느 쪽도 좋지만 이왕이면 길어도 새로운 길이 좋은 것 같았는데.. 유현이 오봉 쪽으로 방향을 튼다. 내심 안개낀 오봉을 디카로 담겠구나 싶어 좋았다. 오봉 가는 길에 안개 속에 앙증맞게 핀 나리꽃이 자꾸만 윙크해 한컷 담아 보았다.
오랜만에 오른 오봉에 안개가 걷히고 있다. 지친 산우들은 아무도 없다. 4산 산행에 지리산무박 종주에 이력들을 지닌 철인(鐵人)들답다. 늠름한 모습들을 오봉과 함께 담아 주고 싶어 포즈를 취해보라 했더니 정말 포즈가 다 제각각이다. 오봉에서 가장 많이 머무르고 싶은 건 나만이 아닌 것 같다. 탁트인 풍광을 바라바며 칼바위, 주봉, 자운봉, 만장봉의 정상에서 안개가 걷히는 것을 찬찬히 바라다 보았다. 이 때 내 비장의 생명수, 소주를 풀었다.
하산은 우이암쪽으로 정했다 한다. 하산 길에 오봉이 안개 속에 드러났다 숨었다 한다. 일렬로 세워 사진 한잔 찍자 했더니 산우들이 포즈를 취해 준다. 근사하다. 우이암으로 내려 가면서 최종 하산길을 보문산장 쪽으로 정한다. 보문 산장 쪽으로 갈꺼면 우이암을 안들리고 곧장 가자는 산우가 있었지만 유현의 리더십은 단호하다. 더이상의 토다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우이암을 그렇게 가깝게 바라본 것은 나로선 처음이다. 우이(牛耳)는 소귀란 의미인데 생긴게 남성의 심볼 같기도 하고 여성의 거시기 속의 거시기 같다고 한다. reality는 하나인데 지각해 해석하는 건 제 눈에 안경이다.
우이암에 들렸다가 보문 산장으로 내려 오는 길에 탁트인 전망이 좋은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포즈를 잡으라 하면 모두 순한 양이 되어 따라 주니 찍사도 찍을만하다.. 오늘 지각한 거 이미 다 용서해 준 얼굴이다.
다 하산해서 마지막 계곡에서 몸을 씻는다. 정여사 앞에서도 아무 꺼림김없이 웃통을 벗고 등멱을 한다. 그리곤 도봉산 초입 두부집에 들려 뒷풀이를 시작한다. 나는 처음 가본 집인데 다른 사람들은 예전에 자주 가본 집인 듯하다. 내 앞에서 맥주 첫잔을 마시고 '카하' 하며 잔을 내려 놓는 종산의 얼굴에 만족감이 넘친다. 산행과 술맛을 아는 풍류남아의 기상이 온몸 가득 실려있다. 소주 각 일병하는 소리도 들리고.. 신대장의 막걸리 주문하는 소리도 들리고.. 유계의 연속되는 '밑보자'하는 구호 소리도 들렸지만, 오늘의 히어로는 누가뭐라도 일일대장 유현이다. 유현이 "오늘 산행할 때 대장할만하다"며 호탕하게 웃으며 일차 뒤풀이 끝까지 리더십을 놓지 않는다. 난 그 때 비로소 일일대장 제도가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유현이 갑자기 마지막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일일대장이 다음 주 일일대장을 지명하기로 했다며 사방을 둘러본다. 잽싸게 고개를 딴쪽으로 돌렸지만 결국 나를 지명한다. 그리고 이번 산행기를 나보고 쓰라 한다.
산행기까지.. 요새 언론계에서 은퇴하신 우리 선배 한 분이 "글쓴다는 건 누구에게나 본전도 건지기 힘든 일이다"라고 갈파했는데..일사불란한 팀?p에 행여 누가 될까봐 잠시 머뭇거리다 승락하고 만다. 다음 산행 코스도 내맘대로 정하라 한다. 그래 이왕 발담근 거.. 다음 산행 코스는 북한산성에서 시구문, 북문을 거쳐 여우굴, 백운대 위문 그리고 비봉을 통과해 불광사로 하산한다고 선포한다. 내가 못가본 곳과 예전에 자주가던 곳을 합친 건데 누군가 2산 산행 정도라 귀뜀해 준다. 술자리 마지막은 언제나 그랬듯 범천 약사가 조제한 소폭주로 부드럽게 마감한다.
이상 끝.. 이었으면 좋은데 이차 칼국수와 콩국수 자리가 있었고.. 또 난 개인적으로 지하철 방향이 같은 노강과 우리집 앞에 내려 최근 개발한 카페에서 젊은 마담과 술한잔을 더한다. 일요일 아침 깨어보니 내 바지주머니에서 노강이 술자리에서 말한 것을 적어 놓은 쪽지가 나온다.
"술도 자연이고, 여자도 자연이다"
내가 아는한 노강은 우리나라 최고의 입담꾼이며 낭만가이다. 한때는 세상을 크게 바꾸려 했지만, 지금은 작은 세계에서 소리없이 안주하고 있을 뿐이다. (무례한 소리지만) 그래서 노강은 요새 내겐 연구대상 일순위 인물이다.
"노구라.. 다음 산행에 꼭 나오시게.. 다음 일일대장은 당신이여.." |
첫댓글 일일대장의 소임을 무사히 마치게 적극 후원해 주신 신대장과 대은께 감사 또 감사...
찍사역할만 맡아도 대단한건데, 산행기까지 책임져 주시니 수고가 많으셨읍니다. 이번주 멋진 산행을 기대해봅니다.
최근 개발한 카페 금방 재벌 될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촌철.. 당신과 먹다 남은 술도 있네.. 노구라가 귀가 하면서 명함달란 소리하는 거 첨 봤네.. 내스스로 무덤을 판 거 같애..
大隱 산우의 산행기 감칠나게 잘 보았습니다. 요즘 홍씨 부인이 미국 와 있는 관계로 뉴욕 근처에서 산행을 간만에 하였습니다. 寸哲 산우님 보스톤도 한번 오시지요
가고싶지만 애 공부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인간이라......
지난번 따님 만났을 때 아빠 이야기를 많이 하였으니, 9월 가기 전에 한번 오시지( 본인이 9월 중순에 기귀국 예정이라 )
하교수,,,사진을 곁들인 현장감있는 산행기가 하교수의 명성에 어긋남이 없구먼.
산행기의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시는군요.근사합니다.안개 낀 오봉과 활짝 핀 나리 사진이 아주 멋이 있습니다.다음 산행도 잘 이끌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