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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M I
밝은 일광과 유사한 조명효과를 주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램프. 할로겐 금속 요드화물(Halogen-Metal-Iodide) 램프의 약자다. 최근에 개발된 이 램프는 동일한 전원 공급시 텅스텐램프보다 3배나 더 밝으며 텅스텐램프의 경우 일광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색성 필터나 혹은 여타의 특수 필터가 필요하지만 HMI 램프는 필터 없이도 충분한 일광효과를 낼 수 있다.
영화비평 (film criticism)
영화연구는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비평(criticism), 영화사(history), 방법론(methodology), 이론(theory)이 그것이다. 영화비평은 작가와 수용자의 양면에 그 영향을 미친다. 첫째 작품의 내용과 창조적 표현정도를 평가하며, 둘째 수용자에게 가치판단의 기준을 마련해 줌과 동시에 수용의 폭을 넓혀주며, 세째 궁극적으로는 작품이 지닌 역사성이나 사회적 상황을 분석하여 영화의 시대적 흐름을 선도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영화비평은 구체적으로 영화적 관점(cinematic perspective)과 비영화적 관점(noncinematic perspective)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수 있다. 영화적 관점은 영화작품 그자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보고 분석을 행하는 것으로, 형식(form), 양식(mode), 주제와 소재(subject - matter) 등에 관한 분석이 이루어진다. 비영화적 관점은 영화외적인 시야, 즉 철학, 사회학, 심리학, 미학, 등의 관점에서 작품 또는 작가의 사회성이나 역사성, 정신세계 등을 분석한다.
영화비평은 2차 대전 후에 전문화, 보편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각종 저널 및 전문지가 다양하게 탄생하였으며, 작가론, 영화 기호학 등의 영화이론과 유기적 관계를 이루며 꾸준히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 장르비평(genre criticism), 여성비평(feminist criticism), 구조주의 비평(structural criticism), 정신분석학적 비평(psychoanalytic criticism) 등으로 세분화되기에 이르렀다.
영화사회학 (film sociology)
일반적인 사회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사회학은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연구를 다룬다. 한 나라의 사회구조는 영화의 제작, 배급에서 관객의 관람행위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영화사학자들은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순수한 선전으로서의 기능, 사회적 가치확립의 기능,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기능으로 나누어 파악하고 영화사를 서술해나가는데, 영화사회학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사회, 정치적 반영 및 효과와, 뉴스나 정보 등의 교육적 기능, 그리고 대중오락으로서의 기능에 관하여 연구한다. 영화사회학 연구의 기원은 발라즈(Bela Balazs)의 <시각적 인간과 영화문화>(Der Sichtbore Meusth oder die Kultur des Films '24)로 본다. 발라즈는 이 글에서 영화에 의해 새로운 시각적 인간이 태어난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묘사하였으나,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표현이 언어로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표현할 수 없었던, 따라서 좁아졌던 인간정신의 세계를 20세기의 영화를 통해 회복, 확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1936년에 발표한 <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에서 사진과 영화를 복제예술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복제예술이란 기계적인 수단에 의해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며, 원본과 복제본의 구본이 있을 수 없는 예술로, 과거 지배계급에 독점적이었던 예술의 향수를 일반 대중에 까지 확대시켰으나, 예술의 질적인 성격을 변화시켰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영화가 지니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사회와 인간의 사유방식에 연관시켜 설명한다. 즉, 소설은 근대의 개인주의적 사유방식에 대응하는 장르이고, 영화는 고대의 집단적 사유방식에 대응하는 장르로 보는 것이다.
근자에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측면의 영화사회학은 영화산업과 그에 관련되는 자본, 정치, 대중의 관계와 영화가 사회 전체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한다. 이 때문에 경제학, 심리학, 정치학 등의 관점을 통합하여 새로운 독자적인 방법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영화심리학 (film psychology)
영화심리학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연구되어 왔다. 그 하나는 영화의 지각 경험에 관한 게쉬탈트 심리학의 측면으로 특히 인간이 운동을 느끼게 되는 파이현상(phi phenomenon)과 시각의 지속성(persistence of vision)의 두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지각심리학을 전개시켜 나간다. 또 하나의 측면은 작가와 그의 작품 속의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관객의 반응 등을 시대적, 사회적 상황과의 상관관계에 두고 분석하는 사회심리학적인 측면이다.
게쉬탈트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영화의 지각 경험을 서술해나간 것은 1916년 뮌스테비르크(Hugo Munsterberg)의 <영화극 : 심리학적 연구>(The Phoplay : A Psychological Study)가 최초의 연구서였으며, 1933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이 <예술로서의 영화>(Film as Art)로 그 뒤를 이었다.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해나간 최초의 연구서는 1947년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가 발표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 : 독일영화의 심리적 역사>(Psychological History of the German Film)이다. 그는 이 책에서 1차대전에서 2차대전에 이르는 독일의 사회심리적 동향을 당시의 독일영화의 형식과 내용 분석을 통하여 밝혀냈다. 또한, 작가의 의도가 그러한 시대배경하에서 어떻게 변질되었는가 하는 것을 규명해 냈다. 또한 1950년에는 미국의 볼펜시타인(M. Wolfenstein)과 라이츠(N. Leites)가 <영화 : 심리학적 연구>(film Psychological Study)에서 영화작품의 예술적 가치나 등장인물의 성격, 인간관계의 유형을 분류하고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행하였다.
영화언어 (film language)
영화를 언어의 개념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러시아의 몽타주 이론에서 부터였다. 에이젠슈타인, 푸도프킨 등은 장면의 연결을 통해 관념, 의미가 창조된다고 보고 이를 언어와 비교하였다. 이후 발라즈(Bela Balazs), 에프스탕(Jean Epstein) 등도 영화의 언어성을 논하였으며, 레이몬드 스포티우드, 마르텡(Marcel Martin) 등도 영화언어의 문법적 체계를 밝히려 하였으나, 이들 모두 과학적인 분석의 체계는 이루지 못했다. 또한 콕토(jean Cocteau, "영화는 영상에 의한 언어이다.")와 아르누(Alexandre Arnou, "영화는 영상의 언어이며, 그 자신의 어휘, 문장 구성법, 변화, 생략, 문법 등을 가지고 있다.") 등이 영화를 언어로 단정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영화 기호학이 나오기 전까지 영화의 언어에 대한 논의는 에세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영화를 언어로 보고 체계적으로 분석을 시도한 영화기호학은 소쉬르의 언어학을 기원으로 메츠(Christian Metz), 바르트(roland Barthes), 에코(Umberto Eco) 등이 영화언어에 천착하면서 체계화되었다. 이들은 소쉬르의 분류법에 따라 랑가쥬(langage)를 랑그(langue)와 빠롤(Parole)로 분류하고, 영화가 랑가쥬인가 랑그인가 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소쉬르에 따르면 랑가쥬란 의사소통을 하는 인간의 언어활동 능력을 말하며, 랑그란 약호(code), 즉 영상이나 개념의 약속체계를 가진 언어의 규칙체계를 말하며 빠롤은 개인의 언어구사양식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메츠는 영화를 '랑그가 없는 랑가쥬'라고 보았으나, 오늘날에는 여러가지 코드가 혼재해 있는 랑가쥬라고 보는 견해가 보편화되었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영화는 비로소 언어로서의 분석이 가능해 졌다고 볼수 있다.
영화의 눈 (kino-eye)
영화의 1차적 의미는 사실성에 있으므로 허구가 아닌 리얼리티의 수용체로서 영화를 인식해야 한다는 주의, 주장. 1919년에 베르토프가 그의 저서 <영화의 눈을 위한 혁명 선언문>에서 극영화의 결점과 허구성을 비판하는 한편, 실제 생활의 모습을 담은 새로운 사실의 프포르타쥬를 주장한 이래 공식적인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켜 1922년에 영화의 눈 운동을 내세운 베르토프는 카메라의 눈이 인간의 눈보다 완벽하며, 따라서 사건을 받아들이고 기록하는 능력에 있어서도 월등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자신의 지론을 실천에 옮겨, 아내와 동생과 함께 <무비 카메라를 든 사나이>(The Man with a Movie Camera '28) 등의 많은 기록영화를 제작하는 동시에 '키노 프라우다'라는 잡지도 발간하여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의욕적으로 활약하였다. 반면에 그의 이론은 여하한 사실의 솔직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편집 단계에서의 인위성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고, 또한 30년대의 형식주의 논쟁으로 소멸되어 갔다. 그러나 그의 이론적 독창성은 러시아 몽타쥬 이론, 영국의 기록영화, 아스트(Alexander Astruc)의 카메라 만년필설, 선전영화, 그리고 현대의 씨네마 베리떼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영화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영화적 시간과 공간 (cinematic time and space)
영화에서의 시간과 공간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실제 세계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그것은 일면 실제보다 더욱 제한되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 실제 세계를 포함하여 - 어떤 예술매체보다도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는 융통성 또한 지니고 있다.
영화적 시간은 실제 세계의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과는 다른, 영화 속에서 존재하는 사건의 순서와 배열에 따라 창조되는 시간이다. 영화에서는 다음의 5가지 방식에 의해 새로운 시간적 질서를 창조해 낸다. 1.따로 촬영된 액션들이 스크린 상에 동시에 보이거나 하나의 시퀀스 내에 보인다. 2.중요한 신과 시퀀스 사이에 중요하지 않은 시간 부분을 제거한다. 3.동작의 일부를 생략하여 신 내의 시간을 줄이거나, 동일한 동작을 각기 다른 각도와 거리로 찍은 쇼트들을 추가하여 신 내의 정상적인 시간을 연장시킨다. 4.과거 장면이나 미래 장면을 통해 연대기적 내러티브 시퀀스에 관해 시간상으로 전진, 후진한다. 5.음대의 특정 부분과는 다른 시간대의 영상이나 서로 다른 시간대의 영상의 중첩 등을 통해 대위법적인 영화적 시간을 창조해낸다.
영화적 공간은 실재하는 공간과는 달리, 영화 속의 스크린에서 창조되는 공간이다. 영화적 공간이 실제 공간과는 다른 점은 첫째 스크린에 존재하는 공간은 2차원 공간이며, 대상에 대한 크기의 지각을 변화시키고 평면화 된 영상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실제 공간을 연상시키는 외부 세계의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프레임의 구도, 특정 렌즈, 카메라 움직임, 편집 등을 사용한다. 둘째, 다른 장소에서 찍은 장면들을 모아서 편집한 쇼트들은 전혀 새롭고 통일된 공간을 만들어낸다. 셋째 어떤 대상을 접사 등을 통해 실제의 크기보다 확대시킬 수 있다. 넷째 실제 세계와 외부세계는 연속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영화에서는 편집을 통해 공간을 뛰어넘을 수도 있고, 서로 다른 거리와 각도를 통해 동일한 공간을 볼 수도 있다. 또한 편집을 통해 공간의 원근관계를 축소, 확대시키기도 한다.
영화학 (filmology)
영화가 탄생한 이후로, 영화는 여러 가지 관점과 방법으로 연구되어 왔다. 영화가 지니는 예술적, 사회적, 경제적 성격 등에 따라 영화미학, 영화 예술학, 영화 심리학, 영화 사회학, 영화 경제학 등이 각기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며 발전되어왔다. 그러나 1950년 후반부터 이러한 영화에 대한 각각의 시점을 영화의 본질에 대한 연구로 통합시킬 필요성이 서서히 부각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프랑스에서는 코헨시트(G. Cohen-Seat)와 수리오(Etienne Souriau)가 영화학 연구소(Institut de Filmologie)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영화학 정립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영화학 연구소에서는 영상수용의 생리학, 영화의 정신분석 - 사회학, 영화제작의 경제적 콘텍스트, 시각 경험의 현상학, 현실감 등에 관하여 활발히 연구하였다. 코헨시트는 <영화학 세계>(La Revue Internationale de Filmology)라는 잡지를 발행하는 한편 <영화철학의 제원리에 관한 시론>, <영화와 시각정보의 제문제>와 같은 저서를 통해 그의 영화학을 전개하였다. 그는 영화를 두가지의 이론적 관점으로 분류하였는 바, 하나는 미학, 예술학, 예술심리학을 바탕으로 영화를 주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관점(le fait filmique)이며, 또 하나는 사회학, 사회심리학, 경제학적인 객관적 시점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관점(le fait cinematographique)이다.
오늘날의 영화학에서는 크게 나누어 인스티튜션(Institution)과 영상(Image)을 영화학의 근본으로 규정짓고 연구에 임하고 있다. 인스티튜션은 단순한 '기관'이라는 한정된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집단 상호간에 정보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으로써의 확대된 의미를 지닌다. 영상은 영화를 표현매체, 즉 존재론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관점에서 연구되는 분야이다. 전후 최초로 이러한 문제를 거론한 사람은 바쟁(Andre Bazin)이었다. 그는 1945년에 발표한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이란 글을 통하여, 영화의 기본은 한 장면의 사진에서 출발하며 그 역사적인 의미를 인간의 생명과 츄ㄱ체의 존재론까지 해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모랭(Edga Morin)은 그의 저서 <영화. 상상적 인간>에서 사진적 영상의 특성을 환상과 인간자신 문제와 관련되는 이중성으로 보고 결국 영화학은 인간학으로 나아가게 됨을 암시하였다.
이와같이 오늘날의 영화학은 미학, 예술학,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등의 각종 관점에서 다변화되어 왔던 영화이론을 한 곳으로 모아서 영화적 사고에 의한 영화 본질의 연구와 영화이론의 확립을 목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5센트 극장 (nickelodeon)
무성영화 초기에 유행했던 소극장의 한 현태로 창고 따위의 공간을 이용했던 영화관. 이때의 입장료가 5센트(nickel)였고 또한 그리스어로 극장을 뜻하는 odeon이 합성되어 5센트 짜리 영화관을 가리켰다.
인본적 사실주의 (humanistic realism)
영화평론가들이 일명, '뉴 아메리칸 휴머니스틱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한 1960년대의 영화적 경향. <졸업>, <미드나잇 카우보이>, <이지 라이더> 등의 영화가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의 테마는 모두가 사회로 부터 소외당한 등장인물이나 말썽꾸러기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반영웅의 역할을 담당하는 내용이었다. 잃어버린 세대라 불리우는 전후의 젊은 세대들이 이유없는 반항을 통해 정체되고 권위주의적인 기성사회에 대해 반항하는 것이었다면, 인본적 사실주의의 젊은이들은 히피였고, 월남전이나 성 모럴의 퇴폐 등으로 인한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자아해방을 갈구한 세대였다. 영화사조인 측면에서는 자국의 실험적인 뉴 아메라칸 시네마와 지하영화의 영향을 받았고, 외부적으로는 긍정적인 인간가치를 추구했던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진실한 인간적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표를 던진 영화운동이었다.
인상주의 영화 (impressionism)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1920년대 프랑스 영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2대 조류의 하나. 전후에 전유럽에 범함하던 헐리우드의 이야기체 영화에 대항하여 새로운 형식에 주력하던 중, 20년대 전위영화의 선구자들이 반인습적이며 개성적인 영화, 그리고 좀더 생생하고 주관적인 세부묘사를 인상주의적으로 묘사하려 했던데서 붙여진 명칭으로서, 본래는 19c 회화의 인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사조이다. 즉 이야기체 형식이 외부적,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등자인물들의 내적인 심리상태를 인상적으로 묘사함을 가리키는 바, 이는 20년대 초반에 포토제닉과 리듬을 주창했던 초기의 전위영화 작가들에 의해 상업, 비상업을 가리지 않고 순수 형태의 영화창작이 진행되었던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델릭(Louis Delluc), 뒬락(Germaine Dulac), 엡스탕(Jean Epstein), 강스(Abel Gance), 레르비에(Marcel L'Herbier), 그리고 르노아르(Jean Renoir)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등장인물의 꿈, 환상, 심리상태, 기억 등의 소재를 주로 다루었고 이의 표현을 위해 과거장면을 통한 자유로운 시간의 구성을 애용했다. 스타 일면에서는 주관적인 인상을 묘사하기 위해 아이리스, 마스크, 합성인화, 영상의 왜곡, 연초점, 비정상적인 촬영각도 등등이 주관적 시점이나 가속 편집, 또는 교차편집 등과 함께 복합되어서 뛰어난 심리효과를 창출해 내었다. 아울러 사실적인 세팅이나 현지촬영을 통해 주관적이며 찰나적인 인상을 묘사하려는 특생이 두드러졌는데, 특히 이 점에서 내적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 현실을 고의적으로 왜곡시키고 인공화시켰던 표현주의와 분명히 구별된다. 한편으로는 영화기술적 측면에서도 유수한 실험이 행해졌다.
예컨대 강스의 <나폴레옹>에서는 275mm 망원렌즈가 사용되었는가 하면 폴라비전이라 불리는 다중화면과 대형화면비율이 채택된 바 있다. 또 시점을 표현하기 위해 크레인, 전차, 이동 사다리, 롤러 스케이트, 썰매, 자동차 등을 사용했으며, 이들은 상기한 스타일과 어우러져 찰나적인 내면적 인상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상과 같은 영화적 묘사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여 침체된 프랑스 영화산업계에 새로운 활로를 제공했으며, 이후 30년대와 50년대의 르네상스기를 이루는 동안 내내 프랑스 영화의 독특한 스타일로 주조를 이루도록 공헌하였다. 반면에 이같은 추세는 점차 영화감상의 엘리트화를 초래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20년대말의 대공황과 유성영화의 출현으로 인해 그 추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인상주의는 20년대 초반에서 1928년경까지를 대표한 하나의 사조였다고 볼 수 있고, 심리주의적인 이야기체나 주관적 카메라, 또는 역동적인 편집 등을 통한 리얼리티의 인상주의적 표현이 그 업적이었으며, 이후의 프랑스 영화의 특징적 스타일로 확립되었음은 물론, 데렌(Maya Deren)이나 히치코크(Alfred Hitchcock) 같은 외국의 감독들과 할리우드의 몽타쥬 시퀀스같은 기법, 그리고 공포영화나 느와르 영화 등의 장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가론 (auteur theory, auteurism)
영화작가론, 또는 영화작가주의라고도 한다. 작가, 저자(auteur)라는 뜻의 불어에서 유래된 비평, 이론 용어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오떼르(auteur)란 영화작품 속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영화감독을 뜻하며, 이것에 대한 이론(theory)이란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근거를 밝히거나, 일련의 작품을 통해 나타난 개성을 전거로 하여 그 감독의 농력을 평가하는 일을 말한다. 오떼르는 오늘날 창조성이 뛰어난 감독을 지칭하는 용어, 즉 진정한 영화작가라는 뜻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이 용어를 최초로 상용한 사람은 트뤼포(Francois Truffaut)였는데, 그는 1954년에 프랑스의 세계적인 영화잡지인 "까이에 뒤 시네마"지에 기고한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이라는 글을 통해 인습적이고 장인적인 당싱의 영화경향을 통렬히 비난하면서 문학에의 시녀노릇이나 잘 짜여진 극의 전통에서 벗어나 감독의 개성적, 예술적인 능력을 발휘할 것을 촉구하였다. 동시에 이러한 주장은 이미 1948년에 아스트의 카메라 만년필설에 근거를 둔 것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영화의 주인으로서의 감독에 대한 역설은 이후 많은 영화감독, 평론가, 이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윽고는 미국의 사리스(Andrew Sarris)에 의해 작가론이란 명칭이 부여되고 일반화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작가론의 비평적 관점은 먼저 영화작품의 제1 주인을 감독으로 본 다음 그가 연출한 일련의 작품을 통해 일관된 개성을 찾는 일이다. 이때 개성의 일관성은 영화의 내용적 측면보다는 형식적 측면, 즉 카메라 기법, 조명, 연기, 시간과 공간의 사용 등의 미장센을 통한 형상화의 능력을 말하고, 이에 대한 공과로서 대상이 된 감독을 작가인가 아닌가, 그리고 작가라면 영화사의 어느 곳에 자리잡게할 것인지를 경정하게 된다. 따라서 개성은 선영화적인, 또는 영화외적인 개성이 아니라 영화작품이라고 하는 텍스트를 통해 나타난 개성, 즉 괄호 속의 작가를 뜻한다. 시리스는 이같은 맥락에서 영화작가의 자격 세가지를 요약한 바 있다. 첫째는 영화매체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탁월한 기술, 둘째는 이를 통한 개성의 표현, 셋째는 전항의 두가지가 혼연일체가 되어 궁극적으로 내적 표현이 이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0년대 후반 이후 작가론은 다수의 비평가들에 의해 낭만주의적 발상, 감독의 신격화, 종합매체인 영화예술의 단순화, 선입견적 의도적 오류 등등의 단점을 지적, 비난을 받은데 따라 다각적인 수정, 보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비평사적 관점에서 바라볼때 그 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유수한 공헌을 간과할 수가 없다.
첫째, 작가론은 그 이전의 영화평론의 주류였던 내용비평, 특히 사회학적 비평보다는 영화매체의 독자성이라 할 수 있는 형식비평의 모티브를 제공했다. 둘째, 영화를 진지한 예술형태로 보고 본격적인 방법론의 모형을 촉구하였다. 셋째, 영화예술적 측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영화세계의 하부구조를 인정했다. 이를테면 당시에는 마춤복이라는 하대를 받던 헐리우드 영화의 경우, 스튜디오 시스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체계 내의 훌륭한 감독들인 히치콕, 하워드 혹스, 존 포드 등을 발견해 냄으로써 이른바 '숲의 비평'에 대한 '나무 비평'을 가능케하였다. 이후 인정받지 못하던 많은 감독을 발굴한 것도 또한 작가론의 공헌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화예술계는 물론 비평과 이론적인 면에서까지 영화감독의 중요성을 환기, 정착시켜 '영화는 곧 감독의 예술'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확립시켰다. 더우기 이상과 같은 비평적 태도로 인해 이후의 영화연구가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작가론의 중요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장르 (genre)
영화의 양식, 스타일, 주제, 극적 구조, 분위기 등 유사한 표현상의 인습적 요소를 바탕으로 해서 동일한 영역으로 분류한 것. 일반적으로는 서부영화, 희극영화, 음악영화 따위의 극영화를 지칭하지만, 나아가서는 기록영화, 만화영화, 실험영화 간의 분류에도 적용된다. 서부영화는 19세기 미국 서부의 개척시대라는 역사 지리적 컨벤션과 정의로운 총잡이의 의로운 고투나 불가피한 정당방위라는 성격화의 컨벤션, 또는 황야, 초원, 작은 마을, 인디언, 보안관, 살롱, 기병대 등의 시각적 컨벤션에 의거한다. 기록영화는 극영화의 허구성에 비해 비극적 리얼리티를 그대로 기록한다는 컨벤션을 지닌다. 이와같은 표현의 컨벤션에 전거하여 각각의 영화양식에 특징적으로 표현된 요소를 변별하고 가치화하는 영화비평을 장르 비평이라고 한다.
장르 비평 (genre criticism)
작품의 보편적 특성에 따라 분류, 분석하는 비평의 한 방법. 장르는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원형적 패턴과 특성에 따라 구분되는데, 연기, 세팅, 주제 등이 그 요소가 된다.
구체적으로 장르 비평가들은 작품의 분석에 앞서 그 작품이 장르의 모델에 얼마나 적함한가, 감독이 장르의 컨벤션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에 따라 장르 분류를 하게되며, 이를 기준으로 작품의 분석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장르 역사의 연구와 더불어 이와 관련된 작품 스타일의 진화과정도 주요 연구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리피스의 <피그 앨리의 보병>(The Musketeers of Pig Alley '12)에서부터 시작된 악한영화는 30년대 초반 <공중의 적>(The Public Enemy '31), <스카페이스>(Scarface '32) 등의 절정기를 지나 소위 범죄영화로 장르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또 독일의 표현주의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가 단기간 내에 수명을 다한 것에 반해 악한영화, 서부영화, 공포영화 등은 영화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 스타일의 변화과정을 연구한다. 즉 앞의 악한영화의 경우 30년대 이후 여러 번의 변천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60년대 프랑스의 누벨바그 계열의 작가들은 악한영화에 프랑스적인 터치를 가미하기도 했고, 70년대에는 저렴한 제작비의 흥행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장르 비평의 또 다른 주요 연구분야는 작품이 반영하는 정치, 사회, 문화적 기능을 살피는 것이다. 즉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연구대상이 되는데, 예를 들어 1960년대의 영국의 소위 반기성영화(anti-establishment)는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라는 사회, 정치적 상황인식에 근거를 둔 영화라는 점에서 연구되었다.
전위 영화 (avant-garde)
전위란 '진보적 집단'이란 뜻의 불어로, 영화에서는 좁게는 1918년과 1930년대 초반에 걸쳐 유럽에서 만들어졌던 실험영화와 비상업영화, 넓은 의미로는 여타의 모든 실험영화 및 비상업영화 일반을 지칭한다. 즉 전위영화는 상업영화의 관습적인 이야기체 구조와 기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각경험의 방법을 추구하며, 영화를 개인표현의 매개체로 사용한다. 이러한 전위영화는 크게 3개 범주로 구분된다. 즉 첫째 영상 그 자체를 사실의 비재현적 형태로 파악하는 절대영화와 추상영화, 둘째 현실세계를 비현실적인 방식-꿈이나 환상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표출하거나 인간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묘사하는 초현실주의 영화. 세째 영상의 가변적 시,공간 차원을 통해 실제 세계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을 보여주는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전위영화사를 통해 나타나는 기간별, 그룹별로 이를 구분해보면, 처음 대두된 것이 추상적인 선과 원, 기하학적인 도형을 통해 영화적 리듬을 추구하였던 1920년대 독일의 절대영화로, 에겔링(Viking Eggeling), 리히터(Hans Richter)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어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 끌레르(Rene Clair), 레제(Fernand Reger), 레이(Man Ray) 등의 다다 계열의 작품과 달리(Salvador Dali), 부뉴엘(Louis Bunuel)의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28)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 영화 등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던 실험영화 그룹이 등장했고, 카발캉티(Alberto Cavalcanit)의 <절박한 시간>(Rien que les heures '26)와 비고(Jean Vigo)의 <니스의 결정>(A Propos de Nice '30) 등으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나타났다.
또한 미국에서는 데런(Maya Deren)으로부터 시작하여 브래키지(Stan Brakhage), 메카스(Jonas Mekas), 앵거(Kenneth Anger), 워홀(Andy Warhol), 클라크(Shirley Clarke) 등의 수많은 작가를 배출하고 1950년대의 뉴아메리칸 시네마까지 계승되는 전위영화의 맥을 이어갔으며, 1960년대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독립영화의 그룹들이 형성되었다. 지역적으로 강력한 전위영화운동을 전개했던 나라로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유고, 일본, 미국 등을 들 수 있다.
절대영화 (absolute film)
영화의 이야기체적 기능으로부터 영상의 자유로움을 분리, 강조하는 실험영화의 한 유형. 주로 다디이즘의 영향을 받아 영상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극적형식을 타파하려는 이들 화가에 의한 이 실험영화는 영화가 영화적일 수 있는 최종적 입장을 순수한 영상적 리듬이라는 절대성에 두었기 때문에 특별히 절대영화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상 최초의 아방가르드라 할 이들의 20년대 활동은 이후 나치즘의 대두로 반사회적이라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지나친 순수성에의 집착으로 그 생명이 길지는 못했다. 이같은 정치적 이유로 인해 작가들이 국외, 특히 미국으로 이주함으로써 이후의 실험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지하영화나 최근의 확대영화에 까지 그 실험성이 천착되는데 공헌하였다.
정신분석학적 비평 (psychoanalytic criticism)
60년대 말 이후에 대두된, 영화기호학의 선상에서 영화텍스트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 비평하는 방법론. 고전적 정신분석학에서는 작가와 텍스트에 연구대상이 국한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텍스트와 관객의 관계, 특히 관객의 영화 이미지에 대한 동일화 과정과 영화텍스트의 내러티브의 특성, 영화매체의 특성자체에 대한 연구로 그 폭이 확대되었다.
영화매체의 특성에 관해 비평가들은 영화를 꿈에, 스크린을 창문, 프레임, 혹은 거울에 비유한다. 영화를 꿈으로 보는 경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1916년 뮌스터베르크(Hugo Munsterberg)는 "영화에서는 우리의 상상이 스크린에 투사된다."고 하였고, 1946년 마우에르호퍼는 꿈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잠 속에서 우리는 꿈을 스스로 만들어내지만 영화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타일러(Parker Tyler)는 영화란 사람들이 낮에 꾸는 꿈을 산업화시킨 것, 즉 꿈의 공장(dream factory)이라고 하였다. 스크린의 창문과 프레임에 대한 비유는 영화이론에 중요한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다. 바쟁은 스크린을 창문에, 미트리(Jean Mitry)는 프레임에 비유했는데, 바쟁에 따르면 우리는 스크린 바깥공간은 볼 수 없지만 바깥공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즉 온 스크린은 항상 오프 스크린을 암시하며 원심적 형태를 이룬다고 했다. 반면에 미트리는 우리의 관심은 스크린 내부공간에 집중하므로 스크린을 원심적이라기 보다는 구심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즉 창문으로서의 스크린은 대상 공간(object plane)이므로 깊이가 강조되며, 프레임으로서의 스크린은 회화 공간(picture plane)이므로 평면성이 강조된다. 그리하여 창문으로서의 스크린은 전심초점과 쁠랑 세깡스를 선호하는 사실주의 이론을, 프레임으로서의 스크린은 몽타쥬를 선호하는 형식주의의 이론을 대변한다.
근자에 이르러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적 비평가들은 스크린을 의미화 과정 그 자체로 설명하는데, 특히 보드리(Jean Louis Baudry)는 스크린을 거울에 비유하였다. 이 거울에 대한 비유개념은 관객의 영화 이미지에 대한 동일화 과정과 함께 설명이 된다. 라캉은 거울 앞의 아이가 주체와 객체를 구분 못하는 거울단계(mirror stage)를 관객의 1차 동일화(primary identification)로 설명하였다. 즉 관객이 영화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단계, 다시말해 이미지에 얽매이는 상상적 질서(imaginary order)에 따르는 단계를 말한다. 이어 아이가 언어를 익히면서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오이디푸스 단계(oedipal stage)에서 관객은 도상계와 현실계를 구분하는 2차 동일화 과정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텍스트의 내러티브의 특성에 관해서는 메츠(Christian Metz)와 노웰 스미스(Geoffrey Nowell-Smith)가 영화의 내러티브를 스토리와 담론으로 구분하였다.
근자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토대로 많은 작품분석과 연구가 행해지고 있는데, 특히 프랑스의 '코뮤니카시용'지와 '카이에 뒤 시네마'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직접영화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
196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된 기록영화의 한 양식으로, 메이슬리스(Albert Maysles)가 제재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진정한 접근방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반화되었다. 즉 이전까지의 기록영화가 취했던 계획된 이야기체의 접근방식을 피하고 예행연습이나 편집을 최대한 배제하여, 사건을 있는 그대로 담고자 하였다. 출연자들은 어떤 개입이나 유도도 배제된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자신의 동기, 자세, 심리상태를 드러내도록 했고, 또한 카메라는 가능한한 줌 렌즈를 사용하여 대상에 접근하여 촬영함으로써 사건을 꾸밈없이 객관적으로 포착하려는 자세를 유지했다.
직접영화의 첫 작품은 1960년 위스콘신에서의 후버 험프리와 케네디 간의 대통령 예비선거를 담은 드류(Robert Drew), 리콕(Richard Leacock)의 TV용 기록영화 <예비선거>(Primary '60)이다. 두류 팀은 이후에도 ABC사의 <클로즈 업>(close Up!) 시리즈를 수 편 제작하였으며, 이 그룹 출신인 펜베이커(Donn Pennebaker)가 <밥 딜런>(Bob Dylan)과 <뒤돌아 보지마라>(Don't Look Back '66)를, 엘버트와 데이비드 메이슬리스가 <세일즈맨>(Salesman '69)을 제작한 후, 일반 영화관에서도 상영되었다.
직접영화의 테크닉은 TV 뉴스와 기록영화 제작방식에서 비롯되었는데, 각종 장비 역시 TV매체의 장비를 개선시킨 것이 많았다. 즉 소형 경량의 핸드 헬드 카메라와 동시녹음이 가능한 사운드 장비, 자연광하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고감도 필름, 일정 거리에서 스피치를 담을 수 있는 지향성 마이크, 카메라의 직접 개입을 피할 수 있는 줌 렌즈 등이 많이 쓰였다. 이러한 장비의 특성을 살려 경조화면과 거칠은 녹음, 카메라의 급격한 움직임 등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스타일은 관객으로 하여금 제작자의 한 작품을 본다기 보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본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 해주었다. 와이즈만(Frederick Wiseman)은 이러한 직접영화의 기법을 응용하여 인상적인 일련의 기록영화 시리즈 <티티커트 폴리즈>(Titicut Follies '67), <고등학교>(High School '68)를 만들었으며, 후에 이러한 테크닉은 보다 역동적인 편집을 병용하여 여러 편의 콘서트 영화 - 예를 들어 메이슬리스 형제의 롤링 스톤즈의 콘서트를 담은 (Husbands '70)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직접영화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 붐을 일으켰던 진실영화는 장비나 기술면에서 직접영화와 유사한 점이 많지만 제작자가 작품에 직접 뛰어들어 주제에 대한 인터뷰 등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직접영화와 구분된다.
진실영화 (시네마 베리떼, cinema verite)
'영화 진실'이란 뜻의 용어로,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던 일련의 기록영화 제작방식을 가리킨다. 즉 기동성이 뛰어난 소형 경량의 장비를 사용하여 즉시성, 자발성, 확실성을 강조하며, 소재에 대한 어떤 예상된 이야기체나 고정관념을 배제하는 방식을 말한다. 시네마 베리떼라는 용어는 로슈(Jean Roche)가 모랭(Edgar Morin)과 함께 만든 <여름의 연대기>(Chronique d'un Ete '60)를 해설하는 과정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그 이론과 실천방안은 뉴스영화 시리즈인 '키노 프라우다'를 만들었던, 영화사 초기의 러시아인 베르토프, 그리고 플래허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여름의 연대기>에서 두드러진 수법은 제작자가 직접 제작과정에 뛰어들어 인터뷰 등을 통해 하나의 주제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으로, 당시 미국에서 성행하였던 직접영화는 제작자를 작품속에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실영화와는 차이를 보였다. 진실영화의 이러한 기법은 60년대의 프랑스의 누벨 바그와 미국의 카사베츠(John Cassavetes)의 작품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현실주의 (surrealism)
1920년대 중반에 프랑스에서 미술, 문학, 그리고 영화부문 등에서 발흥하였던 문화운동. 다다이스트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초현실주의는 반관습적이며 부조리한 경향을 지니는 동시에 프로이트의 도움을 받아 심상을 재창조하고 막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지배계급에 대한 보다 확고하고도 정치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인 앙드레 브레통은 1924년과 1929년의 2회에 걸친 초현실주의의 선언을 통해 이성과 도덕의 장해를 받지 않고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을 주장하고, 아울러 기존의 예술에 대한 관념의 타파를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 줌, 환상, 자유로운 심상의 활동, 그리고 무의식 그 자체는 곧 진정한 실체였다. 예술에 있어 이러한 사실은 자동연성과 자동기술법이라고 하는 비억압적이고 자유로운 과정을 통하여 창조된다고 보았다.
초현실주의의 영화는 이러한 운동을 나름대로 발전시켜 내적 사실과 외적 사실의 구분을 없애고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파괴하였다. 또한 우연과 예기치못했던 놀라운 사실을 강조하고, 불합리하고 신경질적이며 그로테스크한 심상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객체가 중립적이고 논리적인 컨텍스트에서 벗어나 추상성과 상징성을 강조하는 기묘한 영상을 강조하였다. 초현실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레이(Man Ray)의 <바다의 별>(L' Etoile de Mer '28)과 브뉘엘(Louis Bunuel)과 달리(Salvador Dali)의 공동작인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28)를 들 수 있다. 달리가 부분적으로 각본을 쓴 브뉘엘의 <황금기>(L'Age d'Or '30)에서는 교회와 중산계급의 도덕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브뉘엘은 오랜 뒤에도 이러한 초기 작품의 성향을 버리지 않고 <부르조아의 사려깊은 매력>(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72)과 <자유의 유령>(The Phantom of Liberty '74) 등에서 관습적인 사회에 날카로운 조소를 보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 화가, 영화인인 콕토(Jean Cocteau)도 몇몇 중요한 초현실주의 영화를 만들었으나 그 자신은 물론 초현실주의자들 조차도 그를 초현실주의 계열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그의 첫작품 <시인의 피>(The Blood of a Poet '30)에서 콕토는 상상과 실제가 혼재하는 시인의 세계를 창조해내었다.
70mm 영화
화면비율이 2.2:1인 대표적인 대형화면 영화. 필름의 양쪽에 프레임당 5개씩 필름 구멍이 있고 6채널의 입체 음향이 있어 5개는 스크린 뒤쪽에, 나머지 하나는 객석의 확성기에 연결된다. 영사원리도 35mm와 동일하여 기존의 35mm 영사기를 약간만 개조하면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방면에 화면 비율은 35mm에 비해 4배 이상 확대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날 국제적인 상영에는 자기식 음대를 갖춘 70mm가 공식화되어 있다.
초커 (choker)
화면에 꽉 찬 접사의 속어. 대개 한 연기자의 얼굴이 화면을 빈틈없을 정도로 채웠을 때를 가리킨다.
추상영화 (abstract film)
1.원래의 피사체를 형태, 선 등의 본질적 요소만으로 보여주는 영화의 총칭.
2.이야기체의 서술구조보다는 시적 리듬과 순수영상의 표현을 강조하는 비구상적 영화형식의 총칭. 일명 절대영화라고도 하나 그보다는 더 광의의 개념에서 전위영화의 한 양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통례이다. 일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전반에 성행했던 시, 회화 등의 전위예술운동의 참가자들이 직접 영화를 실험하거나 또는 그 영향을 받아 영화의 순수양식을 추구하던 이 유파의 작품에서는 영상은 자신들의 일상적인 의미를 나타내기보다는 편집, 시각 디자인, 음질 등의 수단을 통해 순수 리듬형식을 강조한다. 대상물의 율동적, 기계적 움직임을 영상화한 레제(Fernand leger)의 <발레 메카닉>(Ballet Mecanique '24)이나 레이(Man Ray)의 <이성으로의 복귀>(Le Retour a la raison '23) 등이 좋은 예이다.
추상영화는 크게보아 세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현실이나 회화화된 소재를 촬영에 의해 필름에 담되 그 목적을 순수형태의 지각에 두는 경우로, 순수영화나 형태적인 기록영화를 들수 있다. 두번째는 프레임 하나 하나마다 촬영해가는 동화기법으로서, 오늘날의 컴퓨터 영화나 만화영화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세번째는 카메라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필름상에 직접 영상을 담는 방법인데,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고 또는 칼로 긁어내고 못으로 선이나 형태를 그리는 따위가 그러하다. 20년대 독일의 절대영화가 이 범주에 속한다.
표현주의 영화 (expressionism film)
1918년에서 1925년경까지 독일 바이마르 공화기의 주류를 이루었던 영화사조. 세계 제1차 대전의 패전 후, 제국주의 지배의 꿈이 붕괴되자 기성 가치관은 허물어지고 정권을 잡은 사회민주당에 대한 기대의 좌절, 극좌와 극우의 끊임없는 충돌로 야기된 사회적 혼란,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악순환이라는 경제적 파국상태에서 생겨난 독일국민의 심리상태, 즉 미래에의 불만이 자포자기 상태의 암울한 풍조를 만연케하였는 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당시의 중요한 대중문화 수단이었던 영화의 내용면에 압도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표현양식의 면에서는 20세기 초반에 인상주의의 반동으로 생겨난 예술전반의 경향인 표현주의의 영향, 즉 사물의 예술적 재현에 있어 외적인 사실성을 거부하고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사물의 잠재적 의미구현에 가치를 두고있던 경향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표현주의 영화 역시 공포, 증오, 사랑, 불안 등의 내적 인간의식의 절박한 상태를 객관적인 상징을 통해 양식화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과장된 리얼리티의 형상화라고 할수 있다.
최초의 표현주의 영화는, 물론 1913년에 베게너(Paul Wegener)가 제작한 <골렘>(Der Golem)이나 1916년에 리페르트(Otto Rippert)가 제작한 <호문쿨루스>(Homunculus)도 이미 표현주의 영화적인 요소를 예시하고 있지만, 데전 직후에 제작된 비네(Robert Wiene)의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Das Kabinett Der Dr. Caligari)에서 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조류가 형성되었다고 볼수있다. 이어 베게너가 재제작한 <골렘 '20>과 랑(Fritz Lang)의 <운명>(Destiny '21)과 <닥터 마부제>(Dr. Mabuse. the Gambler '22), 무르나우(F.W. Murnau)의 <노스페라투>(Nosferatu '22)와 <마지막 웃음>(The Last Laugh '24), 그루네(Carl Grune)의 <거리>(The Street '23), 파브스트(G.W. Pabst)의 <쓸쓸한 거리>(Joyless Street '25), 듀퐁(E.A. Dupont)의 <버라이어티>(Variety '25), 레니(Paul Leni)의 <왁스 워크>(Wax Works '24) 등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발표되었고, 이와 더불어 마이어(Carl Meyer)와 같은 시나리오 작가, 프로인트(Karl Freund), 바그너(Fritz Wagner) 등의 촬영기사, 바름(Hermann Warm), 뢰리히(Walter rohrig), 훈테(Otto Hunte) 등의 미술감독, 포머(Erich Pommer)와 같은 제작자, 그리고 야닝스(Emil jannings)를 비롯한 캄머슈필(Kammerspiel)의 연기자들이 어우러져 독일영화의 황금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표현주의 영화의 특징은 미장센과 카메라 움직임으로 대별할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에는 특히 조명, 세팅, 연기자가 대표적이며, 후자의 경우에는 시점의 극적 처리와 카메라 움직임의 유연성, 그리고 간단하면서도 대담한 줄거리 구성을 들수 있다. 우선 데코르와 조명은 최초의 영화적 장점을 이룩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칼리가리의 주인공들은 세팅을 통해 움직인다. 그들은 계속해서 정적인 그림자와 기괴한 디자인과 흡수된다."고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ner)가 지적했듯이 테코르나 조명이 곧 연기를 담당한다. 실제적인 무대장치나 화폭에 그려서 사용하면서도 사실적인 형태나 선, 또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비현실적인 변형을 통해 의식 저변을 표현하려했으며, 조명 역시 사실적인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무시하고 비논리적인 조명을 통해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의 충돌관계를 구현하려하였다. 연기는 행위의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지 않고 분명하고도 강력한 제스처로 표현된다. 즉 과장된 연기이다. 그러나 이때의 과장이란 곧 강렬하고도 순수한 심리상태에서의 기본적인 키 포인트가 되는 행위와 감정의 추상적인 상징을 의미한다. 영화의 장편화를 이룩한 줄거리의 구성은 간단 명료하여 등장인물의 심리적인 묘사에 치중하며, 따라서 카메라 움직임의 유동성이 중시되었는 바, <마지막 웃음>이나 <거리>에서 장시간 촬영으로 나타나고, 심리묘사의 경우에는 사각이나 대칭적인 구성을 통해 최초의 주관적 시점이 정점화되기도하여 이후의 영화예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사상적인 면에서의 표현주의는, 이어지는 거리영화의 경우와 함께, 크라카우어의 주장처럼 "히틀러에 이르는 권위와 불안 사이의 갈등"이었다고 볼수 있다. 요컨대 현실을 떠난 사실성의 추구란 곧 무정부상태의 끊임없는 혼란이나 독재체제 외의 다른 출구가 없다는 심리상태에서 권위체제나 독재체제로의 지향이라는 독특한 독일의 사회심리적 변천과정이었다고 볼수 있다. 반면에 표현양식의 측면에서는 영화사에 귀중한 토대를 마련하여 이후의 세계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있다. 특히 첫째는 할리우드의 유혹에 의해 자진해서, 둘째는 히틀러의 정권장악에 의해서 미국으로 건너간 당시의 독일 영화인들에 의해 30년대의 악한영화나 공포영화가 융성해졌고, 개인적으로는 고다르(Jean-Luc Godard)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60), 레네(Alain Resnais)의 <지난해 마리엔바드에서> (L'Annee Derniere a Marienbad '59), 펠리니(Federico Fellini)의 <8 1/2>(Ottoe Mezzo '63), 히치코크(Alfred Hitchcock)의 <사이코>(Psycho '60), 그리고 웰즈(Orson Welles)의 <심판>(The Trial '62)에 이르는 현대 영화사에까지 끝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형식주의 (formalism)
내용이나 주제보다 형식과 테크닉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미학 이론이나 사조. 영화는 초창기부터 두가지 이론, 즉 사실주의와 형식주의를 축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형식주의는 에이젠슈타인(이론과 실천의 겸비)과 아른하임(철학과 심리학적 배경 제공), 발라즈(여러 예술과의 비교)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형식주의 이론은 1920년대 소련에서 기틀이 잡혔다. 러시아 혁명이후 소련영화는 이론과 실천면에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쿨레쇼프(Lev Kuleshov), 푸도프킨과 에이젠슈타인이 이론적 토대의 확립은 물론 이론의 실천적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이론은 때로 표현주의와 혼용되기도 하는데, 형식을 중요시한 점에 있어 일맥상통하나 형식주의가 형식의 요소와 세부를 중요시하는 보다 과학적인 이론인 반면, 표현주의는 형식의 보편화된 감상적 개념에 치우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들 소련의 형식주의자들은 영화의 변별성과 예술성을 편집(좁은 의미에서의 몽타쥬)에 두고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이론은 당시까지 아방가르드 운동이나 표현주의 영화론으로도 획득하지 못했던 영화의 예술적 지위를 확고하게 다져주는 것이었다. 쿨레쇼프는 유명한 '창조적 지리학'과 '모쥬킨의 실험을 통해 무의미한 단편들이 연결이 어떠한 의미를 창조해내는가를 밝혔고, 푸도프킨은 그의 상관편집(relational editing)을 통해 몽타쥬를 관객의 심리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주장하였다. 에이젠슈타인은 "영화형식과 영화감각.(Film Form and Film Sence) 등 그의 방대한 연구작업을 통해 몽타쥬 이론을 집대성하였는데, 몽타쥬를 단편의 연결로 보는 푸도프킨과 달리 충돌의 의미로 보았다. 그는 리얼리티에 접근하기 위해 리얼리즘의 파괴가 필요하며, 리얼리티의 문제를 예술가 사이의 문제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단편들의 분해와 중립화 과정을 통해 변증법적 연결로 까지 이어지는 지적 몽타쥬(intellectual montage)를 강조하였다.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예술로서의 영화"(Film als Kunst) 등의 저작을 통해 영화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영화의 구성요소에 관심을 두고 영화의 예술성을 영화가 지닌 비현실적 요소에 의한 것으로 보고, 1.입체의 평면에의 영사. 2.깊이감의 감소와 영상의 크기. 3.조명과 색채의 결여. 4.영상의 한계와 대상과의 거리. 5.시공의 연속성의 결여. 6.불가시적 감각세계의 결여 등을 영화의 비현실적 요소, 즉 영화예술의 구성요소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형식주의 이론은 유성영화와 색채영화의 등장으로 많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의 주요 형식주의 이론가인 발라즈(Bela Balazs)는 영화의 하부구조를 중요시하여 사회, 경제적 여건에 따라 영화형식이 변화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사실의 세부적 묘사를 가능케해주는 클로즈 업을 중요시하여 이를 숨은 힘(secret power)으로 표현하였다.
1920년대 이후 영화이론의 주류를 이루었던 형식주의 이론은 40년대 이후 유성영화의 번성과 전심초점, 장시간 촬영을 기저로하는 사실주의 계열의 영화의 등장,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바쟁 등의 사실주의 이론의 등장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형식주의 이론은 다시 번창하게 되었다. 즉, 영화의 학문적 연구는 영화의 기본 요소에 대한 체계적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따른 영화의 각종 기술적 요소를 응용한 표현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사실주의와 형식주의가 공존하며 연구되고 있다.
[출처] 영화용어정리2|작성자 멜리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