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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산악회의 큰 행사는 이번이 세 번째다. 3월의 시산제와 7월의 레프팅 그리고 이번 연말 마무리 장거리 산행이다. 이런 행사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한 우리가 많은 비용을 들여 행사를 계획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회원들의 참여로 움직이는 조직이므로 참가비용이 저렴해야 한다는 게 제1 원칙이다. 다만 재력이 있는 회원이 회장을 맡거나 스폰을 해 준다면 예외겠지만 말이다.
참가인원이 너무 적은 아쉬움
이번 행사는 우리 산악회에서 보유한 이월잔액 75만원을 기초로 각 항목별 예산을 세우고 참가비를 책정하였다. 그 결과 15명 이하일 경우 1인당 3만원, 15명이 초과될 경우 4만원은 되어야 가능하였다. 보통의 경우 참가인원이 많으면 비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하지만 이 경우에는 일정한 금액을 나누어 쓰는 개념이므로 반대현상이다. 그런데 최종 참가인원이 예상보다 적어 돈 문제에서는 일단 해방이 되었으니 이런 경우에 적합한 말이 不敢請이면 固所願이라 하였던가
이번 장거리 산행에 참여한 친구는 총 9명이었다. 그 중 김찬열과 김경준은 부인을 동반하고 별도의 숙소를 정했지만 우리와 같이 움직이기로 하였으니 실제는 11명이 가는 셈이었다. 비록 비용 문제로 계획 추진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많이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나이에 집 떠나기 싫어하는 친구들
얼마 전 나오던 광고 카피에 “집 떠나면 개 고생”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 의미는 말 그대로 고생하니 집을 떠나지 말라는 것과 집을 떠나 보아야 자기 집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는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이가 지금 60인데 집 떠나는 걸 고생으로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나 또한 먹는 것은 좀 못하더라도 잠은 왕처럼 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하루정도 부대끼며 자는 것이 나쁜 것만도 아닐 것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집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감동을 주는 박길상의 은은한 매력
당초 지역별로 차량에 분승하여 경춘고속도로 가평휴게소에서 10시에 집결하고자 하였으나 참가인원이 적어 강동역에 모였다. 9시 30분쯤 집을 나서려는 순간 윤율현이가 집안 사정으로 늦게 츨발하여 이제 서초역이라고 하는데는 아연 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10시 반은 되어야 도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간계획 까지 짜 놓은 이번 행사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급히 같은 방향에서 출발하는 박길상에 연락하였더니 이미 88도로에 진입한 뒤였다. 부득이 길상을 잠실역에서 기다려 같이 오도록 하여 결국 10분 정도 지체로 막았다. 길상에게 고맙단 말을 하고 싶다.
또 하나 길상의 감동스런 일화를 소개한다. 이번에는 귀경시 내가 그의 차에 짐을 두고 내린 사실을 발견한 것은 집에 도착한 이후였다. 전화를 하였더니 잠실 2단지 옆을 통과하고 있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그는 흔쾌히 다시 돌아와 짐을 내려주고 떠났다. 음료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하였지만 그는 길을 재촉하며 떠났는데 아마도 나 때문에 한 시간이상 늦게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정말 박길상은 청자나 백자처럼 은은한 감동을 주는 친구다. 몇해 전 아차산 산행시 그가 이십여만원에 달하는 점심비용을 혼자 부담하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성의의 발로이다. 정말 그는 나를 몇 번이나 감동시켰음을 밝히고 싶다. 우리 산악회 모두가 박길상과 같은 감동적인 인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개통 일주만에 달린 새로운 고속도로
설악산 까지 가는 길은 지금까지 영동고속도로 강릉을 거쳐 올라가거나 양평을 거쳐 홍천을 통해 미시령이나 한계령을 넘는 방법이다. 그런데 지난 봄에 경춘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불과 1주일 전인 10월말 연장노선인 춘천-동홍천구간이 개통되었다. 이 구간은 홍천시내를 거치지 아니하고 인제로 향하는 4차선도로와 직접 연결된다. 거기서 얼마가지 않으면 인제의 관문인 신남이다. 거리상으로는 얼마 단축되지 않지만 시간상으로는 양평방면으로 가는 것보다 1시간이상 빠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그 혜택을 톡톡히 보았는데 앞으로 양양까지 연결될 예정이란다. 이제 수년 안에 설악산 등산도 당일코스가 가능할 것이다.
절묘하게 맞바꾼 일정
당초 출발 당일 오색에 도착, 흘림골 주전골 산행을 계획하였으나 시간관계상 부득이 이틀째 일정과 맞 바꾸었다, 그런데 이것이 또한 절묘한 선택이었다. 인파로 붐비는 토요일을 피해 백담사 탐방과 권금성 케이블카를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계획을 처음 세울 때는 10월 중순 출발하는 것을 가정하였기에 산속에서는 오후 5시면 어두어 진다는 사실을 간과한 터였다. 만일 당초 계획대로 하였다면 등산도 제대로 못했을 뿐 아니라 권금성 케이블카는 고사하고 설악산 입장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백담사 행 버스도 두시간 이상 기다려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우리 동기생 중 산행경력이 최고인 오이균의 제안을 받아 들인 게 주효하였다.
미리 출발한 김경준이 점심식사도 하고 주차료도 세이브 할 겸 백담사앞의 식당을 잡아 놓았다는 연락이 왔다. 본진은 12시 40분 경 도착하여 황태정식으로 점심을 하였다. 음식은 비싸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지방 고유의 음식이 가장 맛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지역별 특성에 맞는 음식메뉴를 선택할 생각이다. 우리는 동동주 잔을 높이 들어 이번 여행이 즐겁고 보람된 일정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미 겨울로 접어든 백담계곡
백담사는 문자 그대로 백여개 폭포가 만든 沼가 있다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버스도 다니고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지만 옛날에는 구절양장의 첩첩산중이었을 것이다. 거리상으로는 4킬로 미터에 불과하지만 도로가 아스라한 낭떠러지 옆으로 걸쳐 있어 매우 위험하다. 어떤 곳은 높이 100여 미터도 족히 되어 보이고 길이 좁아 버스끼리 서로 무선연락을 하여 교차지점에 미리 가 있어야 할 정도이다. 입장료는 없으나 왕복 4천원의 버스비에 아마도 백담사 몫이 들어 있을 성 싶다. 버스는 백담마을에서 운영하는데 십여대가 거의 10여분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 평일에도 줄서기 중간에서 계속 만차가 되는 것을 보면 주말에는 두 세시간을 기다려야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담사는 바다와 인연이 많은 모양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그곳에서 수도하였고 일해 전두환 대통령이 은거한 곳이다. 한용운 선생은 스님 시인으로 3.1독립선언 33인중 한 분이다. 그는 대표작 “님의 침묵” 외에 많은 시를 남겼으며 특히 한시의 필력은 대단하다. 백담사 경내에 그의 조각상이 있어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반면 전 대통령이 기거했던 방은 두평 정도나 될까. 대웅전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가 사용한 소박한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백담사는 계곡미가 멋지고 가을 단풍이 일품이다. 넓은 계곡엔 수 많은 돌탑들이 수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이고 서 있다. 그들의 소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중에 절반은 돈의 기원일 것이고 나머지의 절반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두가지는 인간이 죽을 때 까지 희구하는 명제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백담계곡은 이미 겨울철로 접어든 듯 침엽수를 제외한 모든 나무들은 나목이 되어 있었다. 이제 눈이 내리면 백담사의 모습은 아련한 한폭의 동양화가 되기에 충분하리라.
수십년만에 타 본 권금성 케이블카
백담사 경내는 약 한 시간에 걸쳐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인 설악동을 향해 빨리 움직였다. 권금성 케이블카는 오후 5시 까지 운행하므로 최소한 4시 이전에는 도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체의 시간허비 없이 곧장 설악산으로 향했다. 다행히 주말이 아니라 차를 탄 채로 케이블카 터미널 바로 앞에까지 갈 수 있었다. 만일 주말이라면 승용차 통행이 제한되고 별도의 셔틀버스를 타야하는데 비한다면 시간 절약한 것만도 얼마인가. 정확히 3시 25분 발 케이블카를 탔다. 예전에는 스무명 정도 탈 수 있는 소형이었으나 이제는 50인승의 대형으로 바뀌었다. 대신 운임은 1인당 8,5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권금성의 좁은 승강장에는 내려가는 사람들과 올라오는 사람이 뒤섞여 귀성전쟁을 벌이는 서울역 대합실과 흡사하다. 그런데 이외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예전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시대가 바뀌었음에 틀림 없다. 일본은 이제 개별관광이나 테마관광이 추세이고 중국은 우리처럼 단체관광이다. 이곳에서는 설악산 연봉들은 바라 볼 수가 있는데 울산바위, 공룡능선, 마등령, 토왕성폭포가 압권이다. 이제 몇 년이 지나면 오색에서 대청봉에 오르는 케이블카가 설치된다고 한다. 무엇이 진정 자연보호인지는 애매하지만 노약자나 어린이 여성들도 대청봉에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연산 회만 판다는 동명항
권금성에서 내려와 잠시 신흥사를 탐방하고 동명항으로 향했다. 가까운 곳에 대포항이 있지만 관광객들이 많아 번잡한 반면에 동명항은 속초항과 연결된 조용한 곳이다. 특히 자연산만 판다는 소문이 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옆에는 속초 여객선 터미널이 있고 어시장이 있어 실제로는 속초 중심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다낚시를 좋아하는 율현이가 앞장서 고기를 골랐는데, 방어와 광어 놀래미,아나고 등이었다. 고기값은 한 바구니 가득 10만원이라 비교적 싼 편이지만 회를 장만하고 양념값, 매운탕 값을 합하면 일식집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자연산 활어를 먹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말이다. 백담사와 권금성 탐방으로 피곤한 일행들이 너무나 맛 있게 먹어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추가로 고기를 사서 회를 떠 올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끝 낼 수 밖에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앞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위의 정자에 올랐다가 바다위에 떠 있는 오색불이 영롱한 영금정으로 향했다. 영금정은 (귀)신이 가야금을 타던 정자라는 뜻으로 밤이라 잘 볼 수는 없었지만 주변 바닷가의 귀암괴석과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얼큰하게 취한 우리들은 어께동무를 하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좀 더 멋진 노래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겨우 부른 노래는 돌아와요 부산항 뿐이었다.
이렇게 못 생긴 고기를 보다니
저녁 9시경 용호가 예약한 사조콘도로 들어갔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아마도 설악한화 리조트에서 바라 보이는 남쪽 편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방 2개에 넓은 거실이 있는 48평형으로 일곱명이 쓰기에는 너무 넓다. 족히 열 다섯명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 아침 6시 출발이라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는 평소처럼 자정 마감뉴스를 다 보고 잠 들었으니 실제 잠든 시간은 4시간 정도 밖에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침 네시 반이 되기도 전에 모두가 일어나 시끄러운지라 더 이상 잘 수도 없었다. 김창섭은 어두운 새벽길에 산책을 나간다며 혼자 바닷가 까지 걸어가다가 6시에 출발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택시를 타고 돌아 와야 했으니 이번 행사의 일정계획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았다.
우리는 동명항 입구에서 물치탕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는데 말 그대로 물컹물컹하지만 담백하고 국물이 시원하다. 이곳의 특산이라는데 고기의 실물을 보고는 도저히 먹을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다. 고기 중에 가장 못 생긴 게 아구라지만 이건 뭐 얼굴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고기다. 어쩌다 신은 이런 물고기를 창조하였을까. 아무리 바다의 포식자라도 이 고기를 보면 모두가 재수 없다고 도망가 버릴 만한 종이다.
오색으로 가는 길의 해프닝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장 오색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색으로 가는 길은 자칫하면 혼동하기 쉽다. 설악산 남쪽에 오색이 있기 때문에 대포항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가면 오색으로 가는 길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 길은 설악동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앞에 가던 용호의 차가 한번 들어갈 듯 하더니 다시 양양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웃으며 뒤 따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 10여분을 달렸지만 오색방향의 도로 표지판이 나오지 않아 나 역시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용호의 차가 다시 유턴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처음에 들어가려던 설악동 방향으로 다시 들어 갈려 하는 것이 틀림 없었다. 내가 핸드폰으로 잘못 잡은 방향을 이야기해 주자 다시 양양쪽으로 차머리를 돌린다.
양양읍을 지나 인제. 구룡령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 하면 4차선 도로가 나온다. 이 길은 오색온천 거의 다 올 때까지 계속되다가 다시 2차선으로 환원된다. 그런데 잘 나가던 용호 차가 이번에는 깜빡이를 켜며 슬슬 헤매고 있었다. 아침부터 길을 잃고 해매더니 차까지 주인을 닮았는가. 간신히 오색온천 입구 주차장까지 차를 끌고 왔는데 악셀레이터를 밟아도 차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엔진 프로그램이 오작동을 일으킨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용호가 살신성인 정신으로 혼자 자동차 정비를 하기로 하고 우린 예정대로 등산을 강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정비가 끝나면 우리가 하산하는 방향으로 올라오기로 약속하였다. 우리 여섯명은 길상의 차에 짐짝처럼 실려 흘림골 입구로 향했다. 흘림골 입구 주차장은 정확히 4대만 주차할 수 있지만 그 앞 도로상에도 대여섯대 정도는 주차할 수 있어 실제로는 열대 정도 주차가 가능하다. 다만 늦게 가면 주차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왜 우리가 아침 일찍 출발한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흘림골에 관한 나의 상상력
나는 얼마 전까지도 흘림골을 사람이 들어가면 출구를 잃어버리는 미로와 같은 곳이란 뜻의 홀림골로 알고 있었다. 마치 양폭산장 인근의 죽음의 계곡이 출입 통제되는 것처럼 지난 수십년간 이곳의 출입을 통제한 이유도 그 이름에 원인이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 위치도 점봉산 방향이 아닌 한계령에서 뻗어나간 서북능선 밑인줄로만 알았다.이쯤 되면 한마디로 주제 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비약적인 상상력에 있어서는 금메달 감이 아닐까. 그러나 안내판은 내 상상력에 한방을 먹였다. 흘림골의 지명은 구름과 안개로 항상 흐려진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06년 자연 휴식년제에서 벗어나 개방이 되었지만 일반인들은 그 입구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 입구는 한계령에서 차로 약 5분 정도 내려와 한계 5교 못 미친 우측에 있는 탐방 안내소이다.
정말 오묘한 여심폭포
출발지의 해발이 약 650미터이니 관악산 정상 높이와 비슷하다. 이곳은 지난 06년 집중호우로 지형이 변할 정도로 계곡이 넓어지고 새로운 등산로가 만들어졌는데 입구에서 부터 나무계단으로 되어있어 오르기 편하다. 계곡을 따라 수백미터 오르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가파른 길이 나타나고 계속 오르다 보면 중간에 전망대가 있다. 나는 전망대가 앞에 보이는 암봉을 감상하라고 만들어 놓은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무심코 좌측을 보니 아, 거기에는 여자의 가장 은밀한 부분과 똑 같은 폭포가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이름은 형상에 걸 맞는 여심 또는 여신 폭포로 불린다. 어쩌면 그렇게도 절묘하게 여체의 비밀을 공개하다니. 정말 오묘한 자연의 조화다. 그 이름은 차라리 여근폭포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다소 외설스럽지만 말이다.
웅혼한 기상의 암봉과 기묘한 만물상
여심폭포에서 이번 산행의 최고봉 등선봉까지는 약2-3백미터의 숨가쁜 나무계단 오름이다. 1,014미터의 등선봉은 산 정상의 최고봉이 아니고 점봉산에서 한계령 계곡으로 뻗어내린 산 줄기중 하나일 뿐이다. 밑에서 올려다 보면 도저히 못 올라갈 것 같지만 암봉뒤로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어린아이도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다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곳에서 바라 보이는 주변은 온통 암봉과 만물상의 극치를 이룬다. 갖가지 형상을 한 암봉들이 마치 사열하듯 서 있는데 코끼리. 하마 등 별의 별 모양이 다 있다. 특히 장군의 뒷모습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석질이 무른 사암으로 보이는데 비오는 날이나 바람부는 날에는 낙석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특히 군데 군대 거대한 바위들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보여 더욱 그렇다. 비선대 상류가 천불동계곡이듯 이곳 이름도 흘림골 대신 만물동천이라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부터는 계속 하산길이다. 등선대에서 몇 구비 돌아오면 계곡이 흘러가는 곳이 험로라 막혀 있고 능선을 하나 넘어야 한다. 그곳을 넘으면 물의 천국 주전골 계곡과 연결된다.
주전골 계곡은 물의 천국
주전골은 예전 도적들이 가짜 주화를 만든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미가 빼어나고 수량이 많다. 계곡물은 한계령에서 내려오는 서북능선의 본류와 흘림골 방향의 물이 주전골 물과 합쳐져 오색온천 옆을 흐른다.
흘림골이 기암괴석의 암봉이 장관이라면 주전골은 폭포와 계류가 어우러진 계곡미가 빼어나다. 예전에 계곡을 따라 설치되어 있던 탐방로는 06년 집중호우에 유실되고 넓직한 나무다리와 계단이 새로 설치되어 있어 계곡과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폭포와 소가 있던 자리는 군데군데 돌과 흙으로 메워지고 없어 당시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주전골 십이폭포가 띁나는 지점에 고장난 차를 수리하고 역 산행을 시작한 용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지 한시간 남짓이지만 우리가 내려온 거리보다 훨씬 먼 거리를 올라온 것이다. 우리는 이산가족의 상봉처럼 서로를 반겼다.
다시 조금 내려가자 좌측에 용소폭포가 위치하고 있었다. 폭포의 물 줄기는 한계령 계곡의 본류이고 양양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다. 오색을 찾는 관광객들이 주로 오는 최종목적지가 이곳 용소폭포이다 보니 사람에 치여 걷기 조차도 힘들다. 우리 일행은 폭포 상류의 넓직한 계곡에서 잠시 쉰 다음 하산길을 재촉하였다.
1박 2일 장거리 산행을 마치고
오색의 상징은 약수와 온천이다. 약수는 계곡 암반 위 두 세군데서 솟아나는데 수량이 적어 다소 불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맛은 철분이 많아 쇳가루 녹인 물을 먹는 기분이다. 계곡 옆 암반에서 이런 물이 올라 온다는게 신기하다. 외관상으로는 바위위로 계곡물이 솟아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약수가 솟아나는 것은 암반속을 약수가 흐르는 별도의 공간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인근 식당가에서 산채정식으로 점심을 하였다. 가장 특색있는 음식은 옛날 화전놀이때 만들어 먹던 꽃잎을 얹어 놓은 전이었는데 그 모양이 예술적이다. 머루원액에 소주를 섞어 머루주를 만들어 산행을 결산하는 건배를 하였음은 물론이다.
오후 3시경 이번 행사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향했다.
돌이켜 보면 이번 장거리 1박 2일 산행은 하나의 새로운 시도였다. 아쉬운 점은 친구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이고 성공적인 것은 참가한 친구들의 만족도이다.
이번 산행으로써 우리 산악회의 09년 활동이 종료되었다.
내년 2월의 만남을 기약하며 두서없는 산행후기를 마친다.
*이번 산행후기는 다른 원고제출과 일정이 겹쳐 다소 늦었음을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더구나 분량이 많아 그 내용의 허술함도 이해 바랍니다.
첫댓글 혼자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고 후기까지 수고가 많았습니다.나는 흘림골 입구에서 내려오는 산행은 두번 했고 오색에서 꺼꾸로 올라가는 산행을해서 용소폭포위까지 가서 일행과 합류하여 하산하니 너무 좋았어요.참여한 모든 회원들의 성숙된 여행메너도 좋았습니다.
빠듯한 살림, 촉박한 일정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회장님 고생이 많았으며, 특히 차량 제공한 김용호, 박길상 회원님께 감사드리며 차량 고장으로 희생을 감수한 김용호 회원께 다시한번 깊은감사 드립니다
김회장은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산행출발에서 부터 중간경과 끝마무리까지 아주 사진을 찍듯이 기록을 했구려, 필력이야 이미 검증된 사람이니 차치하고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