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읽는 동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힘과 사랑을 얻을 데가
없을 것 같다"
별
가을입니다.
떡갈나무 한 그루 바람에 흔들리다가
도토리 한 알 떨어져 또르르 굴러가다가
그만 지구 밖까지 굴러가
별이 됩니다
풀잎소리
나의 혀에는 칼이 들어 있지 않다
나의 혀에는 풀잎이 들어 있다
내가 보고 싶은 친구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바람에 스치는 풀잎소리가
풀잎 하고 난다
나무
사람들은 한 해를 하루처럼 살지만
나무는 하루를 한 해처럼 삽니다
사람들은 나무에 기대어 자주 울지만
나무는 사람에게 기대어 울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버리지만
나무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합니다
밤하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별들이 하나씩 있지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그 별을
빛나게 해주는 일이야
밤하늘에 저렇게 별들이 빛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들이
빛나기 때문이지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민들레
민들레는 왜
보도블록 틈 사이에 끼여
피어날 때가 많을까
나는 왜
아파트 뒷길
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날이 많을까
소년
아빠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소년이 있어요
엄마가 짜준 앵두빛 스웨터를 입고
하루종일 눈사람을 만들다가
그대로 눈사람을 따라간 소년이 있어요
엄마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소녀가 있어요
저녁밥도 먹지 않고
밤새도록 별을 바라보다가
새벽별을 따라간 소녀가 있어요
아, 언제부터인지
나에게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소년이 있어요
혼자 울며 쓸쓸히 외갓집으로 가다가
돌멩이 하나 지구 밖으로 내던지며
가슴속에 고래 한 마리 키우는 소년이 있어요
친구에게
젖은 우산을 접듯
그렇게 나를 접지 말아줘
비 오는 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는 우산을 그대로 접으면
젖은 우산이 밤새워 불을 지피느라
그 얼마나 춥고 외롭겠니
젖은 우산을 활짝 펴
마당 한가운데 펼쳐놓듯
친구여
나를 활짝 펴
그대 안에 갖다놓아줘
풀 향기를 맡으며
햇살에 온몸을 말릴 때까지
그대 안에 그렇게
*110
오늘의 시인 정호승은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힘과 사랑을
얻을 데가 없을 것 같다" 고 했습니다.
또 "동심을 잃지 않고 사는 이는 맑은 물처럼
살 수 있다" 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시이은, 세상살이가 각박하니까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아 보다 순수한 인간으로 살아가야겠지에
동시를 쓰면서 스스로 그런 마음을 얻고 또 그 동시를
통해 독자에게 그런 마음을 되찾게 해주고 싶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른이 동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박덕규/문학평론가)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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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시 몇 개
하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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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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