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자는 노환이나 병으로 거동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주 영성체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한국지역교회법 제83조 1항)
본당으로 파견되는 사제는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를 잘 돌보아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목장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갖는다.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갓난아기에게 세례를 베풀고, 사랑하는 이들을 하느님의 인연의 끈으로 동여매어 주며, 죽음을 목전에 둔 영혼들을 위로하며 안식과 위로의 성사를 베푼다. 육적인 성장과 유지를 위해 밥을 먹고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것 못지않게 병자나 노약자들에게 영적인 성장을 위해 성체를 영(領)해주고 위로를 해 주는 일은 가정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중요한 사목중에 하나이다.
본당에서는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환자와 노약자들을 방문하는 ‘봉성체’가 있다.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이들이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돕고, 구역 식구들과 함께 가정에서 기도를 해주는 것이다. 본당에 부임한 이후로부터 그곳을 떠날 때까지 가정에 위로와 평화를 주는 봉성체를 하다가 점점 노약해 지는 어른들을 만날 때면 아직 생전에 계신 부모님 같아서 점점 병약해지는 모습이 안타깝고 마음이 저미곤 한다. 가끔 연로하신 할머니들께서는 너무 오래 살아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며 봉성체하는 신부에게 어서 하느님이 데려가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시지만, 아직 10년은 거뜬하다고 말씀을 드리면 눈을 흘기면서도 돌아서서 빙그레 웃으며 좋아 하신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인생은 짧은 시간이며, 개똥밭을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삶이란 소중하고 귀한 시간인 것이다. 이렇게 가정은 생명의 시작이면서 마침이 되는 생(生)의 현장이다.
전 본당이었던 봉담성당에는 앞으로 개발될 봉담 제2지구에 ‘내리’라는 곳이 있다. 대부분 농사를 짓는 평온하고 조용한 마을로 그곳에는 봉성체를 하시는 두 분의 할머니가 계신다. 94세 실비아 할머니와 90세의 안나 할머니다. 실비아 할머니는 눈이 어둡고, 안나 할머니는 잘 듣지를 못하신다. 두 분 할머니 댁은 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도무지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서로 만나신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하신다. 그래서인지 봉성체로 방문하는 신부에게 건강은 어떠신지, 밥은 잘 드시는지 이러저런 서로의 안부를 물으신다. 그런 할머니들을 한 번은 봉성체 때에 서로 만나게 해드렸다. 봉성체를 하기 위해 신부를 기다리던 안나 할머니는 신부와 함께 나타난 실비아 할머니의 두 손을 부여잡고는 놓지를 못하신다. 살아 있어서 이렇게 만나게 되니 너무나 반갑다고 눈물을 글썽이는 실비아 할머니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안나 할머니에게 크게 통역을 해 주는데, 두 분이 어서 가야하는데 너무 오래 살았다고 하느님께 보내달라는 말씀에 나도 그만 목이 메었다.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90노인들의 10년만의 재회는 그저 눈만 바라보며 서로 손을 꼭 부여잡는 것이 전부였지만 모두를 떠나보낸 힘없는 노구의 몸으로 살아가는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는 더없는 위로요, 용기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속에 뇌리에서 한 명 한 명씩 잊혀져갈 때, 자신도 떠나야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줄 알면서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현실의 시간 속에서 지금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고 흘려보낸다. 아직도 남은 시간이 많다고 느껴지는 우리에게 그저 살아있음이 고맙고 인생의 의미가 소중함을 깨우쳐 주는 봉성체는 삶의 가치를 새롭게 하는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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