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밤하늘
정 현 주
한 번 다녀오면 그 매력에 빠져 오랜 열병을 앓게 된다는 아마존을 체험하기 위해 푸에르토말도나도로 가고 있다. 페루 동부에 위치한 이 작은 도시는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지만, 영혼을 울리는 고요함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인류 마지막 원시지대로 통하는 관문이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광활한 삼림대는 푹신한 융단을 펼쳐놓은 것 같다. 빽빽이 들어찬 진초록의 열대우림 사이로 황토빛깔의 물줄기가 조화를 이루어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모습은, 아마존 포식자 아나콘다의 움직임보다 훨씬 더 사실적인 곡선미를 보여주고 있다.
말도나도 공항에 내리니 후덥지근한 열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마존에 발을 들였다는 설렘에 기분이 상기되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이 세상을 다 뒤져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자동차가 시선을 끈다. 화물트럭을 개조하여 만든 관광버스는 겉모습부터 희한하다. 갈대로 이엉을 엮어 얹은 지붕도 독특하지만, 화물적재 칸에 덜렁 얹혀있는 나무벤치가 더 해학적이다.
차창 하나 없는 난달버스에 몸을 싣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황톳길을 달린다. 몸으로 느껴지는 전율은 스릴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비포장도로라고는 하지만 흔들림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움푹 팬 구덩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트럭버스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이리 펄쩍 저리 펄쩍 날뛸 때마다, 나무의자에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내 엉덩이도 덩달아 춤을 춘다.
정글투어는 아마존의 시원인 '마드레 데 디오스' 강에서 유람선을 타면서부터 시작된다. 안데스산맥 동쪽 끝에서 발원된 이 강은 아마존 밀림에 퇴적되어 있는 황토 흙과 섞여 페루와 볼리비아를 지나는 동안. 수많은 지류들과 만나 아마존강 본류로 흘러든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물줄기는 거센 소낙비에 갑자기 불어난 도랑물 정도였는데, 가까이서 바라보는 강폭은 어마어마하다.
유람선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볼품없는 배가 천연의 밀림을 향해 출발한다. 하릴없이 너울너울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초라한 바지선에 삶의 희망을 걸고 사금을 채취하고 있는 원주민들의 하루벌이는 얼마나 되는지. 강 양편으로 끝없이 이어져있는 인적미답의 원시림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화재진압에 대한 유기적인 협조체제는 갖춰져 있는 건지. 아마존지역에 펼쳐져있는 삼림을 모두 벌채해 버린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어떻게 될 것인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뻘건 흙탕물 속에서 갑자기 악어 떼가 나타나 카누처럼 생긴 이 작은 선박을 들이받기라도 한다면, 식인물고기 피라니어가 잽싸게 달려들지나 않을지. 호기심이 도를 넘어 무섬증으로 변했을 즈음. 우리가 묵을 숙소가 언덕 위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롯지에 닿자마자 문명의 겉치레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워낙 밀림 깊숙한 지역이다 보니 TV나 전화는 고사하고 그 흔한 자명종 하나 없다. 그 대신 모닝콜을 신청하면 손님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관리인이 직접 깨워준단다.
밤을 잊은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동트기 무섭게 온갖 새소리가 새벽잠을 깨우는데, 인간 모닝콜이 무슨 소용 있으랴. 아무리 우둔한 사람이라도 눈을 뜨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정도로 앙칼진 팔색조의 지저귐은, 출근이나 등교시간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을 깨우던 내 목소리 같아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열대우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롯지는 창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 대신 방충망이 빙 둘러쳐져 있어 독충들은 얼씬도 못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오십호 남짓되는 방갈로 이름을 이 지역에 서식하는 희귀동물로 표시해둔 것이다. 우리 숙소엔 악어 표찰이 걸려있다. 출입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설 때마다 입을 쫙 벌리고 있는 악어 배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 들어 으스스해진다. 그런데도 자연과 하나 되어 밀림의 정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먼 길에 지친 나그네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아마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때 묻지 않은 자연일 것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영롱한 별빛과 한 폭의 그림 같은 일출과 일몰이 원시자연의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지만, 극성스럽게 달라붙는 모기떼는 외지인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아마존 지역에 살고 있는 짐승들도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그것보다는 정글트레킹 때 청바지 위로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붓던 모기떼가 훨씬 더 위협적이다. 이곳의 모기는 도시 모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기고 악랄하다.
밀림에 어둠이 깔린다. 피안의 음향처럼 들려오는 풀벌레소리가 길손을 유혹하지만 바깥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창가에 매달아 놓은 그물침대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말로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든다. 밤하늘의 별을 헤면서 낭만을 느낄 나이는 진정 아닐 터인데. 칠흑 같은 밤하늘에 총총 박혀있는 주먹만 한 별들이 내 마음을 한없이 들뜨게 한다.
은하수 사이에서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보석처럼 반짝이는 네 별자리가 이곳이 남반구임을 알리고 있다. 남십자성 옆에서 길게 꼬리를 물고 떨어지는 별똥별이 지구 반대편 파푸아뉴기니로 이끈다. 젊은 시절, 내일을 위한 푸른 꿈을 안고 원주민들과 어울려 보낸 삼 년간의 색다른 추억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그동안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하늘에 별이 떠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할 정도로 문명에 물들었지만, 보석가루를 뿌려놓은 듯 유난히 반짝이는 별들이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던 남국의 밤하늘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
쉼 호흡을 크게 해본다. 하늘 아래 이보다 더 청정한 공기가 또 있을까.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천연의 땅 아마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자원의 보고이자 생명의 원천임에 틀림없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공기의 사분의 일을 만들어 낸다고 하여 '지구의 허파', '지구의 공기청정기' 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그곳으로의 여행은, 마술과도 같이 오묘하여 더 행복한 세계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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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경남 진주에서 출생. 계간〔문예시대〕신인상 수상. 제1회〔에세이문예〕작가상 수상. 교보문고 주최 제1회 페밀리북 이벤트 최우수상 수상. 가족문집『느티나무』편집장. 한국문인협회, 부산수필문학회, 다스림, 남강문우회 회원. 수필집『모과향 깃든 정원』, 공저 가족문집『느티나무 그늘 아래』,『느티나무 18권』,『여인의 날개』,『한국에세이』등 다수
첫댓글 선생님의 글 솜씨는 어쩌면 그렇게 유려하십니까? 샛강에 맑은 물이 흘러가듯,그 속에 옥구슬이 굴러가듯 쉬임없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표현에 감동을 느낌니다.아마 그 원천은 많은 생활에서의 터득, 국내외의 많은 여행, 끊임없는 사색과 꾸준한 집필이 아닐까요. 저도 남미대륙과 마마죤 상류 마추피추지역을 보고 원시와 문명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남국의 별 서울에서 보는 별과 다르지요 현주님은 좋은 가정 아름다운 가족을 일구어낸 예쁜 주부입니다 가족문집 편집장도 지내고 가족여행 ( 집안 모두 ) 가족소풍 가족 가정방문 등 참으로 아름답게 살고있습니다 너무너무 이쁩니다 안아주고싶습니다 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