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BC 문화도시네트워크, 문화도시부산 2007. Summer 원고중]
2007년 4월 23일 월요일 부산종합고용안정센터라는 뜻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조사할 것이 있으니 센타로 내방하여 조사에 협조하여 달라는 내용이였다. 이 전화 한통이 잊고 지내왔던 아니 애써 잊으려고 노력하였던 지난 2년전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들어내어 주었다.
음악은 나에게 있어 신앙과 같은 존재였기에 나는 음악 앞에서 솔직하고 진솔하기를 원하며 살아왔다. 지난 20여년의 음악현장에서 충실하게 음악에 임했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였다. 문화가 살아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고 믿었기에 새로운 문화 실험에 많은 정열과 시간, 물질을 투자하였다. 합창단, 오케스트라, 오페라 지휘에서 개인작곡발표회를 비롯하여 그룹발표회, 소극장 운영, 무료시민 음악강좌, 방송국 진행자로 음악현장을 지켰다. 지난20여년의 음악현장에서 흘린 눈물과 기도의 결과로 2005년 4월 부산에 전국최초로 시민자치생태예술을 표방한 을숙도교향악단이 탄생한 것이다.
먼저 이 을숙도교향악단을 이해하기위하여서는 2004년 우리나라의 사회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2004년 우리사회 최대의 화두는 청년실업해소였으며, 이 청년실업해소를 위하여 국가는 청년실업해소특별법까지 제정하였고, 청년실업을 해소하기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특히, 음악예술인들의 실업은 다른 전공하는 학생들과 차원이 다르게 실업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은 잘 되어있지 않는 상황이였다. 이에 부산종합고용안정센터로부터 청년예술인 실업해소를 할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제공받았으며, 이 정보를 활용하여 청년예술인 고용창출과 사회복지 서비스를 통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2차 3차의 사회적 이익을 위한 교향악단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을숙도교향악단은 청년실업해소특별법에 근거하여 2004년 부산시가 청년실업해소대책을 노동부와 함께 만들어낸 New Job Plan에 근거하여 부산시의 지원을 받은 청년실업해소를 위해 정책적으로 만들어진 교향악단이였다.
을숙도교향악단은 부산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하였기에 처음의 모든 것은 어려웠다, 더욱이 우리나라 공직사회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힘들었다. 경직된 공직사회에서 처음 시도하는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부산종합고용지원센타의 적극적인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해주었다. 많은 서류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점검하여 주었고, 글자 한 자도 정확하게 지적하여 주었다. 이러한 열성 때문에 아주 강도 높은 감사를 수시로 받으면서도 불평할 수가 없었다. 부산종합고용지원센타에서 하는 일들이 처음 있는 사회적 사업임으로 모두가 정확하게 하나씩 짚어가자는 취지였기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였다. 이후 2007년 3월까지 부산종합고용지원센타의 관리감독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고마운 분들이였다. 음악만 하였던 나로서는 공직사회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같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잘 나눌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키웠다. 이러한 희망의 결과가 우리나라 최초로 호주 시드니 환경음악회까지 이어졌고, 나로서는 2005년4월 교향악단 창단과 함께 초대 지휘자로서 최선을 다하였으며, 더 좋은 발전을 위하여 2005년 7월 유한회사 을숙도교향악단으로 운영 주체가 넘어가기까지의 짧은 교향악단 생활이였지만, 음악으로 희망을 보았던 시간이였다. 이러한 사회 공익적인 단체가 2007년 4월에 걸려온 전화 속에서는 부정수급을 한 불법단체로 낙인 찍혀있는 상황과 더욱 놀라운 것은 처음 사업을 주도했고, 그렇게 열성을 다해 주던 부산종합고용지원센타에 의하여 부정단체로 낙인이 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피를 토하였다. 이는 분명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이러한 질문을 되새기면서 처음부터의 일을 하나씩 짚어가 보았다. 많은 의문과 질문들 속에서 들어나는 실체의 주요인은 하나였다. 교향악단 단원들의 채용시점을 놓고 부산종합고용센타와 을숙도교향악단간의 견해를 달리하는 것이였다.
부산종합고용센타 측에서는 단원을 뽑기위한 전형기간을 근로로 보았고, 을숙도교향악단은 전형기간으로 인정하는 것 이였다. 이러한 이견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라 쉽게 믿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도 높은 벽을 보았고 느끼며 힘든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공권력이라는 힘은 민간인이 넘기에는 너무도 높은 벽이다. 부산종합고용센타측에서는 교향악단 일부 단원들의 일부 진술을 바탕으로 단원들의 입사일을 직권이라는 공권력으로 일괄 직권 정정한 것이였다. 그리고는 일괄 정정에 잘못이 있으면 교향악단 관계자가 잘못된 부분을 찾아서 밝히라는 식이다. 만인 앞에 공고한 서류가 한순간에 무시되는 일이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속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다. 지난 2년여동안 정규직 총180여명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찾아가는 음악회를 150여회나 진행하는 등 일반시민들로부터 사랑과 애정을 받아오던 단체가 직권 정정이라는 공권력 앞에 을숙도교향악단은 무기력한 단체 부정 수급한 불법단체가 되어 버린것이다.
을숙도교향악단과 부산지방노동청 및 부산종합고용센타의 지난 시간의 과정을 살펴보면 두 단체간의 애정은 특별히 남달랐던 모습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부산종합고용지원센타는 을숙도교향악단이 2004년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의 취지에 어긋남이 없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였으며, 단적인 예로 2005년 10월 노동부 장관에게 보고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2.설립배경 에 ○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예술인을 대상으로 신규단원을 모집하여 예술단을 조직하고 정규적인 활동을 실시하여, 예능계 졸업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 ※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2003문화예술인실태조사’에서 조사 대상의 31%가 창작활동과 관련한 수입이 전혀 없고, 월수입 20만원 이하가 전체의 절반에 이름
○ 예술단을 기업형태로 운영하여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전업예술인을 4대보험과근로기준법을 적용받도록 하여 보호
○ 시민에 의한 ‘시민자치예술단’을 구성하여 생활 속의 예술을 지향, 문화예술의 저변을 확대
등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 직원의 급여는 우리부의 직장체험프로그램, 신규고용촉진장려금으로, 운영비는 사업주 출연금과 부산시의 문화예술단 지원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대부분 충당하고 있음을 분명히 명시하면서 홍보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으며, 이 보고서에는 교향악단의 문제점과 향후 발전 방향까지 꼼꼼히 기술하고 있다. 또한 부산종합고용센타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순시 중 을숙도교향악단을 구직자 특성 ․ 유형별 맞춤 서비스 정착으로 보고를 하여, 청와대 브리핑룸에서도 사례발표가 되었으며, 특히 부산종합고용지원센타가 적극적으로 을숙도교향악단을 지원한 공을 인정받아 민간기관에서 수여하는 2006년 한국메세나 대상 부분 <창의상>을 국가 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상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적 홍보하였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던 직원은 2006년 노동부 장관상까지 수상하였던 것이다.
을숙도교향악단의 창단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어디를 살펴보아도 부산종합고용센타의 노력과 수고가 없는 곳이 없으며,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고를 하루 아침에 부정 수급으로 인한 불법단체로 규정하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 결과는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지만 참으로 답답한 마음은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로마신화를 보면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신화가 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엘레우시스와 아테네의 중간의 길옆에 살면서 자기 땅을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 쇠침대 위에 누이고는 나그네의 몸이 침대보다 짧으면 몸을 잡아 늘여 침대 길이에 맞추어 죽이고, 몸의 길이가 침대보다 길면 긴만큼 잘라 죽였다. 우리는 이 침대를 이 신화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Procrustean bed)’ 및 ‘프로크루스테스 체계(Procrustean method)’라는 말이 생겨났다.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비유하는 관용구로 쓰이는 이 말이 왜 새롭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문화를 꽃 피우기 위해서는 아낌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투자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국가에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의 모습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을 보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음악의 길을 멈추고 싶다.
음악(音樂)은 나에게 희망(希望)이였고, 제도(制度)는 나에게 절망(絶望) 이였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소망이 있다면 부산종합고용센타의 보다 적극적인 해석과 부산시민들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애정으로 을숙도교향악단의 진정한 명예회복과 함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한다.
음악이 모든이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태어나길..
첫댓글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는 요즘 즐거움을 넘어 행복이라 하고싶네요
지금이라도 알게되어 천만다행이예요 나이 육십넘어 죽기전에 알게되면 너무 억울할것 같네요 ^^*
함께 즐거움을 누리니,
보이는 기쁨과 듣는 기쁨, 느끼는 기쁨이 더해져
올해도 풍성한 행복의 수확을 곳곳에서 보고 있습니다~^o^~
을숙도 문화회관에 관한글을 읽으며...
음악은 모든이에게 새로운 희망입니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을때 그 희망은 싹트고,
선한의지는 제도의 보호속에서만 열매맺을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한결같이 음악을 열어주시는 정교수님, 당신은 우리들의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