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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근현대 장기지속 5단계(178년)
1840 1919 1949 1978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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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5․4운동 건국 개혁개방 톈안먼사건
[1]단계: 1840-1919. 70년. 구(舊)민주주의 혁명시기, 진다이(近代. Jindai)
프리(pre)모던―모던―포스트모던
동서문화의 충돌, 중화주의(중국중심론)에 대한 성찰. 사유방식으로서의 중체서용
아편전쟁: 양무운동(과학기술. 표층)―청일전쟁: 변법유신(입헌군주제)․신해혁명(공화제)―5․4신문화운동(사상과 문화에 대한 성찰. 심층)
[2]단계: 1919-1949. 30년. 신(新)민주주의 혁명시기, 셴다이(現代. Xiandai)
국민당과 공산당: 통일전선(국공합작)과 계급투쟁(국공내전). 4․12정변(1927), 시안사변(1937), 일본 항복(1945)
[3]-[4]-[5]단계: 1949년 이후. 사회주의 개조 및 건설시기, 당다이(當代. Dangdai)
[3]단계: 1949-1978. 혁명적 사회주의 시기. 마오쩌둥 시기. 57년 체제
프리(pre)사회주의―사회주의―포스트사회주의
大과도기(사회주의)와 小과도기(1949-56), 노선투쟁: 혁명주의와 실용주의
쌍백(百家爭鳴 百花齊放)―>反우파투쟁―>대약진운동―>인민공사―>문화대혁명
[4]-[5]단계: 1978년 이후. 개혁개방시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포스트사회주의 시기. 덩샤오핑 시기.
사회주의 현대화,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사회주의 시장경제, 사회주의 상품경제
톈안먼/천안문 사건(1989): 급진 개혁과 점진 개혁의 갈등. 광주민중항쟁과 대조
남방 순시 연설(南巡講話): 개혁개방 2단계, 상하이 푸둥(浦東) 특구
온포(溫飽), 소강(小康), 하해(下海), 하강(下岡). 독백에서 다성악으로(류짜이푸)
[4]단계: 과도기.
[5]단계: 1989년 이후. 중국적 신자유주의(?) 시기. 6․4 체제.
2. 중국 근현대사와 작가 루쉰(魯迅)
1) 半봉건 半식민지의 역사
아편전쟁(1840)―청일전쟁(1894)―신해혁명(1911)―5․4운동(1919)―공산당 창당 (1921)―4.12정변(1927)―좌익작가연맹 결성(1930)
2) 反봉건 反제국주의의 주체
출생(1881)―난징 유학(1898)―일본 유학(1902)―의대 입학(1904)―의학에서 문학으로(1906)―문예 잡지 실패(1907)―귀국(1909)―중학교 교사(1910)―1911부터 1918까지 침묵―「광인 일기」(1918)―「아큐 정전」(1921)―사상 전변(1927-28)―사망(1936)
3) 『天演論』, 『신청년』, 베이징여사대 사건, 혁명문학 논쟁, 좌익작가연맹, 두 가지 구호 논쟁 등
3. 불멸의 루쉰
20세기 중국에서 루쉰은 불멸하다. 5·4운동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고 1930년대 좌익문학에서도 결락될 수 없다. 사회주의 30년 동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개혁개방 초기의 금구를 타파하는 데에 루쉰 연구가 돌파구 노릇을 했다. 루쉰은 마오쩌둥식 혁명에서도 필수적 존재였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극복하는 데에도 유용한 방법이 되었다.
루쉰의 삶과 정신 역정은 그 결과처럼 단순하지는 않았다. 20세기의 과도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은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신(新)과 구(舊)의 갈등 속에 있게 하였고, 동서 교류라는 시대적 특징으로 인해 서양에 대한 지향과 배척의 사이에서 배회했다. 게다가 좌와 우의 극한적 대립은 후기 루쉰에게 선택을 강요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현실적 선택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는 경계인이었고 ‘역사적 중간물’이었다.
전 베이징대학 중문학부 교수이자 루쉰 연구의 권위자인 첸리췬(錢理群)은 “루쉰-선구자의 영혼을 찾아서”에서 루쉰 정신을 ‘반역’, ‘탐색’, ‘희생’으로 요약한 바 있다(錢理群, 1987). 루쉰의 반역은 도저한 회의주의와 부정 정신에 기초했고 그 탐색은 창조 정신과 개방 정신에 연결되었다. 그리고 루쉰의 희생정신은 그를 ‘중국혼’ 또는 ‘강골’로 추앙받게 만든 관건이었다.
영어권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학자로 인정받는 왕후이(汪暉) 또한 루쉰의 자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석사학위논문이 “루쉰과 아나키즘”(1984)이었고, 박사학위논문이 [절망에의 반항](1988)이었다. 왕후이는 박사논문에서 루쉰의 소설을 세 가지 주제 의식을 가지고 연구했다. 첫째, ‘역사적 중간물’, 둘째, ‘절망에 반항하는 인생철학’, 셋째, 루쉰 소설의 서사 원칙과 서사 방법이 그것이다. 그는 ‘역사적 중간물’을 해부함으로써 창작 주체의 복잡한 문화심리 구조와 그것이 소설에서 구현되는 측면에서 루쉰 소설의 정신적 특징을 인식했다. ‘절망에 반항하는 인생철학’ 부분에서는 루쉰 소설의 이성 계몽주의 구조 속에 담긴 개체 생존에 대한 논구와 ‘절망에 대한 개체의 태도’를 분석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루쉰이 어떻게 주체의 정신 구조와 그 내재적 모순을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묘사와 융합시켰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왕후이, 2014:18∼19).
왕후이는 이후 사상사 연구로 방향을 전환한 후에도 루쉰 연구의 문제의식이 그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근대성의 역설’이다. 특히 1907∼1908년경 루쉰의 사상과 근대성에 대한 역설적 태도가 그것이다. 그러기에 [소리의 선악]과 [아Q 생명의 여섯 순간] 등 루쉰의 텍스트를 정독하고 해설한 책을 펴낼 수 있었을 것이다.
4. 키워드로 읽는 루쉰
1) 정자(掙扎)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식인에게도 루쉰은 줄곧 화두였다.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는 전후 일본의 무기력한 지성계를 타개하기 위해 루쉰을 가져왔고, 한국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과 신영복 선생(왕스징, 2007 참조)도 독재정권의 억압에 맞서면서 끊임없이 루쉰의 삶과 사상을 언급했다. 그뿐만 아니다. 한국의 중국 현대문학계에서 1990년대 초 이데올로기 금구를 뚫고 나올 때 선봉에 섰던 것도 루쉰 연구였다.
유세종의 [루쉰식 혁명과 근대 중국]은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고독한 반항자, 영원한 혁명가 루쉰’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유세종은 중국의 혁명적 지식인 루쉰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루쉰식 혁명’이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루쉰의 실천 방식인 ‘정자(掙扎)’에 주목한다. ‘필사적으로 싸우다’의 의미를 가진 이 말을 루쉰 실천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정자’했기에 ‘철로 된 출구 없는 방’에서 외칠 수 있었고 절망에 반항할 수 있었다. 루쉰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정자’했다. 그리고 ‘정자’의 근원에는 생명과 평등을 향한 인본주의적 가치 지향과 평민의식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혁명의 전망이 불투명한 ‘지금 여기’에서 루쉰식 혁명의 의의는 무엇일까? 루쉰이 언급한 인문학적 성격, 혁명의 출발지로서의 개인, 혁명의 일상성 등은 과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21세기로 걸어 들어 온 루쉰’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최근 몇 년간 학계가 시끄러웠다. 사라져간 혁명의 시대에 마오쩌둥과 루쉰이 계속 논의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2) 철방에서의 외침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외침』 「서문」. 『루쉰전집』제2권)
3) 비껴서기(橫站)
왕샤오밍은 최초의 학술 논문을 루쉰에 대해 쓴 이래 줄곧 루쉰을 손에서, 마음에서 놓지 않았다. 루쉰의 삶을 ‘가시덤불 속의 모색’으로 유비하면서 자신도 그가 갔던 길을 서슴지 않고 선택했다. 왕샤오밍이 보기에 루쉰의 삶은 일반인이 감히 ‘직시할 수 없었던 삶’이었다. 왕샤오밍 본인도 그러한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기에 루쉰 연구서의 표제도 『가시덤불 속의 모색(刺叢里的求索)』이라 했고, 스스로도 현대문학에서 사상으로 그리고 다시 문화연구로 자신의 연구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왔던 것이다.
왕샤오밍의 정신세계와 학문 생애를 구축하는 데 루쉰은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그의 첫 논문도 루쉰에 관한 글이었고, 초기 저작 목록에서도 루쉰 연구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왕샤오밍의 루쉰 연구는 시대 상황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저 황당한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 내 나이 열일곱 무렵 ‘지도자’의 전집 외에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던 저작 전집은 오직 [루쉰전집]뿐이었다”(왕샤오밍, 1997:5). 한창 향학열이 불타던 문학 소년에게 허락된 유일한 읽을거리는 [마오쩌둥 선집]과 [루쉰전집]뿐이었고, 왕샤오밍은 닳아 헤져 버릴 정도로 루쉰을 탐독했다. 다행히도 루쉰의 사상은 깊이 있고 복합적이었으며, 문체 또한 생동감 넘치고 힘이 있어 자연스레 그의 정신세계로 스며들었다.
이후 왕샤오밍의 전 생애에 걸쳐 루쉰은 삶의 지표가 될 정도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마비된 국민정신’과 ‘우민’에 대한 루쉰의 성찰, 지식인 비판, 그리고 헌신 정신 등은 인생의 사표(師表)가 되기에 손색없는 덕목들이었다. 특히 사회를 직시하고 인생을 직시하는 루쉰의 자세는 일반인이 그의 인생을 함부로 직시할 수 없게 만드는 위엄을 발휘하고 있다고, 왕샤오밍은 쓰고 있다. 왜냐하면 실패를 포함한 자신의 인생을 직시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루쉰의 삶을 통해 자각했기 때문이다. 루쉰의 ‘절망에 대한 반항’은 바로 그런 직시에서 비롯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왕샤오밍의 화두 중 하나인 ‘비껴서기’ 또한 그런 직시를 통해 깨달은 삶의 지혜다.
5·4신문학운동 이후 1920∼1930년대 중국의 좌익문단은 “초기 공산주의자들을 통해 프로문학이 대두되고, 1927년 대혁명 실패 이후 혁명문학 논쟁을 통해 프로문학의 이념이 확립되며, 그 결과 좌익작가연맹(좌련)이 결성된다. 좌익작가연맹 결성 이후 바로 문예대중화 논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홍석준·임춘성, 2009). 혁명문학 논쟁에서 창조사와 태양사의 젊은 작가들은 루쉰과 마오둔(茅盾)을 비판했다. 루쉰은 젊은 좌익작가들의 비판을 적극 수용하며 다시 한 차례 사상적 전변을 거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세계로 들어섰다. 이후 창조사·태양사의 작가들과 함께 ‘좌익작가연맹’을 결성해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루쉰은 기묘한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타고난 전사(戰士)였던 루쉰은 당시 우익 문인 천시잉(陳西瀅), 량스추(梁實秋) 등과 열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동료라고 생각했던 좌익작가들의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양지윈(楊霽雲)에게 보낸 편지(1934.12.15)에서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모리배 따위들은 무서울 것이 못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확실히 말과 속마음이 다른 그런 ‘전우’들인데 그것은 방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소백(紹伯) 따위들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뒤를 방어하기 위하여 나는 모로 서 있어야[橫站] 하므로 정면으로 대적할 수도 없거니와 앞뒤를 두루 살피자니 각별히 힘이 듭니다. … 나는 때때로 많은 기력이 부질없이 허비되는 것을 원통히 여기며 이 힘을 정당한 일에 쓴다면 얼마나 보람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루쉰, 1991:235∼236)
편역자는 횡참(橫站)을 ‘모로 서기’로 번역했는데, 이는 ‘비껴서기’와 비슷한 말이다. 또 여기서 사오보(紹伯)는 좌련 지도 그룹의 일원이었던 톈한(田漢)의 필명으로, 루쉰을 공격한 이다. 이에 대해 루쉰은 해명과 함께 이렇게 응대했다. “만약 한 진영 내의 사람으로 변장하고 배후에서 나에게 칼을 찌른다면 나는 뚜렷한 적에 대해서보다 갑절의 증오와 멸시로 그를 대할 것입니다”(루쉰, 1991:237)
루쉰은 특히 동인(同人)들이 익명을 사용해 자신의 등 뒤에서 암전(暗箭)을 날리는 행위에 분개했다. 이는 사람 마음을 낙담시키고 오싹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도록 그들에게 받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동지(同志)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받은 배신의 상처는 쉽게 아물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기에 루쉰은 적과 싸우는 동시에 전우들에게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비껴서기’의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왕샤오밍의 비껴서기
루쉰의 ‘비껴서기’는 1930년대 당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격렬할 때, 본인은 좌익 진영에 서 있으면서 우익과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익과도 싸우고 좌익에 대해서도 방비하면서 고안한 전술이었다. 우리는 이 전술이 루쉰의 전체 삶과 사상에 관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고(古)와 금(今) 사이에, 중국과 서양 사이에 그리고 신(新)과 구(舊) 사이에 비껴서 있었다. 루쉰은 ‘비껴서 있는’ ‘중간물’이었다”(鈞雪翁, 2014). 양 극단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 극단을 경계하는 자세, 이는 전사 루쉰의 일생을 관통한 덕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왕샤오밍은 70여 년 전 루쉰이 자신의 경험에서 개괄해낸 ‘비껴서기’가 21세기 인류의 복잡한 상황에 대해 성찰을 예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지식인들의 공통 운명에 대한 축소판임을 깨닫는다. 그는 [직면할 수 없는 인생: 루쉰전] 개정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어지러운 시대에 처해 당신은 때로 다음과 같이 느낄 것이다. 보기에 매우 복잡한 많은 논설들이 사실은 모두 어떤 것을 은폐하거나 회피하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얼버무리거나 터무니없고 전면적인 것 같지만 저의가 의심스러운 논설의 진흙탕에 빠져 사회가 더욱 기울어져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 거리낌 없이 그 진흙탕에서 나와 단도직입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비록 거칠고 단순하지만 짙은 안개를 헤치고 급소를 찌르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 당신은 또 강렬하게 느낄 것이다. 더욱 복잡해지는 이 문화적·사회적 상황에 직면해, 특히 1980년대 대부분의 시간처럼, 한 가지를 붙잡고 전력을 투입하는 것, 심지어 ‘심층적인 일면’을 붙잡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은 너무 부족한 것이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고 가능한 서로 다른 방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민감한 지식인들은 사실상 이미 루쉰이 말한 ‘비껴서기’의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비껴서기’의 의미는 결코 ‘적군과 아군’의 확인에 국한되지 않는다.(王曉明, 2013:183∼184)
진흙탕의 현실을 인지하고, 그런 사실을 은폐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급소를 찔러 출로를 헤쳐 나가는 것은 전사의 행동 양식이다. 그러나 진흙탕의 현실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자랑스럽게 나아가 부서지는 것’은 장렬할지는 몰라도 진흙탕 현실을 해결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진영 테제가 무너지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로, 그리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변하기도 하는 지구화 시대의 날로 복잡해지는 문화적·사회적 상황에 직면해, 단순히 진흙탕에서 빠져나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복잡한 현실에 단순하게 대응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닌 것이다. 이제는 경계가 모호해진 진흙탕뿐만 아니라 그 바깥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살필 수 있는 ‘비껴서기’ 자세가 필요하다. ‘비껴서기’는 ‘나그네 정신’, ‘절망에 반항’, ‘역사적 중간물’ 등과 더불어 루쉰 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왕샤오밍은 루쉰의 ‘비껴서기’를 전유하면서 거기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의 동시다발적 투쟁과 관련된 지식인론을 접합시켰다. 사이드는 1993년 행한 BBC 방송의 리스 강좌(Reith lecture)의 강연 내용을 단행본으로 묶으면서 그 서문에서 ‘지식인의 과업’을 “인간의 사고와 의사전달을 극도로 제한하는 진부한 고정 관념들과 환원적 범주들을 분쇄하는 것”(사이드, 1996: 16)이라 정의했다. 아울러 지식인들이 “각자 자신의 언어, 전통, 그리고 역사적 상황을 지닌 동일 국가의 구성원들”이고 ‘학문기관, 교회, 전문직업인 조직’ 등의 ‘제도들’에 어느 정도 ‘종속’되고 어느 정도 ‘적대적’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우리 시대에는 세속적 권력이 상당한 정도로 지식인 계층을 흡수고용(co-op)하고 있다”(사이드, 1996: 24)고 평가한 것은 루쉰과 왕샤오밍의 비껴서기가 그런 상황에 유효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루쉰의 ‘비껴서기’를 전유(專有)한 때로부터 12년이 지난 시점에 ‘비껴서기’는 더욱 절실하다. 지구화 시대에 단면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최근 10년의 사유와 글을 ‘비껴서기’라는 말로 개괄하면서 자선집의 표제로 삼았다.
왕샤오밍은 외롭지 않다. 그에게는 최소한 선구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갔던 길은 분명 자신이 갈 길과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루쉰이 그랬던 것처럼, 왕샤오밍도 나그네 정신을 가지고 비껴서기의 자세로 자신의 길을 완주할 것이다.
4) 환등기 사건
레이초우는 『원시적 열정』의 시작을 "루쉰의 유명한 전향"(20)으로 시작한다. 루쉰은 첫 번째 소설집 『외침(吶喊)』의 「자서」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미생물학 교수법이 지금은 어떻게 발전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무렵엔 환등기를 이용해 미생물의 형상을 보여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떤 때는 한 시간 강의가 끝나고 시간이 아직 남았을 경우 선생은 풍경이나 시사에 관한 필름을 보여 주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때는 바야흐로 러일전쟁 당시였으니 전쟁과 관한 필름이 많았음은 물론이다. 이 교실에서 나는 언제나 내 학우들의 박수와 환호에 동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번은, 화면상에서 오래전 헤어진 중국인 군상을 모처럼 상면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가운데 묶여 있고 무수한 사람들이 주변에 서 있었다.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몽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해설에 의하면, 묶여 있는 사람은 아라사[러시아]를 위해 군사기밀을 정탐한 자로, 일본군이 본보기 삼아 목을 칠 참이라고 했다. 구름같이 에워싸고 있는 자들은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구경꾼이었다.
흔히 '의학에서 문학으로의 전변'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에피소드를, 초우는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한다. "포스트콜로니얼한 ‘제3세계’에서 새로운 종류의 담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테크놀로지화된 시각에 관한 담론", "영화라는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는 구경거리(spectacle)의 힘을 경험한 일에 대한 루쉰의 설명"(21)이라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새롭게 출현하고 있던 ‘근대성’이, 특히 시각에 기초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초우의 부언을 읽으면 수긍이 갈 수밖에 없다. 특히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글에서 특히 영화에 대해 논하면서 예술의 효과를 충격이라는 말로 묘사한 부분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젊은 루쉰에게, 충격을 주고 방향감 상실을 초래한 것은 희생자를 엄습한 파괴, 구경꾼들의 냉담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근대국가로서의 중국에서 그런 것들이 갖는 의미 같은 것(22-23)/ 시각과 권력의 관계는 포스트콜로니얼한 비서양사회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영화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의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루쉰의 반응은 시각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지표(指標)(23)
루쉰 자신이 관객이면서 관찰자 위치에 있다는 사실/ 다른 구경꾼 집단 사이의 복잡한 관계―즉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거기에 모여 있는 방관자, 살인과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슬라이드 화면으로 보고 있는 루쉰과 그의 급우들 그리고 영상을 보는 자기자신 및 타인을 관찰하는 작가로서의 루쉰 사이의 관계(23)
5) ‘나그네 정신’, ‘절망에 반항’, ‘역사적 중간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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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스징 지음, 유세종·신영복 옮김(2007). ��루쉰전: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리라��. 다섯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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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sina.com.cn/s/blog_50a71df50102e3q6.html (검색: 201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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