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후배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농산 출신 43회 조상수입니다. 지금은 충남 천안에 살고있으며
마라톤과 잡글쓰기를 취미로 하고있습니다.
마라톤을 하면서 자연에 관한 글쓰기하는 것을 좋아하여
가끔은 잡지에 채택되기도 하였습니다. 위천중학교 43회
카페 운영자이기도 하구요.
이 글은 위천중학교19회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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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망태 그리고 추억 한조각.
우리 고향은 물이 흔한 고장이라 논농사에서 저수지나 방죽 보다는 보를 더 많이
활용하였다. 보란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하천에 둑을 쌓아 만든 저수시설인데
아마 보를 모르는 친구는 없을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황산보가 있다. 황산보는 월성에서 내려오는 성천과 소정에서 내려오는
갈천의 합수머리 행기숲 근처에 있는데. 위천 황산(유재옥, 신상기네 동네) 사람들이
수승대 인근의 들판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보다. 그러니까 황산사람들의 생명수인데
유재옥, 신상기 친구는 이 황산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나 할까? 의문스럽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어린시절 이 황산보에서 멱감고, 물고기도 잡고, 소 먹이며 여름을 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면서 수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물고기 잡는다고 둑이라도 망가뜨리면
황산의 무서운 아쩌씨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는데 그 무서운 아저씨가 혹시 유재옥 친구의
아버님은 아니었을까, 오늘 그 추억의 한 조각을 꺼내 보려 한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꼴 망태를 어깨에 메고 우리 집 누렁이의 식량인 풀을
찾아 들판에서 들판으로 헤매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어느 집을 막론하고 소 한두 마리는
키웠으므로 들에는 풀들이 많지가 않았다. 풀들이 자라기가 무섭게 어느 누가 베어갔는지
다음날 가보면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기 일쑤였다.
억세게 운수 좋은 어느 날, 한동안은 어느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듯 무성한 풀밭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때에는 정말이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횡재한 기분이 들곤 하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 만큼이나 기쁨이 컷 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
한번도 복권에 당첨되어 본 일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 날은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도 꼴 망태가 가득 찬다.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게 되지만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일찍 들어가 보았자 집에서는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을게
뻔 하였으니까. 그 시절 농촌에서의 일이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나는 꼴 망태를 논두렁에
내동댕이쳐 놓고 근처의 황산보로 향했다. 그리곤 보의 둑 위에 오두커니 쭈그리고 앉아 수면
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즐기곤 했다.
황산보의 수면 위는 참으로 볼게 많았다. 수면 아래 저 깊은 곳에서는 새하얀 뭉게구름이
서서히 흘러가고 구름속 사이사이로 까만 새끼물방개가 비호처럼 이리저리 날쌔게
헤엄치고 있었다. 한참동안 정신 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어질어질 현기증이 일어나
얼굴을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하늘에서도 물방개가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갈대 사이사이로 작은 물풀들이 자라고 그 사이에서 물거미들이 물위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었다. 물거미의 달리기 실력은 가히 챔피언 급이다. 다리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또르르
달려가는 것 등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아참! 또 한가지가 있는데. 수면 위를 보면 이곳 저곳 여러 종류의 물풀들이 자라고 있다.
뾰족이 솟아 오른 물풀 위에 어디선가 실잠자리 한 마리 날아와 앉을라치면 어느 틈에
물 속에서 종류를 알 수 없는 물고기 한 마리가 순식간에 잠자리를 낚아채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었다. 짧은 한순간에 생과 사가 뒤 바뀌어 버리는 그런 비운의 잠자리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중의 하나였다.
여하튼 물고기에게 잡혀 먹힌 억세게 재수 없는 잠자리만 빼면 이런 저런 작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황산보 물속은 너무나도 한가하고 평화로운 오후다.
그러한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가슴속에서는 언제부턴가 한줄기 심술통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몹시 가난하여 내가 학교에 갔다 와도 잠시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구슬치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며 재미있게 놀기도
하는데 나는 왜 허구 헌 날 일만 해야하나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며 황산보 속의
한가함이 은근히 못마땅해 지면서 심술이 동하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나는 벌떡 일어나 주위에서 커다란 흙덩이 하나를 주워들어 물속에 힘껏
던져 넣고 만다. 그 순간 보속의 평화는 깨져버리고 만다. 잔잔하였던 수면은 요동을
치고 맑았던 물속은 흙덩이로 인해서 뿌옇게 변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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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게 노닐던 물방개와 물거미는 어느 곳으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게 되고,
그렇게 죄 없는 황산보에 된통 화풀이를 하고 나서는 꼴 망태를 등에 메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곤 했다. 반 뼘도 남지 않은 서쪽하늘의 붉은 태양은 힘없이 걸어가는
나의 그림자를 마을 앞 동구 밖까지 길게 길게 드리워주곤 했었지
(2007년 6월 21일. 조상수)
첫댓글 !!!!!!!!!!!!!!!!!!!!!!!!!!!!!!!!!!!!!!!!!!!!!!!!!!!!!!!!!!!!!!!!!!!!!!!!!!!!!!!!!!!!!!!!!!!!!!!!너무 기쁘고 맘이 맘이 .........일단 물러갑니다.너무기뻐서.....벅차서......후배님의 등장이....진정되면 다시 와서 올린글들 댓글 달겠습니다.....고맙습니다
우리가 다 겪고살았던 일들을 어쩜 이렇게 맛깔스럽게 표현을 했는지....침이 꼴깍 넘어가네요...양념이 잘되니 맛도 나고,간도맞고 보기또한 좋으니 ..........추억으로 엮어주신 명품같은글 즐감하고 기쁨가득안고 나갑니다....감사
감사합니다.
어릴때 부터 자연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소한것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관찰하고, 깊게 생각하는 습관이 오늘날 후배를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또라이가 걸어온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꼴망태"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 보네요, 어린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주니 이렇게 고마울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