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금세 도랑에는 붉은 흙탕물이 콸콸 흐른다.
이 흙탕물을 유리컵에 담는다.
처음에는 뿌옇던 컵속 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맑아진다.
마침내 물은 투명해져
컵 바닥까지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투명'이란 의미를
시각화하면 이런 정도쯤 되지 않을까.
투명함은 우리 사회에서
긍정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분야가
한국 양궁이라고 볼 수 있다.
투명한 국가 대표(이하 국대) 선발을 통해
30년 넘게 세계 최강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양궁 국대 선발 과정은
학연ㆍ지연ㆍ외압ㆍ반칙 등
이른바 '빽'이 통하지 않는다.
전국 성인 남녀 선수(1200~1400명 정도)는
자신의 실력만으로 경쟁해서
'국대'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타 종목과는 달리
양궁은 스테디 스타가 없다.
'돈의 힘'이 작용하는 사교육 없이도
공교육만으로 국대가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 종목이 양궁이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분야.
이런 점에서 한국 양궁의 힘은
경쟁의 룰이 자꾸만 가진 자와 특권층으로
기우는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불투명한 한국의 민낯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 해 12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55점,
조사대상 175개국 가운데 43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좁히면
34개 회원국 중 27위를 기록했다.
'한국=부패국'으로
세계의 창에 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선진국 국격에는 한참 모자란다.
비록 스포츠 분야이기는 하지만
세계속의 한국 양궁은 선진국의 면모와
위상을 갖췄다고 보여진다.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유럽국가 양궁 지도자와
선수들이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때
한국선수단을 보고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때 첫선을 보인 이후
유럽선수들의 전유물이었던 양궁.
1963년 국제양궁연맹에 가입하고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이란 국제무대에
첫 등장한 한국양궁이 이젠 유럽선수들에게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지존'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일 게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 대기업과 정부 각 기관들은
앞다퉈 한국 양궁 배우기에 열심이다.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선수들이 개인ㆍ단체전을 석권한 이래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특별한 비결'을 찾으려는 것이다.
전문가의 재능기부로 추진되고 있는
전남일보 연중 공공캠페인 공프로젝트에서는
4월 소주제를 '경쟁의 본질-투명성'으로 정했고,
오늘의 한국 양궁을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한
서거원(60) 대한양궁협회 전무이사
(인천 계양구청 양궁팀 총감독)를 만나
그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아직도 여전히 소득양극화와 기득권이
짜고 치는 담합, 경쟁이 시작하기도 전에
결말이 보이는 게임이 판치는 우리 사회에
'투명바이러스'가 널리 전파되기를 기대하면서….
다음은 공프로젝트팀이 지난달 26일과 27일
인천 계양구 양궁장과 태릉선수촌에서 가진
서 전문이사와의 일문 일답 내용.
-올림픽 양궁대표팀 감독만 두 차례 등
지도자 경력 30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를 꼽는다면.
△1972년 뮌헨올림픽 때 양궁이 정식종목이 됐고,
한국 양궁은 1984년 LA올림픽 때 대표팀이
처음 출전해 여자는 금ㆍ동메달을 확득해
정상에 올랐지만 남자는 중하위권에 그쳤다.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88서울올림픽 때
양궁사상 처음으로 남녀 모두 정상을 차지함으로써
양궁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돼
가장 의미가 컸다고 생각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양궁 국가대표 선발과정이 인터넷에 공유되면서
왜 한국 양궁이 세계 최정상인지
이해가 됐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국대를 어떻게 선발하고 있는가.
△복잡한 과정이다 보니
2015년 국가대표선발 예를 들어보겠다.
고등부ㆍ 대학부ㆍ일반부 남녀 선수 각각
600~700명은 재작년 10월부터 작년 8월까지
전국대회 6개 성적을 종합해 전체 랭킹을 매겨
120위까지만 지난해 9월 열린
종합선수권대회 출전자격을 준다.
이 대회는 국대 1차 선발전을 겸하고 있다.
144발의 화살을 쏜 기록으로 64명으로 압축한다.
이어 10월 말 2차 선발전을 통해 32명으로,
11월 초 3차 선발전에서 토너먼트 경기방식을 통해
24명에서 16명으로, 또다시 8명으로 압축한 뒤
2014년 국대 8명이 참여한 가운데
최종선발전(지난달 12~23일)을 갖는다.
이 대회에서
올해의 8명(남녀 각각)의 국대가 선발된다.
이들 국대들은 이달 20일까지
1ㆍ2차 평가전을 통해 순위를 정하고 ,
1~3위는 7월 초 광주에서 열리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와
7월말 세계선수권대회와 같은 메이저대회에 출전하고,
나머지 순위 선수는 아시아선수권대회 등에 나간다.
- 그렇게 복잡한 선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뭔가.
△선수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10개월 동안 10여 회 걸쳐 선발전을 치르는 것은
공정성을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다.
2~3회 선발전을 할 경우 이 과정에
선수 봐주기나 짬짜미가 이뤄질 소지가 있지만
장기간 여러번 시합이 열리게 되면
이런 요소가 개입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
선수 자신들이 선발전 내내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자기 컨디션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만 국대에 선발될 수 있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이전 대회 금메달리스트에 대한 가산점이 부여되는가.
△스타급 선수에게 어드벤티지(이점)는 없다.
베테랑 선수건 무명 선수건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한다.
작년 금메달 두 개 딴 선수는 그 해의 최고 선수였고
올해의 최고 선수는 올해 선발전에서
가장 잘 쏜 선수라고 인정할 뿐이다.
-한국 양궁 역사는 40여년 정도 된다.
도입 초창기때 국대 선발 과정에
외압이나 청탁 등의 사례가 있었는지와
어떤 계기로 선발 절차가 공정하게 바뀌었는지.
△몇몇 선수들에 의해서나 또는 감독의 개인적 의견이
반영돼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하던 선수가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런 병폐가
혁신되지 않으면 한국 양궁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고,
대표팀 지도자나 협회 운영 총사령탑을 맡게 되면
이것 하나만큼은 바로잡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이 실행돼
오늘날 한국 양궁 경쟁력의 토대가 마련됐다.
대한민국 운동종목 중 사교육 없이
공교육만으로 국대가 될 수 있는 종목이 양궁이다.
사교육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고,
사교육을 한다는 것은 파벌이 형성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모든 문제의 불씨가 잉태된다.
-양궁 국대 선발의 투명성이 어떤 긍정적 효과,
즉 선순환을 이끌어낸다고 보는가.
△선수와 지도자 모두에게 공정한 선발 체계가
선수와 지도자 모두에게
성장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늘 구멍을 뚫고 태극마크를 단 선수는
높은 자부심을 갖지만
결코 스타 의식을 갖거나 자만할 수가 없다.
언제든 방심하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대에서 탈락한 선수도 조금만 노력하고 보완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선수들 스스로가 자신을 채찍질하며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지도자들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수를 선발하는 것만이 세계 정상 자리를
수성하는 비결이라고 여기고 있어
원칙 준수에 최선을 다한다.
-공정한 선수 선발 원칙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원칙이란 공정하게 적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선수들의 조직에 대한 무한 신뢰는
여기서 나오는 까닭이다. 양궁 집행부는
전문가 자문을 거쳐 마련된 선발 원칙을
전국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배포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했을 땐 100% 수용해
반영한다. 선발 방식을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공정한 경쟁룰이 만들어지도록 한다.
-올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우여곡절 끝에 제정됐는데 ,
이 법이 한국 사회를 깨끗하게 만드는데
얼마나 기여할 것으로 보는지.
△좋은 법이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그 법을 얼마나 공정하게 집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엄격하게,
일부 특권층에게는 느슨하게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공직사회 정화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 투명성 제고를 위해
한국 양궁에서 배울점이 있다면 .
△한국양궁의 성공 비법은
치열한 내부경쟁과 공정한 선수선발이다.
그 어느 선수에게도 특권과 특혜가 주어지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 기회를 제공하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동기 유발이 가능하고
그 결과도 승복하게 된다.
양궁은 개인전과 단체전이 있는데 팀훈련 비중은
단체전에 70%, 개인전에 30%를 두고 있다.
예비선수 없이 3명이 한 팀을 이루는 단체전에서
한 명이라도 삐끗하면 좋은 성적 내기가
불가능한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철저하게 배려하고
헌신할 수 있는 팀워크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다.
이런 점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꼭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글ㆍ사진=이기수 기자
서거원은
>>1956년 순천 출생 >>1976년 순천공고 졸업 >>
1978년 명지대 전자과 중퇴 >>
1978~1994년 ㈜삼익악기 양궁단 선수ㆍ코치ㆍ 감독
>>1986년 양궁 국가대표 코치
>>1988년 서울올림픽 국가대표 감독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감독
>>1991년 용인대 특수체육학과 졸업
>>1987년 호주, 1991년 로잔, 2003년 뉴욕,
2005년 마드리드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감독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감독
>>1996년 인천 계양구청 양궁단 총감독(현)
>>2001년 한국실업양궁연맹 부회장(현)
>>2005년 대한양궁협회 전무이사(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양궁 사무총장
첫댓글 오직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승리자이겠죠..
특히 양궁은 빽이 안통한다는 말씀....\`
양궁에서 삶의 지속적인 노력의 댓가가 있을 뿐임을 배움니다~
양궁 만세~!
양궁을 배워보고 싶네요.....
세계제일이 되기위해선 그만큼의 노력과 열정이 필수겠지만요..
한국 양궁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드리며.. 하루빠리 파라과이에도 양궁이 전수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