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두가 서로 의지하고 서로 관계를 맺을 때에만 비로소 그 존재가 가능하다. 이것을 연기(緣起)라 한다.
또한 연기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고정된 실체가 아닌데, 이것을 공(空)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있다(有) 없다(無), 좋다(善) 나쁘다(惡), 태어남(生) 죽음(滅), 같음(一) 다름(異)..
이런 상대적 개념들을 모두 부정하거나, 함께 수용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반대되는 것 같아도 깊이 살펴보면 서로 의존되어 있는 연기적인 관계이며 <함께 수용>
따로 떼어 놓으면 독립적으론 아무 의미가 없는 공성(空性)이기 때문이다. <모두 부정>
이렇게 상대적 견해를 '모두 부정' 또는 '함께 수용'하고, 긍정과 부정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 나가르주나(용수보살)의 팔불중도(八不中道)
생겨남도 아니고 없어짐도 아니다. 不生不滅(불생불멸)
영원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不常不斷(불상부단)
서로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不一不異(불일불이)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다. 不來不去(불래불거)
<來:인연의 화합. 나타남 / 去:인연의 별리,흩어짐. 사라짐>
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去.
若法이 從因緣和合生이면 是法이 無有定性이요
若法이 無定性이면 是畢竟空 寂滅相이니 離二邊故로 假名爲 中道니라.
만약 법이 인연 화합에서 생겨난다면
이 법은 고정적인 성품이 없으며,
만약 법이 고정적인 성품이 없다면
곧 필경공(畢竟空)이며 적멸상(寂滅相)이니,
이 양변을 떠나므로 거짓으로(억지로, 임시로) 이름하여 중도라 하느니라.
※내생각: 그러나 중도의 입장에서 양변이 필요하면 그 양변조차 취함.
(예: 가섭존자의 두타행 - 형식은 고행이지만, 고행 아닌 고행)
※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는 게 아니다. 나(색수상행식)는 종인연화합생(從因緣和合生)이라는 것이다.
▒ 영명 연수선사의 중도법문
'자비를 행하되 나와 상대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고 행하라.
보시는 베푸는 바 없이 베풀되 나와 인연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말라.
계율을 지니는 바 없이 계행을 지녀라.
육신이 없는 줄을 알고 모양을 잘 갖추어라.
법(法)이란 원래 설할 것이 없음을 알고 설법하라.
절이란 물에 비친 달빛과 같은 환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절과 도량을 세워라.
환영이요 헛것인 공양물을 부처님께 정성을 다해 올려라.
그림자요 메아리인 부처님께 예경하고 공양을 올려라.
마음이 극락인 줄 알고 왕생을 발원하라.
꿈속의 불사인 줄 알고 크게 일으켜라.
텅 빈 세계지만 잘 장엄하라.'
▒ 그럼 부처님께서는?
부처님께선 중도를 '팔정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단명료하죠.
누가 '도(道)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자신있게 말하십시요. 팔정도가 道라고! <각묵스님>
※ 중도의 '中'자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쓰인 글자가 결코 아님.
'정확하다, 올바르다'의 뜻. 바를 정(正)과 같은 의미. (예: 화살이 적중했다. 예상이 적중했다.)
공자의 중용(中庸 지나침 없음)과 헷갈리면 절대 안됨. (천지차이!)
[참고] 우리말에 '시원섭섭' '엉거주춤'이라는 말이 중도적인 표현이라고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중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었다고 하시면서. ^^
☞ 중도는.. '위치'가 아니라 '상태' http://cafe.daum.net/santam/IQZL/251
한강 나룻배로 알아보는.. 중도(中道) http://cafe.daum.net/santam/IQZL/413
무(無), 허(虛).. and 차원이 다른 공(空) <자현스님> http://cafe.daum.net/santam/IQZL/550
첫댓글 道(길 도)~~팔정도....!!!..감사합니다..^^
<空 假 中>의 中이 중도라면, 여기 中은 '수용'이 아닐까요..
중도법문 ....감사합니다
춘천에는 중도라는 섬도 있답니다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