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1년 여름 국세청은 당시 국내 최대 재벌 현대그룹에 특별세무조사의 칼을 빼 들었다.
국세청은 42개 전 계열사에 '국세청의 중수부'라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 요원 80여명을 투입했다.
두 달 넘게 정주영 명예회장과 일가의 변칙 주식이동, 상속·증여·법인세 탈루를 샅샅이 뒤져 1361억원의 세금을 물렸다.
▶갑작스러운 세무조사 배경을 놓고 시중엔 정권과 현대와의 불화설이 파다했다.
정주영 회장은 대통령 공약사업인 경부고속전철 사업을 앞장서 반대했고 재벌그룹 업종전문화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같은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맞섰다.
정 회장은 세무조사가 '정치적 탄압'이라며 소송을 내 추징당한 세금 중 1200억원을 돌려받았다.
▶서울 국세청 조사2국은 1999년 국세청 조사업무 확대 개편 때 조사4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조사 인력도 170명으로 두 배 늘어났다. '심층 기획조사'를 맡는 조사4국, 옛 조사2국은 역대 정권에서 '청와대 특명반' '국세청장 직할부대'로 불려왔다.
최고 권부(權府)의 주문사항을 처리하는 일을 해 붙은 별명이다.
조사4국장은 정권이 특별히 신임하거나 국세청장 직계인맥이라야 갈 수 있는 요직 중 요직이다. 손영래 한상률 두 전직 국세청장도 이 자리를 거쳐 출셋길을 달렸다.
▶대검 중수부가 어제 20여명의 조사관을 보내 서울청 조사4국을 압수수색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맡았던 조사4국 3과 사무실을 뒤졌다.
검찰은 세무조사·금융거래 자료,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가져갔다.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지휘했던 국세청 고위 간부 3명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국세청이 박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빼돌린 자료가 있지 않은지 살펴본 것이라고 했다.
▶국세청은 안방까지 침범당한 듯한 수치심을 느낄 만하다. "검찰이 작년 7월 세무조사 자료를 이제 와 압수수색하는 저의가 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조사4국 압수수색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고교 후배인 문병욱 썬앤문 회장의 감세(減稅) 로비에 손영래 전 청장
이 개입했는지 밝히기 위해 검찰이 조사4국을 뒤졌고 손 청장 등 두 명이 구속됐다. 국세청이 권력의 눈짓에 따라 세무조사권이라
는 칼을 함부로 휘두르는 일이 계속된다면 압수수색의 수모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