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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3 구요셉목사님
‘하나님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시는 가장 큰 죄’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 – 16절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경을 볼 때 다음의 4가지 관점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람을 생명 다해 사랑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구원하려 하신다. 셋째, 성경의 저자는 한 명이다. 성경 말씀은 거의 2천년의 시간에 걸쳐 쓰여졌지만 저자는 성령님 한 분 이시므로 동일한 잣대, 동일한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넷째,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으로 사람의 지식으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겸허히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의 말씀은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언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은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십계명의 언약을 맺습니다. 창세기 3, 4장, 출애굽기 20장, 마태복음 5, 6, 7장의 말씀은 동일한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여 반드시 구원하려 하고 사람과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는 것은 동일한 말씀임에도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다른 내용으로 분리해서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출애굽기는 모세가, 마태복음은 마태가 썼을 뿐입니다. 약 1500년의 간격이 있지만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시고, 너희가 구원받는 방법은 변함이 없다고 하십니다. 바로 예수로 인하여 구원 받되, 그분과의 언약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아내이고, 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영원히 살 자로 내가 너희를 만들었으니, 너희는 돌아오라, 나는 너희의 아버지고, 예수는 너희 신랑이며, 너희는 그의 아내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아내로서 나와의 언약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관점으로 보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팔복의 언약을 말씀과 함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십니다.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에 나왔다고 세상의 소금이라 하지 않습니다. 소금은 보이지 않게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 언약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제사법에는 제사에 반드시 소금을 뿌리게 되어 있습니다. 너와 나는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으로 맺어진 언약의 관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와 맺은 언약을 세상에 알리라는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듭난 자로 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소금같이 살라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내가 빛이었듯이, 나의 빛을 받아 그 빛을 반사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빛을 받아 그 빛을 반사해 드립시다. 그러려면 다들 변화되야 합니다. 변화되어 세상 사람들을 구원시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본능적으로, 자기 속에 악이 있으므로 빛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먼저 무엇이 되라고 말씀하십니까? 나와의 관계가 언약의 관계로 바뀌고, 그리고 나 예수를 본받아 너의 성품과 삶이 바뀌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바뀔 때, 진정으로 나의 복음이 전파되며, 그들을 살리게 된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살아났듯이 그들도 살려내어라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 6, 7장에서 말씀하시고 싶은 핵심입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십계명의 언약을 그들 나름대로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나름대로 잘 지킨다는 십계명의 1계명부터 5계명의 말씀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6계명부터 7, 8, 9, 10계명까지 5가지 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십계명의 언약을 지킨다고 하나, 그들은 실제로는 나와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보다 너희들이 낫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바로, 십계명의 언약을 제대로 지켜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3절 37절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헛맹세를 하지 말라는 말씀은 십계명의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거짓 증거와 헛맹세는 둘 다 히브리어 원어는 같습니다. 십계명의 언약이라 생각을 못하다 보니 번역을 헛맹세로 한 것입니다. 헛맹세나 거짓 증언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법정에 서서 증언할 때의 상황을 생각하며 확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은 너희가 하는 말에 대하여 너희가 확신을 갖고, 확실하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말 중에는 실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자기들이 의롭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말은 틀림이 없다고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전달하는 과정에서 바뀌기 쉽습니다. 둘이 대화를 하다, 대화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다 보면 내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오고 가는 말을 그대로 듣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더 중요시하는 말이나 뉘앙스에 감정과 자기 생각을 덧붙여 전달하니, 오히려 관계를 이간질하는 말, 상처를 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상처를 주고 받게 되니 영문도 모르고 사이가 틀어지게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확실해, 맹세해’ 하며 전하는 확신에 찬 말입니다. 주님은 너희 말에 확신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자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을 주고 받다 보면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타인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말을 자신의 굴곡된 렌즈로 삐뚤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전달하다 보니 당연히 삐뚤게 반사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대로 전달했다고 하지만 자기 머릿속에서 이미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해석된 말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니, 전달하는 사람이 말로 사람 간에 원수 짓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말을 듣다 보면 분노의 감정들이 올라옵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인데, 행복하게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관계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데, 그것이 상실되었습니다. 그 상실감으로 누구에게나 분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주시고 이어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분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노하면 악에게 잡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상실된 것을 찾고자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듭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너희의 욕구대로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분노에 싸여, 상실감에 욕구를 충족시키려 이성보다는 본능적인 욕구, 감정 욕구로 채우려고 합니다. 감정, 만족 욕구의 대표적인 것으로, 당시가 남성 위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주님은 간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간음했을 때, 나단 선지자는 책망을 하는 과정에서, 부인을 재산인 양에 비유하는 것을 봅니다. (삼하 12:1-4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당시 사회 구조가 여성을 재산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했다가는 큰일 날 것입니다. 여성 혐오자로 언론에 크게 기사화될 것입니다. 그만큼 당시는 여성에게 불리했던 사회입니다. 그래서 너의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약자인 여성이 피해자가 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버리므로써 생계의 어려움으로 다른 남자를 의탁할 수 밖에 없으니,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창조하셨고, 당시 사회 구조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고, 여성이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도록 어쩔 수 없이 첩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능력있는 남자만 있는 것은 아니니, 능력있는 남자는 부인을 더 얻어 부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경제적인 문제, 의식주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폐된 사람이 없도록 돌보라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라고 하십니다. 이들의 특징은 경제적으로 무너진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너희 재물로 그들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당시에 빚진 자들이 못 갚으면 종이 되었는데, 7년은 종으로 데리고 있지만 7년이 지나면 종에서 풀어주라고 하십니다. 또한 종의 신분에서 풀렸다 할지라도 경제적 터전인 밭이 없으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50년이 되면 밭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약자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약자를 돌보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그러니 강자인 자들은 절제하며 약자를 내 몸과 같이 생각하고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첫 번째 분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분노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니 미움이 찾아오고, 내가 힘만 과시할 수 있으면 이젠 분노를 폭발해 살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서로 노예제도의 찬, 반으로 남과 북이 갈리면서 이념싸움이 전쟁으로 발전해 엄청난 살육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이 절제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은 먼저 분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감정을 잘 억제하고 조절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본능을 억제하라고 하십니다. 너희 본능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들어, 본능에 충실하려는 것을,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말을 조심하라,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노의 감정이나 본능적인 욕구가 모두 마음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면, 말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 자기 생각이 더해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고, 유리한 것만 기억하려 합니다. 그래서 증인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세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두 명에게 말을 들어보면 일치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을 듣다 보면 서로 나누는 말이 완전히 다릅니다. 총칼만 없다 뿐이지 전쟁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것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이것도 죄입니다.
사람이 멸망한 이유는 말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하와는 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로 바꿉니다. 하와의 불만이 말로 표출된 것입니다. 말이 올바르지 못한 것은 마음 속에 불만을 갖고 있어서입니다.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기 체면에 걸렸을 때일 것입니다. 속에서는 불만이 있는데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포장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포장하려니 말이 바뀝니다. 그리고 말에 확신을 주기 위해 맹세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너희 말에 확신을 갖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악이 말을 비틀어 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정, 직장, 교회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말을 듣고, 자신도 무심코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대화 중 상대방에게 느끼는 기분 나쁜 단어들이 있습니다. 나는 좋게 말했다고 하지만 상대방은 그 말로 시험이 들었다고 합니다. 작은 교회나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 어떤 분들은 큰 교회에 출석하며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말할 때 자기 확증 편향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확신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줄도 모르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말, 사실만 말하십시오.
“내 생각엔~”, 이럴 때 사실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한 번 더 자기 생각으로 비틀다 보니,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부들에게 확신을 갖고 말하지 말며, 자신이 옳다고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너희 말에 너의 분노와 슬픔, 불만이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습니다. 주고 받는 말과 행동에서 기분이 상하고, 상한 감정으로 인해 대화는 다툼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어 말한 하와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자기가 하는 말에 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니 그들과 같이 언어에 자기 생각을 집어넣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만 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3절 – 17절
13. 살인하지 말찌니라
14. 간음하지 말찌니라
15.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십계명의 말씀들을 다 지키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도둑질할까요? 당연히 안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도둑질을 했다고 하십니다. 헛맹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했다고 하십니다. 가장 먼저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했습니다. 두 번째로 하와가 말씀을 도둑질해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탐스러워서 바꿉니다. 그래서 15절, 16절, 17절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은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해 거짓 증거를 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로 다음 말씀 네 이웃의 집과 소유를 탐내서 행한 것입니다. 십계명의 말씀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탐심으로 죄가 들어오고, 죄는 결국 하와 자신을 죽게 하고, 아담에게 줌으로써 살인을 한 것입니다. 둘이 같이 했으니 죄가 아니다가 아닙니다. 다수결의 원칙이나 다수가 주장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성경 말씀과 배치됩니다. 소수라도 하나님 말씀 위에 있다면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다수결의 횡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사법기관은 보편타당한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능인 것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가축이나 종과 나란히 아내가 쓰여있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아내를 남자의 소유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과 이웃집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말씀은 다른 의미입니다. 소유를 빼앗으려는 마음으로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거짓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말, 자신이 옳게 되려는 마음 때문에 말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이나 제3자를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습니다. 죄를 범한 이래로 인류는 의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의롭다 생각하며 변명합니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은 옳다고 여깁니다. 그것이 바로 가인입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실 때 내가 아벨을 지키는 자냐며 분노합니다.
가인은 땅으로부터 복을 받고 싶어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지냈지만, 하나님은 가인과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땅이 가인에게 곡식을 내지 않을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벌은 가인의 소망을 무너뜨렸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과 관계 맺음, 구원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것인데, 가인은 땅과 관계를 맺으려 했기에 하나님은 땅에 저주를 내려 가인의 소망을 끊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받은 벌이 너무 크다며 회개는커녕 오히려 분노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기에 수많은 분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사이에 다툼이 나는 이유는, 너희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고 서로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고 원수가 된 이유는, 자신이 하는 말에 스스로의 확신으로 자기 욕심에서 말을 전하고 듣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확신의 말이 상처를 주니, 옳다, 아니다, 유순한 말로 사실만 말하라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사건은 폴포트라는 사람의 비뚤어진 자기 확신 때문에 200만에서 300만의 국민이 죽은 일을 말합니다. 지식인층은 국가에 해로운 존재니 죽이라고 했습니다. 캄보디아는 여전히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잘못된 확신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너희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의 히브리 원문은 [베리카 에드 쉐켈 로타네]라 하는데 너의 이웃에게 불리하게 거짓 증언으로 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은 히브리어로 [레아]라 하는데 목자라는 뜻입니다. 원어 [라아]의 파생어로 목자가 양을 치다는 뜻입니다. 양을 치는 자는 바로 예수를 말합니다. 너희가 구약에서 구원을 얻을 줄 알고 상고하거니와 이 구약의 말씀은 예수에 대해 말한다고 하십니다. 바로 이웃이 예수십니다. 양을 치는자에 대해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법정에 끌려갔을 때 제사장들은 한 사람이 죽음으로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따릅니다. 이스라엘 백성 다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수가 주장한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단 몇십명만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하고 슬퍼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예수가 법정에 섰을 때 거짓 증언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 너희끼리 사랑하며 한 교회가 되었을 때 너희 말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짓 증거, 거짓 증언, 거짓 맹세, 헛맹세 같은 원어 [에드 쉐켈]입니다. 그래서 맹세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 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 확신에 찬 거짓 증거 하지 말며, 더 업그레이드해서 이웃에게 유순한 말로 서로 격려하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잡히지 않도록 말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7장 8절 – 11절
8.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9.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는데, 말씀은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한다고 하십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 인류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빛과 소금된 그리스도인에게 헛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하와의 거짓 증거는 내면의 불만과 욕심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뱀은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으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거짓말한 뱀에게는 하나님이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 중에서도 절대로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죽이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훼방죄입니다. 형제의 마음에 성령이 있는데 그가 낙담하여 무너져 예수를 떠나게 한다면, 자신의 질투나 유익 때문에 거짓말해서 교회를 떠나게 하는 것들이 다 죄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권유도 조심해야 합니다. 권유의 말이 변형되어 다시 본인에게 돌아옵니다. 이런 일을 다들 겪어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교훈이나 위로로 건네는 말이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섞어서 말하지 마십시오.
말씀은 너희들이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며 말씀을 왜곡하고 변개하였다고 하십니다. 십계명 언약의 한 가지를 어기면 다 어기게 된 것입니다. 너희가 이 율법의 일점 일획도 안 가르치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될 것이라 하십니다. 십계명 언약은 다 잘 지키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다니니까 구원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바로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언약도 안 지키면서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돈에 잡혀있습니다. 교회 오면 구원받았다고 구원을 쉽게 희석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도둑의 소굴입니다. 십계명 언약은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 안에서 제대로 배워서 실천하며 삽시다.
예레미야 7장 12절 - 15절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의뢰하는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찌니라
말씀을 행하지 않으면 댓가를 치러야합니다. 우리가 십계명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이 나라에 재앙이 임합니다. 소수라도 말씀을 잘 지킵시다. 그래야 백척간두에 있는 대한민국이 제대로 서리라 믿습니다.
예레미야 7장 22절 – 28절
22.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찌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찌니라
하나님은 제사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길 원하신다고 하십니다. 많이 예배드리고 헌금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이 땅에 환란이 임합니다. 교회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복 받는다 구원받는다 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게 얼굴을 향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등을 돌린 것이고, 그러고도 구원받았다, 복 받았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신 차리고 그분과의 언약의 관계로 돌아갑시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살아가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착각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 그 언약을 붙잡겠습니다. 우리가 주의 은혜로 구원받음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가 제사와 예물보다 우리의 주를 사랑하며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심을 늘 명심하며,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빛과 소금 되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지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와의 이 맺으신 그 언약, 영원한 소금 언약을 주여 지켜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