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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86년
낙양성 밖은 신록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가볍고도 화려한 옷차림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 채, 고관대작에게나 어울리는 준마 위에 올라타고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낙양성의 남쪽 장하문長夏門을 나서고 있었다. 그 뒤를 묘한 이국적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젊은 여인이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따르고 있다.
세 번째 여인은 얼굴 가득 황홀한 색채를 띠고 있었는데,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맨 뒤에는 조영이 늠름한 기상으로 마치 시위 장수처럼 여인들의 뒤를 밟고 있다.
이 이상한 선남선녀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뭇 사람들이 큰 호기심을 보였다. 네 사람은 이윽고 이수伊水를 건너 근 이백년 전통의 소림사少林寺가 있는 숭산崇山의 소실봉小室峯을 향해 동쪽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낙양성으로부터 숭산까지는 일백 여리가 넘어, 말을 타고 족히 하룻길을 가도 도달하기에 벅차다.
더운 기운이 없지 않았으나 산들바람은 젊은이들의 기분을 한껏 돋우어주고 있었다. 조영과 이루하, 여미아의 기마 솜씨는 일품이었지만, 태평공주 이영월의 승마술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행인이 드문 길로 들어서자 선두에 선 이영월이 주행 속력을 높였다. 맨 뒤에서 달리던 조영도 휘파람을 크게 불며 말에 채찍을 가한다.
사건은, 그들이 이튿날 숭산의 경치를 관망하며 소림사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벌어진다.
오후 늦게 소림사로부터 출발한 네 사람은 해가 지기 전 산악지대를 벗어나고자 급하게 말을 몰고 있었다. 숭산 소실봉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굽이굽이 험준한 소아령小鵝嶺 길에 이르렀을 때, 앞에서 무후군武候軍처럼 보이는 일단의 기마 군사들이 길을 가로막았다. 무후군은 낙양성의 경찰과 치안을 담당하는 군대다.
“멈추라!”
선두에 선 장수가 고함을 질렀다.
일행이 깜짝 놀라 말을 세우자, 장수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무기를 모두 버리고 하마下馬하라!”
“그대들은 누구기에 함부로 양민을 죄인 취급하는가?”
앞에 있던 태평공주 이영월이 반문했다.
“하마하라 하면 할 것이지, 웬 잔소린가?”
“난 태평공주다. 너희들의 신원을 밝히라.”
장수가 태평공주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앙천대소했다.
“으하하하! 네 연놈들이 감히 공주마마를 참칭하면서 사기를 치며, 강도짓을 하고 다녔구나.”
그는 서슬 퍼렇게 고함을 질렀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말에서 즉시 내리고 몸에 지닌 모든 무기를 길바닥에 버리라!”
조영이 얼른 헤아려보니, 군사들은 열 두 명이었다.
“강도라니, 무슨 망발인고! 네 놈들이 목이 몇 개나 있기에 감히 나 태평공주 앞에서 행패를 부리는가!”
“흐흐흐! 우리 목을 걱정하기 전에, 그대들의 목을 먼저 걱정해야 할 걸세.”
기마군의 대장은 병졸들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뭣들 하느냐! 속히 포박하지 않고.”
이 때 조영이 말을 몰아 태평공주 이영월 앞으로 나서며 점잖게 말했다.
“신원도 확인하지 않고, 무슨 근거로 우리를 강도단으로 몰아붙입니까? 대장이 누구요?”
조영의 배짱 좋은 말에 기마군의 대장은 눈을 굴리며 조영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흠! 녀석, 미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꽤나 재미 많이 봤겠구먼. 그 번지르르한 낯짝으로 잡아먹은 아낙네들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그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늘어놓으며 조영에게 능글맞게 굴었다. 그 말에 여인들은 낯을 붉히고 조영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물었다.
“귀하가 대장이오?”
“흥, 입은 살아가지고. 내가 바로 대장이다. 내가 백번 양보해서 군자답게 묻지. 네 연놈들은 어디 사는 누구냐? 진실을 말하렷다!”
“난 고려인으로서 고조영이라 하고 폐하의 부름을 받아 낙양성에 머물고 있는 중이오.”
조영은 계속해서 일행의 신상을 설명했다.
그들은 조영의 말을 끝까지 귀담아 들으며 여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낙양성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신원을 보증할 증인들은 얼마든지 있소. 속히 낙양성으로 갑시다.”
조영이 장수에게 권유했다.
무후군의 옷을 입은 장졸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돌아보며 낄낄거린다.
“고관대작의 자제 신분을 가장해 사기 치는 놈들을 몇몇 잡아봤지만,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이런 놈들은 처음이 아닌가? 감히 폐하를 끌어들이다니.”
장수는 조영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다가 대답했다.
“그대의 말이 일리가 있네. 하지만 일단 포박을 당해야 하겠네. 자네들이 범죄자가 아니라면, 포박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겠지?”
“좋소. 포박을 당하겠소.”
조영의 말에 태평공주 이영월이 앞으로 나서며 장수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당신들이 무후군임을 증명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복식을 보면 모른단 말인가?”
“요새는 별의별 협잡꾼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지라, 솔직히 난 당신들이 진짜 무후군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네. 무후군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싸돌아다니나?”
“어허 이런, 요망한······.”
“당신들이 우리의 말을 불신하는 거나, 우리가 당신들의 신원을 믿지 못하는 것은, 피장파장이고 또 공평한 거요. 먼저 당신들의 신원부터 확인해주시게.”
“좋소. 일단 낙양성으로 들어가면 모든 진상이 드러날 거요. 하지만, 그대들은 범죄자들이므로, 반드시 포박을 받아야 하오.”
“우린 범죄자가 아니고 또 당신들이 무후군임을 입증하지 못한 이상, 포박을 받을 이유가 없네.”
태평공주가 강경하게 맞섰다.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는구먼. 우리 무후군의 체포에 불응할 경우, 차후에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아는가?”
“그런 말은, 당신들이 무후군임을 명백히 증명한 연후에 하시오.”
장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이영월을 노려보더니, 곁에 선 군졸들에게 명했다.
“무조건 모두 포박하라!”
그 때 조영이 얼굴을 돌려 태평공주 이영월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의견을 묻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에 찬 검을 빼 들고 조영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저들이 정말로 무후군일 경우 저들을 살상하면 큰 일 나요. 난 괜찮지만, 그렇게 되면 조영공자와 이 아가씨들은 진짜 범죄자가 되는 거예요.”
‘그럼 어쩌자는 건가?’
조영이 속으로 투덜거리며 역시 창 자루를 잡았다.
“이들이 소속과 관등성명을 대지 못하고 있으니, 설사 양편의 다툼으로 사상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책임은 아니지 않을까요?”
“하지만 무후군을 다치게 했다가, 형옥을 맡은 내준신 등에게 걸려들면 만사는 끝장이에요.”
자칭 무후군 십여 기는 조영 일행을 포위하고 있었다.
조영이 장수에게 말했다.
“칼에는 눈이 없소.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들 십여 명이 모두 덤벼든다 하더라도 우리 중 단 한 사람을 당할 수 없을 것이오. 우리와 싸우면 당신들은 모두 크게 다치거나 죽을 것이오. 그래도 기어이 우리를 핍박할 작정이오?”
장수는 조영의 호언장담에 멍한 표정으로 한 동안 말을 잃고 있다가 비아냥거렸다.
“아이고야, 오늘 내가 천하대장군을 만났나보구나. 어허! 관운장 나리께서 다시 태어나셨구먼. 네 이놈! 네놈이 간덩이가 부어도 보통 부은 게 아니로구나!”
끝에 가서 장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좋은 말로 요청할 때, 우리가 나란히 낙양성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이오.”
조영이 전혀 굽히지 않고 응대했다.
“닥쳐라!”
장수는 고함을 지르며 창을 들고 조영에게 덤벼들었다. 조영이 침착하게 그를 맞았다. 무후군의 장수는 창을 맹렬히 휘두르며 조영을 압박했으나, 조영은 시종 여유있는 태도로 장수의 공격을 번번이 무산시켰다.
조영은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급적 적극적인 공세를 펴지 않고 방어에 치중했는데, 삽시간에 수십 합이 지나갔다. 장수는 온갖 기량과 솜씨를 발휘해 결사적으로 치고 찌르고 돌리는 등 어린애 막대기 돌리듯 창날을 휘둘렀으나 조영은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이 옥신각신하며 다투는 사이, 어느 덧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무후군의 군졸들은 두 사람의 쟁투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고 달리 손을 쓰지 않고 있었다.
조영은 겉으로 여유를 부렸으나 속으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상대했다가는 언제 싸움이 끝날지 알 수 없었다. 조영은 심기일전해 창을 맹렬히 휘두르며 무후군 장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장수가 쩔쩔매는 모습이 모든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뭣들 하느냐! 모두 포박하라!”
장수가 수세에 몰려있으면서도 소리를 질렀다.
군졸들이 세 여인을 향해 서서히 접근했다. 태평공주 이영월과 이루하는 각각 검을 들고 군사들을 노려보았다. 이영월은 이런 때를 대비해, 경승 고양원의 조언에 따라 집안의 남자 하인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그 때 처음부터 끝까지 사태를 조용히 관망하던 여미아가 입으로 무언가를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그녀에게 접근하던 군사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말 위에서 앞으로 푹 거꾸러졌다가 이내 말 아래로 떨어졌다.
여미아는 낙마하는 군사에게 재빨리 접근해 말의 배에 몸을 붙인 다음 팔을 뻗어 기가 막힌 솜씨로 그를 붙잡아 땅 바닥에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가볍게 내려놓았다.
여미아가 마상으로 몸을 올리며 군사들을 쏘아보았는데, 발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뭇 잡초들 사이에 홀로 핀 진분홍 모란화처럼, 아니 백설의 분분함 속에서도 그윽한 자태를 드러낸 천첩연분홍매화 마냥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저녁의 마지막 볕을 받아 형형히 번쩍거린다.
그녀의 놀라운 무예에 간담이 서늘해진 군사들은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몸서리를 쳤다.
여미아는 입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무어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가 다시 바른 손을 고요히 들어 다섯 손가락으로 가까이 있는 한 군사를 가리켰다. 그 군사가 움찔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미아는 미간을 약간 찡그리다가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나의 임금님, 용서하소서. 마라나타.”
이번에는 여미아의 중얼거림이 곁에 있는 이들에게도 들렸지만, 그녀의 말은 말갈어였으므로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때 군사 중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저년이 주문을 외우며 마법을 쓰고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최후의 수단을 쓰라!”
그 말과 동시 군사들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재빨리 입에 넣으며 여미아아와 이영월, 이루하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 그들의 손에서 무언가 시커먼 물체가 세 여인을 향해 허공을 갈랐다. 세 여인은 깜짝 놀랐으나, 다급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서도 임기응변에 능한 무예의 고수들답게 검이나 손으로 그 물체를 튕겨버렸다.
“퍽! 퍽! 퍽!”
둔탁한 소리들이 거의 같은 찰나에 들리며 새하얀 연기가 주변으로 흩어졌다.
“호흡을 막으세요!”
이영월이 이렇게 외치더니 이내 말 위로 푹 쓰러지는 것이었다. 뒤질세라 이루하와 여미아도 하늘이 빙글 도는 듯하더니 이내 거꾸러졌다.
이 때 조영은 무후군 장수의 창을 빼앗고 그의 멱살을 붙잡아 그를 말 아래로 떨어뜨리던 참이었다.
“손을 놓으라! 이 여인들을 살리고 싶거든!”
한 군졸이 조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조영이 힐끗 바라보니 군졸들은 말에서 내려와 축 늘어진 세 여인을 포박하고 있었다.
그 중 한 군사가 여미아의 목에 칼을 겨누며 다시 소리쳤다.
“이 여인들을 죽이고 싶지 않거든 무기를 버리고 하마하라!”
조영은 아연했다. 조영이 하는 수 없이 창을 버리고 말에서 내려왔다.
“엎드려!”
조영이 바닥에 엎드리자 군사들은 재빨리 오랏줄로 그를 포박하고 말았다.
조영과 싸우느라 기진맥진한 장수를 향해 한 군사가 물었다.
“장군! 이 사람들이 정말로 태평공주 일행이라면, 우리 목숨은 아주 없어지는 게 아닙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장수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제법 위엄있게 말했다.
“그녀들을 깨우라.”
군사들은 세 여인의 손을 뒤로 묶어 상체를 단단히 결박한 다음 입안에 해독제를 넣었다. 잠시 후 그녀들이 깨어나자, 한 군사가 땅에 엎드러져 있는 병졸을 가리키며 여미아에게 물었다.
“아가씨, 어떤 마법을 부려 이 사람을 기절하게 했소? 속히 깨우시오.”
“인중을 눌러 주세요.”
여미아가 대답했다.
그가 깨어나자 군사들은 그녀들과 조영을 각각의 말에 다시 태운 다음, 낙양성을 향해 말을 몰기 시작했다.
어느 덧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군사들은 횃불을 켜들고 조영 일행을 앞뒤로 에워싼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이 근 십리쯤 왔을까? 앞쪽에서 희미한 등불을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게 앞장 선 장수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무후군의 장수는, 그 무리들에게서 어떤 음침한 기운이 풍겨오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좌우를 한차례 휘둘러보고 뒤를 돌아다보다가 다시 앞을 주시했다.
등불을 든 무리들은 이쪽의 횃불 든 무후군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늦추는 것 같았다. 양편이 점점 가까워지자 그들의 자태가 무후군의 눈에 뚜렷이 드러났다. 그들도 역시 모두가 마상에 올라타고 있었는데, 얼굴에 복면을 한 채 등과 허리에는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무후군의 장수는 긴장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웬 놈들이냐!?”
“어허! 장군, 초면에 말투가 너무 거칠지 않소?”
맨 앞장에 선 두목인 듯한 자가 눈을 번득이며 이쪽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대들이 하늘 아래 떳떳하다면 어찌 얼굴에 복면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모두 두건을 벗고 진면목을 보이라!”
무후군 장수가 위엄있게 명했다.
“복면을 벗을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용서하시오. 그런데 장군은 어찌하여 이 밤에 낙양성을 멀리 떠나 이곳을 헤매고 있소?”
“그건 네 놈들이 상관할 바 아니다. 길을 비키라!”
무후군 장수는 상대의 숫자를 어림잡아 보니 스무 명도 넘는 것 같아, 귀찮은 일을 피하고자 그들을 고이 보내고 싶었다.
“이 밤에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은 하고 가는 게 좋지 않겠소?”
무리의 두목이 다시 수작을 걸었다.
“우린 무후군이다. 그대들은 신원을 밝힐 용의가 있는가?”
“우린 흑룡방黑龍帮이오.”
“흑룡방? 처음 들어보는 단체군.”
“저런, 저런. 동도 낙양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무후군 장수가 흑룡방을 모르다니, 말이나 되오?”
그는 거드름을 피우더니 말을 이었다.
“흑룡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천하의 악을 억제하고 선을 진작시키며 범죄를 없애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이 고장 의협지사들의 자율 치안조직이오.”
무후군의 장수는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다면 잘 됐소. 우린 지금 범죄자들을 잡아 압송하는 중이니, 우리 시간을 빼앗지 말고, 어서 갈 길을 가시오.”
“오, 그렇군요. 수고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범죄자들인지 궁금합니다. 우리 고장에서 체포하셨다면, 우리로서는 참으로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자세한 것은 알 필요 없으니, 속히 길을 비켜주오.”
“명색이 우리도 자율 치안대인데, 범죄자들 얼굴이나 보고 갑시다.”
“우리 가운데 있으니 잘 보고 지나가시오.”
무후군 장수가 말하자, 등불을 든 괴한들, 자칭 흑룡방의 무리들은 무후군이 지나가도록 길 가에 한 줄로 늘어섰다. 무후군의 장수 역시 군사들과 조영 일행을 한 줄로 세우고 그들 곁으로 지나쳐 갔다.
자칭 흑룡방의 두목과 대원들은 등불을 들어 올려 곁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조영과 세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비추어보았다. 조영과 세 여인이 그들을 쏘아보았다.
“장군, 잠깐 멈추시오!”
흑룡방의 두목이 갑자기 소리쳤다. 무후군 장수가 말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무슨 일인가?”
“이 네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소?”
“그건 알 필요 없소.”
“아니, 알려주셔야 우리 고장도 그런 범죄에 대해 미리 방비하지 않겠소?”
“이들은 대당 황상폐하의 자제를 사칭하면서 경사 장안성과 동도 낙양성 일대에서 사기행각을 벌이던 작자들이오.”
무후군의 장수는 화가 났지만 속으로 많이 자제하는 것 같았다.
“오, 그래요? 그런데 네 사람 얼굴이 다 우리 흑룡방의 일부 대원들을 닮았으니, 어찌 된 일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이 사람들은, 얼굴을 보니 우리 의협 흑룡방 단원들임이 분명하오. 그렇잖아도 이 네 사람이 며칠 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아 궁금했었는데, 그럼 이들이 사기를 치고 돌아다녔단 말이오?”
“당신네 흑룡방에는 여자 방원들도 있소?”
“그렇다마다요. 범죄를 예방하는데 남녀구별이 어찌 있겠소?”
“그렇다면 더욱 잘 되었소. 하마터면 우리가 그대들 선량한 협사 중에 숨은, 의협지사를 가장한 사악한 늑대들을 놓칠 뻔 했소. 다행이 우리가 잡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대들도 대원들의 범죄행각으로 꽤 곤욕을 치를 뻔하지 않았소?”
“그렇군요. 고맙소이다.”
자칭 흑룡방 두목은 허리를 굽혀 사의를 표한 다음 부언했다.
“그런데 그들이 전에는 얼굴 생긴 것처럼 아주 선량하고 착할 뿐만 아니라 무예도 뛰어나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는데, 어쩌다가 그런 악에 갑자기 빠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소.”
“사람은 얼굴만 보고 평가해서는 아니 되오. 얼굴은 뻔지르르한데, 마음은 사갈 같이 독한 여인들이 얼마나 많소?”
“장군의 말이 일리가 있소이다. 하지만 이들은 평소 사람됨이 극히 선량했는데, 그런 죄를 지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소이다. 혹시 다른 사람들과 혼동한 것은 아니오?”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요. 우리가 범인들의 초상화까지 휴대하고 다니는데, 어찌 혼동한단 말이오?”
“하긴 그렇겠소. 그 초상화를 보여줄 수는 없소?”
무후군의 장수는 이들이 자신들을 붙잡아 놓고 시비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진즉부터 깨달았지만, 애써 인내하며 물었다.
“그대들이 원하는 게 뭐요? 범죄예방 활동을 위한 자금이 혹시 필요하오?”
흑룡방 두목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물론 돈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겐 사람이 더 필요하오.”
“사람이 필요하다니 무슨 말이오? 내가 돌아가면 윗분께 보고해 필요한 자금을 좀 보낼 용의도 있소.”
무후군 장수는 속히 떠나가고 싶은 듯 지나친 말을 하고 있었다.
“범죄예방 자금은 우리에게도 넉넉하오. 그 대신 이 사람들을 우리에게 넘겨주면 어떻겠소?”
드디어 자칭 흑룡방의 의도를 파악한 무후군 장수는 적이 긴장되었다.
‘오늘 밤 이 도적놈들과 한 바탕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돌아가긴 다 틀린 것 같구나.’
그가 보기에 자칭 흑룡방이라는 이 작자들은 강호의 무뢰배 집단임이 분명했다.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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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12. 2.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