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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41
623독, 언(言) - 첫 번째
오늘도 「정신게」를 먼저 일독(一讀)하겠습니다. ‘말씀 언(言)’이 두 번 나옵니다. 주의를 기울여 읽어주십시오.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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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보살인위시(法藏菩薩因位時) ⟶
재세자재왕불소(在世自在王佛所)
도견제불정토인(都見諸佛浄土因) ⟶
국토인천지선악(國土人天之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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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무상수승원(建立無上殊勝願) ⟶
초발희유대홍서(超發希有大弘誓)
오겁사유지섭수(五劫思惟之攝受) ⟶
중서명성문시방(重誓名聲聞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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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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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명호정정업(本願名號正定業) ⟶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성등각증대열반(成等覺證大涅槃) ⟶
필지멸도원성취(必至滅度願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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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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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범성역방제회입(凡聖逆謗齊回入) ⟶
여중수입해일미(如衆水入海一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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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심광상조호(攝取心光常照護) ⟶
이능수파무명암(已能雖破無明闇)
탐애진증지운무(貪愛瞋憎之雲霧) ⟶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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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일광부운무(譬如日光覆雲霧) ⟶
운무지하명무암(雲霧之下明無闇)
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
즉횡초절오악취(卽橫超截五惡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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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선악범부인(一切善惡凡夫人) ⟶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불언광대승해자(佛言廣大勝解者) ⟶
시인명분타리화(是人名分陀利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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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불본원염불(彌陀佛本願念佛) ⟶
사견교만악중생(邪見憍慢悪衆生)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
난중지난무과사(難中之難無過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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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천지론가(印度西天之論家) ⟶
중하일역지고승(中夏日域之高僧)
현대성흥세정의(顯大聖興世正意) ⟶
명여래본서응기(明如來本誓應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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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능가산(釋迦如來楞伽山) ⟶
위중고명남천축(爲衆告命南天竺)
용수대사출어세(龍樹大士出於世) ⟶
실능최파유무견(悉能摧破有無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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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대승무상법(宣説大乘無上法) ⟶
증환희지생안락(證歡喜地生安樂)
현시난행육로고(顯示難行陸路苦) ⟶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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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념미타불본원(憶念彌陀佛本願) ⟶
자연즉시입필정(自然卽時入必定)
유능상칭여래호(唯能常稱如來號) ⟶
응보대비홍서은(應報大悲弘誓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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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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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유본원력회향(廣由本願力廻向) ⟶
위도군생창일심(爲度群生彰一心)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
필획입대회중수(必獲入大會衆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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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지연화장세계(得至蓮華藏世界) ⟶
즉증진여법성신(卽證眞如法性身)
유번뇌림현신통(遊煩惱林現神通) ⟶
입생사원시응화(入生死園示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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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담란양천자(本師曇鸞梁天子) ⟶
상향란처보살례(常向鸞處菩薩禮)
삼장류지수정교(三藏流支授淨教) ⟶
분소선경귀락방(焚燒仙經歸樂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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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론주해(天親菩薩論註解) ⟶
보토인과현서원(報土因果顯誓願)
왕환회향유타력(往還廻向由他力) ⟶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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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
증지생사즉열반(證知生死卽涅槃)
필지무량광명토(必至無量光明土) ⟶
제유중생개보화(諸有衆生皆普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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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작결성도난증(道綽決聖道難證) ⟶
유명정토가통입(唯明浄土可通入)
만선자력폄근수(萬善自力貶勤修) ⟶
원만덕호권전칭(圓滿德號勸專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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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
상말법멸동비인(像末法滅同悲引)
일생조악치홍서(一生造悪値弘誓) ⟶
지안양계증묘과(至安養界證妙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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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독명불정의(善導獨明佛正意) ⟶
긍애정산여역악(矜哀定散與逆惡)
광명명호현인연(光明名號顯因緣) ⟶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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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정수금강심(行者正受金剛心) ⟶
경희일념상응후(慶喜一念相應後)
여위제등획삼인(與韋提等獲三忍) ⟶
즉증법성지상락(卽證法性之常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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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
보화이토정변립(普化二土正弁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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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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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원공명불교(本師源空明佛敎) ⟶
연민선악범부인(憐愍善惡凡夫人)
진종교증흥편주(眞宗教證興片州) ⟶
선택본원홍악세(選擇本願弘惡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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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래생사륜전가(還來生死輪轉家) ⟶
결이의정위소지(決以疑情爲所止)
속입적정무위락(速入寂靜無爲樂) ⟶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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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대사종사등(弘經大士宗師等) ⟶
증제무변극탁악(拯濟無邊極濁悪)
도속시중공동심(道俗時衆共同心) ⟶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교행신증』 제2권)
똑같은 ‘말씀 언’이지만, ‘응신여래여실언’의 ‘언’과 ‘불언광대승해자’의 ‘언’이 다릅니다. 먼저 품사로 보면 ‘응신여래여실언’의 ‘언’은 명사이고, ‘불언광대승해자’의 ‘언’은 동사입니다. 각기 ‘말씀’과 ‘말씀하셨다’로 옮길 수 있습니다. 같은 글자이지만, 품사가 다른 것은 그 전후에 어떤 말들이 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응신여래여실언’에서는 ‘여래의 여실한’이라는 뜻의 형용사가 오기 때문에, 그러한 수식어를 받아주는 명사 역할을 ‘언’이 담당해야 합니다. ‘불언광대승해자’에서는 앞에 ‘불’이라는 명사가 오기 때문에 ‘언’은 동사가 됩니다.
또 문장성분, 즉 문장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하는 점을 보면 ‘응신여래여실언’에서 ‘언’은 목적어가 됩니다. 앞에 나온 ‘믿을 신’이라는 말이 서술어가 되는데, 그 ‘믿는다’는 말의 대상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불언광대승해자’에서는 앞에 주어 ‘불’이 나오고 뒤에 ‘광대승해자’라는 말이 목적어가 되기 때문에, ‘언’은 서술어가 됩니다.
한문은 쉽지 않은 언어이지만, 우리가 자주 만나고 또 자주 생각해 보다 보면 차차 쉬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공부할 구절, ‘응신여래여실언’이 들어가는 부분을 한번 추출해서 보겠습니다.
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기억나시지요? 이 게송은 바로 얼마 전에도 만났습니다. ‘말씀 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희가 ‘법’에 대해서, 즉 법보론(法寶論)을 살펴보고 있습니다만 저는 동사를 추출해 보고 있습니다. 동사를 말하다 보면, 연관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 설’에서도 이 게송은 나오고, ‘말씀 언’에서도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게송은 도치(倒置)가 되어 있는데, 한번 바로 잡아 보면 다음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
“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이렇게 놓고 보면, 첫 번째 구절 ‘오탁악시군생해’는 주어입니다. 그리고 ‘응신여래여실언’에는 동사와 목적어가 다 들어있습니다. ‘신’은 동사이고, ‘여래여실언’은 목적어입니다. ‘응’은 부사입니다. 부사는 말 그대로 부수적인 것이라서 동사를 수식할 뿐, 문장 구조를 따질 때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언’ 다음에 ‘ : ’라는 부호를 집어넣었습니다. ‘다음과 같다’라는 뜻입니다. 즉 ‘마땅히 (다음과 같은) 여래의 여실한 말씀을 믿어야 한다’라는 뜻인데, 달리 말하자면 ‘마땅히 여래의 여실한 말씀을 믿어야 하는데, (그 말씀은 다음과 같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명사 ‘언’을 좀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여래소이흥출세 유설미타본원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의 내용을 “ ”로서 표시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이 게송을 놓고 보면, 특징 하나가 눈에 뛸 것입니다. 바로 첫 구절의 마지막에 ‘바다 해’자가 나오고, 넷째 구절 마지막 역시 ‘바다 해’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신란스님은 이렇게 명사 뒤에 ‘바다 해’자를 붙이는 것을 대단히 좋아했습니다. 「정신게」에서도 모두 4번이나 나옵니다. 한번 다 읽어보겠습니다.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이 네 가지 사례 중에서 ‘군생해’만 좋지 않은 용례입니다. ‘본원’, ‘공덕’, ‘본원대지’는 다 좋은 의미입니다. 신란스님은 나쁜 의미의 ‘군생’도 바다처럼 한 없이 넓고 깊다고 보았으며, 좋은 의미의 본원, 공덕, 지혜 등도 바다와 같이 넓고 깊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오늘의 게송으로 돌아가 보면, ‘군생해’와 ‘본원해’는 딱 마주하고 있습니다. 시(詩)라서 도치를 하여, ‘언’의 구체적인 내용인 ‘여래소이흥출세 유설미타본원해’를 앞으로 보냈기 때문에 ‘본원해’는 제2구의 끝에, ‘군생해’는 제3구의 끝에 있어서 그 대립관계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치를 해소하여 놓고 보면 제1구와 제4구의 끝에 자리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와 같은 군생, 즉 중생들이 결국에는 본원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래소이흥출세 유설미타본원해’는 이미 여러 번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말씀 언’이 나오는 구절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응신여래여실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동사 역할을 하는 ‘믿을 신’이라는 글자입니다. 이 ‘믿을 신’이라는 글자는 「정신게」의 제목에도 있는 만큼 핵심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마땅히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아직 ‘믿을 신’자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고찰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일단 말이 나온 김에 「정신게」에 나오는 ‘믿을 신’이 들어가는 구절들을 다 한번 뽑아서 주목해 봅니다.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 명사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 동사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 명사
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 명사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 동사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 명사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 명사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 명사
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 명사
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 명사
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 명사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 명사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동사
모두 13번 나옵니다. 그 중에 10번은 명사로 쓰였고, 3번이 동사로 쓰였습니다. 동사로 쓰인 말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들은’ 내용에 대하여 믿어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는 점이 바로 그렇습니다. ‘응신’은 ‘여래의 여실한 말씀’에 대해서 믿어야 한다는 것이고, ‘문신’은 ‘아미타여래의 큰 서원’에 대해서 듣고 나서는 믿어야 한다는 것이며, 오직 ‘믿어야’ 할 것은 7고승의 말씀에 대해서라는 뜻입니다.
다시 ‘응신여래여실언’으로 집중해 보면,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말씀’이지만, 그것은 곧 ‘여래소이흥출세 유설미타본원해’라는 구절입니다. 모든 부처님 여래들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설하시는 내용은 그저 오직 하나뿐인데, 바로 바다와 같이 깊고 넓은 아미타불의 본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응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으로 수렴됩니다.
본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이 편지에서 다룬 것 같습니다. 「편지 제4권 5」의 제목이 바로 ‘본원’이었습니다. 한 번 참조해 주십시오. 이미 설명 드린 바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중복은 피하기로 합니다. 다만, 신란스님에게서 본원이 갖는 의미를 한번 언급하고자 합니다. 바로 『탄이초(歎異抄)』 제2조의 내용입니다.
저는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디로부터 초청을 받아서 한 번 정도 강의를 할 기회가 있다면, 이 『탄이초』 제2조만 말씀드려도 좋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아직 그런 기회는 없었습니다만 …, 『탄이초』 제2조는 실제로 역사적 배경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신란스님은 관동지방(오늘날의 이바라키현)에서 20년 포교를 하시고 교토로 돌아옵니다. 그런 뒤에는 관동지방의 제자들이 교토까지 찾아오는 일이 더러더러 있었습니다. 그 옛날 걸어서 그 먼 길을 왕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느 때, 그렇게 찾아온 제자들을 대면하여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먼저, 신란스님 자신부터 염불을 하는 것이 극락에 태어날 씨앗이 되는지 지옥에 떨어질 씨앗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 호넨스님의 말씀에 따라서 염불을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업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지옥을 가게 되어 있어서 다른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참선이나 다른 수행을 할 수 있는 근기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보탭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이 진실하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도 거짓이 아닐 것 입니다. 부처님의 교설이 진실하다면 선도대사의 (경전) 해석도 거짓이 아닐 것입 니다. 선도대사의 해석이 진실하다면 호넨스님의 가르침 이 거짓이겠습니까. 호 넨스님의 가르침이 진실하다면 신란이 말씀드리는 취지 역시 헛되지는 않을 것입 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출발점이 아미타불의 본원이라는 점입니다. 신란스님은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알고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이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시방중생을 다 제도하려는 아미타불의 자비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비를 어찌 거짓이라 헛되다 하겠습니까. 그 자비 앞에 어찌 아미타불이 있느냐 없느냐, 극락이 있느냐 없느냐를 논할 수 있겠는가. 신란스님은 지금 그런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핏 ‘응신여래여실언’이라 들으면, 우리 현대인들로서는 마땅히 믿으라는 이야기는 ‘무조건 믿어라’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란스님 자신부터 아미타불의 본원을 견문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 행간에 숨기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신란스님에게는 마땅히 믿는다’는 말은 ‘저절로 믿게 되었다’는 뜻일 터입니다. …,
진실한 아미타불의 본원, 그것을 보라. 그것을 믿으라, --- 바로 오늘 ‘응신여래여실언’에서 우리가 알아차려야 할 신란스님의 메시지이자, 석가모니 부처님의 메시지이고, 모든 부처님 여래들의 메시지입니다.
오늘도 긴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불언광대승해자’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2022년 10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