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수필|변종옥
달빛이 싸락눈처럼 내리고 있었다.
변종옥
아구리를 칭칭 동여맨 묵직한 정부미 자루를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세 살짜리 딸과 막 떠나려는 마지막 버스를 간신이 되짚어 탔다.
첫차를 타고 내장산 자락에 사는 동생 집에 몇 년 묶은 수탉이 있다기에 구하려 나선 길이었다. 동생과 마루에 앉아 남편의 병구완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마루에서 마주 보이는 어둑한 헛간 서까래에 서까래보다 더 굵은 황구렁이가 서까래를 칭칭 감고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내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몸길이가 족히 2m는 돼 보였다. 삼각형의 머리와 목은 검정색이고, 몸 빛깔은 녹색을 띤 황갈색 바탕에 검정 가로무늬가 있었다. 황구렁이는 폐결핵에 특효약이래잖던가. 무슨 계시 같았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영양분을 잔뜩 몸에 저장해 어느 때보다 약효가 뛰어날 것 같은 구렁이를 잡아 달라고 간청했다. 사돈어른은 구렁이가 집안을 지키는 업이라며 영물로 여겨 잡으면 안 된다고 구시렁구시렁했다. 도시에 살다 시골로 시집을 간 동생이 뱀이 집 안에 있는 것을 너무 무섭다고 했다. 구렁이 때문에 벌벌 떠는 며느리 때문에 사돈어른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내를 위해 제부가 마을 청년들과 구렁이를 잡았다. 제부는 구렁이를 잡아 몇 겹의 정부미 자루에 넣어 묶어 주었다.
저물녘 으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제부가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터미널로 달렸다. 막차가 출입문을 닫고 시동을 걸어 부르릉거리며 몸체를 흔들고 있었다. 제부는 출발하려는 버스 몸통을 두들겼다. 문이 열리자 버스 안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다. 마침 첫 번째 좌석이 비어있었다. 정부미 자루를 좌석 밑으로 밀어 넣고 앉았다.
딸은 울기 시작했다. 이미 뗀 젖을 물려 보기도 하고, 장남감이 될 만한 것을 주기도 하고, 노래도 하며 다독거려보지만 아이는 계속 울었다. 버스 승객들이 나서서 사탕이며 과일 등 먹을 것을 주며 달래보려 했다. 계속 울었다.
동짓달 저녁 무렵 어둠은 급하게 스며들었다. 왕래가 뜸한 호남에서 영남으로 달리는 남해고속도로 가로등도 어둑했다. 버스 창밖으로 내리는 서리가 달빛을 받아 싸락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그칠 듯하다 울고 또다시 울고 반복해가며 몇 시간째 끈질기게 울음소리는 이어졌다.
늦가을의 스산한 분위기와, 소복한 것 같은 달빛과, 구슬픈 산조 가락과도 닮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귀곡성으로 가는 길 같았다.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은 숨죽이고 있었다. 막연히 불길한 예감만 가득했다. 울음소리로 화를 불러들여 여러 사람 곤경에 빠트리느니 차라리 버스에서 우는 딸과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루, 정부미 자루 때문에 절대로 내릴 수는 없었다.
아이는 지쳤는지 살포시 잠이 들었다. 후유, 안도감에 숨을 내쉬었다. 제발 목적지까지 깨지 마라. 아무렴 수탉보다야 구렁이가 탁월하겠지 ………
남편이 결핵을 앓고 있었다. 남편은 폐결핵 늑막염 담석증 신경염등의 결핵균들이 몸속에 결핵 연구실을 차려 놓은 듯한 상태였다. 결혼하기 전부터 앓고 있는 남편의 병을 아내인 나에게도 숨긴 체 시어머니는 아들을 간병하고 있었다.
사용하는 그릇을 매일 삶는 시어머니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었다. 곰거리는 물론이고 장어네 가물치니 그 비싼 전복을 겹쳐 연일 고아댔다. 보신 음식이 넘쳐나는 것을 보며 도시 부잣집은 이런가 보다 했다. 집 안식구 수대로 한약을 먹는 모습도 내 눈에는 별스러워 보였다. 약탕기가 모자라 냄비에 주전자까지 동원해 연탄불에서 약을 다려야 했다. 시어머니는 보약이라며 건강한 내 것까지 챙겨 주셨다. 소외감 느끼지 말라고 챙겨 주신다 싶어 고마웠다. 한약을 네다섯 개를 달여서, 누구의 것인지 헷갈리지 않고 챙기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정성을 요구하는 한약 다리는 일은 잠깐만 눈을 때면 바짝 타 버려 연기와 탄내는 진동했다. 감추고 싶었지만, 탄내로 집안에 오래 남아 며느리 정성을 꾸중하고 있었다. 한약 다리는 일이 힘에 부쳤지만 부잣집이라서 그러려니 했었다.
나를 피해가며 며칠을 시어머니와 남편은 쑥덕거렸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결혼을 하고 나서 아들의 병이 더 심해지니 며느리는 친정에 가 있으라는 시어머니의 간곡한 당부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는 없었다. 시집 잘 갔다는 소문이 쟁쟁한데 폐병쟁이 남편 만나 쫓겨 왔다는 소리는 정말 듣기 싫었다.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는 대신에 결핵에 금기라는 성생활은 않겠고 맹세해야 했다. 그리고 병 구환은 내 차지가 됐다. 원인이야 어찌 됐건 남편의 병 때문에 벌은 아내인 내가 받아야 했다.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이었다.
일병에 백약이라 드니 결핵에 좋다는 약은 수없이 많았다. 항 결핵약인 아이나, 리팜핀, 에탐부톨, 피라진아마이드 등의 특효약이 있지만, 독성이 강해 부작용이 결핵 못지않은 극복해야 하는 큰 어려움이었다. 결핵은 소모성 질환이기 때문에 체력보강을 반드시 해야 했다. 화학 약이야 병원에서 처방해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떠도는 소문을 찾아다니며 민간요법에 매달릴 수밖에는 없었다.
벼랑 위에 핀 한 송이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이듯이 구하기 어려운 것일수록 약효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무지가 내 안에 자리를 잡아갔다. 정성과 인고를 내게서 짜 넣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쫓겨야 했다. 뱀이 좋다고 했다. 개가 좋다고 했다. 굼벵이가 좋다고 했다. 개를 잡아 칠월의 쇈풀을 덮어 구더기를 키우기도 했다. 몇 년 묵은 수탉이 좋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때마침 의자 밑에 넣어놓은 자루가 꿈틀꿈틀했다. 아이가 깜짝 놀라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다섯 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한 그 밤에 뒤뜰에 벽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고 솥을 걸었다. 무섭고 징그러워 아찔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어찌어찌하여 자루 안의 구렁이를 솥에 넣었다. 솥뚜껑 위에 벽돌을 더 올릴 수 없을 만큼 올려놓고 공사장에서 주워온 나무로 불을 집혔다. 솥에 김이 오르며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동틀 무렵 비릿한 냄새는 사라지고 구수한 내음이 진동을 했다. 한지에 걸러서 그릇에 담아내니 뽀얀 곰탕 같았다.
뽀얀 탕을 받아든 남편은 시아버님께 잡수시기를 권했다. 주저없이 그릇을 받아든 시아버님은 뽀얀 탕을 단숨에 들이키셨다. 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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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옥|2005년 《수필과비평》 신인상, 2007년 《문예춘추》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그리움은 강물처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