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사람은 사람과 더블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떨어져 살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나 요즘같이 현대문명이 발달한 시대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산속에서 홀로 수행하기란 더욱더 어려운 것이다.
문명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삶이란 나무와 흙으로 만든집에 자연이 주는 음식만 먹고 살아가야 한다.
산나물이나 강이나 바다에서 잡은 고기를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현대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산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당장 빨래만 하더라도 세탁기에 의존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보면 문명의 혜택이란 끝이없다.
스님은 세속을 떠나서 출가를 한 사람이다. 출가식도 거창하게 치룬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스님은 자기절에 놀러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요즘 그렇다.
사람이 놀러와야 시주돈이 생기고 먹고 살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면 일단 사귀고봐야 한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절은 죽은 절이다. 그러나 사실은 진짜 스님일수 있다.
본래 스님은 사람들이 찾아와선 안되고 스님은 도를 통한 후에 스님이 덕을 쌓기 위해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은 받는 기운이 있어야 한다. 사주에 얻어먹는 기운이 있어야 시주돈을 받는 것이다.
나무가 물을 공급받는다(수생목). 불은 나무가 있어야 활활 타오른다(목생화) 이런 구성이다.
그런데 요즘은 스스로 출가를 하고 스스로 사람들이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형태로 바뀌었다.
요즘은 나홀로 스님을 많이 보게 된다. 나홀로 스님이란 홀로 중이다. 해인사, 선운사, 통도사, 마냥
큰 절속에서 규율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홀로 자유롭게 사는것이다. 해인사나 통도사 대부분의 큰 절도
초기에는 나홀로 스님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규율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절의 웅장함도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웅장함은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왕이면
웅장하고 화려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곧 권위가 된다. 이것은 편안하게 살기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홀로 개척해가는 스님들은 초기에 일단 경치 좋은 곳에 터를 마련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동네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는 것이다. 요즘 국가조직체계가 너무도 잘되어 있기 때문에 세속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다. 읍면동리로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한 동네에 들어서면 이장의 권한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요즘은 통장이나 이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통장이나 이장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다못해 논두렁 지기의 명당을 타고나야 이장을 해먹는 것이다.
동네에 가서 터를 마련함은 바로 윗사람과의 갈등이다. 직장을 다녀도 가장 먼저 상사와의 갈등이다.
어느곳에 가든 어떤 일을 하든지 윗사람과의 일을 떠나서는 되는 일이 없다.
이것을 인간관계라고 말한다. 내가 상사와 관계가 나쁘다고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어느 동네에 들어가면 윗사람과 마찰이 빚어지면서 느끼는 것은 동네인심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부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그 동네는 인심이 나쁘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로 자기만의 생각이다.
그래서 내 기준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그런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주에서 직장내의 상사나 동네 윗사람과 사이가 좋으려면 사주구성이 좋아야 한다.
사주에서 윗사람이란 관(官)이다. 자신을 극하는 관계이다. 음양오행의 기운에서 극하는 관계가 좋아야한다.
극하는 관계가 좋으면 위사람이나 직장내의 상사가 좋아하게 된다. 극하는 관계가 나쁘면 반드시 윗사람과
사이가 나빠지게 된다. 그리고 나쁜데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윗사람들에게 찍히게 행동한다.
그래서 한번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잘 살펴야 한다.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사주에서는 충이라고 말한다.
윗사람과 관계가 충이 된다고 말한다.
이렇듯 사주의 구성이 되어 있으면 위사람과 사이가 나쁘다. 위 구성 말고도 많은 경우가 있다.
반드시 한두번 윗사람과의 마찰이 빚어진다. 관(官)이란 누구나 한번쯤 접하게 된다.
60갑자는 돌고 돌기 때문에 반드시 누구나 한번쯤 좋지 못한 시기가 도래하게 된다.
그때 윗사람과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사주의 구성뿐만이 아니라 대운에서 관이와서 자신을 나쁘게
극해도 충돌이 빚어지는 것이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미움받거나, 동네에서 동네사람들에게 미움받거나
어느 선생님에게 미움받거나, 어느 단체에서 미움받거나하는 것은 관이 나쁘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행동에 반드시 문제가 있다. 버릇이 없거나 거만하거나 이기적인 태도에서
윗사람의 미움을 받는 것이다. 또 사주의 구성이 그렇게 되어 있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수 없다.
내가 관에게 얻어맞으면 죽기 때문에 살기위한 몸부림이다. 기댈곳은 자기 자신이다. 그렇다보니
눈치가 빠르고 자신만 생각하고 남을 베려하려는 생각이 나지 않고 나 살자는 생각만 하는 것이다.
사주의 구성상 관이 나쁘게 되어 있으면 한번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고문관이 한명씩 있다. 고문관 때문에 부대원 전체가 얼차례를 받는다.
지독히도 고참들이 미워한다. 고문관의 행동을 잘 살펴보면 매우 이기적인 행동에서 비롯된다.
잔머리를 쓰다가 들통나기 마련이다. 전혀 베풀지 못한다. 자기의 입만 생각한다. 단독행동을 한다.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남들 다 하는데 하지 않는 것에서 나타난다.
윗사람에게 찍힌다는 것은 위사람과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휴가를 갔다온 놈이 순대를 사가지고 오지 않았다. 순대 만원이면 군 부대 근처는 매우 많은 양이다.
만원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사가지고 부대로 들어가는 것과 그냥 빈손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차이다.
이것을 싫어할 고참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전우애 가족애와 같은 정이 느껴진다.
내물 같기도 하지만 작은 배려는 필요하다. 내 손에서 물질이 나가면 정신적인 것을 얻는 것이다.
정신은 곧 재물이 된다.
그러므로 관이 나쁜 경우 항상 윗 사람에게 남다르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자신이 어느직장, 어느단체
어느동네에 가서든 윗사람과 마찰이 빚어지면 한번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주의 생각을 버리고 이웃과 더블어 사는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우리와 공동체라는 생각을 가지면 된다. 조금만 배려한다면 남들보다 앞서게 된다.
베푸는 것은 반드시 다시 받기 마련이다. 살아생전에 받지 않으면 죽어서 받는다. 기운을 돌고 돌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원리이며 전 우주적인 시스템이다.
--- 출처: 신농법사주학(원리역학) http://www.tdmc.co.kr/ 글: 大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