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로 만든 작은 가방을 선물 받았다. 친구 수용이가 한 땀 한 땀 손으로 박음질해서 만든 휴대전화 집이었다. 한 사람이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만들어준 명품이었다. 나는 그것을 꽃이라 부른다. 친구는 그 가방을 만드는 동안 정성스럽게 친구를 생각해 주었으리라. 퀼트의 매력은 아마도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면서, 오래 상상하는 인내의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오래 손안에 붙들어서 꽃을 불러오고 나비를 날게 하고 하늘위에 구름도 띄우는 동안 그녀는 몰입, 자기도 모르는 세상을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 그것은 아마도 겨울 지나 봄이 오는 그 얼음의 시간 속에 꽃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누가 알랴, 겨울은 꽃들을 데려오기 위래서 그 길고 추운 시간을 맨발로 견디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겨울 추위는 참으로 절절해서 절대로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루걸러 눈 오시고, 하늘은 삼한사온도 잊으신 듯 연일 땅은 꽝꽝 얼어서, 내 집에서 옆집까지도 천 리 길이었다. 내가 사는 용인 모현면의 초부리는 깊은 시골이어서 겨우내 사람의 그림자 구경도 힘들었다. 밤새 눈 내리고 아침에 창문을 열면 설국! 그것은 세상의 모든 소리와 모습과 사람의 죄까지도 침묵! 그 속에 고요히 침잠하는 모습이었다. 밤이 오면 물먹은 하늘도 얼어붙어서 그 깜깜 속에 별들은 눈만 깜빡, 깜빡. 그것은 마치 시간을 결박하는 이상한 동화처럼 삶과 죽음이 한 덩어리로 형형한 우주의 초월을 보는 듯했다.
그런 것들을 골똘하게 생각하며 내가 매일 다니는 산책길, 고양이 한 마리 얼어 죽어 있었다. 긴 겨울 정수리쯤의 일이었다. 고양이는 손수건만 한 볕뉘 위에 앞발 뒷발 꽃잎처럼 포개 누워있었다. 추운 발은 저절로 고양이를 외면하고 나만의 길을 동동질치며 걷곤 했다.
그러기를 일주일째 꿈자리 영 뒤숭숭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맨발. 그 뒤로는 깜깜한 시냇물이 흐르고 죽은 자의 발목 위에 또 발목. 그 아래 맨발. 산 사람의 모습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이상한 모습으로 아버지는 매일 나를 찾아오셨다. 원래 죽은 자의 어법은 겨울의 언어를 닮아서 소리가 없는 법. 그래서 겨울을 잘 견디면서, 결빙의 시간을 오래 지켜봤던 사람은 죽은 자의 침묵도 소리로 알아듣는 법이라는데. 그런 경지는 꿈도 꾸지 못하는 나는, 도무지 어지러운 시간 속을 헤매는 수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긴 겨울은 그렇게 얼어붙은 마음으로 사람의 주위를 빙빙 돌고 돌았다.
나는 내 잠이나 실컷 재울 속셈으로 삽 한 자루 배낭에 지고 길 나섰다. 그날도 눈발은 훨훨 날렸던가. 그렇게 고양이 한 마리 무덤 하나 지어주었다. 빈손으로 가볍게 주검의 무게를 받아 땅속에 다독다독 꽃씨 하나 묻었다. 꽃 한 송이 자장자장 재웠다. 순한 짐승의 숨소리 들리는 듯했다. 어쩌면 꽃들이 돌아오는 소리? 흙에서 사람의 살 냄새 풍겼다.
그렇게 겨울의 긴 침묵이 끝이 나고 기러기들 남쪽으로 모두 날아간 때. 고양이 무덤 위에 새순이 반짝, 했다. 언뜻, 아직은 눈에 가득 차진 않지만 저것은 흙을 헤치고 먼 길 돌아온 자연의 당당함이리라. 신기해서 그 자리에 앉아 맨손으로 흙을 다독다독 다듬었다.
아직은 겨울의 냉기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그래도 그것은 생명의 소리처럼 경이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밭으로 나와 흙을 갈아엎는 오늘, 내 친구 수용이의 순연한 바느질처럼 머지않아 저 속으로도 꽃과 나비와 벌들이 무진장 찾아들리라. 그것들을 위해서 겨울은 춥고 긴긴 밤과 낮을 속수무책 견뎠으리라. 갑자기 세상이 환해지면서 겨울아, 고맙다, 수고했다!.
- 경기일보, [아침을 열면서], 2013, 3,25.
첫댓글 푸른 5월에 뵙지는 못하지만, 언제까지나 저희는 손현숙 선생님을 향해 해바라기합니다. 늘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저희도 선생님의 기억 속에 다시 피는 꽃이길 바래봅니다. ^^&
봄은 흙투성이로 옵니다.
상추, 치커리 싹으로 돋아났습니다.
옥상의 고무대야는 싹 올리기에 열중입니다. 순한 연녹색 점들이 개체 수를 늘리고 있습니다.
도닥도닥 마음을 다독여 주는 선생님 글 뵈니 반갑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