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육성" 시리즈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용어는 "투구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투구의 요소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스터프"라는 것에 놀랄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불같은 강속구, 타자를 당혹케 하는 체인지업, 그리고 폭발적인 슬라이더가 포수가 원하는 곳으로 정확히 꽂히는 모습이야 말로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나 요한 산타나의 체인지업과 같은 몇몇 구종들은 그 가공할 파괴력으로 인해 해당 구종 자체가 별도의 존재감을 띠게 되어 이를 구사하는 선수들의 위대함을 정의해주기도 하며, 월터 존슨의 강속구와 샌디 쿠팩스의 커브와 같은 전설적인 구종들의 경우 세월의 흐름마저 거스르며 직접 눈으로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차 깊은 인상을 남기곤 한다.
투수의 스터프가 어느 정도이냐 하는 것은 해당 투수의 투구 메커니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속은 투구 동작의 선 운동량, 회전력, 그리고 회전적인 요소 등을 통해 전달되는 운동 에너지에 의해 결정이 된다. 커맨드는 투구 메커니즘의 타이밍과 시퀀스의 일관성, 그리고 동적 균형 및 자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공의 무브먼트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 또한 투구 메커니즘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그리고 투수가 어떤 구종을 구사하기 위해 공을 잡는 그립이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특정 구종이 어떻게 얼마만큼 변화하느냐는 그 그립보다 투수가 공을 놓는 시점(릴리스 포인트)에서의 투수의 전완부(forearm, 팔뚝)의 각도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선발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패스트볼, 브레이킹 볼, 그리고 오프스피드 피치, 이 세 가지 구종에 대한 커맨드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지난 주 메츠와의 경기에서 등판한 팀 린스컴은 두 가지 종류의 패스트볼, 두 가지 종류의 브레이킹 볼, 그리고 타자들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기 위한 스플리터 등 총 다섯 가지의 구종을 구사했다. 해당 경기 중계 도중 린스컴이 자신이 구사하는 구종들의 다양한 그립들을 보여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서 소개된 구종들 중에는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의 구종 외에 해당 경기의 PITCH f/x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은 커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린스컴이 공개한 그의 투구 레파토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패스트볼

거의 모든 구종들의 그립에서는 엄지와 검지로 공을 이등분 하듯이 집는데, 이 특징은 린스컴이 던지는 두 종류의 패스트볼 그립에서도 잘 나타난다. 왼쪽의 포심 패스트볼 그립의 경우 검지와 중지가 실밥을 감싸는 형식으로 공을 잡고 있으며, 오른쪽의 투심 패스트볼의 경우 검지와 중지가 실밥과 평행하도록 공의 스위트 스폿을 감아 쥐는 것을 볼 수 있다. 전 메이저리그 투수 출신으로 투구에 일가견이 있는 자이언츠 아나운서 Mike Krukow씨는 투심 패스트볼을 던질 때에는 검지에 좀 더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좌투수의 경우에는 좌측, 우투수의 경우에는 우측으로 움직이는 투심 패스트볼 특유의 arm-side 무브먼트를 이끌어내는데 필요한 회내 동작(pronation, 손바닥이 아래쪽을 향하게 하기 위해 전완을 움직이는 것)이 일어나는데 도움을 주는 테크닉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경우 릴리스 포인트에서 투수의 손바닥이 목표 지점을 향하게 되고, 팔로우 스루(follow through) 동작을 통해 회내동작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다. 회내 동작에서 투수의 팔은 손바닥이 몸 바깥쪽을 향하고 엄지가 땅을 가리킬 때까지 돌아가게 된다. 팔로우 스루 중에 회내 동작이 일어나는 건 투수와 구종을 불문하고 공통적이다. 그러나 어떤 구종들의 경우 일정한 수준의 회내 동작이 릴리스 포인트 이전에 미리 이루어져야 한다. 투심 패스트볼은 이러한 구종들 중 첫 번째이다. 투수는 투심 패스트볼을 던질때 검지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경미한 회내 동작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릴리스 포인트에서 투수의 손바닥은 약간 몸 바깥쪽을 향하게 된다.
브레이킹 볼

린스컴의 커브 그립(좌측)을 보면 손가락 위치 자체는 투심 패스트볼 그립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그립의 가장 큰 차이점은 투심 패스트볼 그립에 비해 회외 동작(supination, 손바닥이 위쪽을 향하게 하기 위해 전완을 움직이는 것)이 더 많이 일어나 있다는 것이다. 회외 동작은 회내 동작과 정반대의 동작으로, 회내 동작이 완전히 일어난 경우 투수의 손과 팔은 가라데에서 손날을 내려칠 때와 마찬가지로 손바닥이 몸 안쪽을 향하게 된다. 이러한 전완부의 각도는 슬라이더(우측)의 무브먼트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슬라이더 그립에서는 패스트볼과 커브 그립에서 일각각 일어나는 것들에 비해 중간 정도의 회외 동작이 일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각 구종 그립들 간에 전완부 각도가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투수가 전완부 각도를 조절하는 테크닉의 기능적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회외 동작이 크게 일어나면 날수록 구속은 줄어들고 공의 변화는 더 커진다. 패스트볼로부터 커터, 슬라이더, 커브, 그리고 슬러브 또는 슬러터와 같은 하이브리드 구종들을 포함한 브레이킹 볼의 분류 체계를 따라가다 보면 각 구종 그립에서 일어나는 회외 동작의 크기가 순차적으로 더 커짐을 알 수 있다.
커브는 릴리스 포인트에서 회외 동작이 가장 크게 일어나야 하는 구종이기 때문에, 팔로우 스루 과정에서 일어나는 회내 동작 또한 가장 크며 따라서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힘 또한 가장 크다. 하지만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도 회외 동작을 수반하는 커브는 내가 리틀 리그에서 배운 커브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다. 리틀 리그 시절 내가 배운 커브 투구법은 릴리스 포인트에 도달하기 직전에 손목을 팽이 돌리듯이 비트는 동작을 수반하는데, 내 리틀 리그 시절 코치는 이를 "프링글스 깡통을 빙글빙글 회전시키듯이 던지는 동작"이라고 표현했었다. 팔꿈치 안쪽 살짝 윗부분에 손을 대고 손목을 비틀어보면 추가적인 힘이 해당 부위에 작용함을 알수 있는데, 이 힘 때문에 손목을 비트는 동작을 수반하는 이른바 "트위스터 커브"는 매우 부상 위험성이 높다. 게다가 이러한 비트는 동작을 수반한 투구 동작에서는 던지는 팔의 속도가 감소함에 따라 팔목에 반동이 오기 때문에 팔로우 스루 과정에서의 회내 동작을 복잡하게 만든다.
트위스터 커브는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투수들에게 있어 특히 위험하기 때문에, 최근 리틀 리그에서 커브에 대한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트위스터 커브에는 기능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또 다른 문제점이 있는데, 해당 방식으로 커브를 던지면 공의 변화 자체는 반원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관중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던지는 팔의 동작이 패스트볼이나 회외 동작을 수반하는 커브를 던질 때에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가 나게 된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그 차이점을 빨리 눈치채고 타격에 수정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손목을 비트는 방식으로 던지는 커브는 매우 출중한 낙차와 스핀을 보이는 경우에만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게 된다. 그에 반해 회외 동작을 수반하는 방식으로 던지는 커브의 경우 그리는 궤적이 패스트볼과 유사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더 큰 위협이 된다.
체인지 오브 페이스(Change of Pace)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부터 예상할 수 있듯이 린스컴의 커터 그립(좌측)에서 나타나는 회외 동작의 각도는 그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그립에서 각각 나타나는 각도의 중간 정도로, 포심 패스트볼 그립에 비해 아주 살짝 전완부가 돌아간 정도이다. 이론상 투수는 이러한 전완부의 각도를 살짝살짝 조절함으로써 구속 및 변화각이 차이나는 여러가지 종류의 브레이킹 볼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다르빗슈 같은 선수들은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하여 전완부의 위치와 각도를 조절으로써 자신이 구사하는 브레이킹 볼의 속도와 변화각을 살짝살짝 바꾸고, 결과적으로 서로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여러 종류의 브레이킹 볼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린스컴이 구사하는 커터, 슬라이더, 그리고 커브의 차이는 각 구종의 그립에서 나타나는 전완부의 회외 동작의 크기로 잴 수 있다.
린스컴이 유일하게 구사하는 오프스피드 구종인 스플리터 그립(우측)은 공의 실밥이 말발굽처럼 벌어지는 부위를 검지와 중지를 실밥 바깥에 놓는 방식으로 잡는 집게발 모양의 그립이다. 린스컴의 스플리터는 종종 체인지업으로 분류되곤 하는데, 그가 스플리터를 던지는 방식은 전형적인 스플리터의 경우와는 다르게 사전에 회내 동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릴리스 포인트에서 전완부의 각도가 패스트볼을 던질 때와 유사하게 된다 린스컴의 스플리터의 경우, 공을 손가락 깊숙이 끼워넣는 방식으로 잡기 때문에 손과 공 사이에 마찰력이 커지게 되고, 이로 인해 구속이 줄어들게 된다. 전형적인 체인지업의 경우 투심 패스트볼에 비해서도 보다 더 큰 전완부의 회내 동작을 릴리스 포인트 이전에 일으킨다. 체인지업의 그립에는 서클 체인지 등 매우 다양한 그립이 있는데, 투수들은 체인지업을 구사하기 위해 각자에게 적절한 전완부의 각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기 위해 각자에게 맞는 그립을 고르게 된다. 체인지업은 투수의 "감"에 크게 의존하는 구종으로, 몇몇 투수들의 경우 이 감을 잡는데 애를 먹는다. 이 점 때문에 체인지업은 투수가 일관성 있게 구사하기가 가장 힘든 구종 중 하나이다.

* 왼쪽 사진에서 할러데이가 구사하고 있는 구종은 무엇일까?
좌측 사진에서 할러데이는 커브를 던지고 있고, 우측 사진에서는 커터를 던지고 있다.
결국에 이 모든 것은 의미론(semantics)적인 이야기다. 댄 해런이 커터라 부르고 구사하는 구종은 전형적인 슬라이더처럼 변화를 하지만, 해런 자신이 구사하는 구종이기 때문에 그 구종을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내가 의문을 제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투수가 자신이 구사하는 구종들에 부여하는 명칭은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는 구종의 전형과는 전혀 다를 수가 있지만, 결국 특정 구종에 어떤 명칭을 부여하느냐는 그것을 구사하는 투수에게 전적으로 달린 문제이다. 피칭 메커니즘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커터는 해당 투수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에서 각각 나타나는 회외 동작의 각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의 각도로 회외 동작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정의가 된다. 하지만 해당 투수가 해당 구종에 어떤 명칭을 부여하느냐는 해당 구종을 던질 때의 그립, 감, 해당 구종의 구속, 변화 궤적, 또는 해당 구종으로 아웃을 잡아낸 타자들이 풀죽은 모습으로 덕아웃으로 걸어가면서 보이는 반응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 될 수 있는 것이다.
National Pitching Association에서는 투수들에게 조언을 할 때 스카웃들과 감독들이 선호하는 방식에 따라 자신들의 구종에 명칭을 붙이라고 조언한다. 투수를 평가할 때 상대적으로 더 선호되는 구종 콤비네이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좀 더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커브를 "파워 슬라이더"라 재명명 하는 경우도 있고, 스카웃들이 특정 구종에 그레이드를 메길 때 그 특정 구종이 불리우는 명칭으로부터 예상되는 변화 및 구속을 염두에 두고 그레이드를 메기는 경우도 보인다. 내 경우엔, 투수가 자신의 슬라이더를 "장미 봉우리"라고 이름 붙이더라도 해당 구종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이상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