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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째 날(8월 8일)
(22)
왜 코리아 나폴리 인가
"나폴리를 세계 3대 미항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나폴리항에서 이렇게 부르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한국의 나폴리 운운하는 언어습관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나폴리를 이태리의 통영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우리 300리 한려수도의 통영항이 이태리의 나폴리보다 아름답다는 뜻이다.
한데 포르투 해변을 걸으면서 자신이 없어졌다"
이베리아 반도의'포르투길'(Camino Portugues) 첫날 밤에 포르투(Porto)해변 호스텔
포우사다 주벤투드(Pousada Juventude)에서 쓴 메모다.
잘 정리되고 아름다운 포르투 해변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점이 다를 수 있음을 전제하고 내게 나폴리는 칸초네(canzone) 싼타 루치아(Santa
Lucia/나폴리의 수호성인 聖女루치아)로 미화되었을 뿐 3류항에 불과하다.
내가 이 옛 기록을 들추는 것은 '코리아 나폴리'라는 이름에 대한 불만의 표시도 된다.
한국의 수려한 항구들을 두고 알려진 명성과 달리 이탈리아의 지저분한 항구 이름을 왜
땄느냐는.
그만큼 코리아 나폴리가 내게 인상적이라는 역설도 된다.
나폴리뿐 아니라 소렌토와 카프리섬도 마찬가지다.
카프리섬은 소렌토에서 접근성이 용이한 점을 빼면 우리나라의 홍도하고 비교되는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다.
우리는 천부의 귀한 자원들을 활용할 줄을 모른다.
모를 뿐 아니라 거시적 안목을 갖지 못하고 미시적이기 때문에 망할 짓만 골라 한다.
로마가 길이 넓어서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가는가.
폼페이는 폐허가 관광자원이다.
간밤에 코리아 나폴리의 인정많은 여주인 때문에(?) 아침으로 미룬 보성과 와온의 정을
더 미룰 수 없어서 누룽지를 끓였다.
굴러가도 내일 1차목적지인 여수엑스포장에 도착할 수 있다는 여유의 뒷받침이 없다면
아침에 이처럼 느긋할 수 있을까.
누룽지까지 먹은 아침인데도 와온슈퍼에 들러 우유 1팩을 샀다.
어제의 고마움에 대한 표시를 이렇게라도 하고 싶어서.
물이 멀리 물러난 갯벌인데 아침식사 시간이기 때문일까.
한가로운 갯벌 따라 조금 나아가면 용화사 입구에 소코봉 등산로 표지판이 서있다.
봉우리가 소의 코처럼 생겼나.
와온은 해변마을인데도 날렵하고 지혜로운 물고기 대신 이름대로 우직하고 굼뜬 소로
시작해서 소로 끝난다.
마을 인심, 인정도 그랬으면 좋겠다.
얼마 가지 않아 순천과 여수를 가르는 T자길에서 우측 다리(두봉교)를 건넜다.
드디어 여수땅(栗村面 斗奉마을)에 들어선 것.
디카에서 확인된 시간은 2012년 8월 8일 09시 28분 21초.
여수땅을 조금 더 걸었을 뿐인데 순천만이 여자만(汝自灣)으로 바뀌었다.
여자만은 바다 가운데 있는 섬 여자도를 딴 이름으로 여수, 순천, 벌교, 보성을 아우르는
넓은 바다를 뜻한다는데 갯가의 정자 '여자만 쉼터'간판이 여자만에 들어섰음을 알린다.
한데, 물 빠진 갯벌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별난 사람이 있다.
마른 땅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텐데 뭘 낚는 중일까.
남해의 어촌생활에 무지무식한 이 늙은이만 의아해 하는 것이겠지.
주체할 수 없는 실망
곧 두봉마을 버스 종점에서 시내버스 운전기사로부터 더 없는 희소식을 들었다.
해안따라서 가는 길은 없다는 것이 어제 와온에서 취합한 정보였는데 여수 도심 한하고
갈 수 있게 되어 있다니 이럴 수가.
해안길을 당당하게 걸어서 엑스포장에 골인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잖은가.
신명이 난 늙은이는 기사에게 심심사례하고 지체없이 나섰다.
상봉리 '도로끝2.2km' 안내판 앞에서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차로를 의미할 뿐 해안따라 가는 길과는 전혀 무관할 것이라고.
달리듯 단숨에 당도한 2.2km 지점은 과연 차량의 종점이다.
계단 아닌 계단을 타고 내려가 해안을 걷기 시작했다.
모래지역과 바위지대를 돌고도는 동안에도 서해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밀물때는 산으로
올라 걷다가 썰물과 람께 내려서면 된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마침 밀물때가 되었지만 아무 걱정 없이 한가롭게 나아갔다.
갯벌이 서서히 물에 덮여가는 것도 볼만하다 생각하며.
갯벌이 완전히 사라져가는 시점에 앞으로도, 산으로도 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앞은 이미 물에 잠겼고 산은 절벽이다.
밀물때가 아니라도 갈 수 없는 담수지역이다.
휘돌아온 한 굽이 바위지대가 이미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퇴로도 차단되고 썰물때까지 완전 고립상태가 되겠다.
간이 커서 그런지 겁없기로 공인된 늙은이가 얼마 후에는 빠져나갈 밀물에 갇힌다고 겁
내기야 하겠는가 마는 이 큰 실망을 어찌 주체할까.
어렵사리 되돌아나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새 길을 내던 공사는 중단되었고 넘어갈 수도 없는 산(가림산?)이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버스기사.
그는 왜 자신있게 말했을까.
도로공사가 중단된 것을 모르고 개통되었으리라고 믿고 있었던가.
피우던 담배를 숨길 정도로 예절바른 그가 설마 낯선 영감을 골탕먹이려고 그랬을까.
2시간 반을 허비하고 원위치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밀물 때문에 바다에서 돌아온 한 어부의 말은 절망적이었다.
부분적으로는 해안길이 있으나 곧 막히고 뱃길 외에는 없다는 것.
버스길을 따라 소라면에 가서 물어보란다.
맥이 빠진데다 갓길 표시조차 없는 좁은 차로를 걸을 일이 난감해 뙤약볕도 아랑곳없이
길바닥에 주저 앉았다.
해안으로 드라이브를 나온 듯 도로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젊은 한쌍의 승용차가
고맙게도 편승을 허락했다.
인도(人道)가 있는 지점까지만 부탁했건만 고마운 운전자는 엑스포장 인근까지 달렸다.
한낮(12시 53분)에 도착함으로서 하루가 또 당겨졌다.
엑스포가 폐장하는 8월 12일 전일을 도착일로 예정했는데 함평, 무안에서 각각 하루씩,
오늘 하루 등 3일을 앞당겨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단축된 3일이 모두 내 바람과 다른 결과물이기 때문에 기분은 되레 꿀꿀했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엑스포장 주변은 파장시간이 임박한 시골 대목장마당이 연상되도록 어수선했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3대 축제중 하나로 개최기간이 3개월이라면 다른 두 행사에
비해 장기간이다.
그런데도 행사장 코앞에 임시용 널따란 천막식당이다.
그 안의 손님 역시 1회용 바가지에 불과하다.
이미지 관리는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석양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오동도로 갔다.
창해상전(滄海桑田/桑田碧海)이다.
그러나 잘못 변했다.
예전에는 유구한 세월을 느꼈는데 하나같이 몇년 살다 말 곳처럼 변했으니까.
손님 편에서 생각하고 손님을 고려하지 않고 손님의 주머니만 노리는 것 같다.
오동도에서 내려다보는 엑스포장은 몹시 협소하다는 느낌이었다.
93일 동안에 목표대로 1.000만명이 입장하였다면 1일 평균 11만명인데 그 많은 군중이
들끓는 좁은 공간에 아무리 볼거리가 많다 해도 나는 기피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엑스포에 관심이 없다.
다만, 그 기간내에 여수에 도착한다는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입장 직전까지도 망설였다.
입장료도 경로19.000원이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면 아마 포기했을 것이다.
막판의 덤핑(dumping) 5천원으로 입장은 했으나 떠밀려 들어온 사람같은 느낌이었다.
"여러 수사적(rhetoric)인 표현과 행사,절반의 성공 운운하지만 폐막 4일을 앞둔 야간의
제 나름의 느낌은 서-남-동 길의 완결 이후에 할 연재에서 밝히겠습니다."
서남동길 중간보고(4)에서 더불어人 여러분께 약속했지만 포기한다.
일부 정책의 과오와 혼선이 있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2조 1천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93일간 심혈을 기울인 분들에 누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관람자 수가 예상치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관람객이 10만명을 넘어서자 박람회장 각 전시관은 물론 통행이 가능한 보행 공간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면 차라리 잘된 일 아닌가.
경찰과 관계자들이 무사고를 자랑하고 있으나 그들의 철저하고 세심한 대비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엑스포 종사원이 명함을 주며 안내한 찜질방에서 내린 결론이다.
엑스포장에서 멀지 않은 잘 알려진 목욕탕 찜질방이다.
목욕과 찜질은 커녕 누울 자리가 없다.
위 아래층 모든 공간과 오르내리는 계단까지 등을 댈만한 곳은 발들여놓을 틈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손쉬운 출구를 찾아보았으나 미로처럼 되어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간 큰 늙은이도 겁이나서 창문쪽을 비집고 앉아 눈을 감았다.
당연시 되는 바가지 상혼(商魂)은 인명과는 무관하므로 잠시 기분이 나쁠 뿐이다.
사람과 차량이 밀집하는 행사장 등 노출지역은 오히려 안전 사각지대가 아니다.
행사로 인해 평소보다 월등히 많은 대중이 집결하는 비노출지역의 화재,폭발 등 위험에
대한 점검과 대비를 했는가?
사각지대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행히도 사고가 없었다 해서 안전엑스포를 자기네의
공로로 돌리려 하는 것이야 말로 후안무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엑스포 단상
나도 운이 좋은 사람중 하나일 것이다.
엑스포 기간 내내 이랬는지는 모르지만 먼동이 트자마자 찜질방을 나왔을 때 하룻밤을
시달린 연옥(煉獄/가톨릭: 死者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남은 죄를 씻기 위하여
불로 단련받는 곳)을 벗어난 느낌이 이런 것일 거라고 생각해 보았으니까.
곧바로 엑스포역(여수역)으로 갔다.
무겁고 부피 큰 배낭을 역 한구석에 놓고 엑스포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인파에 시달려 피곤한가.
청소요원들만 바삐 움직일 뿐 곤히 잠들어 있는 엑스포장.
더욱 허전하게 느껴지는 빅오쇼(Big-O show) 현장.
인기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반사적 공허일 것이다.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The Living Ocean ahd Coast)이라는 주제.
신선하다는 평가라지만 호응도가 약하면 공허할 뿐이다.
나흘 후에는 저 건물들과 시설물들의 문제가 대두될 텐데 어떻게 풀어나갈까.
2011년 5월 17일, 오전에 스페인의 사라고사에 머물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만든 일정이 아니고 아라곤길(Camino Aragones)을 걷기 위해 프랑스국경
솜포르트로 가려면 사라고사(Zragoza)역에서 환승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옛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던 사라고사는 스페인 북동부를 흐르는 에브로 강 중류에 있는
인구 70만 남짓 되는 중도시인데도 거대한 역과 특이한 대형 건물들에 놀랐다.
2008년 엑스포의 결과라고 관광안내소 직원은 설명했다.
엑스포를 위해 스페인 정부가 사라고사를 경유하는 마드리드 ~ 바르셀로나 고속철도
(AVE)를 건설함으로서 역이 일대 변혁을 하게 되었단다.
건물들도 박남회 종료후 50% 이상을 기관과 기업에 임대함으로서 후환이 전혀 없단다.
인구 20만대인 작은 해안도시의 과욕인가 정치권의 지역개발 나눠먹기 배려인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게 된 우리와 달리 사라고사 엑스포 조직위는 열악한 정부지원과
재정을 고려해 민자투자에 초점을 맞췄단다.
총 87억 유로(한화 약 1조 4천억원)중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은 22억 유로 뿐이고
65억 유로가 민간투자라니까.
"물과 지속적인 발전" 이라는 대주제의 호응도를 높인 것은 물이 '특별한 자원', '생명의
근원', '세계를 잇는 통로' 라는 3개의 부제란다.
관람객 수에 집착해 갈팡질팡 하다가 덤핑치기로 800만을 채웠다지만 외국인이 통틀어
40만이라면 안방잔치에 불과한데 사라고사는 600만중 30% 이상이 외국인이란다.
지리적 차이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이것이 일본과 중국의 외면을 설명할 수는 없다.
엑스포 개최로 사라고사는 각종 기반시설을 확충함으로서 남부유럽 최대의 물류허브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이 총 결산이라니까 부럽다.
같은 엑스포 개최역인데 여수역은 사라고사역에 비하면 간이역에 불과하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라는 거대도시 간의 중간역과 달리 소규모 해안도시인데다 종착
역이라는 약점탓이라고 이해하며 순천행 무료 열차에 오름으로서 1차 목표를 마쳤다.
한데 엑스포가 막을 내린지 1년되는 시점에서 빅오쇼를 재개했단다.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THEA(The Theme and Entertainment Association /테마 엔터
테인먼트 협회)의 '올해의 쇼' 상(Awards/2012년)을 받은데 용기가 생겼나.
이미 800만명이 보고 갔으며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데 누구의 지갑을 털겠다는 건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발상은 미시적이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