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리포트 pt.4
영어연수를 위해 해외로 나갔던 학생시절 우연히 체스를 접하게 된 이후 이제까지 줄곧 체스와 함께 살아 왔지만 일이 이렇게 커지게 될 줄 몰랐다. 하수 아마추어 체스인이 세계연맹 공인 심판이라니... 지난 십년간 체스동호인으로 해왔던 일들이 이제부터는 공적인 일들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특별히 부담스럽지도, 그렇다고 재미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내가 하는 일들이 공적인 기록으로 남고 그 만큼 대외적 영향력도 커진다는 생각에 특별히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다. 이제까지 즐기면서 일해 왔고 앞으로도 즐기면서 놀면서 일하면 된다. 다만 이제부터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공적인 책임이 따를 뿐이다.
12월 23일 드디어 모든 아비터 세미나의 공식 일정이 끝나고 운 좋게도 나는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나의 일행이었던 오정엽 선생님과 송진우 선생님 또한 시험에 합격하였다. 총 14명의 수강자 중 8명이 합격하였고 시험성적 또한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하였다. 이그나시오스 룡씨는 수강자와 강의자 등 아비터 세미나 관련자들을 모두 시 프론트에 있는 음식점으로 초대해 주셨다. 시 프론트의 시푸드 점보[SeaFood Jumbo(珍寶)]라는 레스토랑은 전형적인 중국음식점으로 싱가포르의 모든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커다란 야외 레스토랑이었다. 수강자들과 룡, 그리고 슈투벤폴 등은 긴장을 풀고 담소를 즐기며 이국적인 저녁의 황홀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그나시오스 룡씨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흥미로운 이야기보따리를 꺼내셨다. 동남아시아의 체스 활성화에 자신이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도 은근히 자랑을 했고, 어떤 곳이든 여자체스가 활성화되어야 체스가 전반적으로 부흥한다는, 평상시 나의 지론과 흡사한 이야기를 꺼낼 때는 룡씨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또한 수강하느라 정신없어서 미처 통성명도 못했던 다른 수강자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순간이었다.
12월 24일은 공식적인 일정이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속기체스대회가 있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송선생님과 나는 기뻤다. 200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한 속기체스대회는 각 선수당 시간제한이 30분이고 총 6라운드의 스위스 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4승 2패, 그리고 송선생님은 5승 1패로 대회를 마쳤다. 송선생님은 간신히 상금권에 들어 24싱달러를 받았다. 아쉽게도 나는 1승점이 모자라 상금을 받을 수 없었다. 대회 참가비가 싱달러로 25$였기 때문에 나는 25달러 적자, 송선생님은 1달러 적자였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두 차례나 마스터를 만나서 블리츠를 둘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레슨비를 치렀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그 두 번의 대국 중 하나는 인상적인 대국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소개해보겠다.
싱가포르 크리스마스이브 블리츠 대회
최준일[1911] vs. Cain,C.[2371] 제4라운드, 2006년 12월 24일
1.e4 c5 2.Nf3 Nc6 3.d4 cxd4 4.Nxd4 Nf6 5.Nc3 e5 6.Ndb5 d6 7.Bg5 a6 8.Na3 b5 9.Nd5 Be6?!
[사실 상대가 왜 이러한 수를 두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포지션에서 흑의 유일한 수는 9...Be7!이다. 이후 10.Bxf6 Bxf6 11.c3 0-0 12.Nc2 12...Bg5 13.a4 bxa4 14.Rxa4 a5 15.Bc4 Rb8 16.b3 등으로 진행되는 일이 보통이다.
9...Be6의 문제는 10.Bxf6! gxf6 11.c3 이후, d5에 대한 지배력을 놓고 싸우기 위하여 흑은 ...f5를 둘 수밖에 없는데 f5에서 폰들이 교환될 경우 흑의 밝은 칸 비숍이 f5에서 상대 폰을 되잡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e6에 온 비숍이 다시 f5로 움직였다가 이후 백의 Nce3!에 의하여 또다시 e6로 피한다면 흑은 귀중한 템포를 여러 번 잃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이 대국이 30분짜리 블리츠였지만 나는 이러한 점을 주시하고 흑의 마지막 수의 단점을 응징하는 방법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의 실제 선택은 이보다 훨씬 떨어지고 흑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10.c4?! Qa5+! 11.Bd2 b4 12.Nc2?
[이 수에 의하여 이제 백은 커다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포지션은 실제로 한번 두어진 일이 있다. 12.f3! Bxd5 13.cxd5 Nd4 14.Nc4 Qd8 15.Bxb4 Nxe4 16.Qa4+ Nb5 17.fxe4 Qh4+ 18.Kd1 Qxe4 19.Nxd6+ Bxd6 20.Bxb5+ axb5 21.Qxa8+ Kd7 22.Qc6+ 1-0 Silva,J - Costa,H [B33], Rio de Janeiro, 1991]
12...Nxe4! 13.Bxb4 Nxb4 14.Ndxb4 d5! 15.Bd3?? Bxb4+! 16. Kf8 Nd2+ 17.Kg1 dxc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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