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라마에서…” 각박한 시절에 아침부터 드라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것은
친구 없고, 시간 많고, 할일 없는 한심한 청춘임을 스스로 광고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방송 담당기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앞다투어 입에 올리는 드라마가 있다.
MBC의 ‘네 멋대로 해라’(수·목 오후 9시55분).
회를 더해갈수록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관심을 끌 것으로 생각한 이는 드물었다.
재기발랄하고 달착지근한 드라마가 대세인데,
‘소매치기의 시한부 인생’이 라는 소재는 지나치게 어둡고 우울했다.
게다가 박성수 PD는 “일단 한번 보 고 판단하세요.”라면서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드라마가 대박이다.
첫 방송부터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KBS2 ‘명성황후’를 너끈하게 제치더니
지난주에는 역시 같은 시간의 SBS ‘순수의 시대’를 따 돌렸다.
지난달 말에 시작한 KBS2 ‘태양인 이제마’(수·목 오후 9시50분)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하지만 20∼30대 젊은 마니아 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 다.
또 영화전문 인터넷사이트인 키노네트가 벌인 ‘영화화해도 좋을 것 같은 드라마’
라는 설문조사에서 ‘피아노’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현재 방영되 는 드라마로는 유일하게 꼽힌 것이다.
신데렐라식 스토리도, 꽃미남도, 얽히고 설킨 원한 관계도 없는데
무엇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것일까? 지난주 방송 분을 보자.
어머니에게 구두를 선물하고,그 구두 때문에 발이 아플 것을 염려해 주물러주는 복수(양동근),
복수를 위해 대신 소매치기를 하겠다고 자처하는 경(이나영),
항상 당당하지만 복수를 경에게 뺏기고 좌절하는 미래(공효진)….
요즘 안방극장을 점령하는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상황설정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파격’과 얼굴로 승부하는 요즘 드라마의 대세와는 거꾸로
또다른 파격을 시도한 제작진의 의지가 주효한게 아닐까.
전혀 시도되지 않은 소재,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주인공으로
새로운 드라마 장르를 개척해내 시청자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최근 MBC ‘인어아가씨’가 iTV에서 방영한 중국드라마 ‘안개비연가’와,
SBS ‘라이벌’이 일본만화 ‘해피’와 설정이 비슷해 말이 많았다.
또 꽤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KBS2 ‘태양인 이제마’도 ‘허준’과 비슷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드라마 PD들은 이에 대해 “드라마의 기본 줄거리가 비슷한 것은 어쩔 수 없 는 일”이라면서
“또 쓸 만한 배우들이 모두 영화쪽으로 빠져 배우 구하기가 힘들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네 멋대로 해라’는 이런 식의 푸념을 일축하게 만드는,작지만 명품인 드라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