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는 10월17일 용당동 986-2번지 일원에 목포가 낳은 문학천재 소영 박화성 선생이 창작열을 불태웠던 “세한루”를 복원하였다.
박화성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세한루 소공원은 박화성 선생의 흉상, 전통 한옥정자, 일각문, 전통담장, 선생의 연보와 작사하신 ‘목포의 찬가’가 적힌 시비를 설치했다.
“목포의 찬가”는 선생이 노년기에 작사한 마지막 작품이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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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눈물이 애환 서린 노래라면 목포의 찬가는 희망과 용기를 목포시민에게 심어주는 미래지향적인 노래다. 목포의 찬가 가사를 보면 알수 있다. (박화성 작사 손목인 작곡)
목화꽃 송이 송이 들녘에 피고 푸른물결 다도해를 감돌아 드네~육지도 열리고 바다도 열려서 세계의 사연들이 오고 가는곳 내고향 목포는 문화의 고장~
‘세한루’는 박화성 선생이 1937년~1962년까지 거처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던 자택이며, 1947년 첫 단편집〈고향없는 사람들〉출판기념회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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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 박화성 선생은 1903년 4월 16일 목포시 죽동 9번지에서 2남 2녀 중 막내딸로 출생하여, 12세에 목포 정명여학교를 졸업했고 1925년 조선문단에 단편〈추석전야〉로 등단하여 1988년 85세의 일기로 작고할 때 까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남겼다.
슬하에 천승걸 ,천승준, 천승세(소설가)의 자제를 두고 있다.
소설가 천승세님은 대표작인 희곡 “만선”으로 유명하다.
특히, 조희관, 차범석, 권일송, 최하림, 김현 등 목포를 대표하는 문인들이 박화성과 함께 창작의 불꽃을 태웠던 곳으로, 한국 근대문학을 리드한 근원지로서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목포시는 목포가 예향의 도시로 성장하는데 하나의 축을 형성한 이곳을 복원하여 구) 일본영사관, 목포근대역사관, 남교소극장, 오거리문화센터 등과 연계한 근대문화예술 벨트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근대문화유산 흔적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를 통한 관광콘텐츠와 상품화를 통해 문화, 예술, 근대의 도시로서의 목포를 알리는 주축이 될것이다.
첫댓글 좋은 정보자료 올려주셔서 감사드리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