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흩어진 절터… 아슬아슬 늙은 돌탑… 천년 고독 들려주네
대구의 ‘숨은 속살’ 달성
까마득한 벼랑에 서서 저 아래로 낙동강 물길과 그 물길이 적시고 가는 마을을 굽어 살피고 있는 늙은 석탑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좋을까요. 눈과 비, 햇볕과 바람 속에서 이렇게 지나온 세월이 천 년. 허공에 지은 듯 암반 끝의 돌탑 하나가 빚어내는 긴장과 장엄의 풍경 앞에 섰습니다. 탑을 품고 있던 절집은 다 흩어져 기와 조각들만 발끝에 차이는 곳. 여기는 대구 달성의 비슬산 능선, 옛 대견사 절터입니다.
▲ 비슬산 어깨쯤의 능선에는 다 흩어져서 부서진 기왓장만 발끝에 차이는 옛 절집 대견사 터가 있고 그 끝의 암반에는 삼층석탑이 낙동강의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아슬아슬 벼랑 끝에 세워진 소박한 석탑 한 기가 마치 마술처럼 풍경에 긴장과 장엄, 그리고 저릿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대구광역시라면 누구든 대구시를 먼저 떠올리는 게 당연하겠지만, 대구에는 달성군도 있습니다. 대구는 시(市)와 군(郡)이 함께 있는 이른바 ‘도농복합시’입니다. 울산이 울산시와 울주군을, 부산이 부산시와 기장군을, 인천이 인천시와 옹진군을 포함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달성은 그래서 좀 억울할 것 같았습니다. 누구든 ‘대구에 간다’면 그게 대구시를 말하는 것으로 알아듣지, 달성군에 간다고 들어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대구광역시의 딱 절반쯤 되는 달성 땅에 여간해서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미처 몰라봤습니다. 달성이 이렇듯 매혹적인 풍광과 향기 짙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비슬산 어깨쯤에서 석탑 하나만 남겨 놓은 옛 대견사 절터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삼십년 넘게 깃들어 있던 곳입니다. 석탑의 자태 때문에 비슬산의 대견사지부터 이야기를 꺼냈지만, 달성 땅에서 가볼 곳들을 짚자면 끝이 없습니다.
추리고 추려서 골라낸 곳들이 바로 낙동강 물굽이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는 도동서원,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선 사육신을 기리는 육신사, 그리고 해당화 향기 그윽한 연못을 거느린 삼가헌입니다. 아 참, 임진왜란 당시 왜병으로 조선 땅에 발을 딛자마자 수백 명의 부하를 이끌고 조선에 귀화해 왜군과 맞섰던 귀화 일본인을 기리는 녹동서원과 돌담으로 둘러친 한옥마을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이렇게 달성의 곳곳을 두루 둘러본다면 대구를 빌딩숲의 대도시로만 보는 게 실상은 반쪽의 시선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낙동강의 물굽이와 그 물을 굽어보는 자리에 서 있는 수많은 정자와 서원, 한옥들…. 거기에 깃든 이야기들을 따라나서면 대구가 품은 향기가 맡아지실 겁니다. 삼가헌의 정자 하엽정이 거느린 연못의 수련이 밤새 꽃잎을 닫고 가뒀다가 이른 아침에 뿜어내는 그윽한 향기처럼 말입니다. 달성(대구)=글·사진 박경일 2012-05-23
달성 가는 길 · 묵을 곳
달성 가는 길=
달성의 육신사와 삼가헌은 대구의 서북쪽에 있다. 경부고속도로 왜관나들목으로 나와 공단삼거리에서 우회전한 뒤 금산교차로에서 대구·성주 방면으로 좌회전해 낙동강을 오른쪽에 끼고 달리다 보면 육신사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비슬산의 대견사지 석탑에 오르려면 비슬산자연휴양림을 들머리로 삼는 게 좋다.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나들목으로 나가 현풍·비슬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좌회전해 휴양림으로 들어서 차를 세워 두고 숲길을 오르면 된다. 현풍나들목으로 나와서 이방·구지 방면으로 우회전해 구지면 소재지를 지나 구지서로에 접어들면 낙동강변에 있는 도동서원을 만난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가족여행이라면 비슬산자연휴양림(053-614-5481)을 추천한다. 달성은 숙소 사정이 그리 여의치 않다. 대구시의 남쪽인 가창면 삼산리 쪽에 모텔촌이 있지만 좀 낡은 편이고, 성서공단 쪽에도 모텔 밀집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유흥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가족여행객들이라면 아예 대구시내로 들어가서 숙소를 찾는 게 더 낫다. 대구에는 호텔인터불고 대구와 노보텔앰배서더 대구를 비롯해 엘디스리젠트호텔, 호텔대구, 대구그랜드호텔 등의 수준급 숙소가 있다.
달성의 화원읍 천내리의 ‘교동면옥’(053-634-9222)은 편육 대신 육전을 고명으로 올리는 진주식 냉면을 내는 맛집이다. 대구시내까지 제법 이름이 나있다. 만두와 떡갈비 등을 곁들여도 좋다. 유명세로 보자면 달성에서는 현풍의 곰탕을 첫손으로 꼽을 수 있다. 현풍면 성하리 인근에는 원조 현풍할매집곰탕(053-614-2031) 등 곰탕집들이 몰려 있다. 국물맛이 진하고 수육도 실하게 넣어준다. 현풍 5일장에서 맛볼 수 있는 장터의 수구레국밥 전문점인 신현대식당도 놓치기 아쉬운 맛집이다. 수구레란 쇠가죽 바로 아래서 발라낸 질긴 부위를 일컫는다. 잘 차려진 밥상을 받고 싶다면 고속도로 현풍나들목 인근 구지농공단지 부근에 있는 궁중약선한정식을 내는 ‘무궁화’(053-614-8833)를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