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귀는 사자인 체한다
이제 아무도 나를 보고 대마초가
수라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우려를 뿌리친
채 서울을 떠났다. 두문불출하다시
피 작곡에 전념했다.
나귀는 몸집이 그리 작지 않으면서도 힘이 세지 못하여 다
른 짐승들에게 놀림을 받은 일이 많았다.
그 날도 이리와 만나 말다툼을 하다가 이리의 이빨에 뒷
다리를 물려 투덜거리며 산길을 걸어오는데, 길가에 이상한
것이 떨어져 있어 집어보니 사자의 가죽이었다. 나귀는 그
사자의 가죽을 뒤집어썼다.
토끼, 원숭이, 사슴 등, 여러 짐승들이 사자 가죽을 쓴 나
귀를 보고 멀리 도망을 쳤다. 그러자 나귀는 짐승들의 왕이
나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나귀가 아니라 사자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가다가 풀숲에서 나오는 여우
와 마주쳤다. 나귀는 사자인 체하고 눈을 부라렸다.
여우는 연방 굽실거리며 아양을 떨었다. 기분이 더욱 좋아
진 나귀는 그만 큰 소리로 울었다. 물론 사자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었다.
그러나 여우가 나귀의 울음소리에 놀라 자세히 보니 사자
라고 생각한 건 가죽뿐이고, 알맹이는 나귀였으므로 꿇어엎
드렸던 몸을 벌떡 일으키고 나귀의 엉덩이를 발길로 걷어차
며 소리쳤다.
「또 그런 짓을 하려거든 사자 울음소리부터 똑똑히 배워
라!」
위의 이야기는 이솝 우화의 한 토막이다. 매우 상직적인
의미를 지닌 이야기라고 느껴져 여기에 소개했다.
사람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능숙한 배우가 되어간다. 이
를테면 다른 사람에 대한 존경과 호의, 정숙함과 공평 무사
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그
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속이려는 사람이나 속지 않으
려는 사람이나 모두들 각박하고 야박해졌다고나 할까.
나는 가끔 내 자신이 솔직하지 못하고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반성해 본다. 나의 일거수일투
족에도 지나치게 흥분하기 쉬운 10대 팬들을 대할 때면 더
욱 그러한 기분이 든다.
나는 다른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다.
오히려 부족한 점이 더욱 많을 따름이다. 이를테면 남보다
작은 키와 몸무게만 해도 표준형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내 위주로 생각하는 성급한
버릇도 나쁜 습관의 하나이다. 나는 영웅도 우상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생활인임을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이 아니라 열
심히 불렀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을 열심히, 그리고 욕심껏
살았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사랑을 받고,
또 분에 넘치는 상까지 여러 번 받았다.
남의 잘못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
기의 잘못은 요술장이가 소매 짓으로 물건을 감추듯 속임수
를 쓰게 마련인데, 이제 아무도 나를 보고 대마초 가수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을 늘 고맙게 생각하며, 세
상에 대하여 속죄하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보다 좋은 노래를
부르는 것만이 곧 나를 다시 노래하게끔 용서해준 모든 팬
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요사에는 숱한 가수와 숱한 노래들이
명멸했다. 처음에는 영원한 고전이 될 것처럼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와 노래들이었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가요 반세기 동안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가수와
노래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가까운 70면대만 해도 그렇다. 얼마나 많은 노래와 가수
들이 나타났는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인기 곡들
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그 가
수들과 노래는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아니
2·3년 전에 유행했던 노래들도 언제 그런 노래가 있었더
냐는 식이다. 인기의 무상함을 절로 느끼게 하지만, 이런 현
상은 비단 우리 경우뿐이 아니고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유행하는 노래라도 한 자리에서 두 번 이상 부르면 누구나
싫어한다.
「응, 또 그 노래군.」
이런 비판을 받기 전에 새로운 노래를 내놓지 않으면 그
가수의 생명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팬들이 식상하기 전에
새 노래를 언제쯤 내놓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판단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또 기껏 내놓은 새 노래가 팬들로부터 무
참히 외면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나 공포심은 모든 가수
들이 갖는 공통된 견해이다. 인기가수가 부르는 노래라고 해
서 무조건 열광하는 팬들은 없기 때문이다.
좋은 노래란 자기만이 부를 수 있는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노래를 말한
다. 그러나 그런 노래가 하루 아침에 탄생되는 것은 결코 아
니다. 시대 감각에 맞는 가사를 얻는 일, 그 가사를 잘 소
화시킬 수 있는 작곡자를 만나는 일, 유능한 편곡자에게 어
레인지를 의뢰하는 일, 자기만의 창법을 개발하는 일, 힘든
난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목소리 하나
만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
다.
노래말도 짓고, 작곡과 편곡도 하고, 직접 노래까지 부르
는 가수가 근래에 들어와 여럿 데뷔했다. 내 경우도 그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능력에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만
능인 체해도 그것은 빛 좋은 허울이고, 냉정히 따져보면 설
익은 과일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어떨는지 모르겠지
만, 솔직이 말해서 나는 만능 재주군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긴장과 불안 속에서 조금씩조금씩 조심스럽게 앞날을
해쳐나가는 것이다.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한 오백년>들이 실린 디
스크를 내놓은 지 일 년이 넘도록 나는 새 디스크를 내놓지
못했다. 변명같지만 너무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바람에 새
노래를 준비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조치의 하나로 일체의 공연을 중지하고, 심지어는 방송
국 출현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가수로서의 생명
이 끊어질지도 모르는 모험이겠지만, 나는 이 시련을 기꺼이
감수할 작정이었다. 일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할 수도 있
지 않겠느냐는 게 나의 주장이었다.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연약한 이 여인을 누구에게 말할까요
사랑의 촛불이여 여인의 눈물이여
너마저 꺼진다면 꺼진다면 꺼진다면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연약한 이 여인을 누가 누가 누가 지키랴
텔레비젼 연속극 주제가인 <촛불>이 전파를 타고 있었지
만, 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의 우려를 뿌
리친 채 서울을 떠났다.
해인사, 부산 통도사 등지를 전전하며 거의 두문불출하다시
피 오로지 작곡과 노래에만 열중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981년 7월에 새 디스크를 내 놓았
다. 그것이 <미워 미워 미워>와 <고추잠자리>가 실린
디스크이다. 우리 가요의 분위를 조화시키면서도 록(Rock)
휠링을 적절히 구사한 이 디스크에는 앞서 말한 노래 외에
도 <일편단심 민들레야> <잊을 수 없는 너> <강원도 아
리랑> <님이여> <황성옛터> <오빠 생각> 에서부터 <여
와 남> <물망초> <내 이름은 구름이이야> <길 잃은 철
새> <너의 빈자리> 등이 실려 있다.
다행히 이 노래들이 팬들의 사랑을 받아 또다시 많은 상을
받게 된 동기가 되었다.
1981년도 KBS 방송가요대상에서 골든 디스크상, 최우수
남자가수상, 전국 KBS-PD선정 최우수가수상, 주제가 작
곡상을 비롯하여 MBC 문화방송 10대가수상에서도 전년도
와 똑같이 작곡상, 최고 인기가요상, 가수왕상의 3관왕의 영
예를 차지했던 것이다.

첫댓글 오늘은 진짜 오타가 무지 않을 듯
여걸이가 졸면서 글을 쓴 덕에...
어휴!! 넘 졸려요~~
오타 검사 낼 할래요 ㅋㅋㅋ
글 올려주시는 것만 해도 그져 감사드릴 뿐...^^
더운데요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 두시고서리 ㅋㅋ
오타 검사 오늘에서야 했네요
무려 다섯군데나 있더군요~~
망신입니다. 다음부터는 졸면서 치지 않으렵니다.ㅋㅋㅋ
진짜 고생하네요잉~~~여걸님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