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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의 철쭉은 우리를 붙들고..(백운산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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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남 (2006/05/16 16: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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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하더니 진정 그러한 모양이다. 산행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넘었다. 이번 산행이 끝나면 우리는 대망의 3구간을 마무리 하게 된다. 그 동안 무더위에 땀도 흘렸고, 벽소령 폭우 속에서 고생도 많이 했다. 또한 겨울 눈밭을 지나다 미끄러지며 환호하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진정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럽지 않은가?
계절의 갈림길이 이미 사라진 한 낮의 무더위는 우리가 봄을 노래하기에는 이미 쑥스러운 단어가 되었고, 이미 달력의 뒷편으로 사라졌다.
봄의 마지막 5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신록의 계절이며, 또한 사랑과 감사의 계절이다. 5월의 꽃인 카네이션 꽃말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시 한번 가족과 주위의 고마운 분들을 돌아보고, 친지 어른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되겠다.
5월 어버이날에는 감사의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릴 부모님이 안계시다. 고아가 된지 벌써 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 스피커를 켜면 "어머니의 마음(Mother of Mine)"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눈이 수북이 쌓인 어느 추운 겨울날, 강원도 깊은 이름 모를 산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한국태생의 미국국적의 젊은 청년 이였습니다, 눈 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습니다. "이곳이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나이 많은 미국인이 젊은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6.25 전쟁 때 한 미국 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아이 울음소리였습니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봤더니 울음소리는 눈구멍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눈에서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던 미국 병사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습니다. 또 한번 놀란 것은 흰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어머니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가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아이를 감싸곤 허리를 꾸부려 아이를 끌어 않은 채 얼어죽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군병사는 언 땅을 파 어머니를 묻고, 어머니 품에서 울어대던 갓난아이를 데리고 가 자기의 아들로 키웠습니다.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자 지난달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기 하고, 그때 언 땅에 묻었던 청년의 어머니 산소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청년이 눈이 수북이 쌓인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무릎아래 눈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만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알몸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무덤 위에 쌓인 눈을 두 손으로 정성스레 모두 치워냈습니다. 그런 뒤 청년은 자기가 벗은 옷으로 무덤을 덮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어머니께 옷을 입혀 드리듯 청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모두 자기 옷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무덤 위에 쓰러져 통곡을 합니다. "어머니, 그 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실화 입니다. 국가보훈처 게시판의 글을 퍼와서 조금 수정했습니다>
지난 4월 28일~30일에는 제주도에서 부부 합동 세미나가 있었다.
< 제주도 숙소 앞에서.....>
단합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첫날은 바닷가에서 먹고 놀자 분위기로 파티가 진행되었고, 둘째 날은 관광 일정을 몰래 땡땡이 치고 집사람과 한라산을 등반하기로 맘먹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은 갑자기 천둥 번개에다 폭우까지 내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한라산 등반은 우리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집사람의 끈질긴 고집으로 귀경하는 마지막 날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새벽 4시에 기상했는데, 비는 오지 않았으나 바람은 윙윙하고 짐승이 암컷 찾아 울부짖는 소리를 내고 있다. 간단한 산행준비와 간식을 준비하고, 성판악 입구에 6시반 경에 도착했다. 광장의 바람은 이미 돌개바람으로 변하여 우리를 몰아치고 있었다.
관리소 직원이 나를 힐끔 처다 보더니 정상은 바람 때문에 못 올라간단다. 반드시 가야 한다니까 죽을 각오로 가면 몰라도 위험하단다. 아마 우리가 백두대간 대원인줄 모르는 것 같다. 하기야 명찰을 달고있는 게 아니니까, 이해는 한다. 정 안되면 진달래 휴게소까지만 가기로 했다.
배낭끈을 단단히 메고 힘차게 산행을 시작했다. 돌개바람 때문인지 등산객은 많지 않았다.
성판악 입구에서 출발하여 속 밭, 사라 악을 지나 진달래 휴게소에 도착했다. 진달래 휴게소는 몇몇 팀이 워낙 심하게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정상에 오를까 말까 고민하는 팀도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는가? 관리소에서도 산행을 허용하는 걸로 봐서는 죽지는 않을 것 같아 정상을 오르기로 했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바람 때문에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걸을 때 마다 몸이 흔들려 주위를 볼 여유조차 없었다. 비몽사몽 간에 정상인 백록담에 올라섰다.
20여년 전 안개와 구름 옷을 입고있어서 보지 못했던 백록담이 오늘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않고 전라를 내 앞에 보여주자 오히려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진정으로 백록담의 자태는 웅장했고, 자연의 신비함에 말문이 막혔다.. 증명사진 한 장 찍는데, 사람도 흔들리고, 사진사도 흔들린다. 둘 다 같이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다 보니 다행히 사진은 생각보다 잘 나왔다.
< 백록담 앞에서.....>
하산은 정상에서 오른쪽 방향인 용진 각, 개미 목, 탐라 계곡을 지나 관음 사로 내려왔다.
< 관음 사로 하산 하면서.....>
1400고지 이상 음지쪽 에는 아직도 눈이 그대로 있어 아이젠이 필요할 정도였다. 그 동안 백두 대간에서 훈련을 받은 탓인지 산행거리 약18.3Km를 휴식 1시간을 포함하여 7시간 40분에 주파했다.
지난 주에는 잊어버릴 듯 하면 한번씩 오는 박 총무의 안부 문자도 왔다. 항상 힘이 넘치고 명랑해서 너무 좋다.
산행 전날은 매번 그렇지만 집사람에게 배낭 준비를 맡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떠니 집사람이 새벽부터 분주하다. 아마 아침 식사용 찰밥을 준비하는 것 같다. 그냥 우동이나 백설기로 간단히 때우면 되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다.
교대 역에 도착하자, 노랑머리 유 기사님이 지하철 입구에서 반긴다. 양 여사님의 건강한 모습도 보인다.
버스에 오르니 이름 모를 여인이 반갑게 인사를 해서 깜짝 놀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 기인님이 모시고 온 분이었다.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가 인사를 하면 죄를 짓지않아도 조금 놀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한 사모님이 유럽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 왔는데, 머리색깔이 노랑머리로 변해있었다. 유 기사님의 노랑머리에 영향을 받은 듯 하다. 버스는 선미 씨를 마지막으로 태우고, 15분 늦은 6시45분에 출발했다.
잠시 눈을 감았나 싶었는데, 벌써 죽전이다. 죽전 팀을 태우고 출발한 시간은 7시03분이었다. 그런데 이 동배님은 표정은 서운한 듯 관리를 하는데, 이상하게 몸은 가벼운 듯하다. 오늘도 사모님이 몸이 좀 안 좋으신 모양이다. 빨리 쾌유하여 동참했으면 좋겠다. 대신 왕 회장님의 빈 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얻은 것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밖은 여름인데 버스 안은 너무 춥다. 나만 그런 것 일까? 나 하나 추우면 됐지 하고 어느 누구도 불평을 안 한다. 우리 대원들은 이렇게 남을 생각하는 분들만 모인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얘기 할수있는 분위기가 빨리 되어야 될 것 같다.
동물도 소란을 피우면 눈을 가린다. 이유야 어떻던 간에 사장님이 눈 가리개를 하나씩 나누어 주셨고, 그 후에 잠시 시간이 흘렀나 싶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버스 안은 조용해졌다.
8시37분 버스가 인삼 랜드 휴게소로 진입하자 마자 정 지점장이 아침식사로 굴 밥을 먹기 위해 급히 출입문으로 달려가는데, 아쉽게도 버스는 주차 할 곳이 없다는 핑계로 그냥 통과했고, 조금은 한적한 덕유산 휴게소로 향했다.
사장님이 오늘의 산행계획과 운이 좋으면 고사리도 캘 수 있다는 얘기, 그리고 흙 돼지와 함께 백두대간 1주년 행사계획도 말씀하신다.
특히 김오곤님의 선행에 박수를 보냈는데 듣고보니 누구나 할수있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지난 2006.2.12일 제3구간 6차( 빼재에서 소사고개) 산행때 사모님이 몸이 안좋아 못가셨는데, 그 사이에 다시 부부동반으로 다녀오신 모양이다. 사실은 두분의 부부사랑이 부러웠다.
덕유산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9시07분이었다.
오늘은 휴게소 옆 잔디 밭에서 성기인님과 여러분이 준비해온 밥과 반찬 그리고 후식용 과일까지 바위 위에 차려놓고, 다 같이 식사를 했는데, 표정들이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밝았다. 휴게소를 떠난 시간은 9시38분이었다.
산과 도로변에는 초목들이 이미 초록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논에는 물을 가득 채어놓고, 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논 주위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쳤다.
수분 재(539m)를 넘어 복성이 재를 향했다. 백두대간 중에 수분 재를 지나가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길 가에는 노란 애기똥풀과 많은 야생화들이 번식을 위해 꽃들을 피우고 있었다.
가는 길 중간 중간에는 봉화 산 철쭉을 보기위해 온 관광 버스들과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산을 오르는 모습도 보인다. 주위의 산비탈에도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복성 이재(550m)에 도착한 시간은 10시23분이었다.
< 복성이 재에서 장비를 점검하며....>
< 배낭 매무새를 다듬는 신영자 사모님... 혹시 밖에서만 이렇게 해 주시는 건 아닌지?>
백두 대간인 복성이 재는 남원군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을 잇는 고개로 도로포장이 깨끗이 되어있었다.
오늘의 산행일정 및 예정 코스는 다음과 같다.
< 제2구간 백운 산8차 산행지도>
◎제2구간 백운 산8차 계획(2006년 05월14일) <승우 여행사 제공>
◎등반 코스(거리 및 소요예정 시간) 복성이 재(550m)-> (0.70km/0:20)-> 치 재(660m)-> (1.20km/0:30)–> 꼬부랑재 꼬부랑재-> (1.50km/0:40)–> 다리 재-> (0.50km/0:10)–> 봉화 산(919.8m) 봉화 산(919.8m)->(1.00km/0:25)–>삼각 봉(870m)->(1.10km/0:35)–>944봉 944봉-> (2.50km/0:40)–> 광대치-> (2.80km/0:50)–> 대안 리
위의 인터넷 공지사항은 사실 2번이나 내용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등반코스를 합해보니, 산행시간 3시간6분 거리는 5.85km 이었다. 이해가 안가서 전화를 해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한참 후에 다시 보니 내용이 산행시간 4시간10분 거리는 10.55km 바뀌었다. 혹시나 하고 퇴근 전에 다시 한번 확인했는데, 결국은 산행시간 4시간10분 거리는 11.30km 바뀌어져 있었다. 내용을 수정 할 경우 그 수정내용을 표시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생략하고….
◎ 등반거리 : 약 11.30Km ◎ 예상 산행 소요시간 : 약 4시간10분(휴식시간 제외) ◎ 실제 산행 소요시간 : 약 4시간20분(휴식시간 제외) ◎ 휴식 시간 : 약 50분 ◎ 총 산행 소요시간 : 약 5시간10분(휴식시간 포함)
주) 실제 산행을 한 상세 결과는 아래의 산행일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백두대간 즈려밟기 제2구간(백운산) 8차 (05월 14일) 산행일지>
(출발장소**) (도착장소**) 출발시간 도착시간 예상 실제 (거 리)(휴식)
(복성이재**) (치재******) 10시25분 10시56분 20분 31분 0.70km 14분 (치재******) (꼬부랑재**) 11시10분 11시35분 30분 25분 1.20km 00분 (꼬부랑재**) (다리재****) 11시35분 12시07분 40분 32분 1.50km 08분 (다리재****) (봉화산****) 12시15분 12시30분 10분 15분 0.50km 05분 (봉화산****) (삼각봉****) 12시35분 12시57분 25분 22분 1.00km 25분 (삼각봉****) (944봉*****) 13시20분 13시50분 35분 30분 1.10km 00분 (944봉*****) (광대치****) 13시50분 11시47분 40분 57분 2.50km 00분 (광대치****) (대안정자**) 11시47분 15시35분 50분 48분 2.80km 00분
이번 제2구간8차 구간은 지난번 산행 시 하산한 복성이 재에서 대안 리 정자 까지다. 이 코스 또한 복성이 재부터 광대치 까지 대부분 구간이 백두 대간의 마루 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여행사는 여자 가이드도 있다는데. 우리 팀은 오늘도 역시 선두에 사장님 후미는 이 해준 대장이 맡는다.
배낭을 정리하고 산행을 준비한 후 지난 번 하산했던 복성이 재 마루 금 초입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산행 안내 판에는 복성 이재에서 중 치까지 12.1km로 표시되어 있다.
< 복성이 재에서 700봉를 향해 힘찬 출발.....>
복성이 재(540m)를 출발한 시간은 10시 25분이었다. 오늘은 산행 거리가 조금 길어져, 5시간 반 이상은 걸어야 할 듯 하다.
복성이 재(540m)에서 대간 안내 판과 리본을 따라 오른쪽 방향인 주능선을 따라 올라선다. 봉화 산 철쭉지대는 아직 멀었는데, 성질이 급한 분홍의 철쭉은 여기 저기서 얼굴을 내민다.
왼쪽으로 철망이 보이고, 계속해서 철망을 따라 소나무 길 급경사를 힘들게 오른다.
< 복성이 재를 뒤로하고 솔밭 길을 힘차게 오르는 대원들....>
솔밭 길을 벗어나자 여기 저기 상춘객들이 보이고, 그들 중 일부는 나물을 캐고 있다. 철망 안쪽은 넓은 초지로 조성되어 있는 걸로 봐서 사유지 같다. 중간 중간에 뚫어진 철망사이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어가 산을 오르거나 나물을 캐기도 한다.
길은 완만한 오름으로 변하고, 오른쪽으로 철쭉이 보이기 시작한다.
< 700봉으로 오르는 오른쪽 능선의 산철쭉 군락(이곳은 고도가 낮아 꽃이 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경사를 올라서자 사방이 훤해진다.
산행 당일의 몸 상태는 보통 초반의 10~20분 사이에 결정된다고 한다. 다행히 몸 상태는 괜찮은 듯 하다. 바람도 상쾌한 산마루 700봉에 도착한 시간은 10시48분 이었다.
< 700봉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본 전원 풍경(모내기 준비가 끝난 듯 논에 물이 가득 담겨있다)>
많은 상춘객으로 잠시나마 쉴 공간도 없다. 사장님의 명령에 의하여 치 재에 있는 소나무 밑에서 11시10분에 모두 만나기로 하고 전부 각자 행동하기로 했다. 같이 가려고 집사람을 찾았는데 벌써 어디론 가 사라졌다.
집사람을 포기하고, 좀더 여유를 갖기로 했다. 안경의 먼지를 대강 닦고, 뒤를 돌아 잠시 우리가 지나온 복성이 재를 내려본다.
복성이 재 너머로 우리가 지나온 사치 재 방향의 산들도 지금은 부분적으로 붉게 보인다. 마루 금 오른편 산 비탈에는 초지가 펼쳐져 있고, 왼쪽 밑으로는 아영 면 성리마을이 보인다. 성리에는 장성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흥부전의 주인공인 흥부 임춘보의 고향이기 때문에 흥부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봉화 산 일대에는 홀아비꽃대가 많이 자생하는데 그 이유는 이 동네에 살던 흥부가 말년에 오랫동안 홀아비로 지내다가 죽어 한이 맺혀 다시 꽃으로 태어났다는 말이 안 되는 사장님의 설명도 있었다.
홀아비꽃대 음습한 곳에 자생하다 보니 [과부는 은이 서 말이고 홀아비는 이가 서 말] 이라는 속담처럼 홀아비가 갖는 궁색한 모양새를 빌어다 붙인 설도 있고, 또는 꽃잎이 없이 꽃술만 핀다고 해서 홀아비꽃대라고 하기도 하고, 꽃대가 둘 이상 피는 '꽃대'와 달리 하나만 핀다고 해서 홀아비꽃대라고도 한단다.
다시 정면으로 돌아서서 우리가 가야 할 마루 금을 바라본다. 저 멀리 하늘 아래 봉화 산이 보인다. 발 밑으로는 철쭉이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몸살을 앓고있다.
내리막 경사인 철쭉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진다.
< 치 재를 향해 내려가며...>
오르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의 몸과 몸이 부딪치는데 대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과 만나는 것도 처음이지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듯 싶다.
내려가는 길 옆 철쭉나무 깊은 숲속 밑에서는 그 와중에도 어떤 남녀가 데이트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 절정을 이룬 산철쭉 밑에는 누가 있을까요?>
자세히 보니 한 정구님과 이 영수님이 야생화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고있었다.
완만한 내리막 경사를 좀더 내려서면 치 재가 나온다. 700봉부터 치 재(660m)까지 완만한 내리막 길에는 긴 거리는 아니지만 제법 큰 철쭉나무 군락 덤불과 인파를 뚫고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가는 길을 더욱 더디게 한다. 치 재에 도착한 것은 10시56분이었다.
< 꽃이 진 철쭉나무 터널(철쭉꽃잎이 떨어져 깔려있다))>
치 재에서 오른쪽으로 철쭉나무 사이로 내려가면 치재 마을로 가는 임도가 나온다. 치 재는 인파가 몰려들어 동서남북이 엉키는데, 팀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자기 팀을 찾기 위한 고함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온다.
< 치 재 철쭉 밭에서.... 선 그라스가 주기네요.. >
그 사이에 에델님의 코가 오른쪽 밑으로 자꾸 돌아간다. 그 밑에는 임시로 차려놓은 음식점이 있는데, 그 곳에서 빈대떡과 막걸리 향이 바람을 타고 에델님의 코를 자극한 모양이다. 치 재를 약간 벗어난 곳에서 후미 팀을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모처럼 단체사진도 찍었다.
< 치 재 철쭉 군락 지를 배경으로 단체사진.. >
치 재 출발한 시간은 11시10분이었다.
마루 금은 오른쪽으로 트인 작은 숲길로 들어서면 된다. 완만한 능선을 오른다. 사람 키만한 철쭉나무와 잡목이 등산로 양쪽에서 우리를 맞는다. 산행 길은 나무 가지를 힘들게 뚫고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짜증스럽지만 가끔 화려하게 피어있는 철쭉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날씨는 무덥다. 이마에 땀이 맺히는 듯 하면 왼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힌다. 양지는 여름인데, 음지는 바람에 따라 초 가을로 변한다. 15분쯤 걸었을까? 묘지 1기가 나타난다. 여기서 오른쪽 내리막길로 내려서야 대간 길이다.
< 묘지에서 마루금은 우회전...... >
내리막 경사 길을 어느 정도 내려서면 길은 전형적인 오솔길로 변한다. 벌목소리가 귀에 들린다. 잠시 오르는 듯 하다가 내려서면 꼬부랑 재가 나온다. 여기 저기에 잘려진 통나무들이 여기 저기 뒹굴고 있다.
꼬부랑 재를 향해 내려가는 오른쪽 능선에도 철쭉의 군락이 있다는데 치 재 만큼은 꽃망울을 터트리리 못하고 있었다. 꼬부랑 재를 도착한 시간은 11시35분이었다.
꼬부랑재 고개는 아영 면과 번암 면을 이어주는 길인데, 길은 보이지않고, 철쭉과 잡목만이 가득하다.
꼬부랑재(615m)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철쭉나무 가지를 헤쳐나가는 대원들의 모습은 보였다 사라진다. 그리고 보인다 싶으면 또 사라지고 만다. 평탄한 길이 나타난듯하면 바로 오르막이다.
꼬부랑 재를 벗어나자 철쭉꽃은 갑자기 어디론 가 사라지고, 대신 억새풀이 주위를 뒤엎고 그사이에 작은 철쭉이 하나 둘 보인다. 하얀 철쭉도 보인다. 연 분홍 철쭉도 보인다. 피기 직전의 봉우리 철쭉도 보인다. 길은 생각보다 너무 부드럽다. 아마 지난 주 내린 비님의 덕택이 아닌가 싶다.
힘들게 올라선 곳에는 흥성 장씨 묘소가 있고, 묘소를 뒤로하고 다시 가시덤불 밑으로 머리를 숙여가며 힘들게 오른다.
능선을 오른 후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내리막 산행시의 바람은 오히려 한기를 느끼게 한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숨이 차오르고 등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억새풀 사이에 난 돌계단을 고행하듯 하나 하나씩 오른다. 다리 재(850봉)에 도착한 시간은 12시07분이었다.
다리 재는 봉화 산 기준으로는 재가 될 수 있으나 실상은 재가 아니고 봉이나 다름이 없다.
봉화 산 앞 봉인 다리 재에 올라서자 초지가 봉화 산(919.8m)으로 이어진다. 뒤를 돌아 우리가 걸어온 꼬부랑 재 그 너머로 분홍색 철쭉 밭이 초록의 들판에 붉은 물을 뿌려 놓은 듯 아름답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린다. 더운 날씨와 이마의 땀 때문에 안경에 서리가 낀 듯 부옇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 간식으로 기를 보충하고, 식수로 목을 추겼다.
다리 재를 출발한 시간은 12시15분이었다. 정면에 보이는 봉화 산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철쭉꽃을 대신하고 있었다. 우측으로 헬기 장과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바다 같은 억새 밭 위에는 분홍의 철쭉과 초록의 철쭉이 억새 밭을 수놓고 있었다.
< 봉화 산정상에서 서쪽으로 헬기 장과 주변에 만개한 산철쭉 군락지....>
잠시 완만한 길을 내려 섰다가 돌계단을 오르면 바로 정상에 닿는다. 봉화 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정상에는 돌로 된 표지 석이 있으며 정상 주위에는 온통 억새 밭이다.
< 봉화산 정상(해발 919.8m)에서....(돌에 새겨놓은 백두 대간이 또렷하다)....>
뒤를 돌아본다. 멀리 동남쪽으로 남원시 운 봉 마을이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에는 우리가 눈밭 속을 힘들게 지나왔던 고남산 중계 탑도 보인다.
< 봉화산 정상에서 뒤돌아 본 우리가 걸어온 마루금 능선....>
봉화 산(919.8m)은 전북 남원 군과 장수군, 그리고 경남 함양 군 경계에 있는 산으로 원래 유명한 산은 아니지만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코스의 중간에 위치한 산으로 지금은 철쭉으로 이름난 산이다.
봉화 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봉화대가 있었던 산이나,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다. 봉화 산 철쭉은 산림정비사업을 하면서 황량해진 봉화 산 산자락에 철쭉을 심어놓은 것이 바래 봉 철쭉에 버금가는 명소가 된 것 같다. 5월에 열리는 봉화 산 철쭉 제도 남원시가 후원하고, 주최도 남원시의 지역산악회가 하고있다고 한다.
지리산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철쭉의 색깔은 선명한 분홍 빛을 띤다. 또한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과 함께 보는 맛은 가히 꿈의 천국이 아닌가 싶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간단히 찍고 바로 삼각 봉(870m)으로 향했다. 봉화 산 정상을 출발한 시간은 12시 35분이었다.
내려가다 잠시 뒤를 돌아본다. 끝이 없는 억새 밭 가운데, 무리 지어 피어있는 분홍색 철쭉과 꽃이 피지 않은 녹색 철쭉 그리고 등산객들이 억새 밭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풍경은 또 하나의 철쭉을 만들고 있었다. 한 마디로 삶의 풍요로움과 함께 자연과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봉화 산에서 북쪽으로 억새 길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임 도가 나오고 우측은 남원시 야영면, 좌측은 장수군 반암면으로 가는 길이다.
< 봉화 산 정상에서 0.7km 지점에 있는 임도>
임 도를 뒤로하고, 대간 안내 판에 따라 바로 능선을 오른다.
능선을 오른 후 잠시 내려 섰다가 오르면 바로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삼각 봉(870m)이다. 삼각 봉 정상을 도착한 시간은 12시 57분이었다
오늘의 마지막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삼각 봉은 삼면 봉으로 함양 군 백전면, 남원시 아영 면, 장수 군 번암면의 3개면의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삼각 봉은 잔디가 예쁘게 조성되어 있고. 고만 고만한 산소 2기가 나름대로 잘 정돈되어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하고 있는데, 화기 사용이나 소란스러움 등이 산행예절에 많이 벗어나고 있었다. 대간 종주 팀은 아닌 듯 싶다.
오늘은 산행 1주년이라 사장님도 오랜만에 한잔 하신다. 갑자기 왕 회장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미국생활은 잘 하고 계신지? 건강하게 돌아오시길 바란다.
< 삼각봉에서 휴식과 가벼운 주총(왕 회장님이 해외 출타 중이어서 간단하게....)>
후미 팀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20분이 넘는 오랜 휴식을 끝내고 삼각 봉을 출발한 시간은 13시 20분이었다
이 봉우리를 조금 지나면 엄청난 억새군락이 나타나고, 바로 전형적인 뒷동산 숲길이 시작된다. 철쭉 길하고는 또 다른 산행의 맛을 더한다.
< 944봉으로 전진....>
오랜만에 피로를 풀며 걸어 갈수 있었다. 좋은 공기도 폐 깊숙이 들이 마셨다. 능선 길로 봉우리를 몇 개 오르내리락 하는 동안에 암릉 지역도 나타나는데, 간혹 나타나는 철쭉에 취하다 보면 산행에는 별 지장을 주지않는다. 그러다가 눈앞에 전망이 좋고, 쉬어가기 좋은 큰 바위 덩어리가 나타났다. 쉬어 가도 될 듯한데 식당 아줌마가 기다리는지 사장님은 그냥 가신다. 모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얼마만큼을 갔을까?
전망 바위를 지나 조금만 가면 마루 금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944봉에 도착 한 것이다. 도착시간은13시50분이었다.
저 멀리 광대 치와 그 너머로 우리가 이미 밟은 월경 산(月鏡山 981.9m)으로 이어지는 마루 금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길은 다시 급경사 내리막이다. 오르막 보다 내리막을 더 조심해야 한다. 모든 산행의 안전사고는 항상 하산 길에 일어난다.
< 험준한 암릉 길을 내려가며(양 여사님도 무사히 통과...)..>
큰 바위 근처나 위험한 지점에는 거의 다 철쭉꽃이 피어있다. 944m봉에서 하산 지점인 광대 치까지는 암릉 길이 많아 한발 한발을 조심해야 한다.
한 참을 내려서자 오르막 경사가 나타난다. 누군가 뒤에서 우리를 앞지른다. 최근에 특히 체력이 좋아진 한정구님이 우리를 앞지르고 있었다.
능선에 올라서자 평탄한 길은 잠시 다시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내리막 경사를 만나고 마지막 경사를 오른 후 내려섰다.
< 만개한 연분홍 철쭉나무를 옆을 지나는 대원들....)>
이름 모를 봉우리 몇 개를 오르다가 또 오르고 내려서면 광대 치(950m)에 닿는다.
< 광대 치까지 무사히 마루 금을 마치고 잠시 휴식....>
944m봉에서 광대 치까지는 암릉 길을 제외하면 길은 아주 부드럽고, 산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오늘은 무릎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광대 치에 도착한 것은 14시 47분 이었다. 오늘의 마루금은 여기까지다.
지난번 산행 때의 세찬 바람에 흔들리고 있던 리본들은 오늘은 조용히 대간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억새를 밟으며 바로 오른쪽 함양 대안 리로 하산을 시작했다. 길은 같은 길인데 세월의 탓인지 조금은 낯설다.
마지막 단체사진을 또 찍는데, 찍고 나면 또 한 사람이 나타나고 또 찍고 나면 또 한 사람이 나타나고 그래서 사진을 여러 번 찍었다. 오늘은 너무 과하게 단체사진을 찍는 것 같다.
< 광대치에서 마루금을 연결하고 나서....>
숲길을 10분 정도 내려서자 지난번 산행 때 휴식을 한 도로가 보인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리본이 달려있는 왼쪽 경사로 내려선다. 가지 덤불을 헤치고 작은 계곡을 건너면 너덜 길을 만나고, 너덜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개울을 만난다 손을 담 군다. 이마의 땀도 닦는다.
< 광대 치에서 마루 금을 연결하는 발자국을 찍고 대안 리로 하산........>
개울을 건너자 길은 숲속 오솔길로 변하고, 오른쪽 개울에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도로는 다리와 함께 시멘트 도로로 변하고, 주위는 전향적인 시골마을로 변한다.
< 대안 리 농가와 감자 밭.....>
계곡의 물소리도 귓전을 더욱 힘차게 때리는데, 지난번 우리를 반겨 주었던 노란 산수유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집 앞마당의 하얀 멍멍이만 그때처럼 짖고 있었다.
대안 리 정자가 눈에 들어오고 유 기사님의 손 흔드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산간 오지인 경남 함양 군 백전면 대안 리에 있는 정자 앞에 도착한 것은 15시35분 이었다. 특이 하게 남아있는 제주도식 화장실인 돼지우리 속의 돼지는 이미 동네 잔치에 희생되고 없었다.
오늘 산행도 무사히 끝냈다. 마지막 한정구님을 태우고 식당으로 출발한 시간은 15시53분이었다.
청기와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40분이었다. 오늘의 식사는 국물이 아주 시원한 올갱이(다슬기) 국에다가 이슬님이 캐온 참 취나물이 가세하니 일품요리가 따로 없었다. 주류들의 건배소리는 전과 달리 무언가 어색했는데 알고 보니 왕 회장님이 안 계셔서 모두들 중심을 못 잡는 것 같았다.
< 주류들의 건배… 뭔가 어색함이...>
그러나 박 총무가 준비해 온 백두대간 1주년 기념 케이크로 자축을 한 후에는 모두들 분위기가 되 살아났다.
< 백두대간 1주년 기념 자축 부라보!!!...>
시원한 식혜로 마무리를 하고 서울로 출발한 시간은 17시30분이었다.
귀경 길 버스 안에서는 고객관리 및 영업차원에서 새로 오신 여자 분을 위한 박수를 보냈고, 마지막으로 김순성 사모님의 쾌유를 위한 박수로 산행을 마무리 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수고해주신 사장님과 승우 여행사 직원 여러분 특히 우리의 안전대장인 유 기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참! 저는 5월28일 산행은 일본출장으로 참석치 못합니다. 원래 집사람도 같이 가야 되는데, 저 보다는 여러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특히 주류 팀 여러분 집사람 잘 부탁 드립니다.
6월 11일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2006년 05월16일 사무실에서
사 진: 한 정 구 글 씀: 여 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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