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아이캔두잇
“연서, 영어학원 좀 보내야겠어요. 다른 집 아이들은 방학 때마다 미국, 캐나다 아니면 필리핀이라도 어학연수를 보내서 벌써 프리토킹이 가능하대요. 글로벌시대에 다른 애들한테 뒤처지지 않으려면 학원이라도 보내야하지 않을까요?”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는 벌써 며칠째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의 영어실력 걱정이다.
“영어학원은 얼마나 하는 데...” 떨떠름하게 물어보는 나에게 아내는 괜찮은 곳으로 소문난 학원은 월 40만원에서 50만원은 한다고 말하며 한숨을 쉰다. 작년에 아파트 평수를 넓혀 집을 갈아타며 은행에 집담보대출을 많이 받아 은행이자와 원금으로 나가는 돈이 상당하여 딸아이 학원비 지출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연서야 영어학원 다닐래?” 물어 보는 아빠의 말에 연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빠, 대학교 다닐 때 영어과외했다며... 나한테 영어과외해주면 안돼?”하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대학교 다닐 때 등록금마련을 위하여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입주영어과외를 하면서 상당한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돈으로 등록금도 내고 친구들 밥도 많이 사줬다고 집사람에게 자랑질을 몇차례 한 적이 있는 데 딸아이는 그 말을 듣고 나에게 학원비도 아낄 겸 영어과외를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아내는 부모가 어떻게 자기 자식을 가르치냐며 반대했지만 연서는 계속 아빠에게 영어를 배우겠다고 우긴다. 그래 영어가 별거냐 대학교 다닐 때 고3도 가르쳐 봤는 데 초등학생영어가 대수겠느냐 싶어 나도 한번 해보겠다고 아내에게 말하여 당분간 내가 직접 딸아이한테 영어를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호기있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고 선언하였지만 막상 가르치려 하니 걱정이 앞선다. 영어를 손 놓은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대학교 졸업할 무렵 받아 둔 토익점수를 직장에서 인정해주어 외국어2급 자격증을 받은 후 영어공부를 할 일이 없었던 터라 딸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을 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번에 영어공부도 하고 외국어자격증도 1급으로 갱신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 딸아이때문에 20년만에 영어공부를 시작하였다.
처음 교재는 이보영 초등영어라는 교재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연서가 서점에서 고른 책인데 다행히 수준이 높지 않아 가르치기도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뜻밖의 난제가 발생한다. “아빠 발음이 너무 구려” 하며 연서는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며 아빠의 영어발음이 너무 안 좋아서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연서야 반기문유엔사무총장도 옛날식영어를 사용하여 아빠와 발음이 비슷하지만 유엔사무총장을 하면서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 않니?”하며 넘어가보려 했지만 내 발음이 안좋은 건 사실이라 살짝 걱정이 된다.
명문대에 다니는 딸을 둔 사무실의 입사선배한테 이런 걱정을 토로하였더니 선배는 자기 딸은 노원구청홈페이지에서 운영하는 화상영어를 통하여 영어회화를 공부하였다고 정보를 주신다. 다행히 구청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라 비용도 비싸지 않았다. 회화와 듣기는 화상영어를 통하여 보완하고 나는 문법, 독해, 영작 등에 집중하여 가르치기로 전략을 짜고 이보영 초등영어과정을 끝내고 성문기초영문법이라는 교재로 수업을 계속 하였다.
노원구청 화상영어과정 1단계부터 등록하였는데 집의 오래된 노트북이 말썽을 일으킨다. 메모리 용량이 작고 속도가 낮아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동화상이 자꾸 끊기고 다운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이런 문제로 A/S를 몇 번 받았는데 실시간 대화를 하는 데 치명적인 문제라 전자공학과를 나온 젊은 후배직원에게 물어 봤더니 “권반장님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신형 SSD로 바꾸어 보세요. 새로 구입하는 것 만큼 성능향상이 될 거에요” 라고 조언을 해준다.
바로 A/S센타에 가서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사용하니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지고 동화상의 끊김현상도 없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카메라가 문제다. 노트북이 오래된 거라 장착된 화상카메라의 화질이 너무 낮아 눈으로 보기에 불편하였다. 화상영어강사의 조언으로 최근에 나온 L사의 화상캠으로 바꾸니 그런데로 화질이 볼만하였다. 예상외의 지출이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방학마다 몇 백만원씩 들여 어학연수를 보내는 사람도 많은 사실을 생각하면 영어완전정복을 위해 이 정도는 투자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가 문법공부를 지루해하는 것 같아 교재의 문제와 함께 문법을 가르치기로 하였다. 일단 이론을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문제풀이를 통해서 이론을 복습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처음에는 곧잘 문제를 풀던 딸아이는 단계가 높아지자 어려운지 시험점수가 점점 하락하였다. 수업내용이 어려워지자 집중도도 떨어져 수업 중에 자꾸 딴 생각을 하고 예복습도 안하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일하고 와서 힘들게 가르치는 아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하던 차에 수업을 시작하자는 말에 딸아이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연서야, 이런 식으로 영어공부를 할 거면 아빠한테 배우지 말고 학원에 가서 배워. 아빠도 바쁜 데 수업준비하기도 힘들고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구나!”딸아이에게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나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연서는 놀랐는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있길래 방으로 들어가서 살펴 봤더니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살펴보니 베란다 쪽 좁은 공간에 고개를 숙이고 소리없이 흐느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딸아이가 안스러워 꼭 안아주며 영어는 못해도 좋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였다. 돌이켜보면 아빠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다들가는 학원도 안다니고 집에서 공부하는 효녀인데 오히려 내가 연서의 맘을 이해하지 못한 듯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그것 봐요. 부모가 자기자식 가르치기 얼마나 힘든지 미리 경고했잖아요. 내가 이 사단이 날 줄 이미 알고 있었다니까”하며 핀잔을 준다. 내가 조금 더 연서의 실력이 좋아지도록 노력하고 기다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연서야, 아빠가 연서가 문제를 못풀어도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이해시켜 줄게. 다시 한번 같이 노력해 보자. 영어를 잘하면 연서가 무엇을 하든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경쟁력이 생기는 거야”라고 연서를 다독이며 영어공부를 계속하게 된다.
시사영어사 중학교1학년 교재로 공부하고 단어는 기초단어집을 별도로 구입하여 매일 단어시험을 보는 것으로 보충하였다. 숙어는 성문기초영문법 교재에 있는 숙어를 별도로 시험을 보게 하여 암기하였다. 하지만 암기식 수업에서 별로 효과가 나지 않아 독해를 하면서 문장을 통하여 단어를 익히니 연서도 재미있어하고 훨씬 쉽게 외우는 것 같았다. 무리하게 단어숙어 시험을 보기보다는 문장을 많이 읽으면서 같이 공부를 하니 시간도 잘가고 효과도 배가되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도 단어숙어만 별도로 풀지 않고 문맥 속에서 풀 수 있도록 종합문제를 같이 풀었다.
이렇게 연서와 2년간 같이 영어공부를 하면서 나는 딸아이와 정서적으로 더 가까워 짐을 느낀다. 영어 외에 뜻밖의 부산물이다. 같이 매일 30분에서 한시간 정도 얼굴을 맞대고 공부를 하다보니 부녀사이가 부부사이보다 좋다고 아내는 가끔 질투섞인 눈빛을 보내기도 하지만 싫은 기색은 아닌 것 같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연서.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새초롬히 웃으며 입학식 사진을 찍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 졸업반이다. 졸업앨범도 찍고 겨울방학을 준비하는 연서와 요즘은 30분씩 영어로 프리토킹을 한다. 주로 연서가 학교생활에 관한 일기를 영어로 써오면 내가 교정을 봐주고 학교생활에 대하여 서로 영어로 질문도 하고 대화도 하며 공부를 한다. 처음엔 10분도 하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오늘도 나는 꿈꾼다. 언젠가 연서와 같이 토플시험을 봐서 외국어 1급을 따면 가족과 같이 외국에 여행을 가서 외국인과 프리토킹을 하는 꿈을...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오래된 영어책을 다시 펼쳐보심이 어떨지? 한글을 알면 5천만명과 소통할 수 있지만 영어를 알면 영어를 사용하는 전세계 10억명과 소통하고 지식을 공유할 수 있으니 삶의 외연이 그만큼 넓어지는 것이 아닌가? 외국어 공부는 치매예방도 된다니 일석이조다. 연서랑 프리토킹을 하면서 항상 제일 먼저 시작하는 영어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Yes,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