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찾기의 항해
문덕수
김철교 시인이 제3시집 『달빛나무』를 상재한다. 그도 도리없이 시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김철교’라는 이름은 금속성이 조금 울리긴 하나, 첫 만남 때의 인상과 더불어 시간이 갈수록 인간적 자원(資源)이 넉넉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일이 그것을 들어 말하기는 어려우나, 아마도 그의 시 쓰기의 밑천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자기찾기의 여행기이기도 한 이 시집은 6부로 되어 있고, 그 중의 제3부, 제4부, 제5부는 모두 여행시라고 할 수 있다(그는 세계 여러 곳을 많이도 돌아다녔다).
제1부는 ‘자기찾기’라는 이 시인의 시론과 가장 잘 부합하고, 비근한 일상사이기는 하나 가장 중요한 인륜을 읊은 제6부에서는 밀도 있는 영롱한 이미저리를 만나게 된다.
(1) 무지개에 둥지를 틀고 있는
작은 새 한 마리
- 「무지개에 둥지를 튼 작은 새」에서
(2) 아침 햇살이 찻잔에 또아리를 튼다
- 「에스프레소 여인」에서
(3) 새싹들이 흙을 비집고 바람의 눈치를 살피는
팔달공원 어디선가 금빛화살 하나 날아와
갈 길을 가리켜주었다
- 「서로의 첫 번째 생일에」에서
사물에 대한 지각경험과 언어적 조형력의 섬세함, 그 높낮이와 원근을 보여준다. 수반하는 관념을 떨쳐버린 뒤에 남은 순수한 이미지만으로도 미학적 무게가 상당함을 감지할 수 있다. 이상주의적(다가갈수록 멀어지고, 살아서는 만져볼 수 없는) 사랑의 묘비명이라는 (1), 섬세성과 영롱성이 모던하게 어울린, (2)의 사랑하는 이의 대면 장면, (3)의 큐피드의 화살을 연상하게 하는 운명적인 사랑 ― 이러한 관념들의 감각화 수법이 매우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시란 무엇인가. 이 아포리아에 대하여 김철교 시인은 ‘자기원형’ 찾기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말의 시론은, 실은 자기의 기독교적 신념과 융의 정신분석학을 아울러 자기찾기의 시론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다원주의를 일원화하는, 김철교다운 처리라고나 할까.
뒤를 보면 언제나 따라오는 그림자
밝고 환한 자리일수록
더욱 뚜렷이 각인되는 어두운 욕망들
- 「나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다」에서
관념의 중량에 이미지가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작품이 아닐까. 그러나 이 시집 전체의 포괄적 이해를 위해서는 맨 먼저 직면하는 시다. 자기찾기 즉 자기를 대상으로 한 ‘자의식’의 작품인 점, 융이 말하는 자기의 그림자(shadow)라는 점, 여기에 결부된 성서적 원죄의식 ―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가 일원화된 복합적인 추(錘)의 무게가 경량급 서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찾기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것들 속의 맨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유혹과 욕망의 접점 속에서 갈등하는 원죄의식으로 드러난다.
어미 품속을 휘감는 아기꽃뱀
그 몸에도
이브가 새겨놓은 문신이 영롱하다
- 「꽃뱀가족」에서
몸통이 잘려나간 구렁이
새까만 눈이 나를 응시한다
- 「이브의 그림」에서
꽃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눈이 밝아지고 몸이 벗은 줄을 알게 되었다는 구약 창세기 3장과 관련된다. 이브를 유혹하여 죄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뱀의 유전적 매혹은 더욱 두려우면서도 영롱하여, 시인이 뱀의 편인지 하나님 편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마저 보여준다. 이는, 제 몸을 잘 살펴보면 마치 몽고반점처럼 이브가 새겨놓은 영롱한 문신 그 원죄의 문신을 벗어날 수 없는 갈등의 내밀(內密)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기독교와 융의 결합이 계속 순조로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여기에 또 다른 인접 장르가 와서 어울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미 전공한 영문학(서울대 사범대 졸업)에 경영학을 접목한(중앙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 취득) 학제간(學制間)의 기존 자원은 또다른 자원을 불러 더욱 풍요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는 일이고 보면, 이것이 또한 그의 시와 시론의 미래가 될 것으로 본다고 해서 망언이 될까. 대해(大海)로 밀어내는 배가 험한 항해를 거쳐 연어처럼 돌아올 성공적 귀항(歸港)의 빛남이 있을 것을 믿는다.
<시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