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의 의미를 되새긴다”
오늘은 66번째 제헌절이다.
나라의 기틀이 된 헌법을 제정한 후 이를 공포 시행한 것을 기리는 날이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서는 제헌절을 국경일(국가의 경사스러운 날)로 정하고 있는데 원래 3.1절 제헌절 광복절과 개천절이었던 것을 2005년 말 개정으로 한글날이 추가되었다.
국경일은 당연히 공휴일이었는데 2008년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제헌절을 국경일에서 제외시켰다.
그 결과 국경일 중 유일하게 공휴일이 아닌 날이 생겨났는데(뒤늦게 들어간 한글날도 한 때 공휴일이었으나 쉬는 날이 너무 많다는 높은 분의 한 말씀에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정도만 쉬는 날로 하자는 이상한 발상이 채택되었다가 국경일로 되면서 작년에 다시 슬그머니 공휴일에 추가하였다) 이는 헌법 과목을 국가고시에서 제외시킨 것과 함께 헌법학자들을 분개시키면서 휴일을 바라는 근로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한글날은 나중에 들어간 것이지만 나머지 국경일들은 국가의 정통성과 유래를 강조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근세사에서 일본의 압제를 받다가 독립을 쟁취한 점에 착안하여 개천절을 제외한 나머지 국경일들이 모두 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때가 이 승만 대통령 집권 초인 1949.10.1인데 당시 정부나 사회 여론이 얼마나 독립을 소중히 여기고 신생국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일에 노심초사하였는지를 엿보게 한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건국절 제정 논의가 활발하다.
우리나라가 건국된 날을 기념하자는 주장인데 그 배경에는 비록 1945년 일제치하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나라가 세워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일제의 간악함에 못지 않은 공산주의자들로 인하여 하마터면 우리나라가 적화되기에 이르렀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처럼 번영된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므로 신탁통치 반대와 소련과 북한의 책동에 맞서 비록 남한에서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하기까지 진력한 공로를 기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 근현세사에 대한 이른바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인식에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임은 다 아는 사실이고 먼저 포문을 연 측은 진보측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소홀히 하고 단독정부 수립에 급급하였다는 것을 비판하는 시각을 확산시키는데 진보진영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판단 아래 보수진영에서 이에 맞설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건국절 제정 주장은 법제화로 이어지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7월 3일 정 갑윤 의원 등 13명이 “광복절 8월 15일을 건국절 8월 15일로 한다”라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800132호)를 제출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주장은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을 아예 건국절로 대체하자는 주장인데 물론 건국의 전제로 광복이 있어야 하기에 광복절은 일종의 내포적 개념으로 충분하다는 것 같다.
건국절 주장에 대하여는 아직 여러 견해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타나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백범 김 구 선생의 항일 독립투쟁과 남북한 통일정부 수립 노력을 높이 평가하자는 주장으로도 보여지는데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삼자는 주장과는 첨예한 대립각을 세울 소지가 있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측은 결국 광복절이라는 명칭은 물론 그 의미까지도 건국의 부수적인 일로 격하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사실 해방 이후 3년간은 어쩌면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옥동자(지금 결과를 놓고 보니 확실해 졌다고 하지만 당시로서는 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를 낳기 위하여 마지막 진통을 겪는 기간으로서 건국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을 수 있다.
소련의 통일전선 전략에 따른 한반도 적화 전략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미 군정당국은 2차대전후 소련과의 새로운 전면전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고 이 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민족진영 인사들의 각고의 노력과 반공노선에 입각한 수많은 사람들의 혈투로 건국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거쳤다고 해도 그 기간은 3년에 불과하여 일제 36년 긴긴 세월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며 카이로선언과 포츠담회담 등을 통하여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약속된 상황에서 건국운동을 전개하는 것과 국권을 송두리째 잃고 일제의 극악무도한 식민지배 공고화 정책에 맞서 처절한 투쟁으로 일관하였던 순국선열을 비롯한 독립투사들과 이를 애타게 성원하는 3천만 민족이 겪은 질고의 세월은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광복절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며 이 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의 정부 인사들도 같은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한편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건국절 주장은 광복절 존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건국절도 새로 제정하고 광복절도 존치하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는데 이는 실무적인 관점에서 매우 어려운 점이 있다.
과거 5월 1일을 시카고 유혈 파업을 기려 메이데이로 지키던 것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적인 반공주의 물결에 편승하여 이 날을 준법을 강조하는 법의 날로 바꾸어 지키고 노동절은 근로자의 날로 바꾸어 당시 대한노총의 창립기념일인 3월 10일로 정하였던 것을 노동운동의 회복추세에 따라 노동절이 5월 1일로 환원되자 정부는 같은 날 2개의 기념식을 거행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워 법의 날을 4월 26일로 바꾼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도 광복절과 건국절을 함께 국경일로 정한다면 오전에 광복절 행사를 하고 오후에 건국절 행사를 한다는 등의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점을 생각하여 나는 제헌절의 본래의 의미를 되찾고 이를 공휴일로 하여 다른 국경일과 같은 수준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헌절이란 헌법을 만들어 공포 시행한 날이라는 단순한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다.
헌법은 헌법제정권력인 국민들이 결단하여 나라의 기틀을 이루는 최고근본규범을 정립하는 정치적 법적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 산물이다.
건국절을 1948년 8월 15일로 하자는 주장은 7월 17일에는 덜렁 헌법만 존재하고 대통령은 7월 20일 국회에서 간선하여 이 승만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며 장관 임명 등을 거쳐 8월 15일에 정부수립이 완료되었음을 대내외에 공표하였다는데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매우 피상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헌법의 제정은 일정 범위(영토)에 거주하는 사람(국민)들이 모여 헌법제정회의를 구성할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헌법이라는 규범을 창출하는 주권의 행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국가의 3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이 확립되어 발현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실제 국회의원 총선거는 5월 10일에 이루어져 건국을 위한 구체적 시발점이 되었고 7월 17일에는 헌법이 제정 공포됨과 아울러 우리나라 법률 제1호인 정부조직법이 공포 시행되었기에 이미 대한민국은 7월 17일에 건국을 이룩하였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대통령 선출과 장관 임명 등은 건국의 후속조치였으며 이를 공표한 것은 사실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라가 성립된 후에도 우리나라는 민법 형법을 비롯하여 수많은 법들을 마련하지 못하여 일본법을 차용하다가 5.16 이후 구 법령정비사업을 통하여 비로소 우리나라 법제를 완비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하여 나라가 완성되지 못하였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일본법령과 군정법령 등의 원용은 바로 헌법 부칙에서 언급된 것이므로 헌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념적으로 혼란을 빚고 있어 건국의 이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건국의 기초는 바로 우리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에 의하여 확고히 쌓아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제헌절의 의미를 충분히 되새기는 것이 건국을 기념하는 요체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 승만 대통령의 공적을 재평가하자는 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가 보여준 반의회주의적 폭거들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대한민국 제헌국회의 산파역이었고 그렇기에 국회에서 간선한 대통령에 거의 만장일치에 가깝게 선출되었다는 점을 아울러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국회의사당 중앙에 로텐더 홀이란 곳이 있는데 거기에는 우리나라의 건국의 초석이 된 입헌주의 내지 의회주의에 공헌한 분들의 흉상이 놓여 있다.
우남 이 승만 대통령의 흉상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는 어렵게 이룩한 산업화 민주화의 성과를 지켜 나가면서 급변하는 국제정세 아래 외교 안보적 역량을 확고히 함과 아울러 경제 사회 및 삶의 질에서 나라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의 오명을 씻으면서 동족상잔의 소지를 제거함은 물론 통일조국으로서의 민족적 웅비를 세계에 과시하여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지도층에 위치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극단적 견해에만 매몰되어 타협의 여지까지 봉쇄한 채 모든 국민들까지를 분열과 불신과 상호 증오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려 한다.
통일준비위원회가 가동되더라도 우리의 이런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 한 북한을 포용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지하의 순국선열들의 심정은 어떠할 것이며 나라와 사회의 잘못으로 고통스럽게 숨져간 세월호 아이들 영혼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라 변명할 것인지 참으로 두렵고 떨리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