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법
12연기( 十二緣起)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와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발생을 설명하고 ,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와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소멸을 설명 하고 있는 연기법의 기본 원리를 가장 구체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초기경전에 보면 상황에 따라 12가지의 연기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연기가 있다. 붓다가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기 전의 정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정말로 이 세상은 고통 가운데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는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 (중략)
‘ 노병사(老死)의 고통은 태어남(生)이 있기 때문이다.
태어남은 어떤 존재(有)가 있어서다.
그 존재는 집착이 모인 덩어리(取)이다.
집착은 애욕(愛) 때문에 생긴다.
애욕은 받아들임(受)에 의해 일어난다.
받아들임은 접촉(觸)에 의한 것이다.
접촉은 6가지 감각기관(六入)에 의해서이다.
감각기관은 육체와 정신(名色)이 있기 때문이다.
명색은 의식(識)에 의해 생긴다.
의식은 의지(行)에 의해 일어난다.
그 의지는 어리석음(無明)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러한 원인을 알게 되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즉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면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가 소멸한다.
그리고 유가 소멸하면 생이 없어지고 생이 없으면 노병사가 없어지고 노병사가 없으면 수비고뇌(愁悲苦惱)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잡아함경 제12권 285경)
12연기란 모든 괴로움을 떠나기 위해서 그 발생과 소멸을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의 12가지로 풀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12연기는 생멸 변화하는 세계와 인생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 교리의 근본 목적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인 고(苦)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또 어떻게 해서 사라지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노사란 늙음과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노사는 삶의 모든 괴로움을 총칭한 근심, 비애, 고통, 번뇌(憂悲苦惱)를 말한다.
모든 존재는 생하면 필연적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게 된다.
이 피할 수 없는 노사의 모든 괴로움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일까? 태어남(生)때문에 고통이 있는 것이다.
즉 삶의 고통은 태어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전 과정 즉 생노병사를 괴로움이라 한다. 그러면 생은 무엇이 있으므로 있는가?
생은 집착을 여의지 못한 존재(有) 가 있어서다.
또한 나와 남, 내 것과 남의 것, 좋은 것과 싫은 것을 실체가 있는 존재로 고착화시키다 보니 태어난 것은 필연적으로 늙음과 죽음을 맞게 된다. 존재는 어떻게 있는가?
집착 때문에 있다.
취는 집착의 의미로서 인간의 미혹한 생존은 집착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맹목적인 애증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애착을 가리킨다.
어떤 대상에 대해 욕망이 생기면 뒤따라 그것에 집착심을 일으키게 된다. 집착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애욕 때문이다.
애욕이란 갈애(渴愛)라고 하는데 보통 목이 타서 갈증이 나면 오로지 물을 구하려는 생각만 나는 것처럼, 항상 능동적으로 만족을 구하는 인간의 본능적, 맹목적, 충동적 욕망을 말한다. 애욕은 왜 생기는가?
받아들인 느낌과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받아들임 이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과 그 감수(感受)작용을 말한다.
감각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인식작용 등의 3요소가 만날 때 거기에서 지각을 일으키는 심적인 힘이 생기게 되고 그 다음 수(受) 가 발생하는데 이 수 때문에 애욕과 갈애가 생기게 된다. 접촉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수가 있기 때문이다.
촉이란 지각을 일으키는 일종의 심적인 힘이다.
모든 촉은 6근이 6경과 접촉하지 않으면 결코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촉에도 6가지의 감각기관(눈, 귀, 코, 혀, 몸, 마음)에 의한 6촉(六觸)이 있다.
촉은 6입에 의해서 생긴다고 되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한다면 6입 만에 의해서가 아니고 식(識), 명색(境), 6입(根) 등 3요소가 함께 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촉은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는가?
그것은 6가지 감각기관(六入) 때문에 생긴다.
6입, 6근(六根) 혹은 6처라고 하는데 이는 대상과 감각기관과의 대응작용이 이루어지는 영역을 말한다.
6입은 무엇으로 인하여 있는 것일까?
명색으로 인하여 있다. 명색이라 함은 정신현상을 표시하는 명칭과, 그리고 물질을 나타내는 색을 합친 것을 의미한다. 6입의 대상이 명색 이다. 그렇다면 명색과 그에 대응하는 6입인 감각기관만 있으면 인식활동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상태에서 결코 인식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반드시 식이 있어야 한다.
죽은 사람이 꽃을 보거나 만질 수 없듯이, 식이 없으면 인식활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식은 명색이 있기에 존재하고 명색은 식이 있기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의 역할을 하는 것이 6입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감각기관인 6입과 그 대상인 명색 그리고 인식 주관인 식이 다 함께 갖추어졌을 때만이 사물과 접촉하는 인식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식이란 표면적인 의식뿐 아니라 심층의식도 포함한다.
장미꽃을 볼 경우 장미꽃이라는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전에 장미꽃을 본 경험과 정보가 심층의식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장미꽃을 보았다는 과거의 경험은 과거의 행위이다. 식은 어떻게 있는가?
행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이 없다면 현재의 인식작용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행으로 인하여 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행이란 이미 몸과 입과 뜻에 의해서 형성된 선행 정보들이다.
이를 신런막의(身 口 意)라 한다.
장미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미 입력된 장미꽃이라는 명칭도 개념도 없다.
물론 장미꽃이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기존에 형성된 다른 정보들과 조합하여 개념과 명칭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장미꽃과 비슷한 찔레꽃이라 인식할 수도 있다.
내부에 반드시 잠재적인 에너지의 형태로 행이 있지 않으면 상응하는 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경험된 행위가 여력을 남기며, 지식정보, 성격, 습관, 소질 등의 에너지로 축적된다. 마지막으로 행은 왜 생기는가?
무명이 있기 때문에 행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명 (無明)이란 글자 그대로 명(明, 지혜)이 없다는 말이다.
올바른 법, 즉 진리에 대한 무지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연기의 이치에 대한 무지이고 사성제에 대한 무지이다.
괴로움은 무지 때문에 생기므로 무명은 모든 고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다.
팔정도 중에 정견, 즉 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실히 체득하게 되면 무명은 이내 사라지는 것이다.
12연기는 연기법 자체를 심층 분석하여 고통의 삶과 해탈의 삶을 구체적으로 밝힌 가르침이다.
이처럼 불교 교설의 중심축은 연기법 이므로 어떤 교설이라도 연기법의 틀 안에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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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신 실상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없다면 저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한 것이 연기법입니다. 연기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서 인연법이라고도 합니다.
인은 핵심적, 내적 원인이고 연은 부수적, 외적 원인입니다.
우리가 보통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인연이라고 하니, 연기법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에 대한 설명입니다.
모든 것은 실체가 없이 인연에 의해 끝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과란 연기법의 일부이며, 특히 인간의 업과 관련지어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과법도 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과법은 선인선과 악업악보로 요약되며, 연기법이 생명체들의 선악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설명한 것입니다.
연기법이 왜 불교인의 근본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세상의 이치며, 또한 부처님께서 설하신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4제나 12연기나 번뇌와 괴로움의 원인을 집착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착의 근원에는 무명이 있습니다.
집착이 있으므로(이것) 생노병사와 같은 괴로움과 번뇌(저것)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없애려하나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려니 없애려는 새로운 집착이 생기는 것이지요.
집착할 바가 없음을 확연히 깨닫고자 하는 방법으로서 여러가지 수행법이 있는 것이지요.
즉 무명을 걷어내는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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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라는 것은,
불교에서 모든 현상이 생기고 소멸하는 법칙에 대한 불교법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그러한 이론을 설이나, 론, 법 등으로 하여,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긴다는 이론으로, 이를 연기설, 연기론, 연기법이라는 이름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불교에서 연기법과 관련하여 말하는 모든 것이란, 당연히 사람만을 한정하여 지칭하거나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삼라만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 입니다.
그래서 이를 불교에서는 사람들과의 인연과 관련하여, 인연법과 관련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3. 그러나 위 질의에 의한 인과법이라는 것은,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사실론적인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이면서, 주로 법률 영역과 관련된 용어로,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게 마련이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에서는, 과거나 전생의 선이나 악에 따라 뒷날에 그에 따른 길흉화복을 받게 된다는 인과응보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또 이러한 과거의 악한 것을 업이나 업보, 업연 등으로 설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과거에 악행을 지은 자는 반드시 이후에 그 결과론으로서 악업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인과법이나 인과설, 인과론이나 인과응보식의 숙명이나 그 업보를 의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잘못을 반성하여 개과천선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정에서의 이를 설명하려는 하나의 이론이거나 방편에 불과한 것 입니다.
4. 따라서 불교에서의 연기법은, 이를 사람으로만 한정을 하면, 인연법과는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좋은 인연으로 인한 인연법으로는 이해할 수는 있어도,
나쁜 인연의 모습을 가진 악연으로의 인연법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분명한 한계가 있게 되는 것이고(그 이유는 불교의 인연법 역시 악연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그 역시 인연법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방편에 불과하므로),
5. 불교의 연기법이, 언듯 보기에는, 마치 사실론적이거나 법률적인 용어로서 인과법과 비슷해 보인다고 오인을 할 수는 있어도,
그 근원과 의미, 내용은 전혀 다른 모습의 것이므로,
인과법이라는 것은, 불교의 연기법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이고,
다만, 연기법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하나의 과정이나 방법으로 이를 비교하면서 설명하는데,
이용할 수는 있을 것 입니다.
6. 참고로 타종교에서는 숙명, 즉 운명이라는 것을 중시하나(예를들면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경우 등),
불교는 그러한 것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모든 생명체인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그 최고의 목적과 가치로 하고 있으므로,
숙명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은, 불교를 공부하거나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를 말할 수는 있어도,
그러한 것들은 불교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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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사상
연기론, 연기법, 인연생기(因緣生起)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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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3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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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존재론적인 관점으로 연기법을 이해하면 위의 말씀처럼 인과법으로 오해하게 되는 일이 생겨나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