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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죠?
하늘은 높고 푸릅니다. 주변 모든 것들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뚜렷하니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바람은 쓸쓸하니 불어와 우리 가슴에 뭔가 모를 것을 아련하게 남겨놓고 지나갑니다. 나뭇잎 색깔이 변하고 있습니다. 가을이군요.
오늘 이야기는 산티아고를 향한 사실상의 첫째 날 이야기입니다.
순례자로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으니, 우리 한지붕 네부부님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약간의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이 쓴 책이나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서 찾아낸 자료들을 요약했으니,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직접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군요.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배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마태 4.21-22)
위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야고보가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인공입니다. 야고보는 베드로와 또 자신의 동생 요한과 함께 사도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모신 성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병든 장모를 낫게 해주실 적(마르 1.29-31)에도,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되살리실 적(마르 5.37-42)에도,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순간(마태 17.1-8)에도,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적(마태 26.36-46)에도 예수님 곁에는 항상 야고보가 있었습니다. 그가 성질이 불같이 급해서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의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주셨다(마르3.17)고 합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예수님 승천 후 사도 야고보는 에스파냐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기원 44년 헤롯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형을 당함으로서 열두 제자 중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그의 유언에 따라 돌로 만든 배에 실려서 지중해에 띄워졌고, 천사들의 도움으로 오늘날 스페인의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파드론이라는 곳에 닿았습니다. 제자들이 성인의 유해를 배에서 내릴 때 관은 가리비로 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성인의 유해는 이곳에 안장되었다가 이교도들이었던 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이후 야고보성인에 관한 일들은 전설 속으로 잊혀졌다고 하지요.
8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813년, 갈리시아의 수도자 펠라히오가 들판길을 걷고 있을 때 들판 위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았는데, 그는 그 별을 따라가다가 숲속 동굴에서 무덤을 발견하였습니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해와 양피지등으로 확인한 결과 이 무덤이 야고보 성인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후에 이곳을 산티아고라고 부르고, 그 자리에 성인을 모실 교회가 세워졌다고 하네요. 지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입니다. 산티아고(Santiago)란 "성야고보"라는 뜻이며, 콤포스텔라(Compostela)는 "별의 들판"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기는 에스파냐가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에게 점령 당하고 있던 시절로서,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고 불리는 국토회복 전쟁이 시작될 때였습니다. 레콩키스타 초기 이슬람교도들에게 밀리던 기독교도들은 야고보 성인을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삼아 전세를 역전 시킬 수 있었다고 하며, 그로부터 그의 유해가 모셔진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찾아가는 순례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답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던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예루살렘이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당하자, 산티아고를 예루살렘을 대신할 순례지로서 찾아나서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야고보 성인은 스페인의 수호성인이며, 산티아고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기독교도들의 3대 순례지입니다. 성인의 유해를 덮었던 가리비 껍질은 오늘날까지도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마스코트가 되어서 그들의 배낭이나 옷, 모자에 달려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디에서 출발하든지, 결국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스페인 내에서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세비야 등에서 출발하는 길이 있고, 북부 해안선을 따라가는 길도 유명합니다. 프랑스의 파리나 포루투갈의 리스본에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생장의 순례 사무소에서 얻은 팜플렛에 보면 유럽 전역에서 산티아고를 향해 순례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 멀리 스웨덴등의 북유럽이나, 헝가리등 동유럽, 이태리등에서도 시작해서 프랑스를 거쳐가게 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길은 프랑스의 생장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북부지방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우리 부부도 이 길을 따라 갈겁니다.
2013. 5. 3 (금) 생장피드포(Saint Jean Pied de Port) -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오늘의 목적지는 스페인의 론세스바예스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론세보 (Roncevaux) 라고 하네요. 자료에 따르면 27.1km를 걸어서 나폴레옹 루트로 잘 알려진 해발 1,400m의 피레네 산맥을 넘어갑니다. 이번 순례코스중에서 가장 어려운 곳이랍니다.
아침 6시에 눈을 떴습니다. 승현이 엄마가 먼저 일어나서 날 깨운거죠. 사방은 깜깜합니다. 몇몇 사람은 벌써 일어나 부시럭거리며 짐을 챙기고 있군요. 아직 자고 있는 다른 사람들 생각해서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와 세면실을 찾아갔습니다. 어제 잠자기 전에 화장실, 샤워실 위치를 확인해두었죠. 면도는 하지 않고 얼굴에 물만 묻혀 대충 세면을 했습니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샤워를 할테니까요. 그리고 침대로 돌아와서 배낭을 꾸립니다. 어두운 데서 눈짐작으로 이것저것 집어 넣으려니 잘 되질 않는군요. 식사후에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7시, 맨 아래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사람들이 벌써 많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식탁을 보니 식사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바구니에 담겨있는 바게뜨 빵과 접시에 놓인 버터, 유리병에 든 우유가 테이블 위에 띄엄띄엄 놓여 있고, 그 주위에 너댓명씩 앉아 모양이 제각각인 접시를 하나씩 집어서, 역시 하나도 짝이 맞지 않는 포크와 나이프로 빵을 잘라 버터를 바르고 우걱우걱 먹는겁니다. 남들은 프랑스의 바게뜨 빵이 맛있다고 하는데, 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워낙 딱딱해서 입천정이 다 망가지거든요. 두어 조각 먹다 말았습니다. 한쪽 구석엔 유리 포트에 담긴 커피가 전기버너 위에서 끓고 있었는데, 포트 사이즈가 크질 않아서 몇사람이 마시면 금방 바닥이 납니다. 새로 끓을 때까지 기다려서 한 잔 마셨습니다. 4유로짜리 아침이었습니다.
식사 후 이를 닦고, 마지막으로 배낭을 꾸리고 침대를 대충 정리한 후 방을 떠납니다. 배낭을 짊어지니 그 무게가 만만치 않습니다. 어제 파리에서 이곳으로 올 땐 배낭을 메고 걷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별로 무게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향하여 인사를 하며 출발하고 있더군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모두들 "Buen Camino" 를 외쳐줍니다. 우리말로 하면 "좋은 (순례)길 (되시기 바랍니다.)" 정도 될겁니다. 앞으로 셀 수 없이 외쳐댈 스페인말입니다. 부엔 카미노!
알베르게 문을 나서며 확인하니 7시40분, 이제 역사적인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첫걸음을 뗍니다. 어제 보셨던 그 사진이죠? 생장을 떠나면서 찍은 사진이 없어 어제 찍은 사진으로 대신할게요. 바로 이 문을 통해서 생장을 뒤로 하고 피레네 산으로 가는겁니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흐린 날씨입니다. 우리 앞에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이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사람들을 따라가면 되겠네요. 어제 순례사무소에서 들은 바로는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길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포장된 차도를 따라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산길이라면서 날씨가 좋지 않으면 위험하니 꼭 포장도로를 따라 가라고 주의를 주더군요. 흐린 날씨이긴 하지만, 포장도로를 따라가는 것 보다는 산길을 걸어 넘어가는 것이 순례자로서 당연한 선택일 것같아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산길 쪽으로 향했습니다. 이 길은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쳐들어갈 때 이용했던 길이라고 합니다. 산길이라고는 하지만 처음 얼마동안은 어느정도 포장이 되어있습니다. 아마 농사용 도로로 이용하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상쾌한 출발입니다. 흐리기는 했지만 쉽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 하늘이라 오히려 햇빛이 쨍쨍한 것보단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오르막길, 배낭이 어깨를 짓눌러 속도가 나질 않습니다. 오늘 안으로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면 될테니까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배낭무게가 장난이 아니군요. 세계 각지에서 왔을 많은 사람들이 성큼성큼 우리를 지나치면서 "Buen Camino!"를 외쳐줍니다. 우리도 "Buen Camino!"라고 답해주지요.
잠깐씩 자기 소개를 하고 몇마디씩 나누고 지나가거나 손을 흔들어 격려해주며 스쳐 지나갑니다. 뉴욕에서 왔다는 부부, 아줌마는 푸에르토 리코 출신이고 아저씨는 콜롬비아 출신이라네요. 이탈리아 사람으로 보이는 일가족도 있습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 소녀와 아빠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네요. "Buen Camino!"만 외치고 지나가니 가족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남의 일 추측하기 좋아하는 나와 승현이 엄마의 추론이 맞을 겁니다. 이외에도 여러나라 사람들이 유쾌한 걸음으로 우릴 추월합니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키 크고 건장한 체격의 두 청년이 우리 부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처음 건네는 말은 대개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말입니다. 한 청년은 스톡홀름에서 왔고, 또 한 청년은 외테보리에서 왔답니다. 직장을 휴가내고 왔다는데, 아마도 산티아고까지는 가지 않을 모양입니다. 그 뒤로는 승현이 엄마가 대화를 주도합니다. 순례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렇지만 평범한 50대 후반의 한국 아줌마에게는 얼마든지 얘깃거리가 되는 화제들이 줄줄 나옵니다. 결혼은 했느냐, 한국에는 가봤느냐...등등. 훌륭한 영어가 아니지만 잘 통합니다. 순례자들끼리는 언어의 장벽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길 저 아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이는데, 승현이 엄마와 스웨덴 청년들이 얘기하면서 걸어 올라오고 있는 중에 다른 사람들이 같이 걷고 있는 장면입니다. 내가 먼저 앞장서서 걸어 올라와 찍었습니다.
어제 저녁 한방에서 같이 잤던 한국사람들과 이태리, 독일 친구들은 모두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기에 아무도 만나지 못했지만, 이처럼 걷다보면 말을 걸어오는 외국인들이 많더군요.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부부처럼 보이는 서양사람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이럴때 순례자들이 만나서 나누게 되는 대화를 샘플삼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한국에서 왔다. 당신들은 어느나라에서 왔느냐?"
"우린 독일에서 왔다."
"독일 어느 도시냐?"
"잘 모를거다. 본이라는데에 산다. 통일되기 전에 서독의 수도였다."
"잘 안다. 베토벤의 고향 아니냐?"
문제는 내 발음이 형편 없었는지, 아니면 독일식 발음은 다른건지, 그도 아니면 이 양반이 이 작곡가를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베토벤을 설명하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나중에야 "아, 베토벤!"하고 알아듣는군요. 영어식 발음하고는 조금 틀립니다. 이 독일인 부부는 동양인인 우리 부부를 보고 자신들의 태국인 사위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자기 딸이 영국에서 태국인과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데, 결혼식을 태국에서 했기 때문에 자기 부부는 난생 처음 태국에 다녀왔고, 그것이 자기네 부부의 지금까지 유일한 해외여행이었답니다. 믿을 수가 없더군요. 나는 세계에서 여행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독일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따졌죠. 당신들 결혼할 때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다왔느냐, 바로 옆의 프랑스나 이탈리아, 당신네 딸이 살고 있다는 영국도 안 가봤느냐... 이 양반 대답이, 이번 산티아고 순례 때문에 생전 처음 프랑스를 지나왔고, 영국은 딸이 살고 있지만 아직 못 가봤다네요.
이렇게 순례자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면서 계속 걸어 올라갑니다.
모두 우리를 앞질러 가네요. 문제는 배낭입니다. 내 배낭이나 승현엄마 배낭이나 엄청 무거워서 남들처럼 시원스레 걷질 못합니다. 어쩌겠어요? 그냥 쉬엄쉬엄 걷는 수 밖에...
얼마나 걸었나...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사진 오른편에 포장된 길이 보이죠? 아무 생각 없이 가면 아마 이길로 가게 될겁니다. 그런데 전봇대에 노란색 페인트로 그려진 화살표가 보이죠? 그렇습니다. 그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가야 하는겁니다. 앞에 가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첫날부터 길잃은 순례자가 될 뻔 했네요. 앞으로 이런 갈림길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결국 우리는 첫날부터 엄청난 일을 겪게 됩니다.
꽤 많이 올라왔나봐요. 우리 아래로 온 산을 뒤덮은 구름이 보이는군요. 저 아래 구름 밑으로 어제 우리가 하루 저녁을 보낸 생장 마을이 보입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럴줄 알았으면 시간대별로 메모를 해놓았어야 하는데, 어쨌든 최초의 쉼터인 오리손(Orisson) 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화장실도 가고 커피도 한 잔 사서 마시고, 좀 쉬어야겠습니다. 대부분의 순례자 안내서에 표시되어 있는 이곳은 사실 알베르게로 쓰이는 건물 하나 달랑 있는 곳입니다. 2층 건물인데 알베르게도 있고 식당도 있습니다. 어제 만났던 사람들, 오늘 우리를 추월했던 사람들, 처음 보는 사람들... 모두 여기서 일단 모여지게 되네요. 우선 배낭부터 내려놓고 사진포즈를 취합니다. 승현이 엄마를 기준으로 사진 왼쪽에 지팡이 하나 들고 있는 친구가 어제 내 옆침대 위 2층에서 잔 독일 청년이고, 승현엄마 뒤에 하얀 모자를 쓰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친구가 내 침대 위 2층에서 잔 이탈리아 녀석입니다. 어제 8명이 잘 수 있는 방에서 6명이나 되었던 한국사람들은 우리 둘을 빼곤 아무도 보이질 않습니다. 대신 처음 보는 한국 아줌마 두사람을 만났습니다. 성당 교우끼리 왔답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화장실을 이용한 뒤 다시 길을 떠납니다. 조금 전 까지만해도 구름이 좀 걷힐 것 같았었는데, 다시 구름이 잔뜩 몰려 옵니다. 오늘이 5월3일, 한국에서는 초여름이라고 덥다고 할텐데 여긴 쓸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구름인지 안갠지 희미한 속에서 유제연 여사, 잘 생긴 소 한마리와 포즈를 취해봅니다.
안갯속에서 길잃기 십상이죠? 길 옆의 돌무더기에도 방향표시가 있습니다.
계속되는 구름 속 산길, 말들이 한가롭네요. 아름답기 짝이 없는 풍경이지만, 사실 우리가 걷는 저 포장된 길은 쇠똥, 말똥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 똥을 밟지 않고 지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이정표는 Saint Jacques de Compostella (스페인식 표현은 Santiago de Compostela) 까지 765km 남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만 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보니 여러곳의 이정표에 표시된 거리가 서로 앞뒤가 맞지 않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추월해서 앞서 갑니다. 바이욘에서 생장으로 오는 기차에서 만났던 한국인 청년들, 아까 오리손에서 만났던 한국 아줌마들, 엊저녁 우리가 숙소를 구해줬던 한국인 부부등이 우리를 앞서 갑니다. 태국 사위를 둔 독일인 부부, 뉴욕에서 온 히스패닉계 부부등도 우리 보다 오리손을 늦게 출발해서 우리를 앞서 갑니다. 우리는 엄청난 배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가다시피 걸어갑니다.
오르막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배낭무게 때문에 쉬었다 걷다 하기를 셀 수 없이 반복하며 오르다 보니 우리 말고는 앞뒤에 아무도 보이질 않습니다. 언제부턴가 포장도로는 끝나고 낙엽과 진흙이 뒤범벅이 되어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이나 눈으로 덮여 미끄러운 길을 어기적 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덧 피레네 정상에 다 와가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쯤이 우리가 넘어가야 할 길의 정상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알아 볼 방법이 없군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면 뭔가 표시가 있을텐데 뵈질 않습니다. 이제부턴 내리막입니다. 잔뜩 쌓인 눈 위로 앞서 간 사람들이 엉덩이로 미끌어져 내려간 자국들이 있습니다. 하긴 엉덩이로 미끌어져 내려가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네요.
그래도 유제연여사는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 눈 속을 걸어 내려갑니다.
눈길을 내려와 보니 화살표가 가르키는 방향 쪽으로는 더이상 가지 말라는 표시로 공사장의 출입금지 테이프 같은 것으로 막혀 있네요. 그렇다고 다른 쪽을 찾아봐도 눈으로 덮인 길 외에는 길이 없는데, 화살표 같은 순례길 표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상하더군요. 어느쪽으로 가야 할지 답답합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래도 화살표가 있는 곳이 맞겠다 싶어서 진입금지 테이프를 넘어 산길을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위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길이 그 길입니다. 경사가 엄청난 길을 엄청나게 깊은 계곡을 따라서 내려갈 모양입니다.
산길을 한없이 걸어 내려갑니다. 산길은 오르막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든 법이라죠? 경사도 상당히 급한 내리막길입니다. 배낭 멘 어깨가 쑤시고 다리는 후들거립니다. 승현이 엄마는 가끔씩 돗자리를 펴놓고 앉아서 발가락을 주무릅니다. 저 돗자리... 돗자리 없어도 얼마든지 앉아 쉴 수 있으련만, 승현이 엄마는 돗자리는 꼭 가져가야한다고 고집을 굽히지 않았었죠. 잘 써먹고 있네요.
아무리 걸어 내려가도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는 적막함만이 계속되고, 우리는 낙엽 속으로 푹푹 빠지는 진흙길과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갑니다. 해지기 전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지 못하면 이 산 속에서 이 추위에 아무 대책도 없이 어떡하나... 가슴 한 구석에서 슬그머니 걱정이 솟아나는데, 승현이 엄마가 말합니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면 어제 생장에서와 같은 알베르게에 가지 말고 호텔을 찾아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는 아주 맛있는 저녁을 사먹자고. 좋아, 그러자.
아무리 걸어 내려가도 도대체 앞에 가는 사람도, 우리를 앞질러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질 않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의심이 들지만, 잊을만 하면 순례자들을 위한 방향표시가 눈에 보이니 길이 맞긴 맞는 모양인데... 저 가리비모양의 순례자 엠블럼 보이시죠? 그 옆엔 순례 도중에 누가 무슨 일을 겪었는가, 기념비인지 추모비인지 모를 비석과 꽃다발이 보입니다. 순례중에 사망한 사람들도 가끔씩 있는 모양입니다. 오늘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순례길 옆에 죽은이를 기리는 십자가나 비석등을 자주 보게 됩니다.
1,200 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온 순례길이지만 최신식 방향표시나 안내문은 보질 못했습니다. 길가의 돌멩이, 바위, 나무... 길옆 건물의 담벼락에 페인트로 저렇게 그려놓았습니다. 낙엽과 진흙이 뒤범벅이 되어 발이 빠지는 길을 조심스레 골라가며 걷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이 길이 맞는다면, 왜 지나가는 사람 하나도 없는 적막강산이 계속되는 거야. 오늘 안으로 론세스바에스에 떨어지기나 하는건가...
불안과 절망에 잠겨 숲길을 헤치고 걷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오래된 건물의 지붕이 갑자기 눈에 보입니다. 이곳이 론세스바예스인가? 마침 이곳 사람인듯한 젊은 남녀가 길 옆에 텐트를 치려고 하고 있기에 이곳이 론세스바예스냐고 물어 봤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도 웬지 미덥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한참 있다가 그 친구들한테 다시 물었죠. 여기가 론세스바에스가 맞느냐고... 그랬더니 이 친구들이 왜 사람말을 믿지 못하느냐는 듯한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네요. "맞다니까..."라고. 나는 론세스바예스라고 하면 집들도 많이 있고 사람들도 분주히 왔다갔다 하는 도회지일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곳은 아무리 둘러 봐도 수도원이나 교회처럼 보이는 건물만 덜렁 보이는 거예요. 나중에 알았지만 우린 동네 앞길로 론세스바예스에 온 것이 아니고 뒷길로 이곳에 들어선 겁니다.
결국 우린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겁니다. 오후 6시45분이었습니다. 생장을 떠난지 무려 11시간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순례기를 보면 대개 7시간에서 8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우린 서너 시간을 더 걸었군요. 험한 내리막길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말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까 그 정상의 눈길에서 진입금지 경고를 무시하고 화살표를 따라 걸어 내려간 것이 잘못된 것으로 그 때문에 꽤나 먼거리를 돌았다는겁니다. 전에는 순례길로 이용했지만 내리막 경사가 위험하기 때문에 지금은 폐쇄했다네요. 아까 눈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계속되는 눈길을 조금만 더 가면 바로 론세스바예스로 가게 되는건데... 첫날부터 엄청 큰 실수를 했습니다.
서둘러서 수도원처럼 보이는 건물을 돌아서 앞으로 가보니 La Posada라고 간판이 되어 있는 호텔이었습니다. 알베르게를 찾을 생각도 없이 우린 여기서 자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아까 산을 내려오면서 이미 생각해 두었거든요. 도착하면 알베르게를 찾지 말고 호텔을 찾아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서 맛있는 저녁을 포도주와 함께 한 후, 삐걱대는 이층침대가 아닌 포근한 침대에서 푹 자야지...라고. 하긴 몸이 지쳐 있어서 다른 곳을 찾을 생각을 할 기력도 없었습니다.
한지붕 네부부 여러분 오늘은 여기서 줄이렵니다. 너무 피곤하거든요. 사실은 이 글도 무려 한달 전에 써서 저장했던 것을 오늘 손을 좀 보아 올린 겁니다. 순례기 쓰는 일이 점점 게을러 집니다.
첫댓글 힘내세요~!! 화이팅~!!
너무 아슬아슬하고 잼나요~ 첫날 실수가 앞으로의 길을 편하게 해 주겠죠
첫날부터 눈길 진흙길 배낭~ 넘 힘드셨네요
읽는 저는 가슴이 두근두근.....
기다릴께요
이편~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격려를 받으니 힘이 납니다.
고생 하셨읍니다.현지에서 고생 또 글 올리시는 수고.... 감사하게 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