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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종격투기 원문보기 글쓴이: 천창욱
안녕하세요 MMA 바로알기 오늘은 그간 하고 싶었던 그러나 마음 속에 담아둬야만 했던 아울러
때가 되면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인 방승환 선수가 DEEP 타이틀을 반납해야만 했
그 이유에 대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방승환이 DEEP 챔피언이 되기까지
<첫 해외 단체 한국인 챔피언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방승환 선수>
한국의 종합격투기의 본격적인 역사는 2003년도 부터입니다. 스피릿MC의 시작과 더불어 이 땅에는 본격적인
종합격투기의 열풍이 불어왔습니다. 물론 곧이어 버블현상처럼 우후죽순 단체가 생겨났다 사라지는 그런 과정도
거쳤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선수 들이 각자의 강함을 선보이며 점차적으로 레벨업이 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방승환의 소속도장은 당시 정진체육관이었습니다. 정진체육관의 그 당시 멤버 들은 상당했습니다.
무에타이 베이스로 출발한 정진체육관은 타격적인 부분 이외에도 빠르게 종합의 세계에 적응하면서 정진만의
새로운 MMA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던 시기입니다. 어원진 김대원 선수의 도장 영입으로 그라운드 적인 부분의
보완도 이루어졌고 많은 경기에 나가서 자신들의 기량을 선보여야 할 시기에 걸린 괘씸죄 덕분에 국내 대회에서는
이 도장의 소속 선수 들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여러가지 압력으로 다른 팀으로 가지 않으면 경기를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정작 강함을 가지고 있지만 강함을 선보일 수 없었던 이 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본의
무대에 눈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경기를 할 수 있는 길이 국내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진체육관 관원 들은 앞서 어원진 선수 편에서와 같이 일본 격투기 유학을 통해서 현지의 분위기와 경기를 통한
경험을 쌓아가던 중이었습니다. 한때 이들의 이런 모습이 쿠키뉴스의 동영상 투혼 시리즈로 방송이 되기도 했었죠.
당시 구성은 요즘으로 봐도 좋은 팀 구성이었습니다. 라이트급에 어원진, 미들급에 김대원과 김훈이 신인 선수로
방승환과 김한우 등 전체급에 고루 퍼져있는 팀 구성은 일본에서 경기가 있을 때마다 바로 그 체급의 선수를 투입이
가능할 정도였으니 경기를 여러번 할 수 있다는 좋은 구성이었죠.
<2:2 태그매치에서 당시 DEEP의 두명의 챔피언 조를 물리친 신인 선수 방승환과 이정호의 모습>
방승환은 이정호와 더불어 당시 팀의 막내였습니다. 복싱을 처음 했던 전력 때문인지 펀치력이 상당히 좋은 선수이고
아울러 카운터를 받아치는데 능한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무대에 첫 선을 보였던 것이 바로 오사카의 리얼리듬
대회였는데 이 경기에서도 방승환은 거의 떡밥 취급 받으며 나섰던 DEEP의 챔피언 들과의 대결에서도 강력한 펀치로
미시마 도 곤조노스케에게 생애 첫 실신 KO패를 안겨주면서 일약 일본인 관계자 들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에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확실히 만들어낸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고 이어서 여러 대회사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CMA 페스티발. 1 에서 쿠보타 코세이와 대결을 했지만 하체 관절기 공격에 그만
탭을 치고 맙니다. 물론 이 경기는 본인이 여러가지 심적으로 괴로워 하던 시기에 열린 경기여서 거의 본인이 승부를
포기한 상황이었기에 이 점이 후에 근성적인 부분에 마이너스가 되어서 갑자기 올라오던 주가가 내려앉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방승환의 일본 격투기 무대는 2라운드에 더 불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일본무대에서의 제 2라운드
방승환의 일본무대에서의 제 2라운드는 본격적으로 DEEP의 무대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2006년도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기에 위로 다시 치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결과가 필요해졌습니다. 2007년 7월 8일 이케모토 세이치와의
대결을 펼친 방승환은 향상된 테이크다운 디펜스와 상대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비록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경기를
내주긴 했지만 현지 관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다시 한번 재평가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불과 15일 후에 열린 CMA 페스티발. 2에서 마츠시타 나오키와의 대전에서 스탠딩 타격전을 펼치면서 마츠시타를 판정으로
누른 후 본격적인 흐름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곧 이어 펼쳐진 10월의 DEEP. 32에서는 BARBARO.44로 알려진 토미오카
선수에게 압도적인 타격을 압세워서 전원일치 판정승을 따내면서 승 수를 쌓아나갔습니다.
<나카오 쥬타로에게 DEEP.33에서 TKO 승을 거두는 모습 방승환의 제2의 전성기의 서막이었다>
2개월 후 방승환은 DEEP의 전 챔피언인 나카오 쥬타로와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나카오는 리얼리듬 대회에서 미시마가
실신을 당하는 모습을 봐온지라 그리 쉽게 경기가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사된 경기에서는 방승환의 타격이
불을 뿜으며 나카오를 2라운드 1분 15초에 TKO로 물리치면서 DEEP의 전 챔피언을 두명이나 TKO로 잡아내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Luiz와의 대결에서 타격의 압박으로 상대선수를 물리치면서 DEEP 라이트급 챔피언 도전권 획득>
2008년도 3월 Luiz 선수와 대결하게 된 방승환은 원래 이 대회에서 현 챔피언인 요코타 카즈노리와 대결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코타가 당시 킥복싱쪽으로 나가서 컨텐더라는 리얼리티프로그램에 출전한 후유증으로
다리에 심각한 부상이 있어서 경기를 뒤로 미루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와서 이 경기는 건너뛰어도 될 경기였지만
방승환 선수 쪽에서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경기를 하겠다고 밝혀서 경기를 치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3: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었죠.
대망의 타이틀 전 그리고 최초의 해외 격투기 단체 한국인 챔프의 탄생
2008년 5월 19일 드디어 요코타와의 대결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요코타의 상태가 좋아지고 난 후 치루기로 한
타이틀 매치가 드디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날 방승환 선수 입장에서는 앞선 DEEP 경기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고도
챔피언에 등극하지 못했던 김동현 선수의 예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확실한 경기를 보여줘야만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다가왔습니다.
<1라운드 중반 로우킥을 내밀면서 거리를 재고 있던 요코타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방승환>
< 이 라이트 카운터 한방이 요코타를 잠재우고 방승환을 적지에서 챔피언을 만들어준 한방이 되었다>
<첫 해외 단체 챔피언에 등극한 방승환의 허리에 챔피언의 상징인 챔피언벨트가 감겨지고 있다>
1라운드 중반 로우킥을 섞어가며 거리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요코타가 급작스러운 접근전을 펼쳐올 때
방승환 선수의 몸이 아래로 가라앉나 싶더니 곧바로 카운터 오른 손 훅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그 훅은 방승환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격투기 변방의 한국선수가 새로운 DEEP의 4대 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한방이 되었습니다.
방승환이 타이틀을 반납하게 된 진짜 이유는
방승환이 그렇게 어렵게 따낸 DEEP의 라이트급 챔피언 벨트를 반납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DEEP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던 옛 DSE쪽의 일원들이 꾸미고 있던 대회인 DREAM의 내부에서 권력을 가진 한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매달 DREAM으로부터 DEEP운영의 자금을 일부 원조 받고 있던 사에키 DEEP사장의 경우에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핵심인물이 제동을 걸어왔기 때문이죠 물론 이것은 센고쿠에서 고미와의 대결을 한참 진행을
하던 도중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이 인물은 과거 PRIDE시절에 고미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였지만 야렌노카를 준비하기 전에 참전을 해달라고
계속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고미는 센고쿠 측으로 의견을 기울인 상태였기 때문에 야렌노카 참전은 없었습니다.
사실 센고쿠와 DREAM은 함께 열릴 대회였습니다만 경량급 위주로 일단 대회를 재편한 후에 중량급 선수 들을
다시 끌어들이고 가자는 전 DSE 멤버 들의 의견은 당시 요시다 히데히코를 보유하고 다름 중량급 이상 선수를
보유한 센고쿠 측과 의견 대립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결국 양 이벤트는 별도의 대회로 진행이 됩니다.
방승환 선수의 고미와의 대전이 진행이 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습니다.
사실 단체의 챔피언이건 아니건 간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주내에서는 선수는 원하는 곳에서 경기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울러 그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선수가 소속도 안 된 단체의 반대로 경기를 뛰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니까요.
이 과정에서 사에키 사장도 입장이 난처해졌습니다. 사실 터치 받고 싶지 않은데 비즈니스의 관계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게 마음 먹은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압력은 이후 다른 선수에 대한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양동이 선수와 임현규 선수가 당시 DREAM 입성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 인물은 만일 방승환이
DEEP과 친밀한 자기들 쪽으로 나오지 않으면 양동이와 임현규의 DREAM 계약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입니다. 아마 그정도면 다른 선수들의 피해를 생각해서라도 고미와 대결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결말은 그렇게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나주지를 않았습니다. KTT의 하동진 감독은 방승환이라는
선수가 일생일대의 대결을 앞두고 그것을 하고 싶어하는데 언제 다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우리 선수 들이 그냥 DREAM을 포기하겠다고 이야기를 해버린 것입니다. 하동진 감독의 이런 배려로 방승환의 고미와의
대결은 점차적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DEEP의 사에키 사장 측이 경기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타이틀을
박탈하고 그것을 기자회견을 통해 챔피언으로서의 자격을 의심하게 한다는 인터뷰를 한 사에키 사장도 실상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방승환의 고미와의 경기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여러가지 형식을 갖추려
노력했습니다. 일단 경기를 뛰고 싶다는 의견을 서류로 작성해서 하나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선수 입장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이를 어필해왔다는 것과 단체 입장에서도 형식을 갖춘 서류를 통해서 경기에 나서겠다는 선수의 입장을 대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테니까요.
방승환 선수에게 이런 사실을 전달했습니다. 방승환 선수 입장에서 쓸 수 있는 글 들을 써서 저에게 메일로 보내왔고
그 메일을 바탕으로 제가 일본어로 서로의 감정이 전달 되고 아울러 대립되는 부분도 정중하게 작성을 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방승환 선수가 연습차 방문 했을 시기에 직접 DEEP도장을 찾아가서 사에키 대표에게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감정적으로 대립하기도 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책임을 질테니 경기만 성사시켜 달라고 상당히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후에 일본측에서 대회에 나갈 때 까지 전혀 몰랐다는 그저 DEEP의 공식적인 입장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DEEP의 사에키 사장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힘의 논리라는 부분이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고미와의 경기는 그렇게 뒷쪽에서 여러 단체와 여러 사람들의 엇갈리는 생각과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면서 그렇게
성사된 경기였습니다. 방승환 선수 입장에서도 세계의 강자로 불리우는 선수와의 일생일대의 대결을 하기 위해서
마음도 몸도 많은 고생을 했고 그를 서포트 하던 저나 일본 관계자들 그리고 DEEP의 사에키 사장도 결과적으로는
경기를 뛰게 만들려고 무던히 노력을 했던 그런 부분 들입니다.
<치열했던 고미와의 대결 좋은 대결을 펼친 고미 타카노리와의 경기 후의 방승환의 모습>
그리고 방승환은 2008년 8월 24일 센고쿠 무대에 올라서 고미 타카노리와 대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여러분도 잘 아시고 계실테니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말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달라진 이야기 그리고 UFC
경기가 성사되기 전까지는 이런 이야기 들을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성사되었기에 이런 부분 들의 노력에 DEEP을 압박했던 상위단체의 인물도 납득을 했나보다
싶었습니다만 결국 그건 아니었습니다. 거듭되는 타이틀을 회수하라는 압력 덕분에 DEEP의 사에키 사장도
결국은 자신의 단체의 안위를 위해서 이 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통해서
방승환은 DEEP에는 아무 상의도 없이 대회에 출전하여 챔피언의 자격을 의심스럽게 만들었다는
공식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에키 사장입장에서도 어려운 환경에서 중소단체를 이끌어 가는데 자금적인 압박이 들어왔으니
이를 피하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방승환 선수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제 입장에서도 잘 해결 되었기에
경기를 치룬 것으로 알았는데 뒤늦게 타이틀에 대한 압박을 가해오니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즉 처음 방승환의 센고쿠 출전을 가지고 문제를 삼을 때 타이틀 반납을 시키라는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방승환 선수는 타이틀을 그냥 반납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건 그것에 따른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알려지진 않았습니다만 방승환의 고미와의 대결은 여러가지 입장에서 방승환 선수에게 의미를 가진
그런 대전이었습니다. 그리고 타이틀 반납이라는 초강수를 띄웠을 때에도 그냥 반납하고 말자고 생각했던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UFC로부터 오퍼가 저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UFC와는 김동현 선수에
준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하던 중이었고 급기야 계약서가 도착했습니다. 물론 첫번째 제시해온 금액은 상당히
낮은 금액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동현 선수가 챔피언이 아닌 상태에서 진출했던 점과 비교해서 방승환 선수가 당시 타이틀 홀더였으니
그 점은 개런티에 반영해달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것이 반영된 꽤 큰 액수의 계약서가 도착했지만 방승환 선수의 그
계약서는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UFC 입장에서는 방승환 선수가 고미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경우에 그 큰 금액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겠다는 입장이었으니 이른바 고미와의 대결은 방승환 선수 입장에서는 정말 놓쳐서는 안될 매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이 계약은 현재로서는 유효한 계약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승환 선수가 이후 센고쿠 경기에서
호세 마스비달과의 대결에서 판정패 하면서부터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방승환의 타이틀 반납은 본인의 희망도 아니오 그저 단체간의 알력 덕분에 희생된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그정도로
격투기 시장이 열악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실 내부자로서 이런 이야기들 을 하기가 쉽지는 않은 결정입니다.
그리고 방승환 선수의 출전 과정에서 이렇게 어렵게 경기를 성사시킨 것을 모른체하고 그저 대회출전 그 자체에
편승해서 저희도 몰래 계약서를 들고가서 스폰서 쉽 계약을 해주겠다는 식으로 50:50으로 나누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라고 종용을 했던 국내 모 선수의 매니저의 행동도 상당히 짜증을 더해줬습니다. 어렵게 만든 대회에 나가는 선수에게
자기의 마크 하나 달아서 생색을 내겠다는 그런 행동을 하고서도 항의전화를 하거나 하면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니 저런 사람 밑에서 한두푼의 돈에 그걸 믿고 스폰서 쉽 계약을 하고 있는 한국선수들의
현재의 환경이 정말 너무 힘이 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승환의 타이틀 반납은 결국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돈 많고 힘 있는 단체가 이전에 친하던 선수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그 선수와 대결을 하겠다는 선수가 자기들이 원조하고 있는 단체이니 그쪽으로는 나가지 말아라고 했고
나가고 싶다는 개인의 의사를 들어주지 않기 위해서 다른 두 선수의 계약도 해주지 않은 상황을 만들었고 실상 대회에
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챔피언 단체의 대표자도 본의 아니게 선수를 비난하게 만들었던 상황을 만든 것이 과연
무엇이 문제일지 궁금해집니다.
선수는 그저 경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경기의 기회가 왔는데 다른 이 들이 서로의 알력으로 경기를
못하게끔 압력을 넣습니다. 독점욕일까요 아니면 그저 남이 잘 되는 꼴을 보기 싫은 것일까요? 그 판단은 여러분 들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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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