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 : 나는 한마디로 말하면 찌질이다. 4학년 때 우리 반 왕따였으니까. 물론 내가 처음부터 왕따였던 것은 아니다. 4학년 한 해 동안만 그랬다. 우리 반 짱한테 재수 없게 찍혀 고생한 거였다. 다행히 나는 4학년 겨울 방학에 이 학교로 전학을 와 5학년을 맞았다. 이제 난 새봄에 둥지를 틀듯 새로운 기분으로 완전 새 출발을 할 거다. 더 이상 찌질이 왕따로 살지는 않을 거다. - 알라딘
P.67~68 : “수민아, 너 이구동성파잖아? 대현이 못살게 구는 것 좀 그만하게 네가 말려 줄 수 없어?”
하은이가 내게 다가와 가파른 물살처럼 몰아붙였다. 난 얼굴이 귀 끝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하은이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꼭두각시라는 걸 모르나 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안 계실 때에만 대현이를 괴롭혔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신다. 그저 개구쟁이들끼리의 짓궂은 장난 정도로만 알고 계신다. 우리 반 아이들한테 대현이는 장난감이고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화풀이 대상이었고 희생양이었다.
대현이는 씻을 수 없는 죄인인 양 멸시와 외면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왕따 시절에 마음속 깊이 박힌 수레바퀴 자국처럼 패인 상처가 자꾸 덧나 미칠 것만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톱으로 잘라 내고 싶은 기억이다.
내가 4학년 때 당했던 것처럼 대현이의 성격이나 외모나 오해나 이런 것은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을 자기들이 원하는 쪽으로 만들어 흘러가게 했다. 그렇게 희생양으로 철저히 몰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듯 말이다. - 알라딘
P.119~120 : “넌 수민이의 멱살을 잡고 발길질하고 거기다 바닥에 패대기까지 쳤지만, 난 멱살을 잡고 발로 차는 시늉만 하다 풀어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 네 기분이 어땠니?”
선생님의 눈썹이 이마 한가운데로 몰리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투로 물으셨다. 민석이는 얼떨떨한지 멍한 낯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넌 소중한 사람이야. 수민이도 너만큼 소중한 사람이다. 나한테 더없이 소중한 너희들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된 내 맘은 어떨 것 같아? 수민이는 어떻고?”
민석이가 여전히 묵묵부답이자 선생님이 다시 말을 이으셨다.
“난 참담하다. 너도 네가 수민이한테 한 행동을 그대로 친구들 앞에서 해 보이니 많이 창피하고 부끄러울 거다. 그렇지?”
선생님이 민석이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자 힘없이 두어 번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친구들 앞에서 너한테 당한 수민이 맘도 너랑 똑같다. 아주 비참하고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울 거야.”
선생님은 한숨을 길게 내쉰 뒤 아직도 화를 삭이지 못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으셨다.“대현이한테도 이렇게 했어? 너희들, 대현이가 이렇게 당해도 지금처럼 구경만 했니?”
반 아이들은 아무도 입을 뻥긋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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